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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① Winter of Paris…Outdoor - 해와 비 그리고 밤 그림자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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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을 빌자면, 파리의 겨울은 ‘도시의 온갖 서글픔’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여름 내내 진통을 앓던 여행자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파리지앙들만이 무채색도시를 유영한다. 풍성한 실내 아이콘들로 가득한 파리의 겨울. 일년간 당연하게만 여겼던 햇살 한 줌에 새삼 감사의 마음을 실어 보내게 되는 이 겨울의 파리 이야기.   

글·사진  박나리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성 02-776-9142, www.franceguide.com   




파리의 겨울은 짧고 강렬하다. 머리 위 햇살은 채 8시간을 머물지 않으며, 긴긴 어둠과 함께 안개비는 한차례 도시를 적시고 사라진다. 찰나의 볕을 쬐러 거리로, 공원으로 나온 사람들은 금세 밀려오는 노을빛에 밤풍경 속으로 숨어든다. 그 하루는 낮과 밤의 극단적 이미지로 늘 몸살을 앓는다. 


ⓒ트래비

짧아서 더욱 눈부신 파리의 낮

겨울날 파리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다음 항목들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예고 없이 찾아오는 비를 사랑할 수 있는지. 둘째, 낮보다 곱절은 긴 도시의 밤이 좋은지. 마지막으로  추위 앞에 무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하나라도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파리의 겨울은 혹독한 추억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반대로,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호기롭게 다가온다면 당신은 파리지앙의 충만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파리의 겨울은 우리가 보아 온 달콤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오전 8시가 되어서야 먼동이 트는데 그도 오후 4시면 황혼이 밀려와 사위가 밝은 시간은 채 8시간이 되지 않는다. 변덕처럼 밀어닥치는 비구름까지 더해질 때면 예측 불가한 파리의 겨울을 쉽게 사랑하기 힘들다. 마치 정열적으로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는 애증의 연인처럼, 지루하지 않는 매력으로 다가온달까. 덕분에 가이드북 공부보다도 그 스산한 계절을 느끼기 위한 감수성 충전이 급선무다. 

해가 머리 위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파리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산책’이 좋다. 그저 걷고 또 걷는 것만이 도시를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다. 유유히 흐르는 세느 강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 둘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한 구역 안에도 몇 개씩 자리하는 메트로역 덕에 길을 잃을 염려도, 다리가 아플 겨를도 없다. 그저 낮이 허락하는 한 걷고 또 걸을 뿐, 그러다 보면 잠깐씩 비추는 햇살 한 줌은 눈물겨운 축복이 되고, 무채색 도시는 생기로 번뜩인다.

한겨울에도 해가 비추면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작고 작은 파리지만, 도심치고 많은 공원들을 품은 덕분에 어디서든 자연을 즐길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의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과 소르본 대학가에 자리한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은 산책하기 좋은 장소들이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튈르리 정원은 리볼리가의 고풍스런 건물들에 둘러싸여 마치 중세시대에 온 듯한 착각을 준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공원은 다소 황량하고 쓸쓸하지만, 한밤중 고인 빗물 위로 나뭇가지가 비칠 때면 더없이 몽환적이다. 커다란 호수와 미술관을 품은 뤽상부르 공원은 전형적인 파리지앙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해가 들면 더 없이 포근해  호수 주변에 앉아 광합성을 즐기기 충분하다. 차가운 금속 의자에 몸을 기댄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베어 물거나 MP3를 들으며 각자의 상념에 빠지고, 뤽상부르 궁전을 스케치하는 미술학도의 스케치북에는 상페의 그림처럼 심플한 파리의 단면이 담긴다. 

스산한 파리의 겨울은 그들의 골목길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과거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생제르맹(Saint-Germain-des-Pr´es)’ 일대는 흐린 날 더욱 아름다운 골목들로 가득하다. 대문호들의 아지트 ‘카페 레 두 마고’와 ‘생제르맹 교회’는 고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길 건너 아르마니 매장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 일대에서 실존주의를 고민한 작가들의 흔적을 돌아보는 일은 사뭇 흥미롭다. 그늘진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예술학교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도 만날 수 있는데, 학생들이 작품 앞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강의 풍경은 엿보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이 인다. 이 밖에도 ‘시테 섬 꽃시장’에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 겨울에도 피어나는 색색의 꽃다발들은 움츠린 여행자의 마음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입힌다.  

