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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ie with Movie - 내가 혼자 여행을떠나지 않는 이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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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는혼자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어디론가 정처 없이 여행한다는 게 괜히 낭만적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단호히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치가 떨리도록 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부러라도 고독을 느끼고자 혼자 여행한다고 한다. 그이들을 존경한다. 인간은 어차피 외로운 존재인데, 그 외로움을 부러 느끼겠다고 떠나는, 철인3종경기 출전에 비견할 만한 그 도전정신을 왜 아니 존경하겠는가.

10여 년 전인가 생애 처음으로 단독 여행을 실천에 옮겼다.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도 뽑았겠다, 남해안과 동해안을 일주하는 코스에 의기양양 나섰는데, 이틀도 못돼 남해 어디쯤에서 끝내 청승을 떨고 말았다. 비 내리는 해질녘 숙소 근처를 어슬렁대다 우물쭈물 들어간 읍내 노래방에서 하필 ‘비처럼 음악처럼’을 혼자 부르던 끝에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던 것이다. 사무치게 외로웠던 게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나에게 한마디라도 얘기를 걸어준다면, 그에게 흔쾌히 술 한잔 살 용의가 돼 있었지만, 말도 잘 통하는 우리나라 땅 한쪽에서 철저히 타자가 돼 있는 나를 발견하는 기분은 단순한 씁쓸함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었다.

8년 전 미국 시카고에 갔을 때도 그와 비슷한 처절한 고독의 고문을 당했다. 가이드도 없이 공항에서 시내로, 시내에서  다시 ‘거니’라는 소도시로 이동하는 여정이었는데, 기차 역에서 예정된 숙소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다는 걸 모른 채지도상의 도로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걸어도 끝없는 도로와 벌판. 간혹 운전자들은 놀림감이 되기 딱 좋은 동양인 도보 여행자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매정하게 지나갈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고립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은 뒤에야 겨우 알프레도 히치콕의 <사이코>에 나오는듯한 여관을 발견하고 무작정 체크인을 했다. 역겨운 악취가 풍기는 방, 침대 시트에 묻어 있는 정체모를 핏자국. 창밖으로 비추는 ‘Vacant’라는 네온 간판만이 을씨년스럽게 이방인의 추레한 고독을 응시하고 있던 그 밤을 나는 잊지 못한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지독한 고독의 여정이다. 혹시라도 혼자 여행하는 것이 전혀 외롭지않다고 느끼셨다면 그분은  필시 주위가 산만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신 분이거나, 아니면 득도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잘 알려진 로드무비에서 주인공은 웬만하면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 김인식 감독의 <로드무비>에서는 동성애 취향의 남자 둘에 둘 중 한 명을 짝사랑하는 여자 한 명이 동행하며 엇나간 짝짓기 게임에 열중한다. 월터 살레스의 <중앙역>에선 아줌마와 어린 꼬마가 동행하며 인간애를 발견하고, <레인 맨>에서는 자폐증 형과 싹수머리 저당 잡힌 동생이 티격태격 여행길에 나섰다가 형제애를 회복한다. 설령 혼자 여행길에 오른다 해도 <비포 선라이즈>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처럼 하룻밤의 멋진 로맨스가 엮이기도 한다. 사실 많은 로드무비 기본적으로 성장 영화다. 주인공들은 기나긴, 그러나 인상적인 여정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늘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그들의 여정은, 그러므로 과거의 지지부진한 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극복, 또는 회복되는 시공간의 드라마인 셈이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웬만하면 혼자 여행은 떠나지 마시라. 혼자 떠나더라도 여행길에 동반자를 만드시라. 혼자하는 여행은 내침하는 고독의 썰물에 벌거벗고 투항해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거센 절대 고독, 그 극단적 타자화의 상태를 온전히 이겨낼 정도로 자아가 강하시다면야 할 말 없지만. 어휴, 난 이제 엄두도 안 난다.


글을 쓴 최광희는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하고, 진지하면서도 명랑한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주간지 <필름 2.0>의 온라인 편집장을 거치며 쌓아 온 내공이 여행을 만나 맛깔스런 하모니를 연출할 계획인다.
팀블로그 '3M흥UP'(mmmm.tistory.com)에는 그 못지않은 4인의 필진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영화와 세상을 노래한다. 보다 내밀하고 자극적인 최광희의 영화 칼럼을 원한다면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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