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라싸 ① “종교는 그들의 힘”
티베트 라싸 ① “종교는 그들의 힘”
  • 트래비
  • 승인 2007.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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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를 그리며 라싸 땅을 밟은 여행자라면 잠깐의 혼돈을 피할 수 없다. 중국어 일색인 간판과 자동차가 점령해 버린 도로. 중국의 한 도시를 연상케 하는 이곳이 과연 티베트인가? 하고. 맞다. 티베트는 이미 중국의 자치구 중 하나일 뿐이다.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도 떠나 버린 중국 땅의 일부가 티베트인 것이다. 하지만 처음의 혼돈은 라싸에 머무는 동안 금방 사라지게 된다. 남의 땅, 내 땅을 생각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며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인들 덕분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생활이, 종교가, 생활이 된 종교가 있을 뿐이다. 티베트인들이 살아가는 티베트는 그래서 티베트다. 

에디터  트래비 편집국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취재협조  아리수투어 02-736-4041
 

 조캉 사원
티베트의 심장



티베트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조캉 사원’. 석가모니 불상을 만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끊임없는 오체투지로 신앙심을 표현하는 티베트인들 때문일까. 조캉 사원에 서면 티베트 땅 구석구석을 감싸고 있는 티베트 불교의 힘이 느껴진다. 

조캉은 7세기 초, 송첸 감포 왕 때 만들어진 유서 깊은 사원이다. 당시 티베트는 토번이라는 나라로 송첸 감포 왕에 이르러 티베트 전역을 통일하고 수도를 라싸로 옮긴다. 그는 네팔 공주인 브리쿠티와 632년에 결혼해 포탈라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또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고원 아래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당나라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이에 당나라 황제는 공주를 라싸로 보내 송첸 감포와 결혼하도록 한다. 그 공주가 문성공주다. 641년의 일로 문성공주는 681년에 사망할 때까지 라싸에서 살았다. 

조캉은 본래 네팔 공주가 네팔에서 가져온 ‘미쿄 도르제(부동금강류금동상)’를 모시기 위해 만든 사원이다. 사원의 정문이 네팔을 향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조캉과 같은 시기에 건축된 자매 사원인 ‘라모체’는 당나라 문성공주가 가지고 온 신성한 불상인 ‘조워(석가모니 불상)’를 모시기 위해 만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사원 터가 호수였던지라 사원은 짓기가 무섭게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문성공주는 산에 사는 양들을 이용해 흙을 날라 호수를 메우며 조캉을 건설했다. 이때부터 양이라는 뜻의 ‘러’와 흙이라는 뜻의 ‘싸’가 합쳐져 라싸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조캉이 지금처럼 신성시된 건 송첸 감포 왕이 사망한 이후 문성공주가 조워를 보호하기 위해 라모체에서 조캉으로 조워를 옮겨 숨겨 놓으면서부터다. 티베트인들에게 조워의 의미가 어떠한지는  조캉 사원에 서면 금방 알게 된다. 끝이 없을 듯한 줄 그리고 줄. 모두 조워를 보기 위한 발걸음이다. 사원의 3층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백명은 됨직한 이들이 오체투지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종교와 일상의 구분이 무의미한 듯 보인다. 

조캉 사원은 639~647년 사이에 건축된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과 보수가 이뤄졌다. 안타깝게도 문화혁명 당시에는 상당 부분 파괴되기도 했다. 한때는 돼지우리로 사용됐을 정도였다니 당시의 황폐함이 짐작된다. 승려들이 조캉 사원에서 다시 수행하게 된 건 1979년의 일. 현재의 조캉 사원은 1992~1994년에 재건축한 것이다. 입장료 70위안.

  바코르
가장 유명한 순례 길  

바코르. 외지인들에게는 시장 정도로만 보이는 짧은 길이지만 티베트인들에게 바코르는 순례의 길이다. 마니차를 돌리며 바코르를 순례하는 티베트인들을 보면 이 길이 갖는 의미가 조금이나마 짐작된다. 바코르를 알려면 우선 ‘코라(Kora)’를 알아야 한다. 코라는 티베트에서 말하는 순례 길이다. 주요한 사원이나 도시 가장자리를 따라 코라가 형성된다. 코라를 따라 돌 때는 반드시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코라를 도는 이들은 불교도가 아니라 ‘뵌교도’라고 보면 된다. 

