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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⑦ “춘절은 외로워!”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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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하얼빈에서 온 편지’로 잔잔한 감흥을 전해 준 바 있는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가 지난 9월 하얼빈에서 다롄으로 거처를 옮기고 다시 ‘다롄에서 온 편지’를 보내 옵니다. 이번 호부터 다시 격주로 연재될 그의 편지로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만 나서지 못하는 여행 갈증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음력 12월30일, 우리의 구정에 해당하는 중국의 최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춘절이 시작됐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춘절은 정말 외로운 시기다. 알고 지내던 한국 친구들은 구정을 맞아 삼삼오오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중국 친구들 역시 어마어마한 귀성 인파에 합류해 제 고향으로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고자 해도 기차표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와 다름없고, 혹여나 표를 구했다 해도 돌아오는 표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기 십상이라니 자진해서 자택 구금에 돌입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1 개인적인 폭죽놀이와 함께 도심 곳곳에서는 불꽃놀이가 동시다발적으로 밤하늘을 밝힌다 
2, 5 음력 12월30일 밤이 깊어 가면 갖가지 폭죽들이 도시 전체를 울린다 
3 춘절이 다가오면 중국인들은 대문 앞에 복(福)자를 붙여놓는다. 뒤집어진 글자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뒤집어져 있다는 따오(倒)와 도착했다는따오(到)가 동음이의자로 복이 왔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춘절 연휴 기간은 또 오죽이나 긴가. 넓은 국토 때문에 고향에 한번 가려면 기차를 타고 20시간을 꼬박 달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니 일주일도 여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다른 방도가 없어 중국 친구 진웨이를 붙들고 사정을 했다. 지난여름 다롄에 도착하자마자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함께 중국어와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인데 한껏 불쌍함을 가장해 함께 공부나 하자고 꼬드겼다. 허나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친구를 어찌 만류할 수 있나. 그녀는 “뚜웨이부치, 꿔니엔하오!(미안해, 설 잘 쇠라!)”라는 말을 남기고 열차에 올랐다. 

이렇게 혼자 남게 됐지만 중국의 춘절은 적적할 겨를이 없다. 음력 12월23일을 ‘씨아오니얼’이라 하는데 이때부터 춘절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폭죽은 이날부터 시작해 ‘니엔싼스’라 부르는 음력 12월30일 밤 절정에 다다른다. 멀리서 포성처럼 울려오는 녀석부터 창밖에서 기관총처럼 저 혼자 뒤집어지고 까무러치며 터져대는 연발폭죽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지금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표현하면 ‘펑, 펑, 다다다다닥, 따다닥, 피융’ 등이다. 한바탕 폭발음이 지나가고 나면 화약 냄새까지 진동을 하니 중국 전체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밤 12시가 가까워 오면 이 폭죽놀이는 보다 거국적이고 조직적인(?) 양상을 보인다. 개인적인 폭죽이 아니라 도심 곳곳에서 불꽃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밤하늘을 화려하게 밝히기 때문이다. 


5 폭죽놀이가 끝나고 나면 불그죽죽한 잔해들이 남아 바람에 쓸리며 거리를 오간다
6 음력 12월30일 밤이 깊어 가면 갖가지 폭죽들이 도시 전체를 울린다
 

이러한 중국의 폭죽놀이 풍습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해마다 이맘때쯤 니엔(年)이라는 흉악한 괴물이 마을에 나타나 사람을 잡아먹는 등 악행을 일삼는데, 사람들은 폭죽을 터뜨림으로서 그 괴물을 쫓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내 생각인데 니엔은 지난 한 해 동안의 흉사와 다가올 새해의 액운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하지만 몇 시간이고 계속되는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죽소리는 괴물은 물론 사람까지 내쫓을 정도로 과하게 보인다.

밖에서는 폭죽놀이가 한창일 때 안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만찬을 즐기며 리엔환완훼이라는 춘절맞이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유명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중국식 만담인 ‘씨앙성’과 단막 희극이랄 수 있는 ‘씨아오핀’등이 방송되는데 저녁 8시부터 약 4시간 동안 계속된다. 평소에는 포커를 즐기던 사람들도 춘절만큼은 마작으로 돈 놀음을 하고, 복식은 전통 복장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깔끔하게 새 옷을 입는 것으로 대신한다. 

밤 12시 즈음엔 ‘찌아오즈( 子)’라는 만두를 먹는다. 폭죽처럼 찌아오즈를 먹는 이유도 재미있다. 찌아오()의 동음이의자인 찌아오(交)가 교차점, 맞닿은 곳 등을 의미하고 밤 11시부터 새벽 1시는 자시(子時)이니 새해와 지난해가 교차하는 시간에 먹는 음식이 바로 찌아오즈인 셈이다. 이 만두를 빚을 때 동전 몇 개를 깨끗이 씻어 넣기도 하는데, 동전이 들어간 만두를 먹는 사람에게 재물이 들어옴을 의미한다. 찌아오즈 이외에도 중국식 설 떡인 ‘니엔까오’와 콩소를 넣은 찐빵인 ‘또우빠오(豆包)’도 중국인들이 춘절에 즐겨먹는 음식이다. 

해를 넘겨 초하루가 되면 친척들이 모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 해당하는 ‘꿔니엔하오’라는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세배를 드린다. 세뱃돈은 ‘야수이치엔’이라고 하는데 50위안에서 100위안(한화 약 1만3,000원) 정도를 아이들에게 준다고 한다. 치엔은 돈이고 야수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나이를 억누른다는 의미인데 크면 클수록 그만큼 생의 번뇌도 늘어나니 아이처럼 해맑게 살라는 뜻일 거라고 진웨이가 설명해 주었다. 

폭죽소리도 잦아든 지금은 새벽 2시, 음력 새해가 밝아오는 시간이다. 타국에서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하고 혼자 덜렁 남아 있으려니 죄송한 마음뿐이다. 날이 밝으면 고향을 향해 큰절이라도 올려야겠다. 그런데 야수이치엔은 송금해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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