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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더블린 - 거리에서 피어난 음악과 사랑 영화 <원스>의 도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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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더블린에 다녀왔다. 그리고 영화 <원스>를 봤다. 더블린은 영화를 종하고 횡하는 기타와 피아노의 선율에 실려 둥둥 떠다녔고, 그와 그녀의 목소리가 심장 한쪽에 스며들수록 더블린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그리하여 멀리서나마 연서 한 통 띄운다.     

에디터 박나리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원스 ONCE>는 허허하다.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두뇌 싸움을 요하는 정교한 플롯도, 시선을 잡아끄는 요란한 카메라 워크도 <원스>에는 없다. 심지어 두 주인공의 극중 이름조차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는다. 결말도 열려 있다. 억지스런 해피엔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궁상을 떨거나 질척거리지도 않는다. 영화는 진공청소기 수리공이자 거리의 악사인 ‘그’와 체코 출신 이민자인 ‘그녀’의 사랑을,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시종일관 차분하게 보여준다. 아, 그러고 보니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 흔한 키스 신 한 번 없다. 영화는 규모, 형식, 내용, 연기, 연출, 노래 등 모든 면에 걸쳐 ‘검박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검박한 영화가 전하는 울림은 참으로 크다. 비움의 미학을 보는 듯하다.


ⓒ트래비

원스의 배경을 이루는 더블린은 영화 속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브룩 쉴즈의 청초하면서도 고혹적인 자태와 더불어 영화의 9할을 차지하는 피지의 순정한 자연이나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를 가능케 했던 뉴질랜드의 장엄한 풍경처럼 스크린을 먹어 치우지 않는다. 그리고 <비포 선셋>에 등장하는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말의 성찬을 펼쳐 보이는 카페처럼 영화 전개를 위한 유기적인 공간을 자처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낮은 목소리로 흐르며 두 사람의 감정을 보듬을 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 기타를 둘러맨 그 남자(글렌 한사드)가 노래를 부른다. 곧이어 술과 약에 절은 듯한 그의 동생이 나타나고, 이내 영화의 유일한 ‘추격 신’이 펼쳐진다. 거리의 음악으로 번, 그야말로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갖고 튄 동생이 형에게 뒷덜미를 잡힌 곳은 세인트 스티븐 공원(St. Stephen’s Park). 한눈에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활한 공원은 더블린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곳이다. 푹신한 잔디와 화단, 분수, 연못, 야외 음악당 등을 갖추고 있다. 조깅을 하거나 새 모이를 주거나 볕을 쬐며 인간 광합성을 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박신박신하다. 




다시 거리로 돌아온 남자는 해가 저물도록 노래를 부른다. 목이 터질 듯 ‘Say It To Me Now’를 열창한다. 그런 그에게 그녀(마르게타 이글로바)가 다가오고, 노래에 담긴 아픔을 꿰뚫어본 여자에 의해 두 사람은 말문을 트게 된다. 매일같이 그의 거리 공연이 이뤄지며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인연이 시작된 곳은 그래프톤(Grafton) 거리다. 오코넬과 더불어 더블린을 대표하는 거리인데, 흔히 한국의 명동과 비교된다. 거리는 갖가지 상점과 음식점, 끊임없이 몰려드는 인파로 활력이 넘친다. 무엇보다 그 널찍한 길에 차량은 오전 11시까지만 다닐 수 있고, 이후에는 오로지 보행자에게만 길을 내어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그래프톤에 가면 거리의 악사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처럼 음반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 혹은 그처럼 떠나간 연인을 되찾고 싶어 하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으나 저마다 총총걸음으로 일관하는 그래프톤에서 거리의 연주가에게 주목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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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거리의 예술가들을 볼 수 있으며, 거리의 음악가들에게 좀더 우호적인 지역은 템플 바(Temple Bar) 지구다. 펍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자 젊은이들의 해방구 같은 공간이다. 널리 알려졌듯이 아일랜드는 맥주 강국이고 펍의 천국이다. 훤한 대낮부터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모습은 아일랜드 사람이라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일상의 풍경 중 하나이며, 펍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장소가 아닌 사회 제반 현상에 대한 말과 말이 부딪는 담론의 장이자 온갖 비즈니스와 시시콜콜한 모임이 이뤄지는 사교의 장으로 그 위상이 높다. 

더블린에 자리를 틀고 있는 허다한 펍들 중에서 가장 우뚝한 지위를 누리는 곳이 바로 템플 바 지구의 ‘템플 바’다. 언제 들러도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왁시글덕시글하다. 저녁이면 라이브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환담, 쾌소, 호음한다. 관광객들은 여행의 감흥을 되살리며 웃음꽃을 피우고, 더블리너들은 일상의 곤고함을 털어내며, 여행자와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기네스를 위시한 맥주를 들이키며 도도한 취흥에 추썩거린다. 펍을 벗어나면 거리의 예술가들이 눈길과 발길을 붙든다. 때마침 한 타악기 팀의 연주가 유독 쩌렁쩌렁하다. 음악에 무지하고 예술에 몽매하지만 한눈에도 녹록치 않은 솜씨임을 알겠다. 악기를 두드리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주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데, 마치 명창이 뽑아내는 휘모리장단의 판소리처럼 빠르지만 정확하고, 정확하며 힘이 넘친다. 관람객들은 “We want more”라는 합창으로 연주에 화답한다.  

