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베트남 사파 ① 구름 속을 오토바이로 달리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1.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트남 하노이 B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8시였다. 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안개 속에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들과 짐 보따리를 든 현지 주민들이 서성였다. 라오까이로 가는 기차의 출발 시간은 밤 9시15분. 역 앞 노점에서 바나나와 쌀국수로 간단한 요기를 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무는데, 노점 주인이 표를 보자고 해서 보여 주니 그가 말했다. 

“누가 표를 보여 달라며 자리를 찾아 주겠다고 하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에요. 아마 표를 바꿔치기 할 수도 있으니까. 침대칸 표 삯은 베트남 노동자의 한 달 치 봉급과 맞먹거든요. 푸른색 제복을 입은 사람이 역무원인데 그들도 100% 믿을 수 없다는 걸 알아두세요.”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곤 쌀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비아 하노이’를 한 컵 마셨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여행 역시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나와 후배 K는 출발 이틀 전까지 캄보디아, 남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결국 사파 행을 택했고 부랴부랴 항공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틀 뒤 아침, 우리는 인천공항을 출발해 오후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하루쯤 하노이를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날 밤 바로 기차를 타고 라오까이로 가야 했다. 라오까이로 가는 침대칸 기차표를 구한 것도 행운이었다. 하노이에 도착해 여행사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기차표를 구하러 다녔는데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후 4시에 와서 다섯 시간 후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구해 달라고 하면 어쩌란 말이냐?” 이런 표정이었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기차표를 손에 넣었고 우리는 급히 쎄옴(오토바이 택시)을 타고 하노이 B역으로 갔다. 하노이 B역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일단 기차를 타는 거야. 10시간 후, 우리는 라오까이에 도착해 있을 거야. 박하로 가는 버스는 거기서 알아 보면 되겠지 뭐.” 후배가 말했다.

우리가 라오까이에 도착하는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우리는 박하의 소수민족 재래시장이 꼭 보고 싶었고 그래서 무리를 해서라도 박하로 바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박하 재래시장은 지상 최대의 소수민족 재래시장으로 불리는데 일요일마다 열린다. 플라워 흐몽족이 가장 많이 모여든다. 플라워 흐몽족 외에도 인근 소수민족들이 각각의 전통의상을 입고 이곳으로 몰려든다. 

기차는 9시15분 출발했다. 밤 기차는 10시간을 달려 새벽 5시30분에 라오까이 역에 도착할 예정이다. 박하는 라오까이 역에서 다시 2시간을 버스로 가야 한다.  

기차 침대칸에 들어서자 서양 아줌마 두 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를 보곤 “Hello, Boys!”라고 반갑게 맞아 준다. 그들의 이름은 켈리와 아이린. 아일랜드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보름째 베트남을 여행 중이며 라오까이를 거쳐 사파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5년 전 박하에 갔었어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때만 해도 지구의 가장 구석에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을 거에요. 풍경도, 사람도. 모든 게 변해 가죠.”

켈리가 말했고 기차는 삐걱거리며 출발했다. 우리는 아이포드에 미니 스피커를 연결하고 Travis의 ‘Sailing away’를 들었다. 켈리와 아이린은 좋은 음악을 듣게 해줘서 고맙다며 비아 하노이를 사겠다고 했다. “Cheers!” 기차는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Bacha Sunday Market



까무룩 잠이 들었을까. 창밖에는 어느덧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라오까이!” 하는 안내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역 밖으로 나왔다. 역에는 미니버스 30대 가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파로 가는 여행자들을 태우기 위한 버스였다. 켈리와 아이린은 사파로 가는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손을 흔들며 그들이 말했다. “Enjoy! Boys.”
우리도 대답했다. “아마 사파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즐거운 여행하세요.”

역에서 나와 곧바로 직진하니 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그곳에는 BACHA라는 팻말을 단 허름한 버스 1대가 정차해 있었다. 버스 안에는 어느새 주민들이 가득 타고 있었고 터미널에 외국인은 나와 후배 K 단둘뿐이었다. 버스는 30분 후에 출발한다고 했다. 우리는 역 앞 노점에서 진한 베트남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흘낏거리며 지나쳐 갔다.

