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① 샹그릴라의 계단을 오르다
샹그릴라① 샹그릴라의 계단을 오르다
  • 트래비
  • 승인 2008.06.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윈난의 카오산로드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따리고성은 저렴하게 먹고, 자고, 마시고, 쇼핑할 것들을 구수한 입담의 보따리장수처럼 풀어놓는다


이번호부터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샹그릴라의 계단을 오르다’를 격주로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서동철 기자는지난 1년동안 ‘하얼빈에서 온편지’,‘ 다롄에서 온 편지’ 등을 통해 중국을 장기 여행하며 챙긴 소중한 느낌들을 트래비 독자들과 함께 나눈바 있습니다.


샹그릴라의 계단을 오르다

샹그릴라. 지명이 샹그릴라라고 해서 유토피아는 아닐 것이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쿤밍에서부터 시작해 따리, 리지앙을 거쳐 해발 3,200m의 중뎬(샹그릴라)까지 올랐고, 내친김에 윈난성에서 가장 높다는 메이리설산(6,740m)의 밑자락 마을 위뻥까지 걸었다. 설산 너머 티베트가 보일 듯 아득하게 일렁였고, 고도를 높여 갈수록 땅과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이 일궈내는 삶의 모습들이 쓰촨성의 변검을 보는 것처럼 변신을 거듭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마을에 낙원이 있을 리 없었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서 흘러가는 고원에서 만난 어느 장족 청년이 했던 말처럼 그들은 도시를 꿈꾸고, 나는 낯설고도 짧은 인연들을 만들며 스쳐가는 여행자에 불과했다. 오랜 산행 끝에 산에서 살지 못하고 하산하는 사람처럼 나는 올랐던 길을 고스란히 밟아 내려온다. 다만 그 여정을 기록하는 까닭은 이 ‘특별한 일상’이 지질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나로 하여금 까칠해진 ‘내 것’들을 부드럽게 쓰다듬게 해줬던 탓이다.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1 ‘화니아오’ 시장 부근에 있는 작은 공원. 사람들은 공원에서 느긋하게 이야기꽃을 피우지만 새장 속의 새들은 불안한 듯 지저대며 좁은 공간을 날았다  2 관상용 꽃과 애완용 새를 주로 파는 ‘화니아오’ 시장이다. 하지만 꽃과 새 외에도 강아지를 비롯해 도마뱀, 자라, 금붕어 등 사람이 키울 수 있는 것은 다 모여 있다  3 내가 자주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언제나 이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분명 어제도 돈을 쥐어 드렸는데 오늘도 또 달라신다 

첫 계단 ‘쿤밍~따리’

다롄을 출발해 정저우를 경유한 비행기가 ‘구름의 남쪽’ 윈난(雲南)의 상공을 비행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아름답고 거대한 모자이크를 떠올리게 했다. 온통 초록빛으로 뒤덮인 봉긋봉긋한 산과 언덕들이 서남쪽으로 몰려가며 히말라야의 동편 끝자락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를 색색의 계단식 논과 밭이 메우고 있었다. 쿤밍의 해발고도는 이미 1,900m, 윈난성은 베트남·라오스·미얀마 등의 동남아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고원에 자리잡고 있는 쿤밍은  사계절 봄 날씨를 간직해 ‘춘청(春城)’, 즉 봄의 도시라 불린다.

쿤밍 시내를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고는 곧바로 따리 행 기차에 올랐다. 드디어 샹그릴라로 오르는 첫 계단을 밟는 셈이다. 건너편 침대에 앉은 좡족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던가, 어느새 차창 밖이 훤하게 밝아 있다. 어젯밤 역에서 산 바나나를 씹으며 창을 내다보니 해발 2,200m의 따리로 오르는 기차는 다양한 지형을 극복하며 달려가느라 숨가쁘다.

