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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꿈꾸다 1 ① 인도로 출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1.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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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내게 꿈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누군들 인도에 가면서 사연 하나 없을까 싶지만, 나에겐 다시 살고 싶은 이유를 찾아야 하는 운명의 땅과 같았다. 즐거울 것을 상상하지도, 수많은 추억을 만들 기대 따위도 없었다. 그저 내가 낯설고 나를 낯설어하는 그들의 검은 눈빛이면 족할 듯했다. 정말 그랬다. 인도에서 만난 그들은 때론 나를 감동시켰고 때론 나를 미치도록 짜증나게 했다. 인도를 다녀온 내가 이토록 ‘팔팔’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구석구석 숨어 있던 감정의 화산이 폭발해 버려서인지도 모르겠다. 용암은 굳어 새 땅을 만들고 생의 고통도 그 안에서 화석처럼 굳었나 보다. 이번 여행에서는 지치고 힘든 여정마저도 감사했다.  

에디터 오경연 기자   글·사진 방금숙 기자   

*방금숙 기자는 지난 여름 7월 부터 약 한 달여간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호를 시작으로 2~3회에 걸쳐 그녀의 내밀하고 개인적인 인도 여행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한 달간의 휴식. 인도를 가려는 생각은 결심이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당연한 것만 같았다.
비가 내리던 7월 24일, 비자 신청을 하러 한남동의 인도 대사관을 찾았다. 인도는 꼭 가야 한다는 숙명이었을 뿐 설렘도, 기쁨도 없었다. 그런데 대사관에서 비자를 처리하던 아저씨의 짧고 정확한 발음의 영어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참 귀에 익숙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인도식 영어’가 우중충한 날씨도 상관없이 마음에 행복함을 가득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인더’의 고향, 인도를 가다

인더는 호주에서 유학을 하던 22살의 인도인이다. 내가 세상에서 처음 ‘이 지구상에 인도라는 나라가 있고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구나’라고 알게 한 소중한 인연이다. 그와의 인연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열정인지 방종인지 구분하지 못한 무분별한 사랑 그리고 힌두사원을 다녀오면서 그가 살아 온 나라에 대해 느꼈던 괴리감이란…. 

사실 그가 자주 타 주던 차가 ‘짜이’였으며, 짜이가 얼마나 많은 인도인의 생활에 녹아 있는지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됐다. 그저 22살의 여행자였던 나는, 우연히 호주에서 알게 된 인도인의 낯선 사고를 사랑했지만, 달빛 아래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여행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떠난 후엔 그곳으로도, 그 시간으로도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멜버른의 시립도서관 앞에서 저녁 약속을 한 그날, 그는 내게 이런 주문을 걸었다. “Live life lively always!” 인도에 다녀온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과연 달라질까?

비행기 안에서 벼락을 보다

<트랜스포머>의 주인공이 나온 영화가 기내에서 상영되고 있다. 옆자리에 앉은 스물다섯의 대학생 ‘상욱’은 여행에서 만난 첫 번째 친구다. 그가 영화에 심취한 나를 부르더니 비행기 창밖을 눈으로 가리킨다. 어두운 밤하늘 사이로 번쩍번쩍 벼락이 치고 있다! 벼락과 수평으로 만나는 기분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밤하늘의 구름은 흰색이었다. 도저히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어제 남대문에서 산 카메라, 그 작은 친구가 처음 담은 사진이 바로 ‘벼락’이다. 

탑승 직전 인도 가이드북을 샀다. 가방에는 이미 8권의 책이 들어 있었지만 비행기에 타니 감상기는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인도는 상상이 아닌 현실인 것을. 어두운 비행기에서 가이드북을 눈이 빠지게 탐독하는 동안 현실 속 인도가 다가온다.

초보여행자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7월26일 목요일, 인도에서의 첫날 밤. 310루피를 주고 프리페이드 택시 티켓을 끊자마자 서로 택시기사라며 10여 명이 몰려 우리를 잡아끌었다. 주춤했지만 티켓을 끊어 준 사람에게 물으니 그들이 맞단다. 미심쩍은 눈빛으로 걸어가 첫 번째 택시에 올라탄다. 

‘탈OO’라는 인도인이 운전수 옆 보조석에 앉는다. “인도에 처음이냐?” “이름이 뭐냐?” “한국 어디서 왔냐?” 질문으로 택시 안 분위기가 왁자지껄해진다. ‘좋은 사람을 만난 건가?’ 운전수는 그의 브라더(인도인들은 서로를 다들 그렇게 부르는 듯했다)인데 힌디어밖에 할 줄 몰라 항상 본인이 동승한다고 했다. 공항에서 빠하르간즈까지는 40여 분, 결코 쉽지 않은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아, 이곳이 인도구나!

