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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라이터 명로진 - 서점가에 출몰한 유쾌한 이단아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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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명로진을 만난 곳은 대형 서점 인문코너였다. 선 굵은 연기로 인상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온 그가 책 표지를 장식했다는 데에 기자는 두어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의례 그래 왔던 연예인의 자화자찬 ‘대필서’. 하지만 책의 단 몇 장, 목차만이라도 훑어본 이들이라면 선입견은 단박에 사그라진다. ‘명로진 지음’이라는 또렷한 음절은 지난 15년간 작가로서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 온 그 땀의 결과물.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치밀한 계획서만 있다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이 무한 경쟁시대에 라이터로 성공하는 명로진의 명쾌한 특강이 시작된다.

글 박나리 기자  사진 Travie writer 곽은정      

“ 제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에요. 
이번 여행책은 기존과 확실히 차별화된 아이들을 위한 여행책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거든요”

‘공인(公人)’이 책을 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갈무리된다. 소소한 개인담을 일대기의 범주에 녹아낸 자서전, 여행과 요리 등 취미가 결합된 실용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명언집이나 수필집 등이 그러하다. 간혹 가수 이적이 소설을, 뉴요커 생활을 끝낸 박경림이 영어 학습서와 같은 낯선 분야에 도전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서점가는 공인의 네임 밸류를 이용한 마케팅이 주를 이뤄 왔다. 그래서 우리는 ‘알 만한 그들’이 책을 냈을 때, 호기심보다는 ‘대필 작가’ 따위의 색안경으로 바라보는 일이 다수였다. 인기 여배우의 셀카 몇 장, 읽기조차 부끄러운 사변적 메모들을 모아 발간하고 있는 최근의 여행서적들 역시 불편한 시선들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명로진의 책은 좀 달랐다. 그는 화려한 마케팅을 등에 업지도, 그렇다고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독자들의 지갑을 유혹하지도 않는다. 유명 연예인들에겐 관심조차 없을 아동서, 예컨대 <자동차가 부릉부릉>, <방송이 신통방통> 등과 같은 수많은 아동 서적들은 아예 저자 명로진에게 배우라는 타이틀을 내세울 틈조차 주지 않는 공평무사한  도전 공간이었다. 굳이 신문 기자 출신이라는 그의 경력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명로진의 저서에 땀과 열정이 솔직하게 배어 있음은 더 말해 무엇할까. 

그의 화려한 언변에 취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기자도 책이 내고 싶어졌다. 멋쩍게 뒷머리를 긁으며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어떻게 하면 잘 팔리는 여행 책을 쓸 수 있을까요?” 그 난감한 질문에 대한 친절한 대답은 그의 저서 <인디라이터>에 명확하게 들어 있다. 

인디밴드, 인디영화를 통해 이미 ‘인디(Indie, Independent의 줄임말)’라는 용어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타협하지 않는 작가적 세계관을 담보로 한 예술장르의 한 영역으로 사용되어 왔다. 출판물에서 ‘인디라이터(Independent Writer)’라는 단어를 확장하고, 급기야 <인디라이터>라는 실용서까지 집필한 명로진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인디라이터는 한 권의 책을 기획, 취재, 저술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천재적인 문필보다는 꾸준한 노력이, 번뜩이는 영감보다는 발로 뛰는 근성이, 동서고금의 고전을 줄줄 외는 학식보다는 구르는 돌과 같은 현장성이 더 중요하죠. 인디라이터는 곧 ‘기자+학자+작가’의 역할을 교합한 사람, 그러니까 기자보다 자유롭고, 학자보다 유연하며, 작가보다 현실적이어야만 하죠.” 

<인디라이터> 안에는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한 아이템 구상에서부터 자료 수집, 기획서 작성에 관한 실무 전반이 간결한 어조로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집필학원 ‘심산스쿨(www.simsanschool.com)’에서 인디라이터반을 강의 중이다. ‘명로진인디반’에 등록한 수강생들은 기수당 총 16주 과정을 학습하게 되는데, 2007년 신설된 강의는 현재 4기생들로 진행되고 있다. 수강생 가운데 1명은 이 과정을 통해 그토록 꿈에 그리던 책을 출간했으며, 3명의 예비 작가들은 현재 출판사와 협의 단계에 있다. 4기 반에는 배우 엄지원이 수강생으로 등록해 화제가 되기도. 사실 자신의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리면 누구나 작가가 되는 이 시대에 자신의 책 한 권 내겠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는 더 이상 고매한 문학적 감수성과 문장력으로 작가만을 고집할 수 없는 시대, 명쾌한 기획력으로 ‘인디라이터적 글쓰기’를 꿈꿀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 명로진의 설명이다.

