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상은 - 도시는 나의 음악적 영토
가수 이상은 - 도시는 나의 음악적 영토
  • 트래비
  • 승인 2008.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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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이상은 앞에 가수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겸연쩍었다. ‘공무도하가’ 이후 노래하는 아티스트로 접어든 그녀는 늘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였다. ‘담다디’로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어느 날, 홀연 미술 공부를 위해 런던과 뉴욕행을 결심한 것으로도 모자라 앨범을 만들며 도쿄와 오키나와에 머물기를 십수년. 그녀의 청춘은 늘 타국의 공기 아래 자유로웠다. 그래서 이상은은 연예인이라기보다는 닮고 싶은 미지의 대상이었고, 보헤미안의 감성을 지닌 21세기 아티스트 유목민이었다.
그녀가 부쩍 자신의 글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다. 작년 6월 아트 에세이집을 낸 데 이어 최근 <삶은 여행 in 베를린>을 통해 또 한번 작가에 도전한 이상은. 그녀가 들려주는 베를린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차가운 잿빛 도시와는 전혀 다르다.   

장소협찬
무대륙 02-324-9478




질투나도록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있다. 하나만 잘하기에도 버거운 세상, 여러모로 능력 좋은 멀티 플레이어라니! 더군다나 그들 대부분은 모든 걸 참으로 즐길 줄 아는 ‘축복받은 영혼’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기자가 오래전부터 작성해 온 그 축의 중심에 가수 이상은이 있었다.

스물 셋에 시대의 명곡 <언젠가는>을 완성해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했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고 읊조리던 그녀는, 홀연 미술 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길 위에서의 삶이 30대에는 머무는가 싶었지만 다시 런던과 도쿄를 연거푸 작업실로 삼으며 끝없이 도시의 서정을 노래하길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흔을 목전에 둔 지금, 이제는 ‘보헤미안 아티스트’라는 포괄적인 수사로 스스로의 깊이를 더한다. 작년에 발표한 아트 에세이 <아트 앤 플레이>는 물론, 13집 앨범의 타이틀 <삶은… 여행>을 들여다보면 영혼의 자유가 인간에게 얼마나 무한한 재능을 끌어내는지가 명백히 들어난다. 그런 그녀가 아주 근사한 여행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하니, 그야말로 단지 읽는 것만으로도 짝사랑의 일기장을 훔쳐보듯 가슴이 콩닥거린다.

지도에 없던 마을, 베를린

“출판사에서 가고 싶은 도시를 고르라고 했죠. 다녀와서 책을 내는 조건으로.”

13집 앨범 발표 이후, 생각의 전환을 갖고 싶던 그녀에게는 때마침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이미 수많은 도시를 누벼 온 터라 여행지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매일같이 인터넷을 붙들고 고민하던 끝에 베이징과 베를린이 최종 물망에 올랐다. 세계 미술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그 수도인 베이징은 이상은과 근사한 조화를 이룰 듯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베를린으로 방향을 선회한 건 그곳에서 살다 온 친구들의 조언 때문이었다. 

“글쎄, 하나같이 베를린이 문화의 도시로 뜨고 있다는 거예요. 상업적으로 변한 뉴욕에 질린 예술가들이 둥지를 옮기고 있다는 거죠. 궁금했어요. 예술하는 친구들을 ‘반하게’ 만든 그 도시가. 그래 한번 소개해 보자 싶었죠.”

그렇게 2주간 베를린에 머무르며 느낀 상념들은 그녀를 조금 더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애당초 가이드북처럼 정보로 가득 찬 안내책자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도시에 머무는 기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도시를 만났을 때 스스로 어떻게 변해 가는지, 무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사물의 겉모습보다 그 사물과 만나 이루는 본인의 화학작용이 에세이집을 관통하는 주된 콘셉트였다.

“그런데 이건 뭐, 도착하자마자 날씨는 흐리지 도시는 온통 무채색이지…. 그야말로 베를린이 참 스산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거죠. 도대체 여길 왜 추천한 거냐며 친구한테 엄청 투덜거리기만 하고.(웃음)” 

우울한 여행이 새로운 전환을 맞은 건 바로 현지 유학생들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여행 사흘째 날, 베를린의 중심지 포츠다머 거리, 가난한 문학인들의 아지트 크나이페는 물론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은 수십개의 갤러리를 경험했다. 내공이 쌓여야 접하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들을 대하자 그제야 비로소 베를린이 예술도시로서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도 중독을 혐오하는지라 그저 두 다리가 부을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는 사이 베를린이란 도시는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그녀를 끌어당겼고 그들은 서로간에 진정한 교감을 이뤘다. 유학생들과의 소중한 인연은 그녀의 음악을 독일 라디오 방송에 소개했고, 급기야 조만간에는 독일에서의 공연도 진행될 계획이란다. 짧은 시간 경험한 도시여행의 결과물 치고는 대단한 성과였다. 
 