비행기에서 만나 일행이 된 상욱이 없었다면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거웠을 밤이다. 공항에서 델리 역 1/3쯤 와서 그들은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내리라고 한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인포메이션 센터는 문을 열고 있다. 직원으로 보이는 멀쩡하게 생긴 한 남자가 차로 다가온다. 그에게 “뉴델리 역이 안 보인다.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바로 저기가 역이다”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답변한다. 뭔가 수상하다. 상욱에게 “절대 영수증 주지 마. 우리가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해서 내리는 순간까지 말야”라고 다짐을 거듭했다.  택시기사에게 “우리는 숙소 예약이 돼 있으니 얼른 출발하라”며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주소를 가리켰다. 내리지 않을 기세를 알았는지 택시는 다시 출발한다. 

2/3 지점쯤 왔을까. 이번엔 차에 가스가 떨어졌다며 급작스레 차를 멈춘다. 너른 공터에는 오토릭샤가 서 있고, 순간 움찔했다. 이들이 강도로 돌변한다면? 온갖 상상을 하는 사이에 탈OO는 자신들이 비용을 지불한다며 택시에서 내려 릭샤로 갈아타라고 한다. 분명 공항에서 나오면서 주유소에 들러 놓고는 기름이 없다니 어이가 없다.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정말 기름이 없거나 고장이라면(물론 아니겠지만!) 네가 숙소 앞까지 함께 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영수증은 절대 주지 않을 거야.” 그 역시 물러설 기색이 없다. “여기서 자 버려라!” 문을 꽝 닫는다. 이때 영어를 못한다던 운전기사의 가공할 만한 연기력이 빛을 발한다. 부르릉 부르릉~. 차가 움직이고 다시 출발이다. 

이게 인도로구나! 첫날부터 너무 제대로 보여 주는 건 아닌지. 그러고 1/3을 더 달려 뉴델리 역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우여곡절 끝에 새벽 3시가 넘어 빠하르간즈에 간신히 도착한 후, 운 좋게 괜찮은 숙소를 구해 쉴 수 있었다.


빠하르간즈를 돌아다니며 머물 숙소를 찾았다. 어제의 방은 일본 비즈니스호텔보다도 훌륭했지만 보통 숙박비가 150~250루피라던 책의 정보에 따르면 400루피는 사치에 가까웠다. 빠하르간즈는 여행객들이 대체 얼마나 많이 오는지 곳곳에서 한국말이 홍수다. 그들은 “안녕하세요” 라며 한국말로 발길을 잡는다. 나보다 한국인을, 아니 한국인 여행객을 잘 아는 듯한 묘한 웃음과 함께. 

빠하르간즈 거리는 온통 쓰레기로 지저분했고 순간순간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지나가는 소들이 행여나 닿을까, 혹시 개똥을 밟지 않을까 몸을 비틀며 좁은 골목 사이를 돌아다니며 호텔을 찾다가 유로호텔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1일 더블룸이 250루피. 체크인 후에는 어김없이 카메라에 흔적을 남겼다. 인도에서는 델리 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체크인을 한 후 여권을 복사하고 영상에 증거를 남기는 일이 보통이다.

오후, 델리 시내 관광에 나서다
(빠하르간즈-붉은성-찬드니촉-티베탄 꼴로니)



오후 델리를 돌아보며 인도 적응에 나선다. 델리 역 앞에서 붉은성(레드포트)으로 가기 위해 오토릭샤에 손짓을 한다. 그런데 요금이 20루피부터 400루피까지 제멋대로다. 도로에 나선 뒤 돈이 아니라 그 혼잡스러움에 정신부터 잃게 생겼다. 20루피를 따라가려니 쇼핑센터에 들려 달라고 하고…. 결국 흥정을 거듭한 끝에 40루피에 성공했다.

처음 타 본 오토릭샤. 인도의 운전수는 모두 신이 내린 운전수들이 틀림없다. 도로에 빽빽한 차들과 오토릭샤, 사이클릭샤 사이로 어쩜 그렇게 신나고 아슬아슬하게 달리는지 서울의 복잡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릭샤는 보통 3명까지는 동일 요금을 받는데 가끔 인도인들은 사람당 요금을 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한다. 흥정한 요금도 막상 내릴 때가 되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며 더 내라고 우기기도 한다. 거리도, 도로도 다들 사기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30분쯤 달리니 멀리서 ‘붉은성’의 거대한 위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입구에는 검문을 하는 제복 입은 경찰들이 서 있다. 여자는 전용 통로가 따로 있다. 내 가방을 뒤지던(?) 여경찰은 일본에서 샀던 부채를 꺼내 들더니 “이거 얼마냐”고 묻는다. “한국 돈으로 만원 정도니까 400루피 정도.” “이거 내게 달라.” “…….” 가난한 가방이다 생각했는데 이들 눈엔 참 많은 것을 가진 걸로 보이나 보다. 

인도의 여름, 그 안의 한낮 더위는 거대한 성을 돌아보는 일을 관광이 아니라 고행으로 만들어 버린다. 붉은성 앞은 찬드니촉 거리다. 빠하르간즈보다 더 북적거리는 시장통. 벌써부터 볼거리를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모든 관광지를 생략하고, 지하철을 타고 왠지 조용할 것 같은 ‘티베탄 꼴로니’로 향한다. 인도에서 만난 티벳인은 한국인과 비슷한 생김새에 친근하고 친절했다. 적어도 이들은 사기를 치려고 덤벼들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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