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4인 4색 일본 북부탐험 ② 이와테 - ① 용감무쌍 한씨 남매 “이와테 눈밭을 구르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2.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래비

야스나리의 고전 <설국(雪國)>의 첫 문장처럼, 일본의 겨울은 밤의 밑바닥까지 온통 하얗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순백 세상은 이국적 서정을 마구 간질이는데 만일, 홋카이도를 열외로 둔다면 눈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딜까. 일본 북부탐험 2탄은 그 아래 ‘이와테’에서 출발한다.

때묻지 않은 자연은 만화 <은하철도 999>의 모태가 됐으며, 매일 밤 능선 사이로 쏟아지는 함박눈은 24개의 크고 작은 스키장을 배출했다. 스노보드 마니아 미진과 생짜초보 남동생 진규. 그들이 아스피린 스노를 헤치며 눈의 정거장을 누비는 동안 어디선가 ‘칙칙폭폭’ 기차 궤적 소리가 들려 왔고, 동심으로 돌아간 오누이는 허심탄회한 속엣 말들을 쏟아냈다. 서른 즈음 남매의 이와테 나들이, 그 담백한 여정이 지금부터 펼쳐진다.  

글 박나리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엄두용  일러스트레이션 제스 
취재협조  북도호쿠3현·홋카이도 서울사무소 02-771-6191,
www.beautifuljapan.or.kr 

ⓒ트래비

최근 앗피 스피장을 중심으로 이와테 보드 원정이 대중화되는 추세지만, 남매에겐 무엇보다 ‘한국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절실했다. ‘시즈쿠이시 스키장(Shizukuishi Ski Resort)’은 1993년 알파인 스키 세계선수권을 성공적으로 치루며 국제적 서비스를 강화해 온 곳. 각 슬로프마다 한글 안내판은 기본, 4명의 한국인 강사진과 1명의 호텔 직원이 원만한 언어 소통을 돕는다. 게다가 호텔에서 리프트 탑승지까진 걸어서 1분.  모든 시스템이 라이딩 하나에 집중된 세상에서 가장 편리한 스키장으로 떠나보자.

스노보드 천국! 누나만 믿고 따라와~

휴식이 주어지면 직장인의 얼굴엔 단박에 표가 난다. 금요일, 고작 하루 휴가를 냈을 뿐인데 공항에서 만난 미진의 얼굴은 자못 상기되어 있다. “일찍 오셨네요?”라는 말을 건네려던 찰나 그녀 뒤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미는 남자, 동생 진규다. 그의 손에 들린 큼지막한 데크가 그들의 여행을 단박에 설명하고 있었다. 

소위 ‘보드 좀 탄다’하는 이들에게 일본 원정은 반드시 넘어야 할 고지다. 국내에도 굴지의 스키장들이 고급 설질을 자랑한다지만 늘 그놈의 ‘리프트’가 문제였다. 하루 종일 타 봐야 5~6번, 채 10분도 안 되는 감질 맛 나는 활강 끝엔 다시 긴긴 기다림의 행렬이 이어지곤 했다. “작년에 저희 동호회에서 ‘앗피’에 갔거든요. 다들 원 없이 탔다던데 전 못 갔어요. 아쉬웠던 거 이번에 다 풀려구요!” 수줍게 웃는 미진은 보드 얘기를 할 때만은 두 눈이 또랑또랑하다. 도대체 스노보드가 뭐 길래. 진규는 누나의 열정을 이해하긴 힘든 모양이다.

인천에서 아오모리 공항까지는 2시간20분. 오전 9시25분 출발한 비행기는 채 정오가 되기 전 남매를 ‘눈부신 설국(雪國)’에 내려다 준다. 셔틀 버스를 타고 시즈쿠이시 스키장까지 2시간 가까이 달리는 동안 하루 한 번 꼴로 눈이 내린다는 이와테현의 은빛 풍경은 끝없이 계속된다. 긴 터널과 눈길을 질주하길 수십 차례. 생전 처음 떠나온 해외여행에 창밖을 응시하던 진규는, 스노보드보다도 외국이 주는 생경감에 일찌감치 마음을 뺏긴 듯하다. 기실 일본 스키 원정의 가장 큰 매력은 아스피린 설질보다, 슬로프 대기  0초보다도 ‘여행 그 자체’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최정상, 겁없는 질주가 시작된다


ⓒ트래비

오후 3시. 시즈쿠이시 스키장에 도착한 일행은 프린스 호텔에 짐을 풀고 보딩 채비를 끝냈다. 로비에선 키와 발 사이즈에 맞는 장비가 대여 가능한데, 개인 로커에 데크와 부츠, 가방 등 개인 소지품을 넣고 필요할 때마다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 그야말로 보더들을 위한 완벽 시스템이다. 

