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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꿈꾸다 2 ① 바라나시 :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곳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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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비

핑크시티 자이푸르역 앞 식당 구석에 앉는다. 어디로 갈까.  여정 상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를 거쳐 바라나시로 가는 것이 합당해 보이지만 선택은 그냥 ‘바라나시’부터다. 자이푸르에서 관광지를 돌아보며 도시 여행에 회의가 든 참이었다.또 여행자들을 통해 전해들은 아그라는 가장 악질(?) 삐끼들이 설친다니 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서 바라나시로 떠난다. 티켓이 필요 없는 생생한 인도를 보기 위해 무려 17여 시간의 열차 여행을 감행한다. 

글·사진 방금숙 기자

*방금숙 기자는 지난 여름 7월부터 약 한 달여간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121호에 이어, 그의 아주 내밀하고 개인적인 인도 여행 다이어리, 그 두 번째 편을 싣습니다.

자이푸르를 떠나며 : 기차역에 앉아서

 ⓒ트래비

인도 사람들의 호기심은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다. 큰 두 눈으로 외국인이며, 먹을거리며 특별한 것들을 응시한다. 놀이 삼아 제 혼자 눈싸움이라도 하는 듯, 깊고 집중력 있는 참으로 강렬한 눈빛이다. 한 여인이 앉아 있다. 뒤에서 한 남자가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린다. 여자는 다 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본다. 반가운 인사를 하는 연인을, 저 쪽 의자에 앉은 사람들과 나는 열심히 바라본다. 몇 분이 지나도 인도인들은 아직도 호기심이 다 채워지지 않은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그들을 지켜본다.

기차는 또 연착이다. 바닥에 앉아 나보다 높이 앉은, 또는 서 있는 인도인들을 바라보니 이제껏 보지 못한 그들의 일상사가 눈에 들어온다. 음료수를 팔던 그가 음료수와 음식을 수레 깊숙이 넣어두는 모습을, 다리를 꼬고 수레에 기대서서 익숙한 듯 신문을 읽고 슬리퍼를 벗었다 신었다 반복하는 습관을 관찰한다. 하늘에는 미처 몰랐던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기차역의 새들도 예쁜 소리로 울어댄다. 

‘기차가 연착된 건 잘된 일이야. 그만큼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켈리역을 지나, 기억의 터널로

바라나시로 가는 열차 안. 차창 풍경은 그마저도 인도 여행이라 불러도 충분할 만큼 인상적이다. 이름 모를 대지 너머로 태양이 기울어 가고, 머리에 짐을 인 사리 입은 아낙네들은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한다. 사람들은 또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누가 탔든 누군가 손을 흔들어 주든 상관없다. 손을 흔들다 문득 이방인을 발견하면 더욱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손을 흔든다. 

기차가 지도에도 없는 켈리역을 지나 밤을 향해 내달릴 때 나의 감성은 뜨거웠던 기억 속으로 깊게 빠져든다.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작은 인생 하나하나를 파고든다. ‘많이 아팠구나. 살아오면서…’ 기억의 무게가 힘겹게 전해진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 수많은 혼란 속에서 미처 나를 위로하지 못했구나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어두운 터널을 향해 열차가 달릴 때, 문득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될지도 모를 인도 여행, 하지만 이때만큼 생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든 순간도 없었다. 그때 지나던 과일장사가 말을 걸어 온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로 그는 웃으며 내게 말한다. “이 과일, 오늘은 그만 팔려고. 이 바구니에 있는 과일은 원하는 만큼 다 먹어요. 내가 줄 테니까.” 나보다 더 생에 찌들어 보이는 그가 먼저 ‘낯선 이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곳에서도 혼자가 아니구나.’ 그에겐 아무 일도 아니었을 그 순간이, 내겐 삶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주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항상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듯 정신은 가난하기만했다. 여행이 감사한 건 손바닥만한 카메라 한 대, 메모장, 닳아 빠진 CD플레이어가 있음으로 ‘행복하다’ 말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여행과 인생은 분명 서로 다른 길로 가고 있지만 인생을 위로하기에는 ‘여행’만한 친구도 없는 것 같다.

바라나시 :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곳

문이 열린다. 살금거리는 걸음도 아니었지만 터벅거리지도 않았다. 누군가 천천히 걸어와 내 곁에 눕는다. 침대가 살며시 주저앉는 느낌…. 누굴까. 불이 켜져 있었지만 나는 누군지 알 수가 없다. 한참 후 돌아보니 그곳엔 아무도 없다.
바라나시에서의 첫날 밤은 이렇게 가위에 눌렸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화장터 장작 위에서 천에 돌돌 쌓여 누워 있던 시체들의 실루엣을 잊지 못하던 참이었다. 스물 여덟이 될 때까지 한번도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바라나시에 가기 전까지는….

결국, 잠 자기를 포기하고 책을 집어든다. 


