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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탕-무채색 천년 수곽에 삶은 잦아들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5.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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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천년 수곽에 삶은 잦아들고

찬찬히 살펴보면, 마을을 가로지르는 폭 10m 남짓의 수로 속 탁류는 흐르려는 듯 멈추려는 듯 미동이다. 후줄근하다고 할까 수수하다고 할까 싶은 뱃사공의 삿대질은 들인 품보다 더 선명하고 굵은 물결을 나룻배 뱃머리와 옆구리에서 튕겨내고 있다.
헬 수 없이 스쳤던 물살에 닳았는지 물살에 얹혔던 세월에 낡았는지, 너절해진 나룻배가 사공의 삿대질로 움찍거릴 때 제법 굵었던 물결의 씨알은 지척의 뭍에 채 닿기도 전에 기진맥진 흔적 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에디터  황정일 기자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대한항공 02-751-7148



1, 2, 4 시탕을 종횡으로 흐르는 수로를 따라 시탕의 일상이 흐른다. 이불이며 옷가지들이 널려있고, 상인들은 한가로이 손님을 기다린다 3 수더분한 미소의 나룻배 뱃사공 5수변 여관(객잔)에서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는 투숙객


1 정감어린표정으로관광객을실어나르는시탕의뱃사공 2 가게에붙어있는영화<미션임파서블3>촬영 당시의 모습 3 시탕의 한가한 일상 풍경 4 수줍음 많은 아주머니 5 나룻배 투어


시탕, 그 한껏 늘어진 시간

느릿느릿 어쩌다 가까운 뭍 쪽에 찰싹 닿더라도 매가리 없는 것이 태반이라 수로와 맞닿은 수변 여관(객잔)의 작은 뜰에서 봄날 아지랑이 같은 햇볕을 쬐며 한껏 게으른 책읽기를 하던 투숙객은 아랑곳없이 책장을 넘겨 여린 햇빛을 얼굴에 반사시킬 수 있었다. 오랜만의 좋은 볕이었던지 대강 세워진 대에 대충 힘없이 걸쳐진 빨랫줄에 하얗고 갈색이고 간혹 빨강인 이불이며 옷가지들을 널던 아낙도 하던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고, 갓 걸음마를 시작한 손자 재롱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할머니가 된 듯한 젊은 촌로가 수더분하게 웃음 지을 때 만두인지 찐빵인지 파는 상인은 늘 그랬듯 지나치는 행인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손님을 기다렸다. 물은 멈춘 듯 흘렀고 나룻배는 조용히 물살을 갈랐으며 한갓진 일상은 오늘도 변함없이 시간을 한껏 늘어지게 했다.

찰칵, 찰칵…. 여기에 더해지는 낯선 광경. 250분의 1초, 125분의 1초의 속도가 풍경 이곳저곳을 헤집는다. 가히 이질적이다. 낯선 발걸음들은 메뚜기 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닌다. ‘안단테(느리게)’의 삶을 ‘비바체(매우 빠르게)’의 템포로 훑는다. 그 왁자지껄함은 이곳에 없던 생경한 음역이다. 찰나의 속도와 빠른 템포, 어수선한 부산함이 풍경을 분절하고 재촉하고 어지럽히려 든다. 하지만 어림없어 보인다. 낯선 수채화 붓질이 아무리 거듭돼도 투박한 무채색 크레용 원판은 변하거나 뒤바뀌지 않는다. 단지 색칠해지지 않은 빈 공간에 낯선 색채의 조그마한 삼투만을 허락할 뿐이다. 강남 6대 수향(水鄕) 시탕(서당, 西塘)이다.

시탕에서는 ‘임파서블’한 속도감

중국 상하이에서 자동차로 불과 1시간 반 정도면 상하이와 모든 게 다른 대척점에 닿는다. 저장성(절강성)에 속한 물의 마을(수향) 시탕. 상하이가 자랑하는 대도시의 현란함과 번잡함 대신 여유와 푸근함이 천년 수로를 따라 흐른다.
시탕의 물길은 춘추전국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접경지역으로서 양국이 시탕을 두고 서로 견제하고 또 교역했으며, 이후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사람들이 늘고 수로를 중심으로 거리 곳곳에 건물들도 즐비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의 수로마을 구획이나 건축양식 등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돼 있어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저우좡(주장), 우쩐(오진), 통리(동리) 등과 함께 강남의 6대 수향 중 한 곳으로도 꼽히고 있으니 예사로운 곳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시탕은 최근에서야 세간의 이목을 받기 시작했다. 아마 인근의 다른 강남 6대 수향에 밀렸거나, 상하이 여행의 ‘세트메뉴’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상유천당, 하유소항(하늘에는 천당이,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의 쑤저우와 항저우에 가려졌었기 때문이리라.