열차는 잠시 평원을 달리는가 싶더니 곧 계곡 사이에 놓인 다리 위를 위태롭게 건너고, 그러다간 다시 깊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길 수없이 반복했다. 중국 여행에서는 기차가 매우 유용한 교통수단이지만 쿤밍에서 샹그릴라로 올라가는 기찻길은 따리에서 멈춰 있다. 갈수록 첩첩산중 깊은 골짜기로 접어드니 따리 이후의 유일한 이동수단은 버스 또는 걷는 것뿐이다.

샤관에서 하차해 다시 버스로 30분 정도 달리면 따리고성에 도착하게 된다.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우측으로는 바다처럼 광활한 얼하이 호수가 펼쳐지고 왼쪽을 돌아보면 구름에 가려진 4,000m급의 창산이 묵묵히 한가로운 마을을 굽어본다. 이 얼하이 호수와 창산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한 곳이 바로 바이족(白族)의 고장 따리(大理)다. 전통 복장에서도 드러나듯이 유난히 하얀색을 좋아해 바이족이라 했을까. 선홍색으로 장식한 흰색 상하의에, 어깨를 지나 가슴으로 내려뜨린 치렁한 장식도 모두 새하얗다.


여행자들의 천국 ‘따리고성’

3,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바이족은 남소국과 대리국의 수도였던 이곳 따리를 중심으로 중국 왕조와도 세력을 겨룰 만큼 작지만 강한 민족이었다고 한다. 그 융성했던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따리고성으로 들어서는 순간 윈난 여행의 묘미는 본론으로 진입한다. 쿤밍의 거리 곳곳에서부터 풍겨 나오던 소수민족의 독특한 멋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리석의 고장답게 널찍한 길은 흙 한 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돌길로 깔끔하게 정비돼 있고, 창산에서 흘러온 물줄기는 아담한 옛 도시의 길을 따라 사람의 귀를 닮았다는 얼하이 호수로 졸졸 흘러가며 여행자들의 감성을 촉촉이 적신다.

미리 윗동네(?)인 리지앙과 비교한다면 따리의 고성은 아무래도 고풍스러움이나 화려함에서 뒤진다. 하지만 따리가 배낭여행객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광시성의 양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 여행지 가운데 물가가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위압적이지 않게 마을을 감싸고 있는 창산의 부드러움처럼 떠나온 자들을 보듬어 주는 따리만의 넉넉한 분위기 탓이다.

따리에서 3일을 꽉 채워 머무르면서 내가 한 일이라곤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실로 짜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장족 아가씨에게 티베트 사태에 대한 강의를 듣고, 바이족 노부부와 설익은 중국어로 아무렇게나 수다를 떤 것뿐이다. 길을 걷다 지치면 널찍한 돌길을 따라 좌우로 늘어선 카페와 음식점에서 다리쉼을 한다. 보이차와 카페라떼, 쌀국수와 스파게티를 넘나드는 다국적 메뉴판을 뒤적이다 보니 시간은 또 저만큼 흘러가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창산에 오르면 따리 시내와 얼하이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창산 케이블카와 간통쓰 케이블카를 연결하는 길이 약 10km인 이 길의 이름은 윈요우루(雲游路), 말 그대로 ‘구름이 노니는 길’이다. 산허리를 감싸며 굽이굽이 돌아가는 이 돌길은 해발 2,500m에 가까울 산길이지만 샌들을 신고도 여유로운 산책이 가능할 만큼 평지에 다름없다. 깎아지른 절벽과 협곡, 그리고 드넓게 트인 시야로 얼하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제 막 시작된 여행이 여기에서 끝난대도 아쉬울 것이 없을 듯했다.

