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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범신-영원한 청년 작가의 내일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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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범신
영원한 청년 작가의 내일

소설 <촐라체>의 캠프지기 아들 현우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출가하면서 한마디 내뱉는다. ‘그리워서요......’ 그 눈빛은 작가 박범신에게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과 명예를 거머쥔 연륜 어린 소설가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은 무얼까. 

에디터  박나리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류진


나는 히말라야에서 보았습니다. 속도를 다투지 않는 길과 본성을 잃지 않는 영혼, 문명의 비곗덩어리를 가볍게 뚫고 들어와 내장까지 밝혀주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만년 빙하를 이고 있어도 결코 허공을 이기지 못하는 설산.


15년 동안 300만권이 넘게 팔린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박범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최인호, 한수산과 함께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이래, 지난해 블로그 소설 <촐라체>로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이름은 그 자체로 한편의 장편소설이 되기 충분하다. 하지만, 35년 경력의 현역 소설가는 오늘 잠시 잊기로 한다. 대신 산을 통해 영혼의 갈증을 채우는 산악가, 아무 계획 없이 떠돌 때 낭만을 느낀다는 여행가에게 지혜로운 삶을 들려줄 것을 청했다.

산에서 세상 모든 만물의 양면을 보다

소설 <촐라체>를 읽은 이라면 치밀하고 세세한 묘사에 주인공 두 형제와 그 가파른 빙벽을 오르는 기분을 느꼈을 테다. 모두가  작가의 경험, 험한 히말라야 설산을 박범신 스스로 10여 차례 이상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묘사다. 역시나 그와 산을 떼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 그에게서 소설을 분리시키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히말라야는 내게 사원과도 같은 곳입니다. 불자가 절에 가고 신자에 교회에 가듯, 나는 히말라야에 갑니다. 그곳에 본성적인 내 자신이 있기 때문이지요.” 때마침 산에 대한 질문에 그는 평생 가슴에 품어 왔던 꿈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나는 히말라야에서 보았습니다. 속도를 다투지 않는 길과 본성을 잃지 않는 영혼, 문명의 비곗덩어리를 가볍게 뚫고 들어와 내장까지 밝혀 주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만년 빙하를 이고 있어도 결코 허공을 이기지 못하는 설산.” (히말라야 여행기 <비우니 향기롭다> 중)

히말라야 등반 뒤, 그의 잔잔한 가슴에는 또 하나의 산이 아련한 파문을 일으켰다. 불교학자로 유명한 로버트 서먼의 <티베트의 영혼 카일라스>를 읽다가 마주한 그곳,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하고 성스러운 산이자 티베트인들이 눈의 부처라는 뜻의 ‘강 린포체’로 부르며 숭배하는 ‘카일라스’는 그에게 사춘기 소년의 달뜬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몇 해 동안 그리워하는 마음만 품고 있던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카일라스로 떠났다. 늙은 어미처럼 혀를 끌끌 차는 아내의 한숨을 뒤로 한 채. 그곳에서 그는 무섭도록 조용한 정적과 인간의 더러운 죄가 빚어내는 초라한 풍경을 마주하곤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차디찬 업경대의 바위에 이마를 대고 그토록 버리고 싶었던 욕망을 내려놓으며 본래의 자신과 만났다.

“조작된 욕망이 극에 달한 도시 한복판에서는 우리가 삶을 살면서 마땅히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합니다. 이상과 현실, 영원과 찰나, 객관과 주관, 불멸과 소멸.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그것들을 보기 위해서지요. 그곳은 초월적인 세계와 아우성치고 있는 현실의 경계선입니다. 비로소 내 자신과 모든 것의 양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요.”
산 이야기를 하는 작가의 눈빛이 촐라체 북벽에 단단히 얼어 있는 맑은 얼음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오지여행, 공간이 아닌 나를 찾아가는 길

누구나 여행을 떠나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기쁨에 떠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구 반대편에서 자신과 비슷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로부터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떠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두 권의 여행 산문집을 낸 소설가 박범신의 여행관은 조금 특별할 것 같았다. 그에게 ‘왜 여행을 떠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여행은 공간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곳에 있을 때는 타인과의 관계 혹은 직위 등이 내 자신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본성적인 나를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내가 집을 떠나는 것은 아무도 몰래, 고요한 가운데서 나를 찾아가기 위함이지요. 현실의 나를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이를테면 삶의 스톱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요.”

그러기 위해 그는 오지로 여행을 떠난다. 문명의 이기가 지배하지 않는 곳,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사는 마을을 유난히 더 사랑한다고 했다. 물질적인 문명이 지배하는 세계에 굴하지 않고 더 높은 영혼의 가치와 이상을 좇는 사람들의 삶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로부터 위로받기 위해 굳이 고된 오지 땅으로 떠나는 것이다. 여전히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청년의 눈빛을 갖고 있는 그의 진짜 청년 시절의 여행은 어땠을까.

“공자님 말씀 중에 ‘낙자(樂者)는 바다를 좋아하고 현자(賢者)는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어요. 젊을 때는 바다를 좋아하고 나이가 들면 산이 좋아진다는 얘기지요. 어렸을 때는 주로 섬을 많이 다녔어요. 울릉도, 송도, 홍도, 백령도 등이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섬 한번 여행하는 게 해외 여행하는 것만큼 힘들었어요. 혼자도 가고 여럿이서도 가고 여행 하면 늘 바다를 떠올릴 만큼 물가로 많이 돌아다녔지요. 신기하게 나이가 드니까 산이 좋아지게 됩디다. 나이가 들수록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연민이 많아지거든요. 이른바 불심(佛心)이 생기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어질어지면서 산을 좋아하게 된 것 같네요.”

1980년대 초반, 문화관광부에서 작가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영국, 프랑스, 쿠웨이트, 인도를 다녀온 후 그의 여행지는 세계 곳곳으로 확대된다. 아프리카 3개월 종단, 유라시아 5개월 종단 등을 필두로 모잠비크, 인도, 네팔, 티베트 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를 여행해 왔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왜 여행서를 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여행기를 쓰려고 여행을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사진을 찍거나 정보를 메모하며 주변 이들에게 이것저것 묻다 보면 정작 떠난 목적을 잊어버리게 되는 탓이다. 두 권의 여행 산문집 역시 순례를 떠난 구도자의 명상 에세이에 가깝다.

올해로 예순셋을 맞은 작가는 요즘 영어공부에 한창이다. 교수직에서 물러나고 나면 세계를 좀 떠돌아 볼까 하는 열망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는 까닭이다. 구체적인 계획을 물었더니 ‘계획 같은 것을 세우고 떠난 적은 없다. 그저 떠돌 때가 행복하기 때문에 떠난다’고 말한다. 희끗한 서리가 머리칼을 덮고, 나이테처럼 깊은 주름이 눈가를 두른 그가 여전히 ‘청년 작가’로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작가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영원히 늙지 않는 짐승 한 마리’를 눈앞에서 목도하니 덩달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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