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강렬한 무위의 열망이 커질 때, 비행기 표를 끊었다. 기차도, 공장도, 심지어 서점도 없는 나라, 현실에 길들지 않은 라오스를 향해.●여행의 시작과 끝비엔티안 VIENTIANE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수도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허리를 담당한다. 공항에서 내려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까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일정 시간을 보내야 하는 비엔티안은 라오스를 알아가기 좋은 곳이다.11월 보름, 대규모의 축제가 열리는 곳이자 지폐에 사용될 정도로 라오스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탓 루앙(That Luang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바다 위, 그 어딘가를 표류 중이다. 갑판 위로 오르니 별이 넘실거리는 건지, 파도가 넘실거리는 건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바다는 그저 검을 뿐이다.●항해항해란 흔들림에 이끌리는 것이다.흔들려서야 피어나는 꽃과도 같은 것이다.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피어나니틀림없이 피어날 것이다.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새벽녘, 배에 올랐다. 인도네시아에는 약 1만7,504개의 섬이 있다. 하루마다 1개의 섬을 여행한다면 꼬박 47년 하고도 5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소순다 열도에 위치한 플로
과일왕국 찬타부리 Chantaburi열대과일이 맛있기로 유명한 태국에서도 찬타부리는 ‘과일왕국’으로 꼽힌다. 파타야에서 출발해 찬타부리가 가까이 왔다고 느낀 건 두리안을 가득 실은 트럭을 보고서였다. 크고 작은 트럭들이 넘치도록 열대과일을 싣고 분주하게 달리고 있었다. 조금 더 달리니, 람부탄이 산처럼 쌓여 있는 시장이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리지는 못했지만, 마치 꿈의 동산을 발견한 양 계속 뒤돌아보며 람부탄 산을 잊지 못했다. ●홀딱 반해 버린 크리미 두리안과일 세례는 호텔에서부터였다. 로비에 들어서자
파타야의 변신은 무죄태국 동부 해안 최고의 휴양지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늘 파타야는 여행 목록 뒤로 밀려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알았다. 파타야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게다가 파타야는 몇 년 새 변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호텔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환상적인 쇼핑몰이 문을 열었다. ●에펠탑도 금문교도 있는 터미널21파타야 여행에서 첫 번째 행운은 그랜드 센터 포인트 호텔에 머문 것이었다. 2303호에 짐을 풀고 주변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 내려왔다.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의 치훌리 작품이 떠오르는 크리스탈
카메라, 모자, 수영복, 슬리퍼, 반바지… 아직 여름인 나라로 늦깎이 휴가를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린다. 말끔하게 정리된 방, 보송보송한 이불, 잘 차려진 아침식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미 설레기 시작한다.호젓한 해변에 자리한 아바니플러스 후아힌 리조트(Avani+ Hua Hin Resort)에 짐을 푼 건 저녁 무렵. 객실의 테라스 앞으로 수영장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찰방찰방 손을 담가 보다가 얼른 바다가 보고 싶어 해변으로 나선다. 수평선이 마치 자를 대고 그린 듯 직선을 이룰 정도로, 파도가 어찌나 잔잔한지 호수 못지않다. 여행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인도가, 세상의 일부인 것은세상엔 기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여행자가 인도를 바라는 이유다. ●No problem“노 쁘라블럼, 마이 프렌드” 그가 고개를 좌우로 덜렁거린다.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첫째,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있다. 둘째, 그가 든 카메라는 내 것이다. 셋째, 나는 그를 모른다(물론 그도 나를 모른다). 그러므로 ‘노 쁘라블럼’이라는 그의 단정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문제가 없다면 결론도 없다는 의미인데 그럴 리가. 내 입장은 그와 달랐다. 그의 행동에는 악의가 없었다(아마도)