호텔 앞 산록역 스키센터에서 로프웨이에 탑승, 베이스캠프까지 오르는 동안 베일에 싸인 슬로프가 눈에 들어온다.  930m의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오르는 동안 발아래 하얀 눈 세상이 발가락을 간질인다. 숲 속 산장과 같은 베이스캠프에 닿자 평지에 가까운 초급자 코스가 반기며 여기저기, 강사의 도움을 받는 엉거주춤한 입문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생짜 초보자들은 이곳에서 기본기를 다지고, 어느 정도 활강이 가능한 보더들은 ‘초급 로맨스 리프트’를 이용해 ‘크리스털 코스(Crystal Course)’로 이동한다. 한층 경사진 슬로프는 그 보폭 또한 넓어 스피디한 라이딩을 즐기기 좋다. 

진규는 이곳에서 활강을 시작할 참이었으나 누나 미진이 이에 만족할 리 만무하다. 내친김에 최정상까지 가자며 동생을 잡아 끄는데, 도무지 말릴 길이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세 번째 이동수단인 ‘선샤인 리프트’를 타고 기어이 최정상에 오르고 만다 . 이곳에서 내다보는 장관은 가히 환상적이라, 눈앞의 이와테산을 감상하노라면 산과 산 사이에 놓인 인간의 유약함을 새삼 확인받는다. 해발 1,276m 정상에 이르니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활강 중에도 시야  확보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마음이 앞선 미진은 데크에 부츠를 장착하기 시작한다. “누나 여길 나보고 어떻게 내려가라고?” “저번에 알려준 대로 해봐. 지산 가서 연습했잖아.” “그래도 너무 급경사야!” 엉겁결에 일어선 진규지만, 사이드 슬리핑(Side Slipping)을 취하기도 전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입자가 곱고 잘 뭉치지 않는 건조한 아스피린 스노에 적응하는 데는 초보자나 상급자 모두 약간의 적응기가 필요하다. 일본 자연설에선 국내에서와 달리 보다 강한 엣지(Edge)를 주어야 넘어지지 않는다. 역시나 운동신경이 좋은 진규는 눈보라를 그리며 몇 차례 넘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펜줄럼(Pendulum)과 비기너턴(Beginner Turn)을 연결하며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간다. 스피드를 내어 진규 앞으로 다가간 미진이 기특한 듯 외친다. “거 봐! 잘하면서 엄살은!”    

   ⓒ트래비

파우더 스노에 대처하는 남매의 자세


ⓒ트래비

최정상에서부터 겁 없이 시작한 한씨 남매의 보딩은 ‘부정지(不整地) 사면지대’로 접어들면서 한층 다이나믹해지기 시작했다. 정제된 눈이 아닌 천연 비압설 존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스케일을 자랑한다. 이곳은 역동적인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상급자 코스로 양 옆으로 빽빽이 솟은 침엽수림이 슬로프 군데군데 우뚝 솟아 있는데 마치 허들을 넘듯 장애물을 비켜 달리는 기분이 남다르다. 그러다 길이 끝나는 곳엔 급경사를 이루는 턱이 나타나고 이내 보드는 거칠게 낙하하길 반복한다. 미진은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굳이 무리하게 활강하진 않는다. 멀리 취재팀이 포토라인을 잡고 “점프~ 점프요!”라며 고래고래 소리치지만, 그녀는 스릴보단 안정적인 라이딩을 즐기는 보더임이 분명했다.

자, 이제 미진은 내려왔고, 문제는 진규다. 생짜 초보에게 압설되지 않은 슬로프는 혹독한 시련을 준다. 활강하는 것 자체는 무리 없는 그이지만, 기술이 아닌 힘으로 스피드를 제어하게 되면서 자세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펜줄럼 기술을 이용한 힐사이드 활강과 토사이드 활강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다시 말해 발뒤꿈치와 앞꿈치 엣지를 번갈아 사용해야 넘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진규야, 괜찮아?” “별로 안 아파. 파우더 눈이 푹신하다더니 진짠가 봐!” “야야, 조심해! 또 넘어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끄러지는 진규의 보드로 인해 카메라 렌즈 위로 눈 줄기가 맺힌다. 

안 되겠다 싶은 미진은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동생의 개인 레슨에 들어갔다.  국내에서처럼 조금만 힘주어도 ‘엣지를 먹는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일어서기가 무섭게 미끄러지는 통에 좀 탄다 하는 기자 역시 눈 위에서 한참을 헤맨다. 또 하나의 문제는 보드가 의도치 않는 방향으로 도는 것인데, 일본 원정을 떠나기 전에는 사이드 슬리핑과 펜줄럼 기술 말고도 ‘비기너 턴(Beginner Turn)’을 숙지하는 것이 좋다. 어깨는 정면을 향하는데 이미 허리와 데크는 틀어지면서 마치 팽그르르 돌아가는 팽이처럼 몸을 가누기 힘들어진다. 거기에 초급자라면 겁을 먹고 넘어지기 일쑤라 기본 활강과 비기너 턴 정도는 익히고 떠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분명 시즈쿠이시 스키장은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보드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기 충분하다. 산 정상에서 한 차례 하강하는 데만 족히 1시간. 가히 한국에서 하루 종일 타는 것과 맞먹으니 그 실력이 며칠 만에 쑥쑥 향상되는 것은 더 말해 무엇할까.

