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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신비의 온천과 고대유적지 파묵칼레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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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온천과 고대유적지 파묵칼레
세월이 만들어낸 순백의 비경 속으로

에디터 트래비 자료제공 터키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 02-336-3030


고대로부터 화산 폭발과 지진이 많았던 터키는 1천여 개의 크고 작은 온천이 산재하고 로마시대부터 발전했던 목욕 문화가 이어져 역사 깊고 물 좋은 온천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파묵칼레는 터키 최고의 비경과 수질을 자랑하는 온천유적지이다. 계단식으로 형성된 새하얀 바위 언덕 밑에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하게 펼쳐진 쪽빛 호수… 파묵칼레에 도착해 처음 만난 풍경이다.   

터키 남서부 데니즐리에 위치하고 있는 파묵칼레는 온천수에 다량 함유된 석회성분이 오랜 세월 침전되면서 형성된 순백의 비경이 일품이다. 전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처럼 독특하고 아름다운 지형을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의미를 지녔지만 멀리서 보면 언뜻 만년설에 뒤덮힌 산봉우리 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목화 솜을 뭉글뭉글 뭉쳐 놓은 것 같은 독특한 지형이 인상적이다.

파묵칼레 최고의 절경은 기하학적 곡선의 턱을 가진 야외 풀 모양의 ‘테라스 풀’이다. 고드름 모양의 종유석이 떠받치는 ‘테라스 풀’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풍경은 파묵칼레를 소개하는 책자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수천년 전부터 로마의 황제와 귀족은 물론 클레오파트라까지도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겼을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 왔던 파묵칼레는 1980년대 이후 인근 온천호텔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온천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198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와 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이후에는 석회층의 보존을 위해 입욕을 금지시키고 맨발로 걷게 했다. 지금은 수영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파묵칼레를 따라 줄지어 올라가는 장관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대신 맨발로 석회붕의 아래까지 내려가 발목을 적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그나마 파묵칼레 정상 북동쪽에 비록 크기는 작지만 지금도 수십 개의 ‘테라스 풀’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섭씨 35도 정도의 파묵칼레 온천 물은 특히 심장병, 소화기 장애, 신경통 등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로마의 황제들도 이곳의 온천을 종종 찾았다고 한다. 군데군데 테라스를 옥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미니 노천은 발 담그기 아까울 정도로 색이 곱다. 이 웅덩이에 고인 온천은 하늘 빛과 같다고 한다. 맑은 날엔 파란 하늘 빛을 담아내고, 흐린 날엔 회색 빛 구름 색을 담아낸다. 석양이 지면 이곳 파묵칼레에도 아름다운 노을이 물든다. 

파묵칼레 꼭대기에는 효험 있는 핫 스프링이 있다. 톡 쏘는 탄산수가 생성되어 그 효과가 더욱 탁월하다고 한다. 파크 식으로 되어 있어 내부에는 탈의실, 푸드코트, 샤워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면 선베이 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이곳 언덕 위에 남아있는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은 파묵칼레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BC 190년에 페르가몬 왕국의 유메네스 2세(Eumenes II)가 세운 ‘성스러운 도시’ 히에라폴리스는 로마를 거쳐 비잔틴 시대까지 번성하였으나 결국 셀주크 투르크에 의해 정복당하고 14세기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도시는 폐허가 되고 말았다. 

아직 남아있는 로마 시대의 공중 목욕탕이나 원형 극장, 교회터와 바실리카,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리는 도미티안 문 등의 유적이 볼 만하다. 산 중턱에 위치한 원형극장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인데 1만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이 유적지에서는 1,200기가 넘는 거대한 석관묘가 발견됐지만 아직 체계적인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고대 사람들은 온천이 질병을 치유해 주는 신성한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 병을 고치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곳은 오랜 세월에 거쳐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화한 듯하다. 

히에라폴리스 뒷산의 사도빌립 순교기념관에서 보는 파묵칼레의 전망은 매우 탁월하다. 원형극장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팔각형 건물을 만난다. 이 건물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인 사도 빌립교회다. 사도 빌립은 그의 아들들과 함께 이곳에 집을 짓고 교회를 세웠지만 복음을 전파하던 중 우상 숭배자들에게 매를 맞고 옥사했다.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도 빌립은 이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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