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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⑤ 여행의 목적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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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하얼빈에서 온 편지’로 잔잔한 감흥을 전해 준 바 있는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가 지난 9월 하얼빈에서 다롄으로 거처를 옮기고 다시 ‘다롄에서 온 편지’를 보내 옵니다. 이번 호부터 다시 격주로 연재될 그의 편지로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만 나서지 못하는 여행 갈증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후허하오터에서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와 다롄으로 향하는 밤 열차에 올랐다. 떠남의 설렘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길,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마찰음을 전해주는 기차 위에서는 온갖 상념들이 줄줄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무심히 떠올린 이 시시한 질문은 기억의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서해의 한 섬으로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섬을 오갈 때 배를 이용한 것을 빼면 2박3일간 오로지 자전거만으로 이동했고, 그것도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었으니 극기 훈련이 따로 없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일찍부터 섬을 출발해 밤이 돼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그을린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름 자전거 여행의 성취감을 맛보았다. 

서로의 자전거를 끌고 헤어지기 전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친구가 물었다. “너희들은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냐?”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무언가를 털어내고 새로운 마음을 다지고자 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친구에게 “여행의 목적이 그저 여행일 순 없을까?”라고 반문했다. 어떤 행위 자체를 수단으로 삼고 다른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그의 사고방식이 마뜩찮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몇 번의 여행길에 오를 때마다 그 친구가 던졌던 질문이 이상하게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길 위에서 혹은 목적지에 당도해서 ‘나는 지금 왜 이곳으로 떠나와 있을까?’라는 의문이 문득문득 당시의 여행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듯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일상이 이뤄지는 공간을 떠나고자 하는 동기에는 분명 단순한 떠남 이외의 것이 있을 터였다. ‘살기 위해 산다’는 말처럼 여행의 목적이 여행이라는 반문은 공허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사연과 목적을 가지고 떠나온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오래 전 유럽에서 만났던 한 커플은 카메라를 들고 유명한 건축물을 중심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고,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가기 전 만났던 서른 중반의 남자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가 일이 틀어져 직장도 그만두고 무작정 배낭을 꾸려 기한 없는 여행길에 오른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방콕의 유명한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로드에서는 무목(無目)의 여행인지 유랑인지를 실천하는 스님도 만날 수 있었다. 속칭 ‘땡중’이 분명할 그 젊은 스님의 기괴하면서도 자유분방한 행태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된다. 달랑 보따리 하나 짊어 메고 불교 유적지를 순례하는 듯 보였지만 지나가는 예쁜 여자들만 보면 승복 차림으로 “예뻐! 아름다워!”를 연발해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민망하게 만들곤 했다. 지나는 길에 아름다운 꽃을 보고 예쁘다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그는 물었지만 굳이 꽃에게 들려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여행의 목적이야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이겠지만 내가 짐을 꾸리는 가장 흔한 동기는 낯설어지기 위해서이다. 익숙한 것은 편안하지만 지루하다. 우리의 후각이 어떤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하다가도 이내 무뎌져 버리는 것처럼 어느 순간 일상은 맛대가리 없이 밍밍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가장 저렴한 방법은 눈을 크게 뜨고 현재의 공간에서 그간 간과해 왔던 것들을 재발견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지금껏 가보지 못한 공간에서 다른 공기를 마시고 다른 음식을 맛보며 난 나의 오감이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 그곳에는 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을 기분 좋게 뒤흔들고, 이방인에게만 부여되는 제 것의 방치와 남의 것에 대한 가벼운 틈입의 권리를 마음껏 행사할 수 있다. 설령 그네들이나 나나 사람들이 사는 모양새는 ‘오십 보 백 보’라는 결론을 내릴지라도, 조금은 들뜬 여행자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만이다. 

언젠가 3개월에 걸친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려섰을 때의 그 기분, 공항리무진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창밖으로 펼쳐진 그 익숙해야만 할 풍경이 왠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코리아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하고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또 나는 누구일까.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고 해도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더욱 짙어진다면, 그 여행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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