장비 렌탈은 이곳에서 SALOMON Station


ⓒ트래비


올 초 보드와 부츠 등 모든 장비를 신제품으로 바꾼 렌탈 부스는 시즈쿠이시 스키장의 자랑이다. 프린스 계열 호텔이 운영하는 모든 스키장은 ‘살로몬(Salomon)’ 제품으로 교체됐는데, 이는 인라인과 스노보드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일본 스키어들과 스노보더들의 경우, 대부분 개인 장비를 지닌 덕분에 렌탈 제품은 거의 새것과 다를 바 없다. 국내에서 매번 축축하게 젖은 부츠와 스크래치 투성인 데크를 대여해 왔다면 그야말로 감동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토록 귀엽고 깜찍한 일러스트라니. 데크 바탕은 일본풍의 애니메이션이나 기하학적인 패턴이 주를 이룬다. 감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손가락 아프게 끈을 동여맬 필요 없이, 부츠의 토 스트랩(Toe Strap, 부츠 앞쪽으로 조이는 스트랩) 부분에 ‘Fast-fit’ 이 장착되어 힘들게 조이던 노력을 덜 수 있다. 역시나 바인딩의 기본에 충실한 살로몬이라 할 수 있다.





ⓒ트래비

스노보드는 몸이 동하는 여행인지라,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각 코스별로 상세한 설명을 더했다. ‘타카쿠라산’과 ‘코타카쿠라산’의 능선을 따라 굽이진 슬로프를 코스별로 훑다 보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머잖은 미래, 일본 보드 나들이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씨 남매가 제안하는 시즈쿠이시 스키장 완전정복!


ⓒ트래비

1 타카쿠라 산 정상
  슬로프 가운데 보드를 즐길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해발 1,276m)으로 상급자 코스에 해당한다. 타카쿠라산 정상 바로 밑까지 2인승 제1곤돌라를 타고 오를 수 있다. 멀리 이와테산을 내다보며 활강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거센 바람과 매서운 눈보라 탓에 반드시 고글을 착용해야 한다.

2 부정지(不整地) 사면지대  정제되지 않은 눈으로 뒤덮인 일대. 슬라알럼 반(Slalom Bahn) 코스와 자이언트 슬라알럼(Giant Slalom Course) 코스 두 갈래로 이루어져 있다. 깊은 눈과 울퉁불퉁한 굴곡면을 즐길 수 있으며, 중·상급자 보더들이 선호하는 와일드한 슬로프를 자랑한다.



ⓒ트래비

3 야간코스(Night Skiing)  시즌 중 매주 금~일요일 운영된다. 프린스 호텔 앞에 위치한 프린스 제1리프트는 547m, 프린스 제2리프트로는 705m까지 오를 수 있다. 직선 및 굽이진 곡선 코스 등 2가지 슬로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 정상에서 다양하게 즐기는 주간 코스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자연설을 느끼며 늦은 밤까지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다.

4 레이디스다운힐(Ladies’ Downhill)  최고 경사도 36도, 평균 경사도 14도, 길이 4,500m. 세계알파인 여자활강 개최 코스로 능선을 타고 계속되는 상급자 전용 슬로프이다. 활주기술과 체력, 용기가 동반되어야 하며 라인을 끝까지 읽는 넓은 시야 확보가 필수다.  


ⓒ트래비

5 리프트 & 곤돌라(Lifts & Gondolas) 
2인승 리프트와 4인승 고속 리프트, 그리고 6인승 곤돌라를 이용해 다양한 코스로 이동할 수 있다. 데크를 벗지 않고 한쪽 바인딩만 풀어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6 멘스다운힐(Men’s Dawnhill)  최고 경사도 32도, 평균 경사도 14도, 길이 5,000m. 세계알파인 남자활강 개최 코스로 시즈쿠이시 스키장이 자랑하는 최 난이도 코스이다. 산정에서 능선을 타고 급사면, 완경사면, 중경사면을 고루 즐기는 짜릿함은 그 어디서도 경험하기 힘들 듯.  중급자 이상이라면 세계적인 챔피언들이 누빈 톱 레벨 활강에 반드시 도전해 보도록 하자.

7 프리 라이드 파크(Free Ride Park)  중상급자 전용 코스로 최고 경사도 23도, 평균 경사도 12도, 길이 600m. 다리 정강이를 보호해 주는 프로텍터, 헬멧 등을 착용해 자신의 묘기를 안정적으로 뽐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주간여행정보매거진 트래비(www.travie.com) 저작권자 ⓒ트래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