●회색빛 도시에 뜬 무지개 폴란드의 이웃들, 특히 독일이나 체코에서 아우라 넘치는 중세의 풍경에 흠뻑 취했던 여행자라면 회색빛을 다 씻지 못한 바르샤바의 스카이라인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도시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 보면 도시는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자리다. 소비에트 양식의 무뚝뚝한 건물과 생경한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도시는 시간을 보낼수록 구석구석이 아린 느낌이다. 스탈린의 선물이었다는 문화와 과학 궁전(Palace of Culture and Science)은 310m 높이로 여전히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게토에서 발굴한 진실의 편린 바르샤바의 박물관은 크든 작든, 모든 것이 특별하고 애틋했다. 전후 잿더미가 된 도시를 맞이한 그들에게 박물관은 대대로 물려받은 것, 우연히 발굴된 것들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도시를 재건해 냈듯, 역사를 재건해 내고, 그곳을 다시 출발점으로 삼아 나아가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최고의 건축가, 최고의 기술을 동원한 인터렉티브 뮤지엄들은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뒤집어 놓을 만큼 획기적인 체험을 약속한다. 바르샤바에서 꼭 가 봐야 하는 박물관을 꼽으라면 이견 없이 두 곳이 있다. 폴린 유대인 역사 박물관
올해 폴란드는 독립 회복 100주년을 맞았다. 그 100년은, 곳곳에 애잔한 아름다움이 깃든 이 나라로 성큼 들어서는 시간의 열쇠였다. 미지의 문 안에 선 여행자에게 꼭 맞는 열쇠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 폴란드 | 북쪽으로 발트해를 끼고 있는 동유럽의 국가로 1989년 체제 전환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인구는 3,850만 명,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다. 수도 바르샤바와 역사의 도시 크라쿠프, 비엘리츠카 소금광산과 아우슈비츠가 유명하고,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지만 아름다운 중세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소도
코소보 옆 나라 알바니아로 접어들었다. 코소보와 마찬가지로 알바니아에 대한 사전 정보와 지식의 두께가 습자지 한 장보다 얇았다. 게다가 코소보보다 여정이 더 짧아 겨우 하루 반나절의 야박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니 이 글은 가벼운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데, 다행히 알바니아의 첫인상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선을 넘다선을 넘었다. 코소보(Kosovo)에서 알바니아(Albania)로 넘어온 것이다. 차를 타고 육로로, 수월하게. 코소보-알바니아 접경지대에 설치된, 흡사 요금소 같은 검문소는 검박했다. 민족(알바니아계)
코소보와 알바니아 출장 의뢰가 들어왔을 때 농담하는 줄 알았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가 봤으니 발칸반도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두 나라에 관해서는 ‘내전’, ‘인종 청소’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 이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마치 듣도 보도 못한 미지의 생명체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스탄불 공항 CIP 라운지에서 맥주와 와인으로 야금야금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코소보(Kosovo)행 터키항공 TK1017 편이 한 시간가량 지연 출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휴대폰으로 확인한
앗스Assy앗스 휴양지로 가는 길. 대지를 가득 메운 연녹색 물결이 지평선까지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 작은 점처럼 마소떼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이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냈다. 때때로 소떼가 도로를 점령한 채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평화롭다’는 말은 이런 풍경을 표현한 게 틀림없다. 하늘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이곳엔 미세먼지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자연 그대로의 색을 입고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절로 건강해지겠어!바시키르에는 휴양은 물론 치료와 요
부르잔스키Burzyansky 북에서 남으로 2,000km 남짓 뻗어난 우랄 산맥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경계다. 최고봉인 북부의 나로드나야산 높이는 1,894m이며 남부로 갈수록 점점 낮아져 준평원 같은 지형이 나타난다. 우랄 산맥 남부에 있는 스타로수브한굴로보(Starosubkhangulovo) 마을은 우파에서 차로 5시간을 달려야 닿는 작고 아담한 산골 마을이다.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파스텔 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천연가스가 풍부한 나라답게 마을 구석구석 노란색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선 매
바시키르인의 땅을 가다백야가 시작되던 6월의 첫날. 난생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월드컵의 함성도 사그라진 지금, 그곳에서 보낸 5일이 꿈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우파UFA “짝짝짝!” 요란스런 박수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행기가 이제 막 우파국제공항에 닿은 참이었다. 무슨 일이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당혹스러워 하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기내는 내릴 채비를 하는 승객들로 분주했다. 혹시 꿈을 꾼 건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보려던 찰나, ‘비행 동
여행자가 가장 행운이라고 느낄 때는 찾아든 도시가 축제 중일 때다. 으스파르타는 때마침 장미축제 중이었다. 시청 앞 광장에는 전통복장을 한 남자들이 피리를 불고 북을 두드리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세르비아, 카자흐스탄 등 주변 국가에서 온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축제 행렬을 따라가다 멋진 콧수염을 가진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옷걸이처럼 생긴 수염은 족히 30cm는 되어 보였다. “웰컴 투 으스파르타. 장미도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아 유 꼬레?” 그렇다고 답하자 지금까지 만났던
로쿰(Lokum)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까, 모든 일들이 행복함을 향하는 듯 느껴졌다. ‘여행하는 삶을 살기를 잘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이다’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다. 맛있는 음식에 내 눈이 저절로 스르륵 감기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배시시 번지는 그런 순간. 아피온 시내에 자리한 ‘미림 울루(Mirim Oğlu)’는 1860년부터 로쿰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주인 알리가 시식해 보라며 집어 준 건 부드러운 치즈가 잔뜩 들어간 로쿰이었다. “카이막 로쿰이라고 하지.
로맨스나 멜로 영화만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심장은 딱딱하지 않았고, 감성은 메마르지 않았다. 간난 세월이 따뜻한 손과 촉촉한 마음을 거세해 버렸다. 칠정이 말라 버렸다. 피렌체(Firenze)의 두오모 성당Duomo di Firenze(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Santa Maria del Fiore) 쪽으로 발걸음을 놓으며,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2001년 작 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10년’과 ‘재회’라는 키워드 이외에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하긴 그 두 가지가 영화의 전부일지도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왔다. 기차는 오전 8시42분 루체른을 떠났고, 오전 9시50분 밀라노(Milano) 중앙역에 멈춰 섰다. 국경을 넘는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밀라노 투어의 시작은 건축물이 담당했다. 다양한 연대와 형식의 건축물이 자연스레 어깨를 맞대고 있는 도시가 다름 아닌 밀라노다. 1930년대 지어진, 낯빛이 어두운 무솔리니 스타일의 건물을 지나 유럽에서 가장 큰 보행자 전용 구역인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의 ‘4번 타자’ 유니 크레딧 타워(Uni Credit Tower)를 올려다보았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