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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① 다롄에 살어리랏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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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하얼빈에서 온 편지’로 잔잔한 감흥을 전해 준 바 있는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가 지난 9월 하얼빈에서 다롄으로 거처를 옮기고 다시 ‘다롄에서 온 편지’를 보내 옵니다. 이번 호부터 다시 격주로 연재될 그의 편지로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만 나서지 못하는 여행 갈증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다롄에 살어리랏다!


“우리 바다 보러 갈까?” 복작복작한 도시의 일상에 지칠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한마디다. 바다는 육지를 딛고 사는 우리들에게 거대한 장애물이지만, 갇혀 있던 시야를 수평선으로 풀어 헤치며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밀려들어온 파도가 어지러운 발자국을 지워내고 매끈한 모래사장을 선사하면, 난 새하얀 도화지를 건네받은 어린 학생처럼 그 위에 또렷하고 곧은 걸음을 그려 보곤 했다. 수평선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그런 내 옆을 지켜 주는 동무였다. 



하얼빈에서 랴오둥반도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다롄을 찾아온 것도 바다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다는 이유가 컸다. 물론 중국 대륙에 바다를 낀 도시는 수두룩했고, 중국 친구들은 산둥성 사투리가 배어 있어 중국어를 공부하기에는 하얼빈만 못한 도시라고 만류했지만, 다롄의 매력은 바다만이 아니었다. 

북방의 홍콩, 북방의 진주, 낭만과 관광의 도시 등 다롄을 따라다니는 화려한 수식어는 많다. 아담한 크기의 도시에 흘러넘치는 들뜨고 여유로운 분위기와 곳곳의 풍성한 쉼터는 다롄에 ‘말뚝’을 박고 싶은 충동마저 일으킨다. 다롄의 중심이랄 수 있는 중산광장을 비롯해서 아시아 최대의 원형 광장인 싱하이광장, 축구공처럼 생긴 대형 구조물이 자랑인 요우하오광장, 쇼핑의 중심지인 다롄역 앞의 성리광장 등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구획돼 있다는 것도 특색이다. 

해가 떨어지면 형형색색의 조명이 도심을 빛나게 하고, 시내 곳곳에 조성된 녹지는 다롄 시민들의 숨통을 시원하게 틔워 준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구식 트램은 여전히 사람들을 싣고 느릿느릿 거리를 가로지르고, 유럽풍의 아름다운 건물들은 마치 서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100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다롄이 꼽힌다는데, 정말이지 여행보다는 살기에 더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처럼 평화롭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까지 다롄이 걸어온 길은 평탄치 않았다. 19세기 말 서구 열강들이 중국 나눠먹기에 혈안이 돼 있을 때 러시아와 일본은 이곳 다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그 두 나라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랴오둥반도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도시를 화약 냄새로 물들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 러시아와 일본은 항만을 건설하고 수많은 광장과 우아한 건물들을 세우며 지금의 다롄을 형성했으니 칭찬(?)을 해줘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희귀하다는 것도 별나다. 베이징을 가보면 도로를 가득 메우고 흘러가는 자전거 행렬을 보면서 중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기 마련인데 다롄에서는 자전거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베이징과는 달리 다롄의 지형이 언덕과 산으로 구성돼 있어 자전거를 타는 일이 고역이기 때문이다. 다롄에 오자마자 시내 구경이나 할 겸 중고자전거를 한 대 샀는데 돌아오는 길에 땀을 뻘뻘 흘리며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오토바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데 타고 다니다가 경찰에게 적발되면 그대로 압수란다. 다롄에서 꼭 오토바이를 타보고 싶다면 택시처럼 운영되는 영업용 오토바이를 이용해야만 한다. 

다롄의 지도가 머리에 그려질 무렵, 난 약 보름간의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반도 끝에서 출발하는 만큼 배편을 통해 다롄을 빠져나가기로 하고 톈진을 거쳐 베이징, 그리고 산시성의 다퉁과 내몽골의 후허하오터를 차례로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다롄에서 일직선으로 서진을 하는 셈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내몽골의 초원이라! 말뚝을 박고 싶은 다롄과도 잠시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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