바이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저우청(周城)은 옆 마을인 시저우(喜洲)와 함께 카메라를 어깨에 멜 틈도 주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곳이다. 따리고성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 마을은 입구의 활기찬 시장으로부터 시작해 달동네처럼 산을 타고 올라가며 비탈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그저 작은 촌 동네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꾸며진 모습도 없이 골목 구석구석마다 코 묻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광주리를 등에 이고 장을 봐오는 아주머니와 문 앞에 걸터앉아 한가롭게 담배를 피워 무는 아저씨 등은 고성에서 찾아볼 수 없는 소수민족의 일상을 부끄러운 듯이 드러낸다.



따리고성을 어슬렁거리는 데에는 밤낮이 따로 없다. 오렌지빛 조명이 처마를 은은하게 밝히고 수로는 빛 그림자를 드리우며 흔들린다 


쌀국수, 다리를 건너다

‘꿔치아오미씨엔’은 중국 어딜 가나 맛볼 수 있는 대중적인 먹거리지만 윈난성이 이 쌀국수의 고향이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쌀국수는 팔팔 끓인 진한 육수와 함께 각종 야채를 비롯해 얇게 저민 닭고기, 쇠고기와 사리 등이 담긴 접시를 내어주는데 이를 국물에 바로 집어넣어 샤브샤브처럼 살짝 데워 먹는 것이다.

‘꿔치아오’의 의미는 다리는 건넌다는 뜻인데 이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옛날 윈난의 한 학자가 호수의 한 섬에 공부방을 차려놓고 과거를 준비하는데 그의 부인이 긴 다리를 건너 식사를 나르니 음식이 식을 수밖에 없었다. 고민을 하던 부인은 어느 날 닭고기를 끓여 다리를 건너갔는데 국물이 여전히 따뜻한 것을 발견한다. 고기 기름이 층을 형성하면서 보온의 역할을 했던 것. 국물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다리를 건너는 동안 알맞게 익어 주니 금상첨화였다.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지만 아무튼 윈난에서 맛봤던 쌀국수는 ‘전날 술이라도 마셔 둘 것을!’이라고 한탄하며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개운했으니 시식해 보시라.


1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도망가기가 일쑤였는데 이 아이 둘은 카메라 렌즈를 자연스럽게 쳐다보며 걸어온다. 이날 만났던 모델들 가운데 단연 최고의 자태(?)를 보여 주었다 2 담벼락에 서서 아주머니 두 분이 한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게 재밌다


mini interview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따리고성의 중심가를 벗어난 동쪽 길에서 만난 티베트 아가씨다. 허리를 굽히고 털실로 귀여운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었는데 동그란 눈에 활짝 웃는 미소가 너무나 시원스러워 사진 한 장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한다.

사진을 찍곤 나도 맞은편에 퍼질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티베트 사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녀는 약간 흥분한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건 아주 오래 전부터 중국 정부에 대해 쌓여 온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지 달라이라마가 선동해 폭동을 일으킨 것은 아니예요.” 내가 알아들은 것은 이 몇 마디가 전부였지만 난 어쩐지 그녀가 설명하고자 했던 것을 그녀의 눈빛과 몸짓을 통해서 모두 이해한 것만 같았다.

사실 그녀는 반쪽의 장족이지만 정신만은 티베트에 속해 있단다. 옆에서 그녀와 함께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던 친구는 한족. 그 한족 친구는 미소만을 띄우며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이렇게 ‘저들’은 친구이건만 왜 ‘그들’은 돌을 집어 들고 총부리를 겨누었는지 나는 그 둘을 보고 있는 순간 갑자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얼하이 호수를 조망하고 싶다면 창산의‘구름이 노니는길’을 걸어 볼 것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중구 무교로 16, 5층 (주)여행신문
  • 대표전화 : 02-757-8980
  • 팩스 : 02-757-898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홍렬
  • 법인명 : (주)여행신문
  • 제호 : 트래비 매거진
  • 등록번호 : 서울 라 00311(2009-10-13)
  • 발행일 : 2005-05-30
  • 발행인 : 한정훈
  • 편집인 : 김기남
  • 트래비 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트래비 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tktt@traveltime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