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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ie with Wine - 하우스 와인이 싸구려라구요?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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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와인이 싸구려라구요?

하우스와인의 의미는 원래 그 레스토랑에서 담근 와인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도시에 현대적 레스토랑이 들어선 18세기 전의 일이다. 그 후 외식업이 팽창하면서부터는 2가지 의미로 바뀌었다. 그 지역의 특색 있는 와인이면서 싸고 적당한 품질의 와인을 뜻한다.

옛날 한국에도 하우스와인이 있었을 것이다. 객줏집마다 술을 담그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독특한 맛의 가양주나 지역의 개성 있는 막걸리를 하우스와인으로 제공했을 것이다. 술 빚는 일은 요리를 하는 것처럼 ‘제조자’의 개성이 반영된다. 똑같은 포도밭에서 나는 와인이라도 양조과정의 사소한 차이로 귀품과 범품으로 나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의 여행자들은 와인 산지가 있는 지역을 여행하면서 전통 있는 레스토랑의 하우스와인 맛보기를 코스에 집어넣는 것일 게다.

짧은 경험이지만 이런 하우스와인 치고 맛없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값도 훌륭해서 하우스와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에 잘 맞아떨어진다. 필자가 유럽으로 공부하러 떠나기 전 한국의 레스토랑에서 하우스와인을 마셔보지 못했으니 과거는 어땠는지 모른다. 귀국 후 두어 해를 보내면서 하우스와인이 이래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정한 의미의 하우스와인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하우스와인은 종종 ‘이윤이 많이 남고 와인을 모르는 무지렁이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술’ 정도로 치부되고 있으니 기막힌 일이다. 홍콩과 일본 등 아시아권의 대형 레스토랑들은 개성 있는 하우스 와인을 제공한다. 홍콩의 유명한 레스토랑 ‘융키’에서 만난 하우스와인은 그 정의에 가장 잘 부합하는 와인이었다. 프랑스 론 지방의 맛있는 레드와인 크로즈 에르미타주(Crozes-Hermitage)와 독일의 화이트와인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품종을 제공했다. 한 병에 3만원 정도로 싸고 그 선택도 매우 훌륭했다. 홍콩의 물가와 한국과 비슷한 주류 관세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싼 값이었다. 적어도 5만원은 받아야 하는 와인들이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그 와인들이 레스토랑 메뉴와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하우스와인이란 모름지기 주인의 개성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해주는 좋은 예였다.

자, 한국은 어떤가. 당신은 혹시 수입상에서 판매 부진으로 밀어낸 제품을 하우스와인으로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만나지 않았는가. 그것들은 ‘마시기 좋은 타이밍’을 놓친 와인일 가능성이 크며, 수입상의 낮은 안목 때문에 시장에서 외면받은 졸작일 것이다. 아니면 그저 헐값에 들여와 큰 마진을 붙일 수 있는 와인에 걸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그와인(Jug Wine: 저렴한 대용량 와인)을 하우스와인이라는 미명 아래 마셨을지도 모른다. 이런 와인은 술 자체로는 나름대로 제 몫을 하는 녀석들이지만 생각 없는 주인 손에 들어가 악평과 폭리의 하수인이 되곤 한다.

레스토랑에서 값싸고 질 좋은, 게다가 제공하는 요리와도 잘 어울리는 하우스와인을 만나거든 아낌없이 칭찬을 해줘도 좋다. 그런 행운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글을 쓴 박찬일은 요리하고 글쓰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주부생활>, <우먼센스>의 기자 생활 뒤 홀연히 요리와 와인을 공부하러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의 거침없는 사고와 자유분방함은‘맛있는 세상’을 요리하는 그만의 독특한 레시피다. *위 글은 넥서스에서 출간한 <와인 스캔들>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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