시탕이 최근에 신흥주자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시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지의 속도감과 박진감 때문이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의 마지막 마무리 장면 촬영장소로 외부에 알려지고 난 뒤,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던 시탕은 일약 관광명소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았는가, 보았다면 기억하는가? 비밀임무수행기관 소속의 ‘이든 헌트’(톰 크루즈)가 인질로 잡힌 아내를 구하기 위해 수변도로를 전력질주하고, 수로 위 카메라가 ‘롱 테이크(Long Take)’로 그를 숨 가쁘게 따라잡았던 장면을. 다닥다닥 붙은 암갈색 기와지붕을 아슬아슬 내달리고 우당탕 총격전을 벌이고, 좁다란 골목길에서 악당 우두머리와 엎치락뒤치락 최후의 몸싸움을 벌이던 순간을. 이전 상하이 촬영장면에서 상하이 시내의 휘황찬란한 야경을 배경으로 아찔한 마천루에서 뛰어내릴 때의 스릴과 긴박함이 그대로 시탕으로 건너온 것이다.

대도시 상하이에서라면 몰라도 시탕에서의 질주는 너무 빨랐고 대결은 과하게 치열했다. 분명 시탕과는 어울리지 않았기에 시탕의 느림과 잔잔함과 고즈넉함은 더욱 대조를 보이며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악당을 물리치고 무사히 아내와 재회한 뒤 다정스레 수로 석교를 건널 때의 모습은 해질 무렵 시탕의 아늑한 풍경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며 시탕과 완전한 일치를 이뤘으니, 그야말로 정반합의 흡인력은 대단했다.

아직은 어설프니 그래서 아름답다

2006년 영화의 개봉과 흥행 이후 시탕의 풍경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고 시탕 또한 영화포스터나 촬영 당시의 사진 등을 내걸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시탕의 ‘변질’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외부의 때가 묻어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형식적인 다른 유명 관광지들과 달리 시탕은, 여전히 시탕만의 원형질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 뱃사공은 빠른 손놀림으로 종착지까지 서둘러 가려 하기보다는 기꺼이 젓던 노를 여행객에게 내어주는 여유를 지녔다. 좌판을 벌인 상인은 감히 여행객을 조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혹 눈이라도 마주치면 제가 먼저 멋쩍어 웃는다. 원형 테이블에 올망졸망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가족들은 느닷없이 터진 카메라 스트로보를 탓하지 않는다. 이 가격 밑으로는 절대 안 된다며 완강하던 부채 장수는 매몰차게 등 돌리는 손님을 그냥 놔둘 정도로 심리전에 익숙하지 못하다. 외지인들의 호들갑에는 무신경한 듯 수로 양옆 보도에는 옷가지며 시래기 등의 일상이 햇볕을 쬔다. 후덕하고 수수하니 이맛살 찌푸릴 일 없고 경계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물론 다른 강남의 수곽들에 비해 시탕이 별쭝난 매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직은 어설프고 서툴다. 시탕의 진정한 흡인력은 바로 그 미완의 부족함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이들에게 우리는 그네들 삶의 본류 속으로 흘러 들어온 작은 지류에 불과하다. 작은 지류가 제 아무리 세차다 해도 결국 본류 속으로 잦아들고 말 듯, 서너 시간 하릴 없이 시탕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발길은 느긋해지고 마음은 아늑해진다. 그렇게, 수향 시탕의 물결은 천년 세월의 흐름을 이어왔나 보다.


 
6, 8 시탕의3대 명물 중 하나인 골목길(농탕) 7 비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랑펑’


물길 많고 다리 많고 골목 많아 할일도 많네!


중국 사람들의 말마따나 물길과 삶이 어우러진 시탕에는 물길이 많고, 물을 건너는 다리가 많고, 비를 피하는 처마(낭팡)가 많다. 물가를 벗어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골목골목이 이어지고, 명청 시대의 고택들이 즐비하다. 거기에 깃들여진 갖가지 이야깃거리와 사연들까지 더해지면 당일치기 여행으로는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볼 것 많고 할 것 많고 들을 것도 많은 만큼 우선 기본 코스부터 섭렵하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우선 시탕의 3대 명물을 눈여겨보자.


농탕(弄堂, Nongtang)   농탕은 마을 깊숙이 들어간 좁다랗고 아늑한 민가의 골목길을 말한다. 중국 북방지역에서는 후통(Hutong)이라고 부르는데 시탕에서는 농 혹은 농탕으로 부른다. 이 골목길에는 민가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길이와 너비가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골목은 걸어 보지 않고는 앞길을 가늠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가족상황이나 내부의 모습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해 이런 골목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시탕에는 100여 개의 농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농은 3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스피농(石皮弄)이다. 길이는 68m 정도이고 농 바닥에는 216개의 돌판이 깔려 있다. 바닥에 깔린 돌판이 가죽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장 폭이 좁은 구간은 골목의 너비가 1m 정도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시탕 곳곳에서는 길고 짧은 갖가지 골목들을 만날 수 있다.