라싸에서 중요한 코라는 모두 4개다. 가장 짧은 코라는 조캉 사원 내부를 도는 ‘낭코르(Nangkor)’. 사원이 문을 여는 시간 전부터 티베트 순례자들이 찾아와 줄을 선다. 조캉 외부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코스는 ‘바코르(Bakor)’로 라싸에서 가장 유명한 코라다. 1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로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라싸 구시가를 한 바퀴 도는 ‘링코르(Lingkor)’는 무려 8km 길이다. 도시가 확장되며 4차선 도로가 점령해 순례자의 발길은 적은 편이다. 마지막으로 포탈라 궁을 따라 도는 ‘포탈라 코라(Potala Kora)’가 있다. 

바코르는 조캉 사원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레 생겨났다. 바코르가 형성되면서 라싸 구시가의 모습도 형성됐다고 보면 된다. 하여 바코르에서는 라싸에서도 가장 라싸다운 옛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바코르 곳곳에 선 상점과 노점들도 볼거리다. 각종 불교 용품과 장신구, 차, 공예품 등을 판매해 티베트 관련 기념품을 사기에 그만이다. 물론 흥정은 기본이다.

  포탈라궁
 티베트 정치와 종교의 상징 

포탈라는 관세음보살이 사는 보타산이다. 포탈라를 건설한 송첸 감포 왕과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셈. 포탈라가 건설된 5대 달라이 라마 때부터 현재의 14대 달라이 라마까지 포탈라는 티베트의 정치와 종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종교가 생활인 티베트 사람들에게 포탈라의 존재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포탈라 궁 안에는 티베트 정부청사가 위치했던 것은 물론 법전과 불당, 종교 교육기관, 역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까지 자리해 하나의 거대한 세상이 구축되어 있다.
18세기, 8대 달라이 라마 때부터 노블링카를 여름 궁전으로 사용하며 포탈라는 겨울 궁전의 역할을 수행했다.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1959년 이후에는 중국 정부에 의해 폐쇄됐지만 일반에게 다시 개방되며 박물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포탈라는 백궁과 홍궁으로 구분된다. 겉에서 보기에 색 자체가 달라 육안으로도 백궁과 홍궁의 구분은 가능하다. 백궁에는 행정기관과 달라이 라마의 거처가, 홍궁에는 달라이 라마의 영탑과 종교기관이 자리했다. 여행자들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홍궁에 위치한다. 

포탈라 궁의 총 층수는 13층이다.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모한 라싸에서도 13층 이상의 빌딩은 찾아볼 수 없다. 달라이 라마보다 늘 낮은 곳에 살고자 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마음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높이는 118m. 하지만 라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130m 높이의 ‘마르포 리(붉은 언덕)’ 위에 자리해 실제 높이는 두 배도 넘는다. 라싸의 해발 고도와 건물 높이를 모두 따지면 포탈라 궁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궁전이 되는 셈이다. 

20분여. 가쁜 숨을 내쉬며 홍궁 입구까지 걷는다. 홍궁 내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침실과 공부방, 영탑 등이 자리해 있다. 발길 닫는 곳곳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1위안을 시주하는 티베트 사람들. 무리를 이룬 그들을 만났다면 알아서 길을 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달라이 라마와 한시라도 먼저 만나고자,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치며 다닌다. 

홍궁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5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을 모신 ‘세둥 잠링 겐칙 라캉(Serdung Zamling Gyentsik Lhakhang)’이다. 포탈라에 안치된 8개의 달라이 라마 영탑 중에 가장 큰 것으로 높이만 14m에 달한다. 영탑에는 3,700kg의 금과 다이아몬드, 비취, 진주, 산호 등 1,500여 개의 보석들이 사용됐다. 작은 영탑은 어린 나이에 죽은 달라이 라마의 것들이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사실이 숨어 있다. 9대부터 12대까지 달라이 라마는 22세를 넘지 못하고 죽었다. 하늘이 정하는 달라이 라마라지만 권력가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거다. 종교가 전부라고 알아 온 티베트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포탈라의 내부는 쓸쓸하다. 더더욱 포탈라의 주인도 이곳에 없으니 그 쓸쓸함은 더하다. 입장료 100위안. 

 노블링카

 노블라 랑카의 마지막 흔적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 ‘보물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1755년 7대 달라이 라마가 휴식 공간으로 조성한 곳이다. 이후 8대 달라이 라마를 거치며 공식적인 여름 궁전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3대 달라이 라마 때 궁전 3개를 신축했으며, 14대 달라이 라마 때 신궁을 지으며 현재의 노블링카가 완성됐다. 

