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프랑스 기차여행 ② 아를·모나코
남부 프랑스 기차여행 ② 아를·모나코
  • 트래비
  • 승인 2008.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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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ion #3 Arles 아를

그곳에선 누구나 ‘영감’을 선사받는다


카르카손에서 아를까지 가는 데 기차로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반. 영화 한 편을 보기 딱 좋은 시간이다. 아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 호기롭게 노트북을 꺼내 극장에서 볼 타이밍을 놓친 최신영화를 플레이시켰다. 기찻길을 따라 영화도 흐르는데 시선은 자꾸 창밖으로 향한다. 이어폰을 귀에 틀어박고 모니터에만 집중하며 온 기차 안을 나만의 영화관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지만 남프랑스의 절경은 한시도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느샌가, 노트북을 덮어 버리고는 창문에 코를 틀어박고 ‘만화경’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눈앞에 펼쳐진 근경과 중경, 그리고 원경의 파노라마를 만끽하고 있었다.

글·사진  신중숙 기자   취재협조  레일유럽 www.raileurope-korea.com



1 반 고흐 카페로 불리는‘Cafe La Nuit’ 2, 3 한때, 아를은 다양한 문화의 각축장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투우, 플라멩코, 로마의 원형경기장 등 그야말로 다양한 종류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4 아를의 여행자 센터에서 구입한 아를 지도는 1유로 5 아를에서는 5가지 테마로 투어를 계획할 수 있는데 그중 고흐를 따라가는 여행은 땅바닥에 부착된 이 표지판만 따라가면 된다


그러고 보면 남부 프랑스에는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미안한’ 숨은 보물 같은 여행지가 참 많다. 아를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파리를 위주로 프랑스 여행을 즐기는 우리나라 여행자에게는 국제공항이 없는데다 구할 수 있는 여행정보마저도 빈약한 아를이라는 여행지가 낯선 것이 어쩌면 당연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를은 ‘고대’, ‘중세’, ‘르네상스’의 유적이 남아 있고 그런 연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하지만 사실 드문드문 아를을 찾는 한국인들을 인터뷰한다면 그들이 아를을 찾게 된 이유의 98%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일 테다. 아를은 고흐가 ‘요양’을 위해 1888년 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그는 프로방스(Provence)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300점 이상의 그림과 스케치를 남겼다.

고흐를 찾아가는 여행은 아를 여행자 센터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고대 유적지, 중세 유적지, 르네상스, 빈센트 반 고흐의 스케치 장소, 세계 문화유산의 5가지 테마의 여행코스가 상세히 소개된 지도와 필요한 여행정보를 구해 계획을 잡는 게 좋다. 지도는 1유로.

과연 고흐는 어떤 눈으로 아를을, 아를의 햇살과 색채를 바라보았을까. 호기심을 가득 품고 고흐의 흔적을 좇는 여정은, 과연 예술가가 ‘필터링(filtering)’한 세계는 일반인의 그것과는 참 다르다는 사실과, 그가 걸었던 길, 그가 보았던 것들을 몸소 체험해 본다는 특별한 의미를 안겨준다. 전형적인 프로방스 마을의 매력이, 남프랑스의 따사로운 햇살이, 지중해 특유의 여유로움이 고흐 같은 예술가는 물론, 이곳을 찾은 여행자 누구에게라도 무한한 영감을 선사할 것만 같다.

아를 가는 법

카르카손에서 아를로 가는 직행 기차가 있다. 2시간20분 정도 소요되며 TGV는 아니지만 반드시 예약이 필요한 구간이다. 파리 리옹(Lyon)역에서 아를로 가려면 TGV를 이용한다. 직행 기차로 이동시 소요되는 시간은 약 3시간50분. 
 



