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일본 쓰시마 - 조선통신사 400주년기념 조선통신사 길 따라 쓰시마 도보여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0.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일본 본토보다 한국에서 더 가까운 섬, 날이 좋으면 부산에서 육안으로도 선명히 볼 수 있는 섬. 정오가 되면 거리에서 ‘고향의 봄’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곳이 바로 우리와 가까운 쓰시마 섬(對磨島)이다. 조선통신사가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는 첫발을 내딛은 기착지에서 과거의 행렬을 따라 걸어 보자.   

글·사진 박정은기자   취재협조 쓰시마시 0920-53-6111 www.city.tsushima.nagasaki.jp

뚜벅이로 한 시간  조선통신사의 발자취

쓰시마에서 조선통신사의 옛 자취를 찾아 떠난다. 걸어서 각 유적지별로 4분에서 최대 15분씩 걸으면 약 1시간30분 내에 쓰시마 이즈하라의 통신사 행렬을 따라잡을 수 있다. 그 길에서 400년 전 풍랑을 헤치고 조선의 문화를 전파하던 그들과 마주했다. 비바람이 치던 날, 배를 타고 쓰시마에 도착하는 과정도 만만찮았다.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간다면, 조선통신사비와 역사민속자료관 그리고 조선통신사들이 존경해 마지않던 박제상의 신라사신 순국비가 있는 곳은 필히 들러 볼 것을 권유한다. ‘아리랑마쯔리(아리랑축제)’, ‘반쇼인마쯔리’ 등이 열리는 기간이라면 더없이 즐거운 쓰시마 여행이 될 것이다.

일본에 발을 내딛다 이즈하라항

일본과의 선린우호와 문화전파를 위해 수시간의 풍랑을 헤치며 달려왔을 조선통신사. 기대감 속에 눈을 반짝거리며 기다렸을 쓰시마 주민들과 처음 조우한 이즈하라항(嚴原港)에서부터 그 행렬의 그림자를 쫓아가 본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항구. 아침 일찍 길을 나서 보니 산허리부터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와 아담한 이즈하라항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작은 어선들이 신비롭고 평화롭다.

통신사의 문서를 보관하던 그곳 세이산지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첫걸음은 이즈하라항 언덕에 위치한 ‘세이산지(西山寺)’에서 멈춘다. 외교문서를 보관하고 조선통신사 문서를 확인하던 세이산지는 대부분의 유적들이 화재나 자연재해로 소실돼 재건된 가운데 9세기 이전에 지어진 진짜 유적을 만나 볼 수 있다. 맞은편에는 비록 터만 남아 있지만 조선어학교의 흔적도 느껴 볼 수 있다.
유적지라고 해서 딱딱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자연을 축소해 집안에 들여놓은 듯한 일본 전통 정원에는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정원 앞 작은 자갈들은 바다와 파도를, 그 위에 크게 놓여진 암석은 섬을 의미한다. 각종 나무와 꽃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첫눈에 쏙 들어온다.

조선 표류민의 쉼터였던 숙박소 터

조선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조난을 했을 땐 표류민 임시 숙박소에서 보살핌을 받다 조선으로 보내졌다. 일본 본토보다 부산에서 더 가까운 쓰시마다 보니 어업을 하던 어민들이 이곳으로 흘러오기 쉬웠을 터. 당시 조선에도 일본인 표류민 임시 숙박소가 있어 서로 도왔다고. 아쉽게도 지금은 이곳에 푯말만 남아 과거를 추억하게 한다.

군무의 정수 와오도리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장소가 아무리 협소해도 군무는 계속된다. ‘와오도리(輪踊り)’라 불리는 일본의 이 춤은 여럿이서 길게 줄을 이어 둥글게 돌면서 간단한 동작을 따라하는 것이다. 

쓰시마에서 만난 시마모코 미호 할머니는 아무리 뜯어봐도 중년의 아주머니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춤과 노래에 능하고 살포시 웃으면서 군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까지 갖춘 미호 할머니. 60세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으며 춤추고 노래하면서 살다 보니 몸과 마음이 젊어진다고.

