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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Rail로 떠나는 캐나다 기차여행④-기차는 록키를 품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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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국영철도인 비아레일(VIA Rail Canada)을 이용한 캐나다 기차여행이 이번호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Via Rail로 떠나는 캐나다 기차여행 ④ 기차는 록키를 품고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기차를 타고 가겠다고 하자 누군가 내게 그랬다. 4시간이면 도착할 길을 왜 굳이 기차를 타고 4일씩이나 허비해 가며 가려 하느냐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변화해 가는 ‘빠름’이 미덕인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여행만큼은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고 싶었다. 캐나다 기차 여행의 마지막 여정인 토론도-밴쿠버 구간. 캐나다를 횡단하겠다는 그 꿈이 레일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정은주    취재협조     www.viarailcanada.co.kr

캐나다 기차여행의 글 싣는 순서

1. Happy Birthday, Canada!
2. PEI에서 만난 빨강머리 앤 
3. 캐나다 속 프랑스와 영국
4. 기차는 록키를 품고


온타리오주, 호수들의 천국을 지나

오전 9시. 토론토 유니온역은 언제나 그렇듯이 분주하기만 하다. 처음 비아 레일에 올라탔던 그곳에서 마지막 승차권을 내민다. 상쾌한 아침 기운까지 싣고 떠나는 기차 안은 그 어느때보다 더욱 들뜬 기분으로 가득 차 있다. 

토론토부터 밴쿠버까지 캐네디언 노선(The Canadian)을 따라 달리는 ‘여행길’이다. 아이들을 동승한 가족 여행객들 틈으로 간간이 젊은 커플들과 싱글 여행자들도 종종 눈에 띈다. 누가 뭐래도 가장 다정해 보이는 커플은 외려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들. 나란히 앉아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그들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푸근해진다. 

통로 사이를 쉴 새 없이 왔다갔다 하며 한창 정신없이 놀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인가부터 모두 차창에 매달린 채 얌전을 떨고 있다. 도시에서 벌써 멀리 벗어났는지 차창 밖 풍경이 어느새 푸르른 초원으로 바뀌어 있다. 순간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이제껏 이렇게 멋진 풍경들을 놓치고 있었다니! 마치 원시림 속을 지나가듯 사람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수풀을 헤치고 기차는 한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크고 작은 호수들. 온타리오(Ontario)주가 호수의 천국이라더니,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고 싶은지 가는 곳마다 호수 천지이다. 

천천히 달리는 기차 덕분에 짙푸른 호수 물빛에 비친 하늘 풍경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시간의 터널을 넘어 태초에 자연이 생성된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 지나가는 풍경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뛰어놀던 아이들까지 반하게 만든 아름다운 자연의 파노라마 속을 기차는 하염없이 내달려간다.


1 기차 마지막 칸인 파크 칸 2 전망칸에서 훤히 보이는 아름다운 전경들 3 큼직한 스테이크가 나오는 기차 레스토랑 4 문화 유산인 재스퍼역 5 비아 레일 일등 칸 6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승무원들이 침실 준비를 해준다

기차는 달리는 ‘호텔’

기차는 또한 달리는 ‘호텔’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진 열차 칸에는 숙박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다. 식사를 위한 식당 칸(Dining Car)은 물론 편안한 수면을 위한 침대 칸(Sleeping Car), 360° 시원한 전망을 선사하는 전망 칸(Skyline Car), 파노라마 같은 전경이 펼쳐지는 파크 카(Park Car)와 샤워 룸, 라운지, 스낵 바까지 없는 게 없다. 창밖 풍경을 감상하다 심심하다 느껴지면 체스나 다양한 보드 게임들이 갖춰진 라운지로 건너가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게임 삼매경에서 빠져 보고 따스하게 비쳐드는 햇살 아래 책도 읽으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맞추다 두고 간 퍼즐도 내 몫이 된다. 퍼즐이 풀리지 않는다고 골머리를 앓을 필요는 없다. 내가 남긴 몫은 또 다른 여행자가 채워 줄 터이니. 