보헤미안의 도시 그리고 풍경

좋아하는 여행은 한국 사람이 많이 없는, 그래서 혼자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 곳이다. 홍대 뒷골목 같은 곳이 어느 나라든 있다는 게 그녀의 여행관. 도시를 좋아한다고 명품 숍 따위를 찾아 헤매는 게 아니라, 그저 관광을 피해 그곳에서 살 듯 느낌을 만끽하면 그걸로 족하다. 

“저는 나그네 같은 존재랄까. 자꾸 다른 새로운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돼요. 무작정 거리만 걸어도 좋은 걸 어째요. 그렇게 자유롭고 싶죠. 내 자신이 그 안에서 새롭게 그려질 수 있는 거, 그게 제 여행의 테마인 듯 싶고요.” 

그녀에게 대도시 이외의 것들을 물었다. 혹여 언론에 노출된 곳 이외에 즐겨 찾는 여행지가 있는지, 혹은 애착을 갖는 숨겨진 도시들이 있는지. 그러고 보니 그녀의 자유분방한 감성과, 바람 같은 보헤미안의 이미지는 인도나 라오스, 티베트 등과 같은 깨달음을 주는 성역의 공간들과도 어쩐지 잘 어울려 보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형적인 도시인의 답변이었다.     

“전 위험한 여행은 즐기지 않아요. 그냥 도시가 지닌 문화,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주는 거리의 냄새가 좋은 거죠.”  

그래서 도시를 제한 여행이라고는 태국이 전부였다. 방콕에서 한 시간 거리, ‘코빠우(?)’라는 섬은 그녀가 유일하게 편애하는 휴양지. 아직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온통 서양인들로 가득하단다. 바다 한가운데 수상 가옥이 늘어서 마음껏 해변을 산책하거나 수영을 즐기기도 좋고, 그러다 보면 자연을 노래하는 또 하나의 곡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다.

“각자가 어떤 도시들과 이루는 궁합 같은 게 있다고 믿어요.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그런 힘 있잖아요. 저한테는 대도시의 기운이 잘 맞다고 느끼는 것뿐이에요.” 

작년, 파리에서 아멜리 노통브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녀는 잠시 파리에서의 생활을 고려하기도 했었다. 굳이 머문다면 다음 도시는 파리이고 싶었다. 하지만 어릴 때는 마냥 동경했던 곳이 지금은 자신을 자극시키지 못했단다. 

“나이 들수록 취향도 변하나 봐요. 쓸데없이 화려한 것들을 멋지다고 동경했는데, 지금은 소박하지만 빛이 나는 것들에 더 관심이 가거든요. 그 너머의 것들을 볼 수 있는 심미안 같은 게 생긴달까. 그래서 파리는 생각보다 저를 잡아당기는 힘이 적었어요.”

여행, 삶이 말랑말랑해지는 휴식의 시간

만우절 오후 3시의 홍대, 이상은이 편애해 마지않는 공간 ‘무대륙’에서의 거짓말 같은 인터뷰가 끝나 가고 있었다. 좌식 테이블에서 조금은 편안한 자세로, 오렌지 주스에 목을 축이며 세상을 교감하던 순간. 그녀의 노래처럼 정말이지 ‘삶은… 여행’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삶은 여행이라 언젠간 끝나니까,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할 영원을 향한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았다. 

이틀 뒤, 이번에는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는 그녀는 <트래비>의 스페인 기사를 보며, “아, 이거 챙겨 가야겠다. 저 안달루시아도 가는데, 도움이 되겠어요!”라고 천진난만하게 소리친다. 그녀에게 여행이란, 굳어진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진정한 치유의 수단이었다.

“고맙죠. 이렇게 여행 다닐 수 있어서. 여행이 일상이 된다는 건 좋은 거잖아요.” 기자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조를 보낸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은 여행을 진정 즐길 줄 아는 세대, 자신의 테마를 꾸려 휴식을 취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도 슬쩍 덧붙여 본다. 이상은은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참 똑똑한 거네요.”

그녀만큼 여행의 흔적이 결과물에 충실하게 반영되는 아티스트도 없다. 올해는 어느새 그녀의 가수 데뷔 20주년, 이 깡마르고 한없이 가벼운 여인이 지닌 열정과 에너지가 사뭇 대단하다. 지금쯤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정열의 플라멩코를 추고 있을, 그녀의 다음 여행담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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