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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 청아네 제주 올레 체험기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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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제주 올레가 있다는 걸 우연히 알았다.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그 길, 올레. 걸어 보고 싶었다, 제주의 속살을.
제주의 자연 속에서 흙을 밟으며, 오름을 오르며, 바람에 등을 밀려 거닐고 싶었다. 마침내 그 길, 제주 올레 위에 섰을 때 시작은 평화로웠고, 때론 힘들었으며, 많이 즐거웠다. 돌아오니 자꾸만 생각난다. 올레에서 만난 바람이, 풀들이 그리고 오름 위로 내려앉은 동그란 하늘이….  

에디터 김수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김숙현     

놀멍놀멍~ 쉬멍쉬멍~


ⓒ트래비

올레 걷기는 오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경험담에서 우러난 얘기다. 아침과 한낮이 햇빛도 좋고, 바다 색깔도 예쁘다. 시간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이 1코스 출발점인 시흥초등학교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운동장에 가득 깔린 잔디밭에 감탄하며, 셀프 모드로 출발 사진도 찍고, 그 모습을 본 교장선생님이 나와 이런저런 얘기까지 나누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났다. 위풍당당하게 세 명이서 교문을 나선 것까진 좋은데, 두 돌이 되려면 아직 세 달이나 남은 아이가 그새 걷는 게 귀찮은지 안아 달란다. 등에 착 달라붙게 메고 갈 수 있는 아기띠를 준비했으나 거부, 아이 아빠가 안아 올린다. 

학교 정문을 나서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그 주변으로 파랗게 물든 것은 바다.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사는 아이들을 얼마나 행복할까. 교문 오른쪽 길로 가다가 두 번째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본격적으로 올레가 시작된다. ‘제주 올레 길’이라는 작은 사인도 붙어 있다.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 좌우로 까만 돌담이 이어지고, 그 안에는 파릇파릇 감자며 당근, 양배추가 자란다. 겨울에도 포근한 기온 덕분에 채소 재배가 가능한 제주.

잠시 안았던 아이를 길 위에 내려놓자 길 가에 핀 꽃이며, 말라 버린 강아지풀, 하늘거리는 억새를 꺾어 보고 만져 보고 하느라 발길이 더디다. 뭐, 이런 게 ‘간세다리(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의 걷는 법이거늘. 제주 올레에서 만큼은 놀멍놀멍(놀며 놀며) 쉬멍쉬멍(쉬엄쉬엄) 가리라.

고개를 들면 말미오름(이 지역 사람들은 말미오름, 알오름을 합해 그냥 두산봉이라 한다)의 시커먼 바위절벽이 길게 이어지고, 돌아서서 바라보면 성산일출봉과 성산 앞바다, 우도까지도 바라다보이는 길. 시작부터 마음에 드는 길이다.
얼마를 갔을까. 돌담 옆에 작은 멍석을 깔고 콩을 털던 할머니가 어린 아이까지 동반하고 걷는 우리를 보고는 어디 가냐고 물으신다. 오름에 올라간다니까 저기까지 차로 갈 수 있는데 왜 걸어 가냐고, 아기 힘들다고 걱정하신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모르겠다. 그새 할머니의 콩 터는 행동을 따라하는 아이를 이끌며 말미오름으로 바짝 다가선다. 그림자가 길어진 것이 해가 꽤 기울었다.

소와 말이 반기는 길


ⓒ트래비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 보통은 여기까지 30여 분이면 도착할 것을 그보다 10여 분은 더 걸렸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다시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산으로 이어진 흙길, 직진은 시멘트 포장길이다. 흙길을 따라 오르면 말미오름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우리 가족은 여기서 올레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직진했다가 나중에 오름에서 자꾸만 길이 멀어져서 결국 말미오름은 포기하고 알오름만 올랐다가 내려와야 했다.   

제대로 말미오름 길을 잡으면 바닥에 폐타이어를 엮어 만든 매트를 깔아 놓은 게 보인다. 이 길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말미오름 능선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탁 트이면서 성산일출봉과 조금 전에 지나온 돌담길이 보인다. 주변으로 펼쳐진 파릇한 밭들과 밭과 밭 사이 경계를 이룬 까만 돌담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인상적이다. 출발지점인 시흥초등학교도 발아래 놓이고, 바다와 파란 물결 위에 살포시 누운 우도까지 장쾌하게 펼쳐진 풍광이 멋지다. 

말미오름에서 내려가 목장 문을 통과하면 ‘산담’이 즐비한 곳이 나온다. 산담은 돌담으로 두른 무덤으로 제주에서는 말이나 소가 무덤으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이렇게 산담을 두른다. 오름 발치에는 이런 산(무덤)과 산담이 많고, 밭 가운데도 흔히 보인다. 산담들이 몰려 있는 곳과 무밭을 돌아가면 알오름 입구에 이른다. 여기에도 목장 문이 버티고 서 있고, 문에 파란 리본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다시 꼼꼼하게 잠그고 알오름 정상을 향한다. 말미오름이 인공조림으로 소나무가 빽빽한 데 반해 알오름은 오름 특유의 민둥머리다. 말미오름은 소, 알오름에는 말이 방목 중이다. 덕분에 곳곳에 똥 무더기가 있다. 한눈 팔다간 살포시 밟고 미끄러질 수 있으니 조심할 것. 또 길 위에 소가 버티고 서 있을 때도 있다. 눈싸움 한 판 해주면 느릿느릿 비켜 준다.  