봄의 꽃, 단풍의 가을, 시린 겨울의 눈송이 그리고 뜨거운 여름은 바다라서. 그 계절이 제철인 베트남이므로 등줄기를 할퀴는 더위와, 덕분에 더 진득해진 쌀국수의 국물은 이미 예상했던 맛. 이맘때쯤 어느 베트남의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다면 다낭일 텐데, 달뜬 저녁 불꽃은 의외였다. 피어났다 흩어졌다, 민들레처럼.불 튀는 밤, 다낭 국제불꽃축제쩐 흥 다오(Tran Hung Dao)는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는 베트남의 영웅이다. 소수 병력으로 13세기 당시 있었던 몽골의 침략을 막아냈다.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다낭엔 그의 이름을 빌린 길
향긋한 실론티를 마시며 스리랑카의 고산지대를 걷는 동안 비밀의 섬은 기꺼이 자신의 보석을 내보였다.스리랑카는 인도반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섬나라로, 인도와 포크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실론(Ceylon)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스리랑카의 과거 국호이자 섬 이름이기도 하다. 세계 제일의 홍차, ‘실론티’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약 2,000만명의 사람들이 실론섬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중 약 74%는 싱할라족, 18%는 타밀족이다. 영국 식민시절 남인도에서 홍차 재배를 위해 타밀족이 대거 이주해 온 결과다. 스리랑
쾌활한 성격의 젊은 부부가 6대째 운영 중인 시엔후 레저 농장(仙湖休閒農場)의 역사는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 타이완과 마주한 중국 장저우에서 건너온 조상들은 이곳 타이난 옌수이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용안 나무가 많고 농작에 적합한 산으로 이주했지만, 당시 이 지역은 산적이 출몰하는 위험한 곳이어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게 되었다. 용안 나무로 집을 짓고 사는 동안, 나무 아래에 작은 꽃들이 피어나자 벌들이 찾아들어 꿀을 따며 생태계가 순환되었고, 그 덕에 현재는 동물들이 살아가는
이런 첩첩산중에 농장이 있다고? 구불구불 산간도로를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 아리산 국가 삼림 공원 밑자락, 해발고도 약 1,500m에 위치한 롱윈 레저 농장(龍雲農場)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세먼지 가득한 도심을 떠나온 것만도 흡족한데 그림 같은 차밭과 쭉쭉 뻗은 일본 삼나무가 가득한 숲속을 거니는 것이 마치 보약을 마시는 기분이다.여느 고산 지대가 그러하듯 이른 아침 눈부신 햇살에 푸른 하늘을 자랑하다가도 정오가 지나면 안개에 휩싸인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이런 환경은 습기가 많고 열대지방에서 잘 자라는 죽순과 다양한 채소들
‘아이들이나 좋아할 이 아기자기한 어장에 뭐가 있겠어?’ 점잔 빼며 들어왔던 샹허 레저 양식장(向禾休閒漁場)에서 동심이라는 것이 폭발해버렸다. 해적선이라니! 어른이라면 응당 유치하다, 외면해야 할 것 같은 꼰대 감성은 끝끝내 동심을 이기지 못했다. 아마도 조개를 잡기 위해 신발을 벗어 던지는 그 순간부터였나 보다.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은 줄로만 알았던 체면이라는 녀석을 내려 놓자, 사소한 놀이들이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유쾌한데 아이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게다가 체험학습으로도 제격이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
흡사 꽃박람회라도 온 듯 3,000개 이상의 색상별 수국과 낭만적인 정원의 풍경이 ‘농장’이란 목가적인 느낌의 단어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일까? 화루 레저 농장(花露休閒農場)에선 가족 단위의 방문객보다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커플들이 유독 눈에 띈다. 또한 농장 곳곳에 타이완의 페이스북 인플루언서들이 자주 방문한다는 감성적인 장소들이 있어 구석구석 숨겨진 장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꽃을 주제로 한 농장답게 아로마 부티크 숍에는 후각이 즐거운 상품들이 가득한데 그중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는 상품이 있다. 탈모 개선에 효과
빠지직! 2년 전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난터우현의 지지선 기차여행을 하던 중 실수로 그만 달팽이를 밟아버리고 말았다. 그동안 나의 전과가 소문이 난 건지 무신췐의 달팽이들은 다행히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 중이었다. 서로 다른 이유였지만 또 한 번 사고가 날까 걱정하는 달팽이들과 연신 미모를 뽐내는 꽃 사이를 오가는 통에 시선이 상당히 분주했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고 싶은 바이즈롄(百子蓮, 아가판서스)은 큰 키를 이용해 살랑살랑 몸을 흔들고 일본에서 들어온 오월의 눈이라 불리는 오동꽃은 제 한 몸을 희생해 바닥에 곧
