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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ie with Movie - 5월에 전주에 가는 이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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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영화기자인지라 국제영화제를 여러 군데 다녔다. 같은 영화 축제라 할지라도 나라와 지역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국제영화제는 그야말로 ‘권위’로 똘똘 뭉친 나머지, 검은색 턱시도 차림이 아니면 공식 시사회에 들어갈 수 없다. 프레스 카드도 나라와 매체력에 따라 등급별로 나뉘어 있어 유명 스타라도 올라치면 아예 기자 회견장 접근조차 불가능한 경우도 생긴다. 휴양지 바닷가는 먼발치로 시야에만 담아둔 채 숙소에서행사장까지 전쟁 치르듯 오가야 했던 데다 가지고 갔던 카메라까지 도둑맞아서 였는지 칸에 대한 필자의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베니스영화제는 그야말로 지중해의 물과 태양이 빚어내는 이중창에 둘러싸인 듯한 낭만적 분위기 자 아내긴 하지만, 지난 번 칼럼을 통해 말했다시피 보름 내내 듣는 그 이중창은 참으로 지겨웠다. 늦겨울에 열리는 베를린영화제는 견고하고도 유서 깊은 도시의 이미지대로 어딘가 모르게 학구적이고 논쟁적인 분위기를 물씬풍기는데, 이말은 그래서 별로 재미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영화제를 다녀 봤지만, 필자가 가장 좋아한 영화제는 두 차례 다녀온 밴쿠버국제영화제다. 가을이 한껏 무르익을 무렵인 9월 말 열리는 이 영화제는 살기 좋기로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도시의 세련된 안정감과 정취에  힘입어 북미 대륙의 가장 독특한 영화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사실 밴쿠버영화제의 진짜 미덕은 영화제 분위기가 ‘오순도순’하다는 것이다. 한 두 블록안에 모든 상영관이 밀집해 있어서 관객들은 거리에 즐비한 각종 바와 카페테리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한가롭게 영화제를 즐긴다. 그렇다고 거리가 북적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극장 안에만 들어가면 객석이 빈자리없이 거의 가득 들어차 있다. 축제의시끌벅적함도 좋지만 새로운 영화 미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밴쿠버는, 영화제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영화제를 열고 있다.

국내에서도 각종 영화제가 열린다. 가장 유명한 부산국제영화제는 권위와 규모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칸영화제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행사의 중심이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옮겨가면서 더욱 그런 색깔을 많이 띠고 있다. 5월에 열리는 전주 국제 영화제는 밴쿠버를 닮았다. 특히 ‘오순도순’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북대 문화관이나 소리 문화의 전당과 같은 큰 상영관을 빼면 거의 대부분의 상영관이 고사동 일대에 오밀조밀 몰려 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고사동 극장가를 거닐며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거나, 볕 좋은 곳에 걸쳐 앉아 커피 한잔 홀짝거리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특히 전주는 맛집이 많아 좋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콩나물국밥을 맛볼 수 있는‘삼백집’과 ‘웽이집’은 필수 코스다. 고풍스럽고 정갈한 음식으로 소문난 한옥마을의 한정식 집이나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진짜 전주식 비빔밥은 또 어떤가. 전북대 정문 앞 국수집도 빠뜨리면 후회할 곳이다. 전주영화제에선 무엇보다 부산영화제처럼 북적대는 인파의 소용돌이에 시달리지 않고도 비교적 여유롭고도 소박하게 영화와 각종 행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숙제 해치우듯 전투적 눈빛으로 무장한 채 상영관들을 옮겨다니는 것만이 영화제를 즐기는 방식의 전부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올해도 나는 주저 없이 전주행 열차표를 예약 했다. 매혹적인 영화들의 성찬과 침 꼴깍 넘어가는 음식들의 향연을 앞두고 슬슬 가슴이 부푼다.

글을 쓴 최광희는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하고, 진지하면서도 명랑한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주간지 <필름 2.0>의 온라인 편집장을 거치며 쌓아 온 내공이 여행을 만나 맛깔스런 하모니를 연출할 계획인다.
팀블로그 '3M흥UP'(mmmm.tistory.com)에는 그 못지않은 4인의 필진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영화와 세상을 노래한다. 보다 내밀하고 자극적인 최광희의 영화 칼럼을 원한다면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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