Trace of Van Gogh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년 9월
고흐는 모자 위에 초를 세우고 빛을 밝혀 아를을 유유히 흐르는 론 강을 배경으로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렸다. 이 즈음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지만,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라고 토로하던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The Yellow House 1888년 9월
아를 기차역 밖으로 계속 내려오다 보면 고흐가 살던 ‘노란 집(Yellow House)’이 있던 라마르틴 광장(Place Lamartine)이 있다. 지금은 이곳에 고흐의 집 대신 ‘반 고흐 호텔’이 들어서 있다. 이 집에서 고갱과의 말다툼 끝에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


Cafe Terrace at Night 1888년 9월
아를을 가장 인상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고흐의 대표작인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중심부인 포룸 광장(Place du Forum)에는 당시의 실제 카페(Cafe La Nuit)가 그 모습 그대로 있다. 이곳은 반 고흐 카페로 불리며 고흐를 추억하려는 수많은 방문객들로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룬다. 여전히 이 카페가 있는 풍경은 낮에는 노란색 차양이 해를 가려 주고 초저녁의 남청색 밤하늘과 주변의 조명들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Langlois Bridge with Washerwomen 1888년 3월
지금은 ‘반 고흐 다리(Pont Van Gogh)’라 불리는 ‘도개교’도 아를에서 만날 수 있다. 아를에서 부크에 이르는 운하에 놓여 있는 이 다리는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리로 프랑스에서 요양 중이었던 네덜란드 출생의 화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고흐는 이 도개교에서 여러 작품을 그려냈다. 아를 중심지에서 약 2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Courtyard of the Hospital at Arles  1889년 4월
1888년 12월 자신의 손으로 귀를 잘라낸 고흐가 정신분열로 입원했던 병원인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 지금은 도서관과 영상자료관, 번역학교, 전시관 등이 있는 종합문화센터로 활용된다. 다만 정원은 연못과 단정한 화단 등 고흐가 머물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다.


Station #4 Monaco 모나코

명실공히, ‘부자들의 놀이터’



지금까지 거쳐 온 마을들의 호오(好惡)나 순위 매기기를 떠나, 아를에서 모나코까지 가는 길은 프랑스에서 맛본 기차 길의 아름다움 중 단연 최고로 손꼽을 만하다. 해안 절벽에 늘어선 집들에 절로 “아!”하는 탄성을 토하니 이내 마르세유(Marseille)를 지나고, 새파란 지중해를 즐기는 멋진 서퍼들과 들락날락하는 파도를 놀이터 삼아 노니는 아이들과 연인의 모습에 부러움이 일자 기차는 곧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와 칸느(Cannes) 역을 통과한다. ‘왜 이 곳들을 기차 여행 리스트에 포함시키지 않은 걸까’하는 후회도 잠시다. 금세 파란 지중해 바다에 보석처럼 반짝이며 부서지는 햇살을 기차의 속도감과 함께 즐긴다. 새파란 바다 빛이 가슴을 청량하게 물들이더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며 노을빛이 하늘과 바다까지도 붉게 물들인다. 기차에 몸을 실은 승객들이 그 붉은 노을빛에 넋을 잃기라도 한 것처럼 기차 안은 어느덧 ‘정적(靜寂)’ 상태. 오묘한 색감에 푹 빠져 달려오다 보니 벌써 모나코에 도착이란다.




‘그레이스 켈리’로 유명한 모나코는 기차역부터 압도적이다. 절벽을 다듬어 만든 기차역은 오르내리는 모든 공간을 에스컬레이터로 연결한다. 작은 시골 마을의 기차역 계단에서 끙끙거리며 무거운 짐을 나를 걱정을 이곳에서는 덜어 버릴 수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조성된 부촌(富村)답게 거리에서도 ‘Public Escalator’라고 불리는 리프트를 간편하게 이용하도록 했다.

모나코는 4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모나코 항구를 내려다보는 구시가인 모나코 빌(Monaco Ville), 카지노와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로 유명한 몬테 카를로(Monte-Carlo), 모나코 빌 남서쪽의 퐁비에이유(Fontvieille), 항구 주변의 평지에 위치한 콩다민(La Condamind)으로 이뤄졌다. ‘럭셔리한 모나코’를 맛보려면 일단 모나코 빌로 향해야 한다. 모나코 궁전이 위치한 모나코 빌로 오르면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 풍광을 볼 수 있다. 이곳에도 모나코의 상징인 궁전이나 해양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지만 맑고 파란 바닷물 위에 가지런하게 하얀 요트로 채워진 항구의 절경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카지노 지역은 저녁이 될 수록 더욱 화려하다. 이곳은 굳이 카지노를 즐기지 않더라도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모나코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으리으리한 외관을 자랑하는 그랑 카지노(The Grand Casino)는 정장을 차려입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출입할 수 있지만 슬롯머신 외의 게임을 시도해 보려면 10유로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진짜 볼거리는 카지노 앞의 수많은 ‘고급 자동차’들과 ‘관광객’들이다. 제 존재감을 육중한 엔진소리로 알리려는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포르쉐, BMW 등이 들고 나고를 반복한다. 