알오름은 오르는 동안에는 심심하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면 전망이 끝내준다. 해발 145.9m. 한라산에 비하면 우스운 높이지만 주변에 높은 것이 없다 보니 시야가 360도 트여 있다. 바로 아래로는 시흥초등학교가 보이고, 성산일출봉, 우도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우도 방면으로 약간 왼편, 바닷가에 불쑥 솟은 지미봉은 종달리 뒤에 자리잡은 오름이다. 고개를 반대로 돌리면 봉긋봉긋 솟아오른 오름들과 그 뒤에 배경이 되어 주는 듬직한 한라산까지 한눈에 꿴다.


ⓒ트래비

성산일출봉, 우도 전망 일품

전망에 눈을 주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 한라산 정상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급해진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한 탓에 알오름에서 일몰을 맞게 된 것. 사실 산에서 보는 일몰은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없다. 순식간에 어두워질 것이기 때문. 바람은 차가워지고, 아이도 피곤한지 아빠 등에 얼굴을 묻고는 움직이질 않는다. 


ⓒ트래비

내려가는 길에서는 더 이상 올레의 구호였던 쉬멍쉬멍을 외칠 수 없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도로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걸음을 빠르게 움직인다. 알오름에서 내려가 목장 문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시멘트길이 나온다. 파란 리본과 파란 화살표를 따라 걸으니 어느새 아스팔트 도로에 도착. 지도에 번호도 안 나오는 지방도로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사인을 따라 오른쪽 길로 걷는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종달리가 나오는데, 사실 꽤 거리가 멀다. 12번 일주도로와 교차하는 종달1사거리까지 1km가 넘는다. 지나가는 경운기나 차가 있으면 잡아나는 게 상책. 지나가는 차도 없고, 콜택시를 생각 못해 결국 시흥초등학교까지 걸어와야 했다. 사방은 완전히 깜깜해졌는데 도로변에는 가로등도 없다. 학교에 도착하니 저녁 6시30분. 이로써 3시간30분에 달하는 대장정이 끝이 났다. 

원래 1코스는 알오름에서 내려와 종달리, 시흥해안도로, 성산 갑문을 지나 섭지코지까지 이르는 18km 거리다. 해안도로에서는 시흥 ‘해녀의집’에서 조개죽을 맛봐야 하고, 바닷가에서 말리는 오징어도 질겅질겅 씹으며 걷는 재미를 놓치지 말 것. 남들이 땀 흘려가며 성산일출봉을 오를 때 올레꾼들은 수마포 해안에서 평소에 알지 못하던 일출봉의 가장 드라마틱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섭지코지 입구에서 오른쪽은 차량을 이용해 통행하는 일반인들이 가는 길, 왼쪽은 도로가 끊기는 섭지코지 뒷길이다. 뒷길로 해서 등대를 지나 주 통행로를 한 바퀴 돌아 신양해수욕장에 이르는 길은 전에 보지 못한 섭지코지의 새로운 멋을 발견하게 해준다. 

우리 가족이 걸은 것은 1코스의 1/3도 되지 않는다. 등산이나 걷는 일이라면 평소에 꽤 자신 있어 했는데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힘들었다. 게다가 준비운동을 전혀 안한 탓인지 종아리가 뭉쳐 며칠을 고생했다. 그럼에도 가슴에 남은 건 걷는 내내 나누었던 얘기들, 갈대 사이로 쏟아지던 오후의 햇살, 들꽃 하나에 활짝 웃던 아이, 오름 정상에 맴돌던 바람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종달리에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 우리 가족의 올레 길을.    

·1코스(총 18km) 시흥초등학교-말미오름-알오름-종달리 소금밭-시흥리 해안도로-성산포 갑문-통밭알-수마포-광치기-사구언덕-섭지코지-신양해수욕장

·2코스(총 8km) 쇠소깍-보목리-구두미포구-거문여-정방폭포-천지연폭포-외돌개-범섬

·시흥초등학교로 가려면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제주-서귀포 동회선일주도로를 왕복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시흥리에 내린다. 제주에서 시흥리까지 1시간 정도 소요. 

·1코스는 18km 정도. 아침 일찍 시작하면 시흥 해안도로나 성산에서 점심을 먹고, 섭지코지에 해질녘에 도착하게 된다. 꽤 오랜 시간 걷기 때문에 너무 무리가 되는 사람은 말미오름-알오름 구간이나 광치기해변-섭지코지 구간만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혹은 알오름에서 내려와 종달리에서 콜택시를 불러 수마포나 광치기까지 이동한 뒤 나머지 구간을 마저 걷는 것도 좋다. 콜택시는 성산읍에서 부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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