Day Light


ⓒ트래비

해가 머리 위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파리를 느끼려면 산책이 제일이다.

Rainy Night


ⓒ트래비

군청 빛 밤하늘은 고흐의 그림처럼 강렬하게 타들다 이내 사그라진다.

비가 와서 더 아름다운 파리의 겨울 밤

꿈결처럼 짧은 파리의 낮을 음미했다면 이제는 일찍 찾아오는 밤을 반갑게 맞아도 좋다. 오후 4시면 물들어 가는 겨울 하늘은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군데군데 얼룩진 팔레트를 자랑한다. 분홍 같기도 했다 오렌지 빛 같기도, 그러다 어둠이 깊어지면 점차 짙은 군청 빛으로 물드는 겨울 하늘은 고흐의 그림처럼 강렬하게 타 들다 이내 사그라진다. 바람과 비를 피해 웅크린 어깨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는가. 서서히 어둠에 잠식당하는 황홀한 풍경은 다리 위에서 바라볼 때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파리 시내 27개의 다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우리에게도 영화로 잘 알려진 ‘퐁 네프(Pont Neuf)’.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이 17세기의 다리를 조망하기 위해선 맞은편에 위치한 ‘퐁 로얄(Pont Royal)’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어둠이 밀려오면 소음을 내뿜던 파리는 고요히 잦아드는데, 적막이 감도는 다리 밑으로 세느 강은 콸콸거리며 힘차게 흐른다. 퐁 로얄 위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겨울밤은 아련하고 서글프다. 여름날 북적이던 유람선이 멈춘 강 위로는 가로등만이 공허하게 빛난다. 고맙게도 거리의 악사들은 겨울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는데, 달콤한 색소폰 소리가 맴도는 다리 아래에선 그 아름다운 선율을 고스란히 혼자 듣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낭만적인 파리의 겨울밤은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어둠이 내리고 기온이 떨어지면 한차례 비바람이 머물다 가는 까닭이다. 대부분은 우산 없이도 지나칠 수 있는 안개비에 불과한데, 밤 풍경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다. 고랑 위에 고인 물 위로 도시의 허허한 모습은 밤 그림자처럼 빛나고, 서서히 조명이 켜지는 에펠탑은 용광로에서 건져 올린 듯 이글이글 불타 오른다.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ero)’에서 바라보는 에펠탑은 특히나 아름다워 우리가 수차례 보아 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촉촉이 젖어든 도로 위로 탑의 형상이 거꾸로 비칠 때면, 대지와 하늘의 경계는 사라지고 뜨거운 감탄만이 터져 나온다.


ⓒ트래비

완연한 밤이 깊어 가면 조명이 아름다운 거리로 걸음을 돌린다. 파리 최고의 쇼핑가인 샹젤리제(Champs-Elysee), 프렝탕(Printemps)과 갤러리 라파예트(Galleries Lafayette) 등 대형 백화점들이 밀집한 오페라 극장 일대는 깨알 같은 조명들이 거리를 밝힌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2008년 새해를 기리는 깃발이 나무 위로 나부끼며, 백화점은 연말 윈도우 디스플레이로 아이들의 혼을 빼낸다. 세상 모든 밤이 그러하지만, 특히나 파리의 겨울밤은 시린 입김을 불어 본 자만이 예찬할 수 있다. 파리를 세 번 방문했지만, 돌아와서도 여행의 잔상이 끊임없이 맴도는 이유는 그 계절이 눈부신 봄도, 해가 긴 여름도, 낭만적인 가을도 아닌 겨울이었던 탓이다. 돌아와 맞은 서울의 하늘이 가끔 흐려질 때면 이제는 파리의 겨울을 그리워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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