마치 최신형 자동차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카지노 앞’의 진풍경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빨간색 포르쉐가 들어오면 ‘저 차에서 누가 내릴까’에 온 관심이 집중된다. 차 주인이 도어맨에게 차 열쇠를 맡기고 카지노로 들어가면 차 주위에서 지켜보던 여행자들은 차례대로 ‘최신식 차’를 카메라에 담고, 그 앞에서 레이싱 모델마냥, 자기 차인 것처럼 포즈를 취한다. 때마침 가격이 더 비싸면서 최신모델인 람보르기니가 등장하면 전세는 역전. 포르쉐는 찬밥이 돼 버린다. 게다가 멋진 수트를 차려입고 기다란 리무진에서 내린 신사와 귀부인들도 람보르기니와 빨간색 포르쉐를 발견하고는 아이처럼 들떠 기념촬영을 해대는 모습을 보면 웃음을 터뜨리고야 만다.

밤이 되자 은은한 불을 밝힌 화려한 항구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언젠가는 작고 소담스러운 풍경의 아를, 상상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카르카손, ‘부자들의 휴양지’, 갈매기와 비둘기마저도 럭셔리한 모나코, 거기에 다른 남부 프랑스의 작은 마을 구석구석까지 더 여유롭게 여행하는 날을 기약하며 미항에서의 밤을 마무리한다. 



2 모나코의 노천 카페도 지중해의 햇살을 즐기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기 좋다 3 그랑 카지노의 입구, 신차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4‘고급차’에서내린 사람들도‘더 좋은 차’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기념촬영은 필수!


모나코 가는 법 

파리 리옹역에서 TGV를 타고 출발해 니스(Nice Ville)역에서 RE기차로 환승한 뒤 모나코로 간다. 환승 시간을 제외한 소요시간은 6시간 정도. 아를역에서 RE기차로 갈 경우도 니스 역에서 환승하며 환승시간을 제외한 소요시간은 4시간 정도다.


기차에서 만난 사람
“나에게 기차 여행은...”

칠레에서 온 크리스티앙(Christian)과 파트리샤(Patricia). 나르본역에서 카르카손으로 가는 TGV 안에서 만났다. 말수가 적지만 다정다감한 크리스티앙과 칠레에서 배우활동을 하는 사랑스러운 파트리샤는 결혼 2주년을 기념해 리마인드 허니문으로 유럽여행을 선택했다. 한 달 동안의 장기 휴가를 내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시작해 프랑스 남부 지역과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데, 그들 부부가 기차를 타기로 선택한 이유는 기차가 선물해 주는 훌륭한 풍광, 칠레와는 다른 유럽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함이다. 거기에, 너무나 빠르게 해치워 버렸던 허니문에 대한 아쉬움으로 ‘천천히 순간을 만끽하며’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기차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바퀴 소리에 두근두근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커져만 간다던 사랑스러운 커플에게 기차만큼 로맨틱한 ‘이동 수단’이 또 있을까.


윤종숙씨는 홀로 유럽 여행 중이다.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둔 뒤,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인생의 쉼표를 찍고자 유럽으로 향했다. 런던, 파리, 로마 등 대도시 위주로 여행을 계획했다가 유레일 패스를 소지했을 때 무료로 이동할 수 있는 구간들을 잘 알아본 뒤 ‘작은 마을’ 위주로 당일 여행을 즐기고 있다. 유레일패스만 있고, 기차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실핏줄처럼 철로로 연결이 잘 된 유럽의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음을 이번 여행으로 확실히 알았다. 다음 번에는 이번에 놓친 유럽의 작은 도시 위주로 여행계획을 잡을 예정이다. 그에게 기차는 두근거림과 새로움을 준다. 새로운 기차를 탈 때마다 ‘어떤 기차를 타게 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기차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의 문화까지도 배울 수 있는 작은 세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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