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출생지는 다르지만 파리를 자신의 고향만큼이나 사랑한 두 작가가 있다. 평생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며 빛을 갈구했던 ‘빈센트 반 고흐’, 반대로 반려자와 따뜻한 파리를 만났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들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파리를 사랑했지만, 모두 예술적 영감을 주는 도시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며 기자가 그들과 나눈 상상 인터뷰.
고흐의 파리, 빛과 색을 갈구하던 순간
“…별로 할 말이 없어. (침묵) 파리란 도시는… 지독히 외로운 곳이었으니까. 날 놀리는 게요? 사람들이 내 그림을 좋아한다고? 살아생전 그림이라곤 단 한 장밖에 팔질 못했건만. (긴 침묵) 그게… 정말이요? (사이) 그때… 내가 10년 만에 파리를 다시 찾은 건 지독한 겨울의 끝자락이었소. 1886년 2월 중순,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라발 거리에 집을 구했지. (씁쓸하게) 내가 서둘러 파리에 간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소. 하나는 내 동생 테오에게 얹혀 살며 돈을 절약하기 위함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코르몽의 화실에서 그림수업을 받고 싶었거든. 당시 베르나르, 러셀, 로트렉 등이 모두 그에게 수업을 들었으니까. 우린 모두 탕기 아저씨의 상점에서 모이곤 했지. 클로젤 거리에 있는 그 상점은 고맙게도 물감을 싸게 팔았거든. 우리 같은 가난한 화가들에게 말야. 테오와 난 5개월 만에 레픽 거리 54번지로 이사했는데, 그제야 방 하나를 화실로 사용할 수 있었어. 비로소 나 자신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지! (점점 감정이 격해진다) 난 파리에서 강렬한 색채에 집착했어. 파리의 지붕, 튈르리 정원과 볼로뉴 숲의 나무, 그리고 몽마르트르의 풍차들을 그리면서 원색들을 공부했지. 붉은 양귀비, 푸른 귀리 꽃, 물망초, 하얗고 분홍 장미, 노란 국화 등 꽃그림을 많이 연습했어. 아를에서 <해바라기>를, 생레미 요양원에서 <붓꽃>을 그릴 수 있던 건 다 그 같은 색에 대한 집착 때문 아니었을까. 그래! 프랑스는 생각을 맑게 해주며 순조롭고 훌륭한 작업을 도왔지만… 2년 만에 난 파리를 떠나야 했어. 그곳엔 인간적으로 혐오스러운 화가들이 가득했으니까! 난 그 거대한 집단이 못 견디게 두렵고 무서웠어. 물론 세잔과 고갱은 날 격려했지만… (고개를 떨구며) 아냐, 난 늘 외로웠고 고독했어. 내 안에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분노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걸 누를 힘이 없었거든. 난 겨울날 파리로 왔다 다시 겨울에 파리를 떠난 셈이지. 그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아를로 향했어. 프로방스의 해와 별… 그토록 아름답던 밤하늘이 또 있을까. 눈부시게 빛나는 카페테라스, 노란 밀밭과 군청 빛 밤하늘… 그런 빛과 여름 풍경이 아름답다 느끼게 해준 건, 파리에서의 날들이 지독히 우울한 탓이었겠지. 그런 면에선, 맞아. 내 작업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공간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다시 태어난대도 파리엔 가고 싶진 않아. 그곳은 내 평생, 강렬했던 단 한번의 이미지로 충분해.”
헤밍웨이의 파리, 늘 영원한 축제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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