‘보물의 정원’은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되면서 처참하게 파괴됐다. 티베트가 점령되는 과정을 지켜본 14대 달라이 라마는 그가 사랑하던 노블링카에서 티베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군인으로 위장해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를 지켜내기 위해 수만명의 티베트 사람들이 노블링카를 수호했다. 달라이 라마의 탈출을 예상한 중국 정부는 노블링카에 엄청난 포격을 가했지만 다행히도 달라이 라마는 망명에 성공해 현재 인도 델리 북부의 다람살라에 망명 정부를 꾸리고 있다. 입장료 60위안. 



 조캉 사원
티베트의 심장

티베트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조캉 사원’. 석가모니 불상을 만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끊임없는 오체투지로 신앙심을 표현하는 티베트인들 때문일까. 조캉 사원에 서면 티베트 땅 구석구석을 감싸고 있는 티베트 불교의 힘이 느껴진다. 

조캉은 7세기 초, 송첸 감포 왕 때 만들어진 유서 깊은 사원이다. 당시 티베트는 토번이라는 나라로 송첸 감포 왕에 이르러 티베트 전역을 통일하고 수도를 라싸로 옮긴다. 그는 네팔 공주인 브리쿠티와 632년에 결혼해 포탈라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또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고원 아래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당나라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이에 당나라 황제는 공주를 라싸로 보내 송첸 감포와 결혼하도록 한다. 그 공주가 문성공주다. 641년의 일로 문성공주는 681년에 사망할 때까지 라싸에서 살았다. 

조캉은 본래 네팔 공주가 네팔에서 가져온 ‘미쿄 도르제(부동금강류금동상)’를 모시기 위해 만든 사원이다. 사원의 정문이 네팔을 향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조캉과 같은 시기에 건축된 자매 사원인 ‘라모체’는 당나라 문성공주가 가지고 온 신성한 불상인 ‘조워(석가모니 불상)’를 모시기 위해 만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사원 터가 호수였던지라 사원은 짓기가 무섭게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문성공주는 산에 사는 양들을 이용해 흙을 날라 호수를 메우며 조캉을 건설했다. 이때부터 양이라는 뜻의 ‘러’와 흙이라는 뜻의 ‘싸’가 합쳐져 라싸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조캉이 지금처럼 신성시된 건 송첸 감포 왕이 사망한 이후 문성공주가 조워를 보호하기 위해 라모체에서 조캉으로 조워를 옮겨 숨겨 놓으면서부터다. 티베트인들에게 조워의 의미가 어떠한지는  조캉 사원에 서면 금방 알게 된다. 끝이 없을 듯한 줄 그리고 줄. 모두 조워를 보기 위한 발걸음이다. 사원의 3층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백명은 됨직한 이들이 오체투지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종교와 일상의 구분이 무의미한 듯 보인다. 

조캉 사원은 639~647년 사이에 건축된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과 보수가 이뤄졌다. 안타깝게도 문화혁명 당시에는 상당 부분 파괴되기도 했다. 한때는 돼지우리로 사용됐을 정도였다니 당시의 황폐함이 짐작된다. 승려들이 조캉 사원에서 다시 수행하게 된 건 1979년의 일. 현재의 조캉 사원은 1992~1994년에 재건축한 것이다. 입장료 70위안.

바코르
가장 유명한 순례 길  

바코르. 외지인들에게는 시장 정도로만 보이는 짧은 길이지만 티베트인들에게 바코르는 순례의 길이다. 마니차를 돌리며 바코르를 순례하는 티베트인들을 보면 이 길이 갖는 의미가 조금이나마 짐작된다. 바코르를 알려면 우선 ‘코라(Kora)’를 알아야 한다. 코라는 티베트에서 말하는 순례 길이다. 주요한 사원이나 도시 가장자리를 따라 코라가 형성된다. 코라를 따라 돌 때는 반드시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코라를 도는 이들은 불교도가 아니라 ‘뵌교도’라고 보면 된다. 

라싸에서 중요한 코라는 모두 4개다. 가장 짧은 코라는 조캉 사원 내부를 도는 ‘낭코르(Nangkor)’. 사원이 문을 여는 시간 전부터 티베트 순례자들이 찾아와 줄을 선다. 조캉 외부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코스는 ‘바코르(Bakor)’로 라싸에서 가장 유명한 코라다. 1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로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라싸 구시가를 한 바퀴 도는 ‘링코르(Lingkor)’는 무려 8km 길이다. 도시가 확장되며 4차선 도로가 점령해 순례자의 발길은 적은 편이다. 마지막으로 포탈라 궁을 따라 도는 ‘포탈라 코라(Potala Kora)’가 있다. 

