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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⑥ 끼어들기의 미덕?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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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하얼빈에서 온 편지’로 잔잔한 감흥을 전해 준 바 있는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가 지난 9월 하얼빈에서 다롄으로 거처를 옮기고 다시 ‘다롄에서 온 편지’를 보내 옵니다. 이번 호부터 다시 격주로 연재될 그의 편지로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만 나서지 못하는 여행 갈증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트래비

중국에 오기 전 ‘중국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한껏 겁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 가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게 될 거야.” 차라리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 줬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텐데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니 겁만 잔뜩 집어먹고 말았다. 허나 내복까지 챙겨 갔던 하얼빈의 추위가 만만했던 것처럼 중국이 선사한 문화적 충격은 약소하기만 했다. 

잔돈을 내던지듯 거슬러주는 점원, 싸움인지 대화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한눈에 보기에도 더러운 식기를 서비스(?)하는 식당, 사람을 칠 듯이 달려오는 자동차, 대로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변을 보는 남자, 잠옷 차림으로 목욕탕을 다녀오는 여자들, 제발 오늘은 머리를 감았으면 바라는 둥지 튼 머리, 옷가게에서 훌렁훌렁 윗도리를 벗어젖히는 남자 등, 이 정도야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것들 아닌가. 

하지만 그들의 질서의식만큼은 문화충격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가 막힐 때가 종종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 뻔뻔하게 새치기를 자행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중국에서 살아갈 의욕마저 달아나 버릴 지경이다. 기차표를 끊을 때나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서 줄을 서 있을 때 조금만 공간적 틈을 보여 주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끼어든다. 물론 모든 중국인들이 끼어들기의 선수인 것도 아니고,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지역에 따라 의식 수준의 차이도 크겠지만 공공질서에 대한 평균점수를 매긴다면 낙제를 면하긴 어려워 보인다.

다롄 공항에서 국내선을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짙은 안개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는 방송을 듣고 짐을 부치려는데 항공편이 바뀌었다며 어디로 가서 수속을 해오란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의 상황은 가관이었다. 사람들이 공항 직원을 가운데 둔 채로 데스크에 횡대로 착 달라붙어 서로 먼저 해달라고 티켓을 들이미는데 끼어들 틈이 없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중국인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더니 싱긋 웃으며 내 앞으로 끼어드는 게 아닌가. 항공편은 바뀌고 언제 출발하는지도 알 수 없으니 조급한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줄은 횡대가 아니라 종대로 서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장소는 공항이었다. 


ⓒ트래비

공공의 것에 대한 그들의 끼어들기는 아무런 거리낌조차 없다. 목욕탕에서 샤워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알몸을 들이대는 사람들, 밤기차나 밤배를 타고 가다가 아침에 일어나 세면을 하고 있으면 불쑥불쑥 눈앞에 등장하는 칫솔과 손들, 볼링장에서 내가 가져온 공이라고 말해도 네 것 내 것을 가리지 않고 굴려대는 사람들, 러시아워에 서로 먼저 버스에 오르겠다고 순식간에 병목현상을 만들어내는 그들.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어느 겨울날, 중국 친구와 만나 영화 관람을 했다. 공산당과 국민당 간의 전쟁을 다룬 영화였는데 정말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관람객들에게 있었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는 그렇다 쳐도 버젓이 앉아서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이들은 뭐란 말인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참다못해 중국 친구에게 물었다. “중국인들은 도대체 왜 그러니?”

사실 중국인에게 중국인들의 뒤떨어진 의식수준에 대해 묻는 것도 예의바른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는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왕조시대를 끝내고 숨 가쁜 개혁과정을 거치며 전통적인 관념이 파괴됐고, 최근에는 경제 살리기 중심의 정책과 개방 정책으로 예의와 질서를 챙길 만한 여력이 국가나 개인에게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오늘도 난 여느 중국인들처럼 신호등을 무시하고 6차선 도로를 가로지른다. 중앙선 한 가운데 서서 끼어들 틈을 노리다간 자연스럽게 무질서를 실천(?)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끼어들기’에는 모종의 규칙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려야 할 때는 상황이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의 ‘끼어듦’을 인정하면서 벌어진 ‘틈’을 십분 활용한다는 합리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내가 태연자약하게 무단횡단하는 것도 보행자와 거리를 질주하는 차 사이에 맺어진 끼어들기에 대한 무언의 합의 덕택이다.  

허나 중국 친구들이여, ‘2008 베이징 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제발 “줄을 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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