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이슬람 거리-길모퉁이에서 만난 이슬람
이태원 이슬람 거리-길모퉁이에서 만난 이슬람
  • 트래비
  • 승인 2008.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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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으로 이어지는 천국의 계단

길모퉁이에서 만난 이슬람

어떤 소설가가 말했다. 북으로 길이 막힌 한반도는 섬이나 마찬가지라 우리는 어디로 가든지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결국 걸어서는 다른 세계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국경 너머로의 여행에 더 갈급해하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낯선 세계로의 들어섬이 꼭 국경을 넘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이태원, 그곳에 가면 온갖 이국의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길에서, 우린 이슬람을 만난다.

글·사진  도선미 기자


순간을 넘어서

지하철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와 건널목을 건너면 이태원 소방서가 보인다. 거기서 모퉁이를 돌면 흘림체로 쓴 아랍어 간판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기 시작한다. 언덕을 올라 보광초등학교 앞까지 간 다음 샛길로 들어서자. 전방의 건물들 위로 난데없이 하얀 미나렛(이슬람식 첨탑)과 키세스 초콜릿 모양의 돔형 지붕이 솟아 있는 게 보인다면, 이슬람 거리를 제대로 찾아온 것. 길은 거기서부터 100여 미터 정도 이어지고, 종착점은 ‘서울중앙성원’이다. 성원은 1976년 세워진 한국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다.

 하지만 주변에 이슬람 문화권이 형성되어 이렇듯 특색 있는 거리를 이루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부터. 거닐면서 찬찬히 살펴보면 모든 게 낯설다. 사람들의 생김새, 향료 냄새, 이슬람 토속음식점과 식료품점, 포목점, 옷가게, 서점, 그리고 중간 중간 어색한 한국어로 간판을 단 가게들까지. 꼭 아라비아 반도 어딘가에 있는 한국인 거리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우르르 중앙성원을 빠져나오는 짙은 눈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오히려 이방인이 된다.


1 성원으로 가는 비탈을 사웁에 페즈를 쓴 무슬림이 오르고 있다 2 이슬람 전통 의상과 장신구들을 파는 가게 3 무슬림들은 금요합동예배때마다 모여 기도와 친목을 다진다.‘ 살람’이라는 인도음식점 앞 4 금요일 낮 예배가 끝나면 성원 앞에 난(naan)을 파는 가판이 선다. 인도음식과 난을 좋아한다면 금요일 이슬람 거리에 가보길


금요일, 이슬람 거리

금요일 오후, 햇살은 말갛고, 하늘은 높다. 그리고 이슬람 거리는 활기로 가득 차 있다. 성원에서 금요합동예배를 마치고 나온 무슬림들의 얼굴엔 기도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온기가 넘친다. 그들은 성원 앞에 차려진 가판대에서 난(naan, 발효된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워서 만든 빵)을 사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할랄(halal) 상점도 물건을 사는 사람들로 붐빈다. ‘할랄’이란 이슬람종법에 따라 도축·가공한 식품들을 이르는 말인데, 무슬림들은 반드시 할랄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상점에나 음식점에나 모두 ‘할랄’이라는 안전마크가 붙어 있다. 이슬람 거리에는 모두 세 개의 할랄 상점이 있다. 주로 다양한 식료품들을 취급하며 일반 마트에 있는 상품들도 있고, 동남아나 중동 쪽에서 직접 공수해 온 물건들도 있다. 진열대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각양각색의 향신료, 라면, 커피 그리고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물담배나 장식품, 아랍권 DVD도 종종 눈에 띈다. 



1 터키풍의 문양으로 장식된 성원의 입구 2 예배당내부의 모습. 아치형으로 움푹 파인 것이 메카 방향으로 난 미흐랍이다. 그 오른쪽은 이맘이 기도를 집전하는 민바르(단상) 3 성원 맞은편에 있는 이슬람어린이학교 4 이슬람식 첨탑인 미나렛. 터키의 블루모스크에는 6개의 첨탑이 있는데, 보통 사원에는 그보다 적은 2개 내지 3개의 첨탑이 있다



 ‘살람’을 아시나요?

