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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특집 ③ 증도 - 남도의 섬 하나, 느림을 예찬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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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전남으로 향하는 길은 늘 숨차다. 지도 맨 아래, 반도의 장대한 땅덩어리를 훑고 내려가는 여정은 몇 시간이고 끝날 줄을 모른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종착지 신안에 도착한 것으로도 모자라 다시 배를 타고 10여 분. 바다 건너 목포와 이웃한 ‘증도’는 그처럼 아득하고 신비롭다. 균일한 너비로 구획된 평화로운 염전, 갯벌을 누비는 짱뚱어와 청아한 바닷물. 배가 섬에 닿기 무섭게 느린 바람의 노래가 들려온다. 최근 ‘슬로우 시티(Slow City)’로 지정된 이 작은 섬이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졌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글·사진 박나리 기자



ⓒ트래비.
섬 여행자들은 해가 저물기 무섭게 뭍으로 향한다. 그들에게 섬은 도피의 공간이며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된 작은 ‘대륙’이다. 허나 절대고독과 무위의 시간을 견디기 힘든 이들은 반나절 머물다 떠나기 일쑤였고, 때문에 증도는 변변찮은 숙소 하나 없는 낙후된 섬에 불과했다.

2006년 4월 문을 연 리조트 ‘엘도라도(El Dorado)’는 그간 멀고 낯설던 증도를 뚜렷이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다. 전 객실이 해안 절벽에 자리해 침실에서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그야말로 금싸라기 같은 위치를 자랑한다. 리조트가 품은 우전해수욕장은 약 4km의 긴 해변으로 프라이빗 비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덕분에 평일에도 쉬이 자리가 나지 않을 만큼 이용객들의 만족도 또한 높다. 고백컨대, 국내에서 이처럼 지리적으로 근사한 리조트는 손에 꼽을 정도다. 안면도의 오션캐슬, 제주 중문단지와 해운대의 고급 호텔들이 넓고 장대한 해안을 담보로 하지만, 엘도라도의 청정한 기운과는 사뭇 다른 감흥이다. 

이곳을 누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산책’과 ‘스파’일진데, 객실에서 백사장까지 채 1분도 되지 않는 놀라운 접근성은 투숙객에게 언제든 거닐 수 있는 특권을 안겨준다. 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은 아침부터 붉은 기운에 물들고,  파도가 굽이치는 해변은 달콤한 낮잠을 허락한다. 곱고 낭만적인 서해 낙조가 리조트를 적시면 이윽고 객실 앞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데, 간만(干滿)의 차가 수줍게 남기고 간 자리에는 조개와 미역, 이름 모를 바다 생물들이 다시금 아침 산책을 종용한다. 

바다를 벗하며 원 없이 거닐었다면 다음에는 스파를 즐겨 보자. 지친 몸을 달래는 최적의 방법은 물과 호흡하는 길이다. 골든베이에 위치한 오션스파랜드는 전통불한증막, 야외노천탕, 해양마사지 등 다양한 편의 시설들을 자랑한다. 그 기원인 함평에서 시설을 고스란히 옮겨 온 해수찜탕에서는 똑같은 조건 아래 심신의 회복을 꾀할 수 있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바다 앞 선착장에서 요팅, 바다낚시 등의 해양스포츠가 가능하며 버스로 10분 거리의 짱뚱어 다리에선 아이들을 위한 갯벌체험이 상시 열린다.  

※ 주소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우전리 233-42 객실요금 테라스룸(2인) 16만5,000원, 딜럭스A룸(4인) 26만원 
※ 문의 061-260-3300
www.eldoradoresort.co.kr


ⓒ트래비.



그 이름만으로도 익살스러운 ‘짱뚱어 다리’는 섬 가운데, 갯벌 위에 곧게 뻗은 목교를 일컫는다. 길이 470m의 늘씬한 다리는 증도를 대표하는 명물로 썰물 때면 발아래 짱뚱어들이 뛰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촉촉한 바닷물이 스며든 갯벌에는 메뚜기처럼 폴짝이는 짱뚱어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산다. 섬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듯 툭 튀어나온 눈과 큼지막한 머리를 씰룩일 때면, 체험을 나온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망울로 바닷 물고기들과 숨바꼭질을 즐긴다. 기실 그보다 많은 것이 게라지만, 워낙 몸집이 작은데다  몸 빛까지 눈에 띄지 않아 짱뚱어에게 다리의 이름을 넘겨 준 지 오래다.