먼저 음악을 틀고 미호 할머니가 바닥을 손으로 찌르는 동작을 반복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둥글게 돌며 따라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동작이 많아서인지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진다. 와오도리를 주도하는 미호 할머니도 웃음을 참느라고 볼을 씰룩인다. 

통신사가 묵던 숙소 고쿠분지 

걸음을 잇다 보면 조선통신사 일행이 머물던 객관  ‘고쿠분지(國分寺)’가 눈앞에 펼쳐진다. 내부의 모습이 우리의 건축물과 흡사하다. 역시 이곳에도 오밀조밀한 정원으로 인해 푸르름이 가득한 모습이다.  

쓰시마를 산책하다 보면, 길가에 작은 사당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중 하얗고 작은 토기 인형을 넣어 놓은 ‘오지조’가 눈에 띈다. 고쿠분지 앞의 한 사당도 어린이 인형을 모셔 놓고 일찍 죽은 아이의 넋을 위로하고, 또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기 위해 탄생했다.

매년 여름에는 ‘지조마쯔리’가 개최된다. 알록달록 화려한 등불과 색종이 등을 이용해서 거리를 꾸미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류로 장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축제가 얼마 안 남아서인지 마을 전체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인구도 많지 않은 섬마을, 왠지 다양한 축제를 통해 통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지한파 소설가 나카라이 토스이 생가

지한파(知韓派)였던 나카라이 토스이(半井桃水)는 우리와 인연이 깊은 소설가로 1882년 춘향전을 번역해 아사이신문에 20회 연재하기도 했다.

일본의 5,000엔 신권의 주인공인 일본의 여류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木通口一葉)를 안다면 그녀의 유일한 연인이었던 나카라이 토스이에 대해서도 들어 봤을 것이다. 현재는 나카라이 토스이와 히구치 이치요에 대한 자료가 소장된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통신사 자료 보존
역사민속자료관

조선통신사의 길을 보면서 역사민속자료관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입구에서는 ‘조선국통신사지비(朝鮮國通信使之碑)’라는 글이 새겨진 비석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현재 역사민속자료관에는 조선통신사 행렬을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 2개 남아있는데, 그림에는 말만 81마리, 사람 수만 587명으로 당시 통신사 행렬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짐작케 한다. 

역사민속자료관에는 일본에서도 희귀한 소(宗)가의 문고들을 비롯해 부산 가마(도자기)와 조선간행본, 왜관지도, 고려청자, 고려판 대반야경 등 많은 자료들이 소장돼 있다. 맞은편에는 ‘이즈하라 향토자료관’도 자리하고 있어 각종 역사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으니 둘러보자.

조선과 특별한 인연을 맺다 반쇼인 

소(宗)가의 가족묘지인 반쇼인(万松院)은 어찌 보면 조선통신사와는 관련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가까이 보면 본당의 본존불이 십일면관음불(고려불상)이며, 조선이 기증한 제기삼구족도 찾아볼 수 있어 조선과의 특별한 연을 느낄 수 있다. 반쇼인에서도 매년 마쯔리가 열리는데, 쓰시마 역대 도주들의 무덤과 장군들의 위패가 모셔진 이곳 돌계단에 350개의 석등이 불을 밝힐 때면 그 모습이 장관이다. 시기를 잘 맞춘다면 유카타를 빌려 입고, 반쇼인에 들러볼 수 있을 것이다(입장료는 300엔).

반쇼인에서 조선통신사비를 보러 가는 길목에는 쓰시마 최후의 도주였던 소우다께유끼(宗武志)와 정략결혼을 했던 비운의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비’도 남아있어 가슴 한 켠이 뭉클해 온다.

통신사를 기념하다 조선통신사비

260년간 통신사 총 12회 방문. 한일관계의 상징인 조선통신사비가 이곳에 세워졌다.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르는 마지막 길에 조선통신사비를 뒀다. 

매년 8월 첫째 주 토·일요일에 ‘아리랑마쯔리’가 열릴 때면, 쓰시마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현된다. 500여 명의 참가자가 한국에서 제작한 의상을 입고 에도시대 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이 행사는 쓰시마의 가장 큰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주간여행정보매거진 트래비(www.travie.com) 저작권자 ⓒ트래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