바코르는 조캉 사원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레 생겨났다. 바코르가 형성되면서 라싸 구시가의 모습도 형성됐다고 보면 된다. 하여 바코르에서는 라싸에서도 가장 라싸다운 옛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바코르 곳곳에 선 상점과 노점들도 볼거리다. 각종 불교 용품과 장신구, 차, 공예품 등을 판매해 티베트 관련 기념품을 사기에 그만이다. 물론 흥정은 기본이다.

포탈라궁
 티베트 정치와 종교의 상징 

포탈라는 관세음보살이 사는 보타산이다. 포탈라를 건설한 송첸 감포 왕과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셈. 포탈라가 건설된 5대 달라이 라마 때부터 현재의 14대 달라이 라마까지 포탈라는 티베트의 정치와 종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종교가 생활인 티베트 사람들에게 포탈라의 존재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포탈라 궁 안에는 티베트 정부청사가 위치했던 것은 물론 법전과 불당, 종교 교육기관, 역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까지 자리해 하나의 거대한 세상이 구축되어 있다.
18세기, 8대 달라이 라마 때부터 노블링카를 여름 궁전으로 사용하며 포탈라는 겨울 궁전의 역할을 수행했다.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1959년 이후에는 중국 정부에 의해 폐쇄됐지만 일반에게 다시 개방되며 박물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포탈라는 백궁과 홍궁으로 구분된다. 겉에서 보기에 색 자체가 달라 육안으로도 백궁과 홍궁의 구분은 가능하다. 백궁에는 행정기관과 달라이 라마의 거처가, 홍궁에는 달라이 라마의 영탑과 종교기관이 자리했다. 여행자들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홍궁에 위치한다. 

포탈라 궁의 총 층수는 13층이다.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모한 라싸에서도 13층 이상의 빌딩은 찾아볼 수 없다. 달라이 라마보다 늘 낮은 곳에 살고자 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마음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높이는 118m. 하지만 라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130m 높이의 ‘마르포 리(붉은 언덕)’ 위에 자리해 실제 높이는 두 배도 넘는다. 라싸의 해발 고도와 건물 높이를 모두 따지면 포탈라 궁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궁전이 되는 셈이다. 

20분여. 가쁜 숨을 내쉬며 홍궁 입구까지 걷는다. 홍궁 내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침실과 공부방, 영탑 등이 자리해 있다. 발길 닫는 곳곳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1위안을 시주하는 티베트 사람들. 무리를 이룬 그들을 만났다면 알아서 길을 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달라이 라마와 한시라도 먼저 만나고자,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치며 다닌다. 

홍궁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5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을 모신 ‘세둥 잠링 겐칙 라캉(Serdung Zamling Gyentsik Lhakhang)’이다. 포탈라에 안치된 8개의 달라이 라마 영탑 중에 가장 큰 것으로 높이만 14m에 달한다. 영탑에는 3,700kg의 금과 다이아몬드, 비취, 진주, 산호 등 1,500여 개의 보석들이 사용됐다. 작은 영탑은 어린 나이에 죽은 달라이 라마의 것들이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사실이 숨어 있다. 9대부터 12대까지 달라이 라마는 22세를 넘지 못하고 죽었다. 하늘이 정하는 달라이 라마라지만 권력가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거다. 종교가 전부라고 알아 온 티베트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포탈라의 내부는 쓸쓸하다. 더더욱 포탈라의 주인도 이곳에 없으니 그 쓸쓸함은 더하다. 입장료 100위안.

 노블링카
달라이 라마의 마지막 흔적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 ‘보물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1755년 7대 달라이 라마가 휴식 공간으로 조성한 곳이다. 이후 8대 달라이 라마를 거치며 공식적인 여름 궁전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3대 달라이 라마 때 궁전 3개를 신축했으며, 14대 달라이 라마 때 신궁을 지으며 현재의 노블링카가 완성됐다. 

‘보물의 정원’은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되면서 처참하게 파괴됐다. 티베트가 점령되는 과정을 지켜본 14대 달라이 라마는 그가 사랑하던 노블링카에서 티베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군인으로 위장해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를 지켜내기 위해 수만명의 티베트 사람들이 노블링카를 수호했다. 달라이 라마의 탈출을 예상한 중국 정부는 노블링카에 엄청난 포격을 가했지만 다행히도 달라이 라마는 망명에 성공해 현재 인도 델리 북부의 다람살라에 망명 정부를 꾸리고 있다. 입장료 60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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