버스는 아슬아슬한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 옆은 낭떠러지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계곡이 아득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사람들이 손을 들어 차를 세웠고 그때마다 버스는 정차해 그들을 태웠다. 더 이상 탈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신기하게도 자리가 났다. 좌석뿐 아니라 어느새 통로에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버스 안내원은 의자 위를 넘어 다니며 버스비를 받았다. 버스 지붕 위에는 닭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박하 주변의 해발 900m에 이르는 고원지대에는 자오, 자이, 한, 싸팡, 눙, 푸라, 투 라오족 등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일요시장에는 주로 플라워 흐몽족이 모인다. 꽃을 수놓은 화려한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물소와 돼지, 말, 닭 등을 판다. 그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도 살 수 있다.

박하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20분. 버스에서 내리니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줄지어 시장으로 가고 있다. 그들의 뒤를 따라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다. 노천 이발관에서는 아저씨가 이발을 하고 있고 시장 한 켠에서는 흐몽족이 순대와 국수를 먹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수공예품을 파는 거리를 지나면 각종 야채와 술을 파는 노점이 이어지고 다시 고기를 파는 곳으로도 이어진다. 이들이 시장에 팔기 위해 내놓은 물건들은 집에서 만든 빗자루와 땔감 등 소박하다. 시장 아래쪽에는 우시장도 벌어진다. 커다란 뿔을 단 물소들이 팔려 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시장의 모습은 우리네 5일장과 너무나 비슷하다. 물건 값을 흥정하는 여인들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웃음꽃을 활짝 피우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있고 주막에서는 남자들이 왁자지껄한 술판을 벌이기도 한다. 마치 이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시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즐기기 위해 시장을 찾아온 것 같다. 축제 분위기다.  

후배 K는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곳 박하의 플라워 흐몽족은 사진 찍히는 데 별로 거부감이 없다. 사파 일대의 다른 소수민족이 사진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 플라워 흐몽족은 호의적이다. 일부러 포즈를 취해 주기도 한다. 

박하 주변에는 가볼 만한 시장이 여럿 있다. 깐꺼우 시장은 박하에서 약 20km 떨어져 있다. 물소 같은 가축들이 주로 거래되는 시장으로 중국 국경과도 가까워 중국인들이 이곳까지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사기 위해 산을 넘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박하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룽핀에서는 일요일에, 35km 떨어져 있는 꼭리에서는 화요일에 시장이 열린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박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반 퍼 마을로 트레킹을 다녀와도 된다. 반 퍼는 몽호아 족들이 사는 곳으로 3km 거리에 있다. 박하에서 싸오 마이 호텔을 지나 왼쪽 길을 따라 작은 산을 돌아가면 보이는 마을로 산 위로 향하는 길이 이어져 있다. 매우 단순한 생활을 하는 고산족 마을로 외국인들에게 매우 친절한 편으로 가이드 없이 갔다올 만하다.

박하 일요시장은 아침 9시 무렵부터 시작돼 낮 12시 무렵이면 파장이다. 장에 온 이들이 밤새도록 가파른 고개를 넘어왔다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정오에 출발해도 자정 무렵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K 역시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라오까이로 다시 이동했다. 라오까이로 가는 버스 역시 만원. 외국인은 나와 후배 K 둘뿐. 사람들이 우리가 메고 있는 커다란 카메라를 신기한 듯 바라다본다. 

그렇게 다시 라오까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라오까이에서 다시 사파로 가는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사파에 도착하니 오후 5시30분이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있다. 우리는 마운틴 뷰 호텔에 짐을 풀었다. 마운틴 뷰 호텔은 사파 끝자락에 있는 호텔. 사파 최초의 여성 트레킹 가이드인 주안 홍 여사가 운영한다. 코너에 자리하고 있는 객실에서는 사파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주간여행정보매거진 트래비(www.travie.com) 저작권자 ⓒ트래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