길이 끝나는 곳엔 서울살이 무슬림들의 안식처, 서울중앙성원이 있다. 성원은 밖에서는 본당이 보이지 않고 두 개의 미나렛만 보이게 돼 있어, 입구 양쪽으로 난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한다. 이 때문에 모퉁이를 돌아서 하얀 모스크를 눈앞에 맞닥뜨렸을 때 훨씬 극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받는다. 아담하지만 신성이 깃든 이 낯선 양식의 건물과 독대하고 있다 보면, 마치 천국에 온 착각마저 든다. 모스크의 새하얀 정결함도 그렇고, 또 약간 높은 지대에서 맞는 선선한 바람, 고도를 넘긴 태양의 적당한 채광 탓도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귓가에 들려온 “살람”하는 읊조림이 우리를 홀린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흰 사웁(원피스 모양의 무슬림 전통의상)에 하얀 페즈(무슬림 남자들이 쓰는 챙 없는 모자)를 사뿐히 쓴 노신사가 미소 짓고 있다. 그 미소에는 여전히 “살람”이라는 단어의 여운이 남아 있어 나도 모르게 따라서 되뇌어 본다. 오, 살람. 오, 평화…! 

* 살람은 보통 인사말로 많이 쓰이는데, 원래는 ‘평화’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슬람의 어원도 바로 이 말에서 비롯되었다. 종교적으로는 신에 대한 복종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Taj Palace


이태원과 이슬람 거리엔 두바이, 이집트,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등 이슬람을 대표하는 음식점들이 많다. 모두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 본토에 가까운 맛들을 자랑한다고. 한 한국인 무슬림 소식통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정평이 난 곳이 바로 ‘Taj Palace’란다. 타지마할을 뜻하는 이 인도음식전문점은 소방서길에서 보광초등학교로 가는 언덕길에 있다. 그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간판(트랜스젠더클럽)이 있는 건물 2층이다. 

내부는 인도식 인테리어를 갖췄고, 메뉴판 4~5페이지를 빼곡히 채울 정도로 메뉴가 다양하다. 추천 메뉴는 탄두리(향신료와 요거트에 영계를 밤새 절여 탄두에 구운 매콤한 닭고기 요리)와 마살라(치킨 또는 양고기에 인도 커리와 담황, 양파, 요구르트를 넣은 것), 치킨바리아니(인도 흰쌀밥에 닭고기와 마살라, 허브를 넣어 볶은 밥). 여기에 취향에 따라 난(얇은 인도식 빵)이나 샤프란밥을 곁들여 먹으면 된다. 식사 후에는 샤프란 티를 마셔 보자. 

은은한 계피향이 감도는 달달하고, 깔끔한 맛의 차로 식사 후 입맛을 정돈하기에 좋다. 여기 음식은 양고기 특유의 노린내도 거의 없고, 향신료도 강하지 않아 한국 사람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어떤 메뉴를 고르든 실패할 확률은 적을 듯. 메뉴는 난이나 티를 제외한 요리가 1만원~1만6,000원대이고, 2인 세트메뉴는 4만2,000원이다. 주말 점심에는 1만5,000원으로 뷔페를 즐길 수 있다.


Islamic book center

이슬람 거리 중간쯤 가다 보면 초록색 간판이 이목을 끄는 서점이 하나 있다. 여기서는 이슬람·아랍권 서적, 영어원서 등을 판매한다. 입구 쪽에는 이슬람 교리와 종법을 소개하는 약 15종의 한국어본이 비치되어 있는데, 친절한 주인장에게서 몇 권 정도는 공짜로 얻어 볼 수 있다. 아랍어나 터키어의 한국어본 교습서도 찾을 수 있고, 코란도 판매한다. 요즘엔 코란도 디지털 시대. 전자사전 정도의 크기로 다양한 버전의 경전을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코란이 당당히 쇼윈도를 차지하고 있다.



 “앗 살람 알레이쿰”

천국에 온 김에 그분을 만나 보고 가자. 우리의 언어로 하느님인 그분이 이곳에선 ‘알라’로 불린다. 이슬람교에서는 알라만을 유일한 신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특정 신을 지칭하는 어감을 주는 ‘알라신’이라는 표현이 금기시 된다. 아마 성원에서 무슬림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테스트 받는 부분이 될 것이다.

알라를 만나러 갈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복장이다. 알라는 자애로운 동시에 두려운 신이다. 무슬림들은 그런 신께 머리카락이나 맨 다리를 보이는 것을 불경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민소매 옷이나 짧은 하의를 입고 갔다간 입구에서부터 문전박대당할 수 있다.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른다면, 예배 전에 1층 이슬람 선교국에 가보자. 한국인 무슬림에게서 이슬람교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성원 안내를 받아 볼 수 있다. 

