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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000원짜리 국내 당일상품 체험기"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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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는 9,900원부터 시작하는 초저가 국내 여행상품, 아무리 국내 당일여행 상품이라지만 편도 버스비에도 못 미치는 여행비로 과연 제대로 된 여행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도대체 어떤 ‘기막힌’ 운영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왕복교통비에 각종 관광지 입장료, 가이드 봉사료, 하루 3식 제공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경비가 포함돼 있는 것은 물론 일체의 추가경비가 없고 모든 상품이 매일 출발이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도저히 남는 장사라고는 할 수 없는데 그 비싼 일간지 신문광고까지 동원하고 있으니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파격적인 조건의 국내여행 상품이 그득한데 어째서 국내 패키지여행 시장은 소비자들의 개별여행 추세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을까. 이런저런 의구심을 안고 일간지 신문광고를 통해 초저가 당일여행 상품을 광고하는 업체의 상품 중 하나를 선택해 일반 소비자로 가장해 직접 그 속내를 들여다봤다.  

글 김선주 기자

 여행사 직원도 모른다    ‘묻지마 관광’ 



일간지 신문광고를 통해 여행상품을 고르면서 1~2만원대의 파격적인 여행상품 가격과 함께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이 바로 ‘매일 출발’이라는 문구였다. 원가를 생각하면 45인승 버스에 최소 30명은 ‘채워야’ 할 텐데 주중, 주말 구분 없이, 그것도 비수기인 한겨울에 그 많은 상품들을 모두 매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은지 의심스러웠기 때문. 반신반의했던 마음은 첫 전화통화로 별 이상 없이 원했던 보령 여행상품의 예약이 이뤄져 일단 믿음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그 믿음도 잠시, 출발 하루 전에 그 여행사 직원은 당연하다는 말투로 “그 날짜는 덕유산, 남원 상품밖에 출발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매일 출발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자, 최소 출발인원을 채우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던 셈. 여행사 직원이 광고에는 없던 남원 상품을 안내해 구체적인 일정과 코스를 물었지만 상담원은 “그냥 남원 가서 둘러보는 상품”이라며 구체적인 여행 일정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여행사 직원도 제대로 모르는 여행일정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결국 광고에 게재됐던 덕유산 상품으로 최종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덕유산 상품은 일정 중에 참숯가마 체험 등이 있어 별도의 준비물 등이 필요한지를 물었지만 “뭐 알아서 필요한 것 있으면 가져오세요”라는 성의 없는 대답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제대로 안내 받지도 못한 상황에서 떠나는 ‘묻지마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

인원 채우느라 빼앗긴 금쪽같은 시간 

드디어 여행 출발일. 오전 7시에 영등포 경방필백화점에서 1차로 고객들을 태운 버스는 7시30분에 서울역, 8시에 잠실을 거쳐 나머지 손님들을 태우고 여행지로 출발하기로 돼 있었다. 총 탑승인원은 15명. 40~50대 아주머니들과 60대 아저씨들이 주를 이뤘으며 4~5살 된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도 있었다. 모두들 출발시각에 맞춰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분위기였다. 

그러나 정작 시간을 준수해야 할 여행사 측은 아무런 안내도 양해도 없이 잠실역에서 1시간 가까이 손님들의 금쪽같은 시간을 갉아먹었다. 예정 출발 시각은 8시였지만 결국 9시가 다 돼서야 출발했던 것. 출발지연보다 더욱 참을 수 없었던 점은 손님들의 양해를 구하기는커녕 아무런 설명이나 안내 없이 무작정 기다리게 했다는 점이다. 

왜 출발이 지연됐는지는 버스 출발 후 가이드의 말을 듣고서 알게 됐지만 가이드의 지나치게 ‘떳떳한’ 태도도 가관이었다. “안 탈 거면 진작 말하지 잔뜩 기다리기만 했네”란다. 다른 여행사 버스에 5명이 탔는데 인원이 너무 적어 그 여행사가 손님을 다른 여행사 상품으로 합류시키는 과정에서 지연이 발생했던 것이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이해하지만 손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미처 도착하지 못한 나머지 손님을 기다리는 줄 알았던 다른 손님들은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버스가 출발하지 않자 불만의 목소리를 냈고 급기야 개인적인 볼일을 보는 손님들도 생겨났고 그로 인해 출발은 더욱 늦어졌다. 아침부터 서둘렀던 손님들의 귀중한 시간은 그렇게 허망하게 낭비됐다. 

다른 여행사 버스의 출발 불발은 손님들을 ‘압박’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보셨겠지만 다른 여행사는 손님이 적다고 출발하지 않았다. 우리 버스도 사실 많은 인원이 아니다. 15명 태우고 행사하느니 안 하는 게 낫지만 손님들을 위해 출발한 거다. 1만5,000원 받아서는 45명 가득 태워도 본전 뽑기 힘들다. 우리는 그나마 자체 차량이니까 출발이 가능한 거다” 등등. 듣는 손님 입장에서는 1만5,000원짜리 싸구려 상품을 구매한 게 마치 여행사에 큰 죄를 짓기라도 한 듯한 ‘원죄 의식’을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그 ‘원죄의식’은 이후에도 직간접적으로 계속 강요받았다. ★☆☆☆☆

쇼핑으로 시작해, 쇼핑으로 마무리 

저가에 손님을 끌어모으고 마이너스 부분은 쇼핑으로 보전하는 해외 저가상품의 공식이 국내 패키지 상품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당일 여행상품에 오전, 오후 각각 1번씩 2번의 쇼핑이 진행됐다. 자발적 쇼핑이 아닌 일정에도 없었고, 사전 안내도 없었던 쇼핑이었다. 광고에 제시한 여행일정과 저렴한 요금은 결국 쇼핑센터로 이끌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고 하는 게 옳을 정도로 쇼핑에 대한 여행사의 집착과 애착은 대단했다. 