 ⓒ트래비

혼란의 도시에서 잠들다

누군가에게는 영적인 빛이 충만한 도시, 또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도시 바라나시가 나에게는 ‘혼란의 도시’로 다가왔다. 바라나시는 상상해 온 인도를 현실에서 만난 곳이다. 힌두 신앙에 의해 강가(Ganga, 갠지스강은 영어명으로 현지에서는 강가라고 불린다)에서 성스러운 물로 목욕을 하면 모든 죄가 씻기고 죽은 후에는 그 재를 강가에 흘려 보내면 윤회로부터 해탈을 얻을 수 있는 바라나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바라나시역, 오토릭샤꾼과 흥정을 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것마저도 만만치 않다. 델리와 자이푸르보다도 더 심하게 삐끼들의 지독한 접근이 계속되고 언성을 높인 뒤에야 겨우 릭샤를 잡아 탄다. 도시는 온통 순례자들의 옷차림처럼 주황색 빛으로 물들어 있다. 

한국인 여자가 인도인과 결혼해 운영하는 ‘바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푼다. 창밖에 원숭이가 살고 저 아래로 갠지스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식당에서 한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점은 지친 여행에서 단비와 같았다. 때로는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 여행자들이 모이는 ‘라가 카페’에 가서 한식을 먹고 또 책을 읽으며 망중한을 즐긴다.

갠지스 강가를 연결하는 가트 길은 우기인 7~8월이면 으레 물에 감긴다. 길이 막히니 지도에 가깝게 표시된 곳도 미로를 헤매듯 찾아가야 한다. 골목 곳곳에는 사람과 개, 소의 배설물이 흩어져 있고 오래 전에 짠 소젖 냄새가 밴 듯 속을 뒤집는 비린 냄새도 진동한다. 그러나 길을 헤매다가도 골목에 늘어선 작은 가게를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을 까맣게 잊고, 책에도 없는 멋진 카페와 빵집을 발견할 때는 ‘우연’이 가져다주는 행운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갠지스에 손을 담그다


 ⓒ트래비

강은 제법 속도를 내고 흐르고 있다. 석양이 지는 바라나시는 어떠한 도시보다도 아름답다. 갠지스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도 조용히 흐르는 강물과 어우러진다. 

새벽 6시.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가트로 달려간다.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조용히 명상을 취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가트는 목욕을 하며 의식을 하는 곳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한 쪽에서는 보트를 타라고 줄기차게 흥정을 해댄다. 성스러운 아침을 방해하는 이들로 인해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 도시의 법칙이 그렇다면 배를 타 봐야지! 멀리서 갠지스강을 보러 온 듯 보이는 아주머니 일행이 배를 한 척 잡는다. 50루피에 흥정을 하고 일행과 함께 배를 탄다. 배가 볼록하게 나온 보트 주인은 혼자 탄 외국인이 멋쩍은지 영어로 가트 곳곳의 볼거리를 설명한다. 힌두 일행은 버닝카트(시체를 태우는 화장터를 의미한다) 뒤쪽 사원에 내려 목욕 채비를 한다. 친구를 만난 듯 시끌벅적한 모습이 성스럽다기보다 즐거움이 넘쳐 보인다. 일행이 몸을 씻으며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배는 화장터 바로 앞에 멈춰 선다. 시체 한 구가 들어온다. 금빛으로 몸을 감싼 시체는 크기만으로 남자, 여자, 어른과 아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 가족이 아니라면 알 수가 없다. 시체들은 몸 전체를 물에 담글 뿐 아니라 얼굴 천을 열어 입 안에 강물을 5번 정도 넣는 의식을 한다. 잠도 덜 깬 이른 아침, 마음의 준비 없이 시체의 얼굴을 대면한다. 토할 것 같은 강한 충격에 휩싸인다. 

“갠지스강에서 시체 태우는 거 봤어?” 여행 도중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던 질문이, 이제야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는다. 죽음 그리고 화장은 결코 여행객의 구경거리에 불과할 수 없다는 것을…. 산 자와 죽은 자가 아무런 여과 없이 만나는 순간, 그 충격은 눈물을 빼고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시체를 태우러 온 가족들은 울지도 않는다. “여기에 오면 죽은 사람이 여럿이죠. 여기에서는 혼자가 아니예요. 죽은 사람과 가족들은 멀리서 바라나시로 오죠. 3시간 정도 의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들도 물론 울어요. 사실 나이가 많이 든 노인들이 죽었을 때는 오히려 즐거워하죠. 한번은 큰 북을 치고 노래하고 술을 마시며 축제를 한 적도 있어요.” 보트 주인은 설명한다.

혼자 가지 않는 길이라서 죽음도 외롭지 않다는 그의 말처럼 죽음마저 두렵지 않은 종교의 나라, 인도. 까맣게 재만 남은 시체를 휭 하니 던지는 그 강에 손을 담궈 본다. 생각보다 미지근한 강물이 손끝에 닿는다. 잊을 수 없는, 신의 축복이 느껴지는 바라나시의 아침 풍경이다. 

화장터에는 시체와 죽은 이의 가족이 있고, 그 외에도 시체를 태우는 사람, 다 타고 남은 재를 버리는 사람,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죽은 자와 함께 사진을 찍는 가족과, 그 뒤로 타고 남은 재를 먹는 개와 소까지 한데 어우러진,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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