<원스>의 참을 수 없는 매력은 역시 음악에서 기인한다. 영화와 음악과 글쓰기에 두루 달통한 이동진씨는 ‘음악이 이야기를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라며 기꺼이 별 다섯 개를 달아 줬다. 개인적으로도 지금껏 만난 가장 사랑스런 음악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원스>의 음악들은 기름칠로 번들거리는 창법과 천편일률적인 가사와 과잉의 혐의를 거둘 수 없는 연주에 익숙해진 귀에 청량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원스>의 곡들에는 기교 대신 육성이 담겨 있으며, 거추장스럽게 우회하지 않는 아름다운 직선의 힘이 담겨 있다. 가사는 단순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아노 매장에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Falling Slowly’와 그 남자가 쓴 곡을 들으며 즉석에서 흥얼거리는 그 여자의 ‘If You Want Me’에 매료당한다. 그녀가 편의점에서 구입한 새 건전지를 CD 플레이어에 넣은 다음, ‘If You Want Me’를 부르며 집까지 오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다. 더블린의 어느 길인지, 또 어느 건물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도 오랜 잔상과 잔향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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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 more

 가는 방법 개인적인 여정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런던으로 들어갔다. 비행시간 약 11시간30분. 히드로 공항에서 더블린으로 연결되는 비행 편도 있지만 런던을 먼저 돌아본 관계로 개트윅 공항을 이용했다. 개트윅 공항까지는 런던 빅토리아 역에서 15분마다 출발하는 개트윅 익스프레스라는 열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25분 정도면 공항에 도착한다. 선택한 항공사는 라이언 에어(www.ryanair.com). 저가 항공사로 유명한 회사인데, 예약만 서두르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대신 기내 서비스는 전무하다. 물도 돈을 내고 마셔야 하며 좌석 번호도 없다. 개트윅 공항에서 더블린 공항까지의 비행시간은 55분 정도 소요. 더블린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에어 코치(www.aircoach.ie)를 비롯한 공항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에어 코치의 경우 편도를 기준으로 성인 요금이 7유로다. 좌석 공간이 상당히 넓어 쾌적하다. 시내까지는 교통 상황과 목적지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보통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여행 계획 더블린은 주요 명소들이 담상담상 모여 있어 도보 여행이 충분히 가능하다. 시내 중심부에 숙소를 정한다면 오코넬 거리, 제임스 조이스 센터(www.jamesjoyce.ie), 작가박물관(www.writersmuseum.com), 트리니티 칼리지, 그래프톤 거리, 더블린 성, 성 패트릭 성당 등을 걸어서 오가기에 편리하다. 단, 올드 제임슨 증류소(www.whiskeytours.ie)와 기네스 스토어하우스(www.guinnessstorehouse.com) 등은 조금 멀리 위치해 있다. 지역을 기준으로 일정을 짠다면, 하루는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명소들을 돌아보고 그 다음에는 리피 강을 기준으로 강북과 강남으로 나눠 여행하면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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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원스>를 지우면 더블린은 제임스 조이스의 도시로 다가온다. 모더니즘 문학의 금자탑을 이룩한 작가로 평가받는 그의 대표작은 그 유명한 <율리시스>. 더블린에는 제임스 조이스와 <율리시스>의 흔적이 <원스>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짙게 남아 있다. 조이스의 문학적 성취와 생전 삶의 편린들을 그러모아 놓은 곳은 더블린 작가 박물관(Dublin Writers Museum)과 제임스 조이스 센터(James Joyce Center). 특히 더블린 작가 박물관을 찾으면 조이스 이외에도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조나단 스위프트, 사무엘 베케트 등을 만날 수 있어 더블린이 왜 ‘유럽 문화의 수도, 세계 문학의 심장’으로 군림하는지 절로 알게 된다. 제임스 조이스 센터 인근의 벨베디어 칼리지(Belvedere College)는 그가 11살부터 16살까지 수학했던 곳이다. <율리시스>의 주인공 블룸이 소설 속에서 점심을 들었던, 그리고 실제로 조이스가 즐겨 찾았던 펍인 데이비 번스(Davy Byrnes)는 조이스 산업의 최대 수혜자다. <율리시스>에 등장한 이후 매출이 크게 오른 것. 식당 주인은 ‘데이비 번스 아일랜드 창작상’을 제정, 유능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으로 ‘율리시스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템플 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이스의 또 다른 단골집인 스태그스 헤드(Stag’s Head)가 있다. 분위기는 템플 바에 견줘 훨씬 차분하지만 목을 미끄러지듯 타고 넘어가는 기네스의 맛은 여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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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오코넬 거리와 템플 바 지구는 시내 중심부답게 숙박 시설이 풍부한 편인데, 유명 펍들이 몰려 있는 템플 바 지구의 숙소는 밤이 깊어도 좀 시끄러울 수가 있다. 대신 온갖 관광객들과 섞여 흥겨운 저녁 시간을 보내기에는 적합하다. 이삭 그룹(www.isaacs.ie)은 호텔과 호스텔 등 다양한 등급의 숙박 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더블린 관광청 홈페이지(www.visitdublin.com)에서 숙소를 검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이트라이프 역시 펍을 빼놓을 수 없겠다. 더블린 시내 어디에 숙소를 정해도 괜찮은 펍 하나쯤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유명한 곳들은 위에 적시한 템플 바, 데이비 번스, 스태그스 헤드 등인데, 기네스 1파인트 한 잔을 주문하면 각각 5유로, 4.45유로, 4.3유로를 받는다. 로어 브리지 거리의 브라젠 헤드(Brazen Head, www.brazenhead.com)도 많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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