★ e-book까지 고루한 매체로 치부되는 시대에 왜 다시 책인가? 

e-book이 나온다고 했을 때 모두 책이 곧 사장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를 봐라. 출판 시장은 악조건 속에서 더욱 견고해졌고, 사람들은 읽을 책을 찾아 계속 몰려든다. 누구나 개인 블로그를 지니지만, 종국에 파워 블로거들은 자신의 인터넷 자료를 엮어 책으로 출간히지 않나. 텍스트가 종이를 만났을 때 갖는 엄청난 화학작용을 나는 믿는다. 결국 책만이 인간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매체다.

★ 책 한 권을 집필하는 데 보통 어느 정도 소요되나?

일단 명확한 아이템이 잡히면 자료 조사기간에만 6개월 정도. 집필에만 하루 3~4시간을 소요한다. 

★ 방대한 자료 수집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적용된다.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보통 50여 권 정도 관련 서적을 읽어 내는데, 인디라이터 정신에 입각해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한다. 문장은 가급적 명료한 것이 좋고, 각 책에 맞는 인용구를 뽑아내는 시각 또한 중요하다.

★ 1990년부터 현재까지 총 10여 권의 책을 발간했다. 그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았던 책은? 

초창기에는 많이 힘들었다. 몇몇 책들은 외면받기도 했지만, 스스로 원하는 책을 내기 위한 과정이었고 만족감 또한 높다. <인디라이터>는 나라는 사람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대외적으로 명확히 알려준 책인듯싶다. 어린이 시리즈가 반응이 제일 좋았는데, 그 덕에 이달에는 주니어 김영사에서 <펜더롱씨의 세계여행>이란 아동용 여행서가 나올 예정이다.

★ <펜더롱씨의 세계여행>이란 책에 대해 조금 더 말해 달라. 

기존 여행책과는 기획 단계부터 차원이 달랐다. 저자의 감성을 전달하는 최근 여행서들과 달리, 나는 기획단계에서부터 타깃층을 아이들에게 맞추었다. 어른에 의한 여행이 아닌 아이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성장에 필요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6대륙에 대한 여행담을 골고루 묶은 것이 장점인데, ‘펜더롱’이라는 캐릭터가 세상을 여행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정의 형식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하루 2마리의 고기만 잡는 아마존 유목민을 통해 ‘절제’를, 사막 여행자들을 위해 집집마다 물동이를 내어주는 이집트인들에게선 ‘미덕’을 가르칠 수 있다. 100만부도 자신 있다(웃음).

★ 여행 마니아라고 알고 있다. 트래비 독자들에게 추천 여행지를 소개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기내식이다. (또 웃음) 사실 도전과 모험만 있다면야 어느 곳이든 좋지 않을까. 어떤 방식으로 여행하느냐에 따라 카리브 해든 사이판이든 모두 비슷한 곳, 또한 다른 곳일 수도 있다. 여행지보다는 ‘여행 방법’을 추천하고 싶은데, 일단 현지 호텔과 숙소만 직접 예약하고 나머지는 그곳에서 부닥쳐 보는 거다. 바가지도 한번 써 보고 사기도 당하면서… 그렇게 겪는 게 진짜 여행이지. 여행이 늘 안전하고 아름다운 것들로만 가득할 거란 기대는 너무 일방적인 욕심 아닌가.

★ 그렇다면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한 달간 머물었던 에콰도르의 ‘키토(Quito)’. 남미의 열기로 가득한 그곳에선 오로지 나 홀로 동양인이었다. 처음, 이방인에 대한 그들의 시선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그렇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은 카페를 출근하듯 드나들었는데, 일주일째 되는 날에는 여점원들이 작별의 인사로 볼에 뽀뽀까지 해주더라. 머무는 여행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다. 첫인상이 점점 변해 가는 과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니까. 그 밖에도 쿠바, 북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을 누비며 글과 일러스트를 통해 머무는 여행을 즐겼다. 그 기록의 결과물들이 종국에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돌아와 내게 영감을 준다.
국내 여행지 가운데서는 한동안 경기도 ‘이천’에 꽂혔었다. 설봉공원에 놀거리도 많고 연결된 등산로를 거닐기에도 좋다. 근처에 온천이 있어 가족들의 하루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현재 1년째, 두 달에 한 번 이천을 찾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그 지역 사람들과 동일시되더라. 지난번 이천 하이닉스 이전 반대 목소리가 높을 때도 괜히 마음이 동했던 이유도 다 한곳을 자주, 깊이, 그리고 오래 머무는 탓인 듯싶다.

★ 명로진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여행이란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재확인하는 작업이다. 푸껫이건 뉴욕이건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든 비슷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간과 돈을 들여 떠나는 건 일상을 벗어나 봐야 내 삶이 행복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니까. 여행은 주기를 두고 변하는 테마, 단순한 여가의 한 방법이 아니다. 평생을 두고 계속될 내 삶의 일부이자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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