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⑨ 수향(水鄕)을 걷다-시탕
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⑨ 수향(水鄕)을 걷다-시탕
  • 트래비
  • 승인 2008.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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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하얼빈에서 온 편지’로 잔잔한 감흥을 전해 준 바 있는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가 하얼빈에서 다롄으로 거처를 옮기고 다시 ‘다롄에서 온 편지’를 보내 옵니다. 격주로 연재될 그의 편지로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만 나서지 못하는 여행 갈증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1 시탕의 좁은 골목. 삼륜자전거는 이 골목의 너비에 맞춘 듯 꼭 들어맞는다  2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 3>에서 아내 줄리아를 구하기 위해 달렸던 길  3 시탕 수로마을 곳곳에는 톰 크루즈의 사진이 걸려 있다      

<미션 임파서블 3>를 기억하는가. 톰 크루즈가 갓 결혼한 아내 줄리아를 구하기 위해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렸던 그 길을. 머리에 소형 폭약을 심고 생사의 기로에 선 아내를 찾아 뛰어가는 톰 크루즈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 순간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 수로마을의 탐스러운 풍경이었다. 낮은 회색빛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 만들어내는 좁은 골목길과 마을 사이사이를 멈춘 듯 흘러가는 수로, 그 물길을 고요히 저어가는 나룻배는 빨려들 것처럼 매력적이었다. 

이 마을은 영화에서는 상하이의 어느 골목길로 묘사되고 있지만 실은 상하이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반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시탕(西塘)이라는 수향이다. 저우좡이나 통리 등 상하이 근교의 유명한 수로마을들은 오래전부터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지만 최근에는 영화촬영지라는 매력이 덧붙여지면서 시탕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나도 이미 저우좡을 다녀오긴 했지만 시탕을 외면하기엔 <미션 임파서블 3>의 인상이 너무나 뚜렷했다. 

저우좡에서 돌아오면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상하이체육관에서 출발하는 시탕행 관광버스가 1월1일 새해 첫날을 맞아 반값 할인행사에 들어간단다.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여행일정을 조정하고 그날 아침 허겁지겁 상하이체육관으로 달려갔지만 아뿔싸 선착순으로 마감되어 표는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근처의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시탕 가까이에 있는 찌아산(嘉善)으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소형버스에 올라 시탕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삼륜자전거를 끄는 사람이 다가와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반값으로 입장도 시켜 준다며 말을 걸어온다. 미덥지 못해 일단 가서 입장료를 알아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가보니 입구라고 할 것도 없이 수로마을로 통하는 골목마다 사람들이 지키고 서서 표를 파는데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단순 입장은 50위안, 마을내의 볼거리들을 다 둘러볼 수 있는 표는 100위안(한화 약 1만3,000원)이었다. 평일에는 무료입장이라고 하는데 하필이면 1월1일 휴일이었다. 

반값 할인행사를 눈앞에서 놓쳐 속이 쓰리던 차에 삼륜자전거 아저씨의 불법행위(!)에 동참키로 했다. 아저씨는 이미 얼굴이 알려져 안 되는지 다른 젊은이가 자전거 안장에 오르더니 내게 표를 건네주며 검표원에게 보여 주고 다시 돌려달란다. 입구 통과에 성공하고 삼륜자전거가 들어가면 한 치의 틈도 없는 골목을 달려 드디어 시탕의 수로마을에 도착했다. 젊은이는 표를 받으며 구경하다가 마을을 벗어나면 다시 입장할 수 없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주며 자전거를 끌고 총총히 사라졌다. 아무튼 반값 할인을 성사시키는 순간이었다.

톰 크루즈가 건넜던 다리 위에 올라 마을을 둘러보니 나룻배에 지붕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저우좡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허나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마을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일궈내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저우좡이 잘 정돈되고 다듬어진 모습이라면 새로이 떠오르는 시탕은 현지인들의 일상이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서 움직거린다. 빨랫줄에 내걸린 흰 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아낙네들은 물가의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그릇을 씻는다. 갑작스레 몰려든 외국관광객들을 맞이하느라 상기된 그들의 표정은 여행자들까지 들뜨게 한다. 

저우좡이 술 빚기, 대나무 공예 등의 장인들을 보유해 점잖게(?) 눈길을 끈다면, 시탕은 갖가지 군것질로 입을 즐겁게 한다. 시탕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슈운칭또우(薰靑豆)는 훈제한 완두라고 할 수 있는데 고소하고 달콤한 맛과 부드럽게 씹히는 감촉이 일품이다. 연잎으로 싼 찹쌀을 쪄낸 쫑즈도 시탕 골목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찹쌀 안에 팥이나 고기가 들어 있어 출출할 때 먹으면 든든하니 식사 대용으로 좋다. 우리의 물엿과 같은 탕시(糖稀)는 나무젓가락 등을 이용해 돌돌 말아 주는데 조금만 한눈을 팔고 있으면 흘러내리니 조심해야 한다. 

이런저런 먹거리에 정신을 팔며 골목을 누비는데 어느덧 한낮의 해가 기울며 바람이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간 상하이에 짐을 풀고 여행을 다니니 상하이가 집처럼 푸근하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톰 크루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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