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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⑩ "다시, 코레아우라!""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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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깊고 신선한 시각으로 장기 여행자의 밀도 있는 여행 감상을 전해 주었던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다롄에서 온 편지’가 이번 호 10회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하얼빈에 이어 다롄까지 1년 사계절을 좋은 글과 사진으로 함께해 준 서동철 기자와, 더불어 큰 호응 보내 주셨던 독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1909년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지하실 감옥에 수감 된다. 6박 7일간의 구금을 마치고 11월 1일 뤼순(旅順)으로 이송, 해를 넘겨 1910년 2월 총 여섯 차례의 공개 심판 끝에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후 거사가 이뤄진지 정확히 5개월 만인 3월26일 오전 10시경 향년 32세의 나이로 순국한다. 

하얼빈에서 뤼순까지, 만주벌판과 안중근이라는 두 단어에 이끌려 하얼빈으로 향했던 나는 아마도 안 의사가 포승줄에 묶인 채로 실려 왔던 그 철로를 따라 다롄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딛기 힘겨웠던 마지막 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뤼순으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있다.

물오른 봉오리들이 툭툭 터지며 꽃을 피워내는 봄이었지만 흐린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고 바람은 겨울인듯 차가웠다. 더욱이 오늘은 3월 29일 그가 약 100년 전 세상을 떠났던 날의 사흘 후 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지난해 하얼빈역에서 만났던 서른한 살의 그가 이제는 서른두 살이 되어 짧고도 굵은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었다.

나도 이 중국땅에서 해를 넘겨 그와 같은 나이가 되었고, 다르지 않을 길을 따라 하얼빈에서 뤼순까지 왔다. 그것은 그저 우연이었지만 나는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다롄시내에서 뤼순까지는 털털거리는 구형 버스로 달려도 1시간30분 정도의 거리에 불과하지만, 뤼순은 랴오둥 반도의 군사적 요충지로 외국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뤼순은 그저 작고 조용한 도시일뿐이었다. 뤼순감옥 입구에서도 외국인인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아주 간단한 중국어만을 사용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안내원은 나중에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아차렸음이 분명함에도 친절하게 나갈때까지 인도해 주었다.

뤼순감옥 정문을 통과해 처음 관람하게되는 장소는 죄수가 도착해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죄수복으로 갈아입는 곳이다. 죄가 중한 사람은 짙은 색을, 죄가 가벼운 사람은 옅은 색의 죄수복을 입혀 구분했다고 하는데 빛바랜 옷들은 이미 죄의 경중을 떠나 있었다. 앞방 죄수들과의 소통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 감옥은 복도를 중심으로 갈지자를 그리며 늘어서 있다. 서늘한 기운이 바닥과 벽면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올 듯한 감방 안엔 죄수들이 사용했던 식기와 물통, 그리고 화장실 대용인 나무로 된 통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당시 일본의 국사범으로 분류된 안 의사가 수감됐던 곳은 간수부장 당직실 옆에 있는 감방으로 일반 감옥과는 외떨어진 독방이다. 널찍한 공간과 창가에 놓인 책상 등은 일반 감방과는 달리 호화스럽기까지 해서 특별대접(?)을 받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은 후 이 독방에서 <동양평화론>과 자서전을 집필하는데 몰두한다.

감방 건물을 빠져나와 진료소를 거치면 사형 집행 장소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한복으로 갈아 입은 안 의사는 이곳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뒤 좁은 나무통에 구겨지듯 담겨져 뤼순감옥 뒤편 야산어딘가에 지금까지 묻혀있다. 지난 3월26일 그의 순국 98주기를 맞아 한국측 유해 발굴단이 중국의 허가를 얻어 현재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데 북한측에서도 이미 시도한 바 있어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안 의사는 하얼빈에서 체포된 후 일본인 검사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15가지로 열거하면서자신의 행위의 타당성을 주장했고, 뤼순에서 재판을 받을 때에도 자신은 한국의 병참모중장으로 전쟁을 일으켜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이지 일반 피고인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거침없이 변호했다. 하얼빈역에서 “코레아우라(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뤼순에서 선명한 삶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나는 그의 곧고도 확신에 넘치는 발자취를 쫓으면서 나의 흐트러진 발자국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삶을 당당히 ‘변호’할 수 없고 단지 ‘변명’할 수 있을 뿐이라는 자괴감과 그가 살지 못했던 나이를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중압감이 뤼순감옥을 나서는 발걸음을 무겁게했다. 며칠이 지나고 나면 난 또 안중근 의사를 잊고 살겠지만 다롄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려 보았다. 코레아우라.

1 다롄시내에서 버스로 약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뤼순감옥  2 안중근 의사의 독방을 창에서 들여다본 모습. 3월26일 현재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관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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