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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고미영 - 그녀의 도전은 언제나 ‘현재진행형’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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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요즘 날씨 많이 쌀쌀해졌죠?” 

하얀 입김이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할 무렵 만났건만, 약속장소인 커피숍 노천 테이블에 자리잡은 그녀의 표정에서는
추위 한 점 읽을 수 없다. 해발 8,000m의 ‘늘 추운’ 산 기후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지난 10월 시샤팡마 남봉 등정에 성공하면서, 국내 여성 산악인으로서는 최초로 한 해 동안 히말라야 8,000m 이상 3개 봉 등정 기록을 세운 ‘여걸’ 고미영. 연신 밝은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와 ‘수다스럽고’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살을 에일 듯 차가운 야외의 칼바람도 수그러드는 듯했다.

글 오경연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곽은정     

그녀와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선뜻 눈에 들어온 것은 까맣게 그을린 그녀의 얼굴과, 그래서인지 유독 돋보이는 그녀의 하얀 미소. “아유~ 많이 탔죠? 눈으로 완전 선탠을 하고 왔어요. 하하” 새하얀 눈(雪)에 살이 탔다는 사실을 낯설어하는 기자에게 고미영은 “하늘과 가까운 높은 산 위에 쌓인 눈에 햇빛이 반사되기 때문에, 일상적인 환경에서보다 더 많이 그을리게 된다”며 예의 그 하얀 미소를 지었다.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고미영을 만난 시점은 그녀가 히말라야에서 돌아온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자연스레 화제는 그녀의 등정 기록에 대한 이야기로 돌려졌다. 고미영은 올해 초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에 이어 지난 7월에는 해발 8,047m의 브로드피크 등정, 잇달아 해발 8,027m 시샤팡마 남봉 정상에 오르는 등 한 해 동안 쉼없이 바쁜 행보를 이어 왔다. 

“처음부터 ‘기록’을 세우기 위해 도전한 것은 아닙니다. 산에 오른다는 것이 즉흥적으로, 또는 욕심을 내세운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라며 그녀가 내민 엽서를 보니, 2011년까지 히말라야 14좌(8,000m가 넘는 산봉우리 14개) 등정을 위한 장기 플랜이 빼곡하게 프린트되어 있다. 무작정 최단 기간에 최고봉들을 완등하기 위해 조바심을 내는 것이 아닌, 계절별 또는 상황별로 무리 없이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 나가기 위한 자신과의 다짐이란다. “아직까지 국내 여성 산악인 중에서는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사람이 없어요. 물론 그 타이틀에 욕심이 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제가 계획대로 산을 등정해 나가는 동안 다른 분이 기록을 세울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산에 오르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이거든요. 기록이니 라이벌 의식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으려구요.”

운명처럼 ‘산’과 조우하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고미영이기에, 으레 ‘중견 산악인이겠거니’라고 짐작했던 기자의 추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산악 등반을 시작한 것이 작년 10월부터이니, 경력으로만 치자면 ‘초보’에 가까운 새내기 산악인이었던 것. “워낙에 체질이 고산 등반에 딱 알맞은 ‘맞춤형’으로 타고났어요.” 숨조차 쉬기 어렵고 식욕이 뚝 떨어진다는 해발 수천 미터를 넘나드는 산 위에서도 단 한번도 고산병을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왕성한 식욕까지 자랑한다는 고미영. 그래서인지 산악인이라면 몇 킬로그램씩은 살이 빠져서 오는 것이 ‘정석’이거늘, 그녀는 오히려 살이 쪄서 돌아온단다. 힘든 등정 중에 팍팍해지고 지치기 쉬운 등정팀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산악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체질’만이 전부가 아닌 것은 당연지사. 산악인으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하기 전, 고미영은 프로 클라이머(암벽등반가)였다. 전국대회 제패는 물론이고 아시안 선수컵 1위, 세계랭킹 5위에까지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 거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취미로 시작한 산악스키도 2006년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고르게 두각을 나타내던 그녀가 ‘운명처럼’ 산과 만나게 된 것은 2년 전. 소속회사(코오롱스포츠)에서 우연히 단체로 파키스탄 드라피카로 등정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이구나’라고 감이 딱 왔단다. “사실 그때 처음으로 고산 등반을 한 거였어요. 그런데 이게 해발 6,447m로 만만치 않은 높이인 데다가 일반인이 많이 가지 않았던 난코스였거든요. 힘들 법도 한데, 어찌나 즐겁게 등정을 했는지 나이를 먹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해볼 만하겠더라구요.”