 버스 안에서의 간단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10시쯤 도착한 곳은 천안의 한 오가피 농장. 여행 일정에 전혀 나와 있지 않던 ‘쇼핑 코스’가  첫 번째 목적지였던 것이다. 농장 안에 마련된 작은 방에 손님들은 안내됐고, 흰 가운을 입은 ‘오가피 전문가’가 들어와 오가피에 대한 비디오를 틀어 준 뒤 오가피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에 대해 1시간 동안 주구장창 설명했다. 손님들은 긴 시간 동안 지루해 하는 모습이었지만 “모두 함께 들어가 다 끝날 때까지 개인행동은 삼가라”는 가이드의 말에 묶여 도중에 나가지도 못했다. 이내 설명이 끝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판매 도우미’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손님 싸게 하나 하시죠”라며 일일이 구매를 유도했다. 손님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게 아니라 네댓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손님들에게 1:1로 붙어 판촉하는 모습은 오가피 강매에 가까웠다. 그러나 판매실적은 제로였다. 오가피 즙 소형 1세트에 34만원, 대형은 무려 66만원에 달했기 때문. 당장 돈이 없어도 이름과 주소만 적어 주면 된다며 가격저항을 없애려는 시도도 곁들여졌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손님들은 혀를 내둘렀지만 도우미들은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손님들을 귀찮게 했다. 이렇게 강요가 계속되자 한 손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출발하려는 버스에서도 도우미들의 ‘습격’은 계속됐다. 1봉지에 1만원씩 하는 오가피 사탕을 들고 와서 마치 ‘돈 없으면 이거라도 사 줘라’는 식으로 판매했기 때문.  

나중에 버스로 돌아오자 가이드는 “사실 쇼핑센터에서 30~40만원 정도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이렇게 싼 요금으로 행사가 가능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꼭 들러 줘야 한다”며 “사실 얼마나 팔아 주느냐에 따라 가이드의 능력도 인정을 받게 되니 오후에 들르는 쇼핑센터에서는 꼭 하나 부탁해요”라며 대 놓고 손님들에게 구매를 부탁하기까지 했다. 

첫 번째 도착지도 쇼핑센터이더니 마지막 목적지도 쇼핑센터였다. 쇼핑으로 시작해 쇼핑으로 마친 셈. 오후에 방문한 곳은 충남 금산의 한 흑삼 공장이었다. 역시 1시간이나 되는 설명이 있었고 흑삼 액즙 가격도 오가피와 비슷한 34만원(소)과 66만원(대)이었다. 도우미들은 한 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쇼핑을 강요했고 그래도 구매하는 손님이 없자 흑삼 공장 사장까지 등장했다. 사장은 “이번 팀이 오늘의 마지막 팀”이라고 강조하며 “마지막 팀이기 때문에 흑삼 차, 흑삼 세트 등을 더 얹어 주겠다”며 여행객들을 유혹했다. 또 사장은 오늘 공장에 들어온 팀이 10팀 정도 되는데 1팀에서 최대 15개까지 판매에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 팀도 하나는 꼭 나와야 한다고 압박을 주었다. 결국 손님 하나가 소형 세트를 구매했지만 자유의사라기보다는 등쌀에 못 이긴 강요된 구매였다는 보는 게 더 정확하다. ☆☆☆☆☆

14시간 중 순수관광은 고작 3시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없다는 게 패키지 상품의 단점이라는 점을 아무리 감안해도 ‘칼같이’ 지켜진 쇼핑시간에 비해 순수관광 일정은 “교통체증으로 서울에 늦게 도착하게 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가이드가 좌지우지했다는 점에서 불만이 컸다. 늦어진 출발시각과 쇼핑센터 방문을 위해 길을 에둘러 간 데 따른 시간낭비, 쇼핑센터에서 시간허비 등으로 관광시간은 더욱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순수관광 일정은 덕유산 곤돌라 탑승과 참숯가마 체험이었는데 덕유산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구경을 하고 내려오는 데까지 주어진 시간은 1시간20분. 하지만 왕복 40분인 곤돌라 탑승 시간 등을 제외하면 실제 시간은 40분에 불과했으며, 그마저 안개가 자욱해 산 위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참숯가마 체험도 1시간30분 정도 주어졌지만 샤워를 하고 옷까지 갈아입고 들어가는 등의 시간을 빼면 땀 한번 시원하게 빼는 데도 부족했다. 특히 손님들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50대 아주머니들은 참숯가마에서의 체험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점에 대한 불평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오전 7시에 시작해서 저녁 9시경에 끝난 전체 14시간의 여정 중에서 순수 관광시간은 고작 3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

3식 제공의 비밀  ‘버스 안 식사’



1만5,000원이라는 가격에 어떻게 3끼 식사를 포함했을까? 3식 중 아침과 점심은 버스 안에서 해결했고, 점심은 무주의 한 식당에서 1인당 6,000원이라고 적힌 된장찌개 백반이 나왔다. 아침과 저녁의 경우 버스 안에서 김밥이나 음료수가 제공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 밖으로 여행사에서 직접 준비한 밥과 반찬이 제공됐다. 따뜻한 밥에 4~5가지의 반찬을 접시에 얹어 주었는데 여행상품 가격을 감안하면 그럭저럭 괜찮았던 수준이었다. 아침인데 국이 없다는 점이나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불편한 식사를 해야 한다는 점, 한정된 시간에 게 눈 감추듯 먹여야 한다는 점 등을 제외하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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