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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③ 샹그릴라 그 강렬한 눈빛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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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짠린쓰 옆에 위치한 언덕에 오르니 초원을 내달려온 바람이 오색의 타르쵸를 흩날리고 있었다 2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언덕 빼기에 올라 샹그릴라를 굽어보는송짠린쓰

샹그릴라 그 강렬한 눈빛

드디어 샹그릴라다. 해발 3,200m의 햇살은 뜨겁다 못해 껍질을 벗겨낼 것처럼 이글거린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지 않을 순 없었다. 따리와 리지앙을 거치며 한층 가깝고 명료해진 하늘은 무방비로 서 있는
이방인의 눈에 시퍼런 빛을 가득 퍼 담았다. 하지만 그 하늘 아래 험준한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눈빛만큼
강렬한 것은 없었다. 그것은 가면과 거짓이 벗겨진 날것 그대로의 눈빛이었다.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1 장족들의 춤은 자신들 앞에 놓인 근심들을 휘휘 저어 가는 듯했다 2 꾸이산공원에 있는 대형 마니차. 혼자서는 돌리기 힘들 정도로 크고 육중하다 3 따리나 리지앙에 비해 조용하고 한적한 중뎬 구시가지 4 구시가지의 사방가에서는 해질 무렵이면 거나한 춤판이 벌어진다 


세 번째 계단, 중뎬

리지앙을 출발한 버스는 어느덧 해발 3,000m를 훌쩍 넘어버렸다. 고산증이 찾아왔기 때문일까. 들숨과 날숨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도 잠시, 저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은 손에 잡힐 듯 버스 옆에서 어슬렁거리고, 창밖으론 우직하게 생긴 야크들이 무심한 눈길을 보낸다. 마을의 입구와 높은 언덕엔 어김없이 오색의 타르쵸가 무사안녕을 빌 듯 펄럭였다. 

버스는 절벽 위로 아슬아슬하게 난 길을 따라 구름의 터널을 수차례 통과한 후 어느덧 중뎬에 도착했다. 중뎬(中甸)이 공식적으로 샹그릴라(香格里拉)라는 명칭을 얻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이상향의 도시로 묘사된 샹그릴라. 이 명칭을 얻기 위해 소설 속의 위치와 지형을 닮았다는 쓰촨성의 다오청, 중뎬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더친 등이 옥신각신한 끝에 중국 정부는 윈난성 중뎬의 손을 들어주었다. 누군가는 관광지로의 개발 및 팽창 가능성이 높은 중뎬으로 기운 것은 다분히 상업적인 의도였다고 비판하지만 이곳은 덧씌워진 이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전해 준다.

그리고 사람들, 희박한 대기를 뚫고 내리 꽂히는 강렬한 햇살에 검게 타오른 얼굴과 야성적이고 도전적으로 보이는 그네들의 눈빛으로 장족들의 영역으로 들어섰음을 알 수 있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공허하지도 외면하지도 그렇다고 경계하는 것도 아닌 그들의 눈은 이방인의 눈과 마주칠 때마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시선을 던졌다. 그것은 마치 두려움 없는 호기심을 내비치는 야수의 눈빛과도 같았다. 

나는 중뎬을 떠나는 날까지 그 눈의 비밀을 알지 못했다. 다만 해발 3,200m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과 그 벌판의 아득한 끝자락을 둘러싸고 있는 설산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에 더 가까운 그들의 터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살아있다면 춤을 춰라!

버스터미널에서 구시가지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해는 설산 너머로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있었고 등에 짊어진 배낭은 가쁜 호흡 탓인지 천근과도 같았지만 굳이 걷기를 택했다. 어렵사리 도착한 구시가지의 사방가(四方街)에서는 거나한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춤을 이끄는 사람이 한가운데 있고, 그 주위를 둥그렇게 감싼 사람들이 같은 듯 다른 듯 저마다의 춤사위에 빠져 있다. 

난 버스여행의 노곤함도 잊고 배낭을 멘 채로 춤판 가운데로 들어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뷰파인더를 통해 들어오는 그들은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서 동생을 업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까지, 그리고 그런 춤판에는 관심조차 없을 법한 젊은이들까지 하나의 음악에 맞춰 어우러지는 모양새는 낯설고도 부러운 것이었다. 이에 더해 길을 지나던 외국 여행객들까지 합세해 흥을 더했으니 세대와 국경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춤판이었던 셈이다. 

