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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도종환 -꽃을 닮은 시인과 함께한 한나절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8.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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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도종환 
꽃을 닮은 시인과 함께한 한나절


적어도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작품을 찬찬히 훑어보다 보면 마치 고요한 숲 속을 거닐거나,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속에 발을 담근 듯한 청정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건강상의 이유로 그토록 사랑했던 교직을 사직하고 충북 보은군의 어느 산 속으로 훌쩍 떠난 작가 도종환. 그가 더욱 깊고 맑아진, 그리고 건강해진 낯빛으로 돌아왔다.

글·사진  오경연 기자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달맞이꽃이면 또 어떤가! "  


글로만 만나오던 도종환을 실제로 첫대면한 것은 ‘교보문학기차여행’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였다. 간단히 수인사한 후, 작가는 기자가 가져온 트래비를 들추어보다 문득 한 페이지에서 손길이 멈추었다.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니 역시, 그의 터전인 충북에 대한 기사이다. “이곳, 충주 미륵리사지 가본 적 있어요? 제가 참 좋아하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자애스런 표정의 미륵불이야 워낙에 유명하니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없을 테고, 이곳에 놓인 온달의 공깃돌도 잘 알려져 있지요.” 

이야기는 어느덧 여행지 자체를 지나서 고대 역사로까지 흘러간다. “한때 ‘바보 온달’이라 불리웠던 온달 장군은 당시 공주의 남편, 즉 부마(駙馬)로서 나라에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런 그가 고구려 국경 변두리 지역까지 내려와서 신라군과 접전을 벌이다가 전사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당시 주류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였다고 볼 수 있을 테지만 다른 관점으로는 그저 편하게 누리고 살 수 있는, 높은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으로 발벗고 앞장선 깨인 사람이었지요.” 차근차근 풀어내는 도종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마치 학창 시절로 되돌아가 국사 수업시간에 선생님 앞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홀린 듯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중, 기차는 어느덧 목적지인 옥천에 도착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무리 자식같은 자신의 문학작품이라지만, 짧지 않은 분량의 시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내려가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한두 편이 아닌 여러 작품에 이르러서야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도종환은 자신의 시를 일일이 외워서 낭독한다. 딱 듣기 좋을 만큼 낮은 목소리를 빌려 그의 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는 강당 구석구석으로 울려퍼졌다.

시는 온몸으로 평생을 다해 쓰는 것

옥천은 도종환 시인에게 이래저래 ‘제2의 고향’이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고장이다. 그를 유명하게 한 초기 대표작 <접시꽃 당신>이 씌여진 곳이 이 지역이었으며, 또한 그가 전교조 해직교사로서 오랜 시간 투쟁한 끝에, 10년 만에 드디어 교편을 다시 잡고 나서 마지막으로 분필을 놓은 곳 역시 옥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입을 떼기도 아픈 사연이 구구절절하건만, 호기심 많은 제3자인 청자들은 도종환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이미 널리 알려진 도종환의 개인사가 그의 입으로 직접 구술되니 마치 새것인양 새롭다. “아이를 품고서 암과 투병하다 갓 낳은 딸을 남겨두고 먼저 간 아내, 한참 어려웠던 경제사정, 시를 쓰는 것조차 문제가 되었었던 정치적 상황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무너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매달렸던 것이 시집 <접시꽃 당신>에 담겨 있는 시들입니다.” 그는 당시 아내의 병구완을 하면서 쓴 <접시꽃 당신>이 당시에만 10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책이 영화화되기도 하는 등 잇단 유명세를 타게 되자 ‘내가 슬픔을 팔아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에게는 아픈 기억만이 절절히 남은 고장인 것만 같지만, 그래도 도종환은 옥천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옥천에서부터 교편을 잡기 시작해서, 참 많은 사연이 있지요.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마주치는 낯익은 장소를 볼 때면 늘 감회가 새롭구요. 좋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그러고 보니, 도종환의 대표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보면 한결같이 ‘꽃’과 연관된 것들이 많았다. <접시꽃 당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문득, 감히 그를 장미가 아닌, 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친근한 들국화나 숲 속에 소담히 핀 산유화에 비유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소박한 꽃처럼, 늘 작은 것에 감사하는 낮은 자세를 지닌 겸손한 그. 비록 ‘감히’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했지만, 본인도 장미보다는 오히려 들국화나 산유화를 반길 것 같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조곤조곤 들려오는 도종환의 시낭송을 듣고 있자니 그가 앞서 얘기한, “시는 순간의 감성으로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온몸으로, 평생을 다해 쓰는 것이지요”라는 말이 얼핏 이해가 될 듯도 하다. 도종환의 시는 언제 어느 때 접하더라도, 일반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매력을 끊임없이 발산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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