해가 지평선에 걸릴 즈음, 오후 예배가 시작된다. 이슬람에선 하루에 5번, 새벽(파즈르)-낮(주흐르)-오후(아스르)-저녁(마그립)-밤(이샤) 예배를 드린다. 예배는 매회 5분 남짓 동안 진행되며,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매일매일 예배 시간표가 바뀐다. 예배에 참가하고 싶다면 중앙성원 홈페이지(www.koreaislam.org)에서 예배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상책이다. 

남녀 예배당은 각각 분리되어 있으나, 3층의 여자 예배당에선 본당인 2층 남자 예배당이 내려다보인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이맘(예배집전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신도들은 ‘미흐랍(벽감)’을 향해 나란히 선다. 미흐랍의 방향이 바로 성지인 메카의 방향이기 때문. 전세계 어느 곳에서건 무슬림들은 하나같이 메카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를 드린다. 예배와 달리 기도에는 특정한 규율이 없다. 그저 물 뜨듯이 두 손을 소복하게 모으고, 알라와의 대화에 집중하면 된다. 

기도가 끝나면 두 손을 얼굴 위로 가져가 세수하듯 쓸어내린다. 무슬림들은 이 보이지 않는 물 속에 신의 화답이 들어 있다고 여긴다. 곁눈질을 해 가며 이슬람식으로 절을 하고, 기도를 드리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를 떠올려 본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인간의 희원과 그에 상응하는 신성이 한데 모이는 곳. 신의 마지막 사자(使者) 무함마드의 탄생지. 예배당에 퍼지는 낮은 기도소리에 마음 한 자리가 깊숙해진다.  

개인 기도까지 끝나고 다음 예배를 기다리거나 헤어지는 자리에선 다정한 인사가 오간다. “앗 살람 알레이쿰(당신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대상을 복수로 칭하는 것은 우리 어깨 위에 언제나 두 명의 천사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선행을, 다른 한쪽은 악행을 기록한다. 이 비망록은 죽고 난 후 천국의 문 앞에 섰을 때 지상에서의 우리 삶을 증명해 줄 것이다. 아까 이방인으로 지났던 길을 반대로 걸어 내려오며, 어쩐지 양쪽 어깨가 묵직해진 느낌에 번갈아 들썩거려 본다. 오늘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천사님들. 와 알레이쿰 앗 살람, 당신들에게도 평화를.

mini interview

나의 첫 번째 무슬림 친구, 사디야

오후 예배를 기다리면서 나는 ‘사디야’라는 이름의 무슬림 친구를 사귀었다. 토종 한국인인 그녀는 파키스탄 사람인 지금 남편을 통해 이슬람을 알게 됐는데, 남편처럼 좋은 사람이 믿는 종교였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무슬림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하도 남편 자랑을 하길래 신혼인가 했더니 웬걸, 벌써 결혼 6년차인 베테랑 주부였다. 지금은 한국 요리보다 파키스탄 요리를 더 잘할 정도라고. 마음씨 좋은 그녀는 취재 내내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선뜻 들어가기 멋쩍었던 가게들도 마음대로 들쑤시고, 사진도 여러 장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이슬람에 만취(?)할 수 있었고, 그래서 알라를 향한 첫 기도도 더 간절해질 수 있었다. ‘행복’이라는 뜻으로 남편이 지어 준 아랍어 이름 ‘사디야’가 너무도 잘 어울렸던 그녀. 

9월 한 달 이슬람은 라마단 기간이다. 이 기간 중에는 해가 있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물도 마실 수 없고, 심지어 침도 모아서 삼키면 안 된다. 대체 어떻게 견디느냐고 뜨악해하는 나를 향해 사디야는 말한다. “인샬라, 신이 뜻하시는 대로.” 오히려 무슬림들은 이 기간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정신적인 건강을 얻게 된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래서 라마단은 ‘인내하는 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고. 지금쯤 힘든 라마단 기간을 보내고 있을 사디야, 와 알레이쿰 앗 살람!
*알려져 있다시피 무슬림 여성들은 남편 이외의 남성들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물론 같은 무슬림이라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디야의 신념은 굳건하다. 그녀의 행복한 웃음을 궁금해할 독자들에게는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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