랑펑(廊棚, Langpeng)   랑펑은 쉽게 말하면 지붕 있는 복도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수로 양 옆으로 길다랗게 조성돼 있는데 어찌 보면 처마를 더 키우고 넓혀서 현재의 랑펑이 되지 않았나 싶다. 랑펑은 비가 많은 강남 지역의 특성상 자연스레 탄생했다. 민가들은 민가대로, 상가들은 상가대로 비를 피할 목적으로 랑펑을 만들고 넓히기 시작했으며, 각각의 랑펑들이 하나로 연결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가에 세워진 랑펑은 폭 2~3m에 대부분 목조로 조성돼 있으며, 지붕은 기와로 덮여 있다. 수로의 굴곡을 따라 굽이굽이, 혹은 일직선으로 조성돼 있어 걷다 보면 물의 도시의 호젓함을 만끽할 수 있다. <미션 임파서블 3>에서 톰 크루즈가 쏜살같이 내달렸던 길이 바로 랑펑이다.

다리(橋, Bridge)   시탕은 물가를 따라 형성된 수곽인 만큼 당연히 물을 건너는 다리가 많다. 현재 시탕에는 마을을 가로, 세로로 흐르는 하천을 따라 100여 개의 다리가 있는데 목교도 있고 석교도 있다. 역사가 오래된 석교의 경우 송, 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초에 세워진 오복교는 다리를 건너면 덕, 장수, 선행 등의 5가지 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며, 시탕 북쪽에 있는 와룡교는 높이 6m, 길이 30m로 시탕에서 가장 높은 다리다. 와룡교는 또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는데 300년 전 나무다리였던 와룡교에서 임산부가 목숨을 잃게 되자 누군가 돌다리로 보수를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됐다. 이후 돌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기증으로 와룡교가 완공됐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고즈넉한 고택 속 세월의 향취

3대 명물 다음에는 옛 시대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고택들과 갖가지 테마의 박물관과 전시관 등을 둘러볼 차례다. 기본 입장료(30위안)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3대 명물과 달리 이들 고택과 박물관 등은 대부분 별도의 입장료를 따로 받고 있다. 시탕 수로변의 랑팡을 걷고 다리를 건너고 골목길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시탕의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좀더 깊숙한 속살을 원한다면 약간의 돈을 더 쓸 것을 권한다. 만약 많은 유료입장 시설들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모든 게 포함돼 있는 통합입장권(60위안)을 구입하는 게 더 유리하다.   


쭈이웬(醉園, Drunk Garden)   쭈이웬은 판화작가 왕형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그의 부친도 판화작품 활동을 했으며 아들도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작업 중인 그를 직접 만날 수도 있으며, 그가 그동안 완성한 다양한 판화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원하는 작품이 있으면 직접 구입할 수도 있다. 판화작품뿐만 아니라 쭈이웬이 지닌 미적 아름다움도 매력이다. 원래는 명 왕조 때 5채로 지어졌는데 현재는 4채만 남아 있다. 옛날 양식의 벽돌을 이용해 만든 작은 화단과 정원, 연못 등이 아기자기한 맛을 풍긴다.


서원(西園, West Garden)   서원은 명조 시대 장강 남부지역의 부유층 사택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주씨 가문의 사저다. 제법 큰 규모인데 안에는 하나의 작은 왕국을 옮겨다 놓은 듯 개인의 사저치고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고 치밀하다. 정원 안에는 연못과 바위 조형물, 전망대, 응접실, 파빌리온 등이 있다. 특히 중국의 명원에 줄곧 쓰이는 거대한 ‘태호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볼거리다. 태호석 안은 미로처럼 연결돼 있고 위로 향하면 전망대로 통한다. 당시 시탕에서 제일가는 전망을 자랑했다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초기 시절에는 시인 유아자(Liu Yazi)가 ‘남사회(South Poem Association)’를 조직해 친구들을 초청해 시를 논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많은 기념사진과 작품들, 역사적 사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왕택(王宅, Zhongfu Hall)   왕택은 청조 때부터 송나라(960~1279) 황군대장이었던 왕연(Wang Yuan)의 후손들이 기거했던 사저다. 인근 항저우에서 살던 왕연의 한 후손이 시탕으로 옮겨와 왕택을 지었다. 명청 시대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으로 7개의 건물과 1개의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7개의 건물 중 중앙에 위치한 ‘종복당(Zhongfu Hall)’은 내부 접견실이자 집무실로 쓰였다.
시탕에는 이외에도 옛 시대의 각종 단추를 모아 전시하고 있는 단추박물관, 도장박물관, 부채박물관, 명청목각진열관, 나무뿌리를 이용해 사자나 용, 공작새 등의 동물은 물론 풍경 조각품 등 다양한 뿌리조각품을 전시해 놓은 뿌리조각관 등 다양한 테마의 전시실과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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