목교에서 바라본 증도의 일몰은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하는데, 낮 동안 바짝 말라 있던 다리에 촉촉히 물이 차오를 참이면 그 위를 거니는 기분이 자못 신비롭다. 매년 이 일대에는 섬 갯벌 올림픽 축제가 열리는데, 갯벌씨름, 축구, 짱뚱어 잡기, 갯벌썰매타기 등 갯벌을 이용한 체험프로그램들이 가득하다. 엘도라도에서 차로 10분 거리라 넓은 맥락에선 리조트 내 위치한 우전해수욕장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시청자들에게 다리는 또 하나의 심상을 환기시킨다. 이곳은 석현과 기서가 영신을 놓고 분분한 다툼을 벌였던 곳이며, 에이즈 따위도 녹여버릴 만치 천사 같은 봄이가 함빡 웃으며 달리던 장소이기도 했다. 무엇 하나 고마울 것 없는, 그 가녀린 모녀에겐 너무도 모진 타인들을 향해 ‘우리 함께 만들어 가요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던 곳. 그 훈훈한 드라마의 배경 또한 증도였다. 영신과 봄이의 ‘푸른도’는 증도와 근처 또 다른 섬 ‘화도’ 속에서 녹아들어 있다. 

만약, 드라마에서 받은 감동을 재현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차라리 서해 낙조와 바닷바람으로 대신할 것을 권한다. 소박한 섬 마을은 쓸쓸하고 외로워 간혹 실망하는 이들도 있단다. 소설의 배경, 영화의 촬영지들을 때론 아스라한 이미지로만 기억해 보는 건 어떨까. 상상력이 더해진 환상이 깨졌을 때 밀려오는 상실감을 온전히 끌어안을 자신이 없다면 말이다.




ⓒ트래비.

염전은 갯벌과 함께 증도를 이루는 또 하나의 구성요소다. 서해의 굴곡 많은 해안들이 찰진 갯벌을 일구었다면, 그 고인 바닷물은 남도의 따뜻한 기후와 만나 소금을 생산한다.

우리나라 천일염의 6%를 담당하는 ‘태평염전’은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증도를 살찌우는 힘이다. 여의도의 2배에 해당하는 140만평 규모 아래 연간 1만6,000톤을 만들어내는데, 2,200여 명, 전국에서 세 번째로 적은 인구의 섬사람들이 만든 소금이 대한민국의 밥상을 책임진다.

태평염전이 증도에 만들어진 때는 반세기 전인 1953년.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물이 빠지면 징검다리로 건너다니던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에 둑을 쌓아 염전을 만들었다. 태평염전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3km 도로에 염전밭, 창고, 부속시설 등이 길게 늘어선 풍경은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데, 농촌의 구수한 경작지와 어촌의 거칠고 비린 심상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증도에 염전이 발달된 이유는 조수간만의 차 탓인데, 인공위성에서 촬영된 사진에 신안 일대가 파랗게 찍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게르마늄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해석으로 신안 소금의 질적 우수성을 증명한다. 한여름이 되기 직전의 소금이 가장 맛좋기로 유명하다.

태평염전은 1953년 한국전쟁 후 국내 소금 생산 자급자족은 물론,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피난민들을 염전을 통해 피난민촌을 조성하고 구제하려 만들어진 점에서 역사적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같은 시기 건립된 석금 창고와 함께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태평염전에서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방문객이 직접 소금을 제작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근처 ‘소금박물관’에는 천일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데, 신한 천일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소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건립되었다. 기존에 보아 온 지방 박물관의 고루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외관이 인상적이다. 마치 작은 아뜰리에처럼 입체적인 간판과 산뜻한 색조 대비는 드러나지 않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소금의 고고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석조 소금창고 내부를 리모델링해 2007년 완성했는데, 그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아 허물고 다시 짓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박물관에는 소금의 인류학적인 측면부터 생활 속에 얽힌 다양한 일화까지 만화와 영상, 시와 해설 등을 통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천일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현지공장에서 직접 만든 함초소금, 함초차, 함초엑기스 등도 구매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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