그녀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

탄탄대로로 거침없이 달려온 듯한 그녀의 ‘스포츠 인생’에서도 작은 시련은 따랐다. 등반 중 60m 절벽 아래로 떨어져 척추뼈가 어긋나기도 했으며 지난해 봄,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등을 다쳤다고 하니 아주 큰 사고 같지만, 저는 워낙에 근육이 뼈를 꼭꼭 감싸고 있어 아픔도 느끼지 못했고 천행으로 수술도 하지 않고 완벽하게 아물었어요. 에베레스트 첫 도전에서 보기좋게 미역국을 먹은 것은… 어찌 보면 좋은 계기가 되었죠. 세계 최고봉이라는 에베레스트를 간다면서, 등산화도 아닌 트레킹화를 신고 갔다면 얼마나 무지했는지 아시겠죠?(웃음) 그 이후로 부쩍 오기가 생겨버려서 준비도 철저히 하게 되고, 이후 등정에서는 100% 성공했죠.”

무엇보다도 고미영을 고미영답게 지탱해 주는 것은 ‘긍정의 힘’. 소소한 실패나 어려움에 굴하기보다는 무조건 낙천적으로 생각한단다. 일례로 클라이머로 활동하기 이전에 ‘평범한’ 공무원의 길을 걷고 있던 그녀가 IMF를 전후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려 하자 주변에서 많은 우려를 했지만, 그녀는 프로 전향 첫해에만 2만달러가 넘는 상금을 벌어들였다. “앞으로 더 많은 봉우리를 등정하면서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을 거에요. 얼마 전에 엄홍길 선배를 만났는데, 한 봉우리에만 도전할 때 6번 연속 실패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게다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매니저(김재수 대장), 향후 14좌 완등에 경비 전액을 후원키로 결정한 코오롱스포츠 등 수많은 ‘플러스 요소’들이 그녀의 꿈에 날개를 달아 준 셈. 이에 더해 쉼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는 꾸준한 노력 역시 그녀를 뒷받침해 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클라이머에서 산악가로 전향하면서 체력 증진을 위해 7kg을 찌웠으며, 매일 하루 8시간씩 운동을 하며 하드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는다.

익숙하지만 늘 새로운 ‘유럽’



일의 특성상 밥 먹듯이 해외를 넘나들었던 그녀이지만, 정작 오롯이 휴식만을 위한 여행을 떠난 적은 거의 없단다. “클라이밍 대회가 주로 유럽에서 열리다 보니 이탈리아, 슬로베키아 등 여러 나라들을 많이 방문해서, 유럽이 가장 친근한 여행지에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라면 역시 스페인이죠. 푸른 바다 위 절벽에서 체험했던 암벽 등반의 짜릿한 기억도 인상적이었지만, 지인이 살고 있어서 대회가 끝난 이후에 종종 후에스카 등 스페인 여러 도시들을 여행했거든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구아(6,962m)를 등정하기 위해 또다시 여정을 떠난다는 고미영. ‘꽉 찬 나이의’ 그녀에게 결혼계획에 대한 질문을 삼가던 기자에게 감질이 났는지, 먼저 슬그머니 이상형을 풀어놓는다. “제가 워낙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게 일이라, 아직 생활 사이클이나 마음이 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요. 다른 조건은 필요 없이, 제 생활을 잘 이해해 주는 듬직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모든 일에 승승장구인 그녀, 조만간 일에서의 운만큼이나 연애운도 화통하게 트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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