그들의 춤은 지금껏 보아 왔던 잘 꾸며지고 다듬어진 춤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닌 저희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와 함께 바다를 건너온 그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는 개방된 것이었다. 우리가 꽹과리와 북 가락에 어깨를 들썩이며 난장을 벌였듯이 그네들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서로의 동작을 섞으며 녹아들어간다. 그들의 춤사위는 격렬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들 앞에 놓인 근심들을 휘휘 저어 가며 앞으로 나아가듯 사뿐한 발 디딤과 팔의 내뻗음으로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삶의 태도를 보여 주는 듯했다. 

춤판을 빠져나와 숙소를 찾기 위해 인적 드문 구시가지의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고원의 저녁은 빠르게 기온이 떨어지고 있었고 짊어진 배낭이 불필요하게 무겁다고 생각됐던 탓일까. 샹그릴라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고 있었다.


1 사진 모델을 자처하고 돈을 받아든 아이가 장사꾼처럼 거스름돈을 뒤적인다 2 송짠린쓰 사원내에 있는 금빛 화려한불상 3 입구를 지나 송짠린쓰로 오르는 길이다. 이길을 오르다보면 사진을 찍으라는 수많은 장족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4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껄렁한 태도의 끝을 보여 준 수도승들. 사진을 찍자고 하니 넉살좋게 흔쾌히 승낙한다 5 베트 사람들은 경전을 읽는것처럼 마니차를 돌린다 6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샹그릴라를 굽어보는 송짠린쓰


껄렁함 더하기 경건함

아침 일찍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도시 북쪽에 자리한 송짠린쓰(간덴 쑴첼링 곰파)로 향했다. 별 볼 일 없는 도심을 지나 산자락을 한 차례 감고 언덕을 넘어서니 멀리 ‘작은 포탈라궁’이라 불리는 황금빛 기와를 얹은 사원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언덕을 타고 올라가는 허름한 동네에 금빛으로 우뚝 솟은 사원은 어쩐지 거만해 보인다. 

그 화려한 사원 안에서 전통복장을 차려 입은 장족 아이들은 카메라를 든 여행객들만 보면 달려들어 모델을 해줄 테니 2위안을 달라고 성화다. 리지앙에서는 할머니들이 그러시더니 이곳에서는 아이들이다. 어떤 한 여자아이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바람에 결국 사진을 찍긴 했지만 내가 건넨 5위안짜리 지폐를 받아들고 거스름돈을 뒤적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티베트 사원에서 기대했던 경건함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시니컬한 웃음으로 여행객들을 바라보는 젊은 수도승과 마치 휴가를 나온 군인들처럼 박박 깎은 짧은 머리에 수다를 떨며 껄렁한 걸음을 걷는 소년 수도승들은 지금까지의 승려에 대한 내 선입관을 비웃는 것 같았다. 젊은 혈기 때문일까. 설산들이 멀리 지평선으로 물러나 있고 짙푸른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이곳에서는 마음이 저절로 닦여질 법도 한데 말이다. 

어디선가 한 무리의 수도승들이 몰려나오더니 둘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은 바닥에 앉고 한 사람은 서서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한 쪽 손을 높이 들었다가 다른 쪽 손바닥을 내리친다. ‘최라’라는 일대일 교리문답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의 최라는 장난을 치는 것도 같았고, 마지못해 한다는 듯 무성의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손바닥을 내리치며 질문을 던지는 한 수도승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중얼거리는 말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순간 나도 최라에 참여한 승려인 듯 질문을 받아든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또 나를 쳐다보며 장난스런 얼굴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실망하지 마라. 실망은 잘못된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는 마치 이렇게 내게 해답을 주는 것만 같았다.

mini interview

송짠린쓰 입구에 들어섰을 때 처음 만났던 아이다. 이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장족 특유의 눈빛으로 사원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중국어로 말을 걸어 왔다. 대여섯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가이드라니 기가 막혔지만 어찌나 똘똘해 보이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며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빨리 사원으로 올라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영업 방해하지 말란 이야기다. 자식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이 뭐가 잘났다고 그러는지 아이가 불쌍하기만 했다. 나는 아이에게 가이드는 필요 없고 사진만 찍고 싶다며 셔터를 누르곤 5위안을 건네주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나 사원 안에서나 많은 아이들이 모델료를 받아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하나같이 어린 나이에 장사를 배워 도대체 순진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충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려 주고 사진을 찍곤 돈을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고객(?)을 찾아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헌데 이 아이는 다른 중국 관광객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사원 안에서 여러 번 마주쳤는데 무표정했던 얼굴에 조금씩 아이다운 표정이 살아나고 있었다. 나중에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가리고 도망을 갔다. 그때서야 그 소녀가 제대로 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난 사원을 떠나면서 일부러 그 아이를 찾아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잘 자라 달라고 부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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