방문 전부터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진으로 눈길을 사로잡던 쭈오예 오두막(卓也小屋)은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설렘 지수에 ‘좋아요’를 눌러댔다. 부엉이, 천산갑, 버들붕어, 청개구리, 잠자리, 장수풍뎅이, 나비, 반딧불이 등 다양한 생명체의 터전인 쭈오예 오두막은 자연 친화적인 환경을 자랑하듯 자연 본연의 색을 담아내는 천연 염색 체험으로 유명하다.기하학적인 문양을 품은 예술적인 완성품에 지레 겁먹었지만, 체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원하는 문양을 선택한 뒤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천을 접어 쪽물에 담가 주면 어느새 완성이다. 사실,
‘과일길’이라 불리는 130번 현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도로 옆 작은 식당을 만날 수 있다. 마일 하이 카페(Mile High Cafe)라는 이름에 충실하게 해발 700m 고지대에 위치한 윈예쥐이 레저 농장(雲也居一休閒農場)은 연평균 26°C의 온화한 기후로 등산, 꽃구경, 과일 채집에 적합해 여름 휴양지로 특히 사랑 받는다. 게다가 자두의 주요 생산지인 먀오리현에 위치해 있어 봄에는 자두 향이 가득하고 여름에는 농장 주인이 직접 키운 자두로 만든 특별한 자두 요리를 맛볼 수 있다.자두 외에 생강도 유명해서 생강을 재료로 만든
목장이라니, 왠지 냄새로 고역이지 않을까 싶은 선입견은 목장에 들어서는 순간 와장창 깨져버렸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지금에 와서 알아챌 만큼 후각적인 거부감이 그야말로 전무했다.페이니우 목장(飛牛牧場)의 첫인상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뮤직비디오 감독이라면 남진의 리메이크 버전은 여기서 찍겠노라고! 미국에서 목장 운영을 배워 온 사장 부부가 운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소 12마리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120헥타르가 넘는 대규모 초원에 30~40마리의 소와 염소,
“양꼬치랑 맥주 실컷 먹겠네”칭다오에 간다고 하니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칭다오 시내에서 벗어나 황다오구에서 미식과 테마체험으로 여행을 가득 채웠다.●눈앞에 펼쳐지는 팔선전설칭쇼가 열리는 동방영도 대극장은 그 외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황다오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의 모습을 공연장에 오롯이 담았다고. 총 1,480석의 규모를 자랑하는 칭쇼의 공연장은 밤이면 환히 조명을 밝히며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중국의 오래된 전설인 팔선전설을 주제로 하는 칭쇼에서는 장군, 도사 등 다양한 신분과 출신의 신선이 등장한다. 대형 수조 및 파도 효
신주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타이완을 여행했다. 전형적인 소도시를 지나고, 국제슬로시티 치타슬로도 지났다. 큰 도시도, 비경도 없었지만 여유가 있다면 더 느리게 걷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도시신주 新竹신주시 관시(關西)에는 옛것과 동시에 지금의 것이 많다. 1937년 일제 강점기에 창업한 타이완 홍차 문화관(台紅茶業文化館, 타이홍차이에원화관)도 그중 하나다. 1930년대 초반, 타이완의 홍차는 일본에 헌상됐고, 1930년대 중반에는 타이완의 으뜸 수출 품목으로 성장했다. 루어 가문(羅氏)이 신주시 관시에 적을 두고
살포시 더위를 품은 푸꾸옥의 바람에게 속삭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한적함을 품어 다오.” 푸꾸옥(PHU QUOC)푸꾸옥은 베트남 남서부에 위치한 휴양지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베트남의 다른 유명 휴양지인 다낭이나 나트랑에 비해 관광 인프라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유네스코 생물보전 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덜 붐비는 휴양’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에게 안성맞춤 휴양지다. 합리적인 가격의 5성급 리조트와 투명한 비치에서 쉼을 즐기기에 제격이다.●느림으로 버무려진 시간 이른 아침, 푸꾸옥 국제공항에 도
손끝에 느껴지는 온도가 사근사근 간지러울 때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알음알음 꼬수운 내가 날 때문득 생각한다. 이곳에 머물고 싶다고. 물기를 가득 머금어 번지는 수채화빛 물결이 자리한 곳. 바로 사파다. 하노이에서 버스로 5시간 달려 도착한 해발 1,650m 높은 하늘과 맞닿아 자리한 도시. 하늘 위에는 또 다른 집이 지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이 산다. 자욱이 낀 안개 속에 사람과 도시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자신의 색이 옅어지면 사람과 도시는 서로의 채도를 맞추고, 자연스레 스며든다. 누군가 사파를 몽환적인 도시라 했던가. 그곳엔 꿈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