“퍼스트 콜(First Call)!" 열차 칸마다 옮겨 다니며 승무원이 저녁 식사 콜을 알린다. 식사 시간마다 3차례에 걸쳐 콜을 부르는데 미리 예약해 놓은 콜 번호에 따라 맞춰 가면 된다. 비아 레일의 다이닝 카는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다. 정찬으로 차려져 나오는 음식은 물론 매 식사 분위기에 따라 테이블 러너 색까지 바꿔 주는 센스가 돋보인다. 저녁은 무슨 음식을 맛볼까. 전채로 클램 차우더(Clam Chowder)와 주 요리로 알버타 산 쇠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디저트로 치즈 케익까지 남김없이 마치고 나니 맛있는 식사 후에 엄습하는 엄청난(?) 포만감에 푸근하고 행복하다. 게다가 창밖으로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까지 더하니 세상 어느 레스토랑이 이보다 더 멋질 수 있을까. 식사 시간 내내 때로는 숲 속으로, 때로는 호숫가로 피크닉을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 속에 푹 빠진 건 나뿐만이 아니란 말씀.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이미 내 좌석은 침대로 변해 있었다. 완벽하게 침실로 변신한 탓에 ‘내 자리가 여기 맞던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침대만큼 커다란 유리창 하나가 고스란히 내 차지이다. 푸른 색으로 빛나는 호수며 그 위로 맑게 펼쳐진 하늘, 이파리를 팔랑대며 지나쳐 가는 나무들 모두 나만의 것 같았다.


7 토론토에서 위니펙 가는 길. 원시림 속에 펼쳐진 호수 퍼레이드 8 숲 속에 자리잡은 별장 같은 숙소들 9 재스퍼 비지터 센터

황혼 속에 물드는 특별한 추억

기차에서 맞는 아침은 특별하다. 창 가득히 비쳐드는 환한 햇빛이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기차는 쉬지도 않고 달려온 걸까. 씩씩하게도 잘도 내달린다.
기차가 지나가는 길을 가만히 되짚어 보면 어떻게 이런 곳까지 레일을 깔았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이렇게 긴 횡단 코스를, 그것도 처녀림 같은 우거진 수풀들을 헤쳐 나가며 끝내 완성해 놓은 그들의 인내와 끈기에 찬사를 보낼 뿐이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기차를 타고 가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황홀한 비경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짝짝짝!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기차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다른 여행자들과의 만남이다. 함께 여행한다는 동질감에서인지 기차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더 쉽게 친해지는 것 같다. 우연찮게 저녁 식사 테이블을 함께했던 할아버지 세 분과 점심 시간에 또다시 만났다. 호주에서 온 사촌 형제지간인 두 분과, 나처럼 토론토에서 홀로 여행을 온 한 분. 이렇게 할아버지 삼총사(?)는 그들 나름대로 재미나게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하자 용기와 격려를 듬뿍 북돋아 주시던 그들 삼총사. 비록 여정이 달라 재스퍼에서 헤어졌지만 이틀간의 짧은 시간 동안 식사 때마다 유쾌한 웃음을 주시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특히 아내를 잃고 그 쓸쓸함을 여행으로 달래시던 할아버지, 부디 행복한 여행길이 되셨길 진심으로 바란다.

기차는 간간이 역에 들러 사람들을 내려놓기도 하고 태우기도 한다. 워낙에 긴 장거리 여행길인지라 때때로 급유를 위해 오랫동안 정차하기도 한다. 기차가 한 작은 간이역에 정차하자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조용하던 마을이 갑자기 북적거리며 활기를 띈다. 사람들은 내려서 기념 촬영을 하기도 하고 상점에 들러 기념품도 사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이 작은 마을은 기차가 떠나면 또다시 한적한 생활로 돌아가겠지. 

위니펙(Winnipeg)을 지나면서 창밖 풍경이 점점 너른 평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제 횡단 코스의 절반을 지나가는 것 같다. 누군가 마니토바(Manitoba)주는 평평한 들판뿐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어찌나 딱 들어맞는지. 온타리오주를 지날 때와는 다른 맛이다. 드넓게 이어진 평야 위로 김밥처럼 둘둘 말아 놓은 건초 더미들이 재미나기만 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전망 칸에 올랐다. 지평선이 끝나는 곳부터 시작된 오렌지 빛 노을이 점점 붉어져 급기야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이제 ‘황혼(黃昏)’으로 접어드는 한 노부부가 말없이 두 손을 꼭 잡고 황혼으로 물든 하늘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캐네디언 노선의 하이라이트, 록키!

점심 후, 한참을 신나게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속력을 줄이더니 급기야 정차하고 말았다. 이어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 “지금 여러분의 오른쪽을 보시면 산 속에서 내려온 작은 아기 곰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부근에는 곰이 자주 출몰하지요.” ‘와아!’ 하는 탄성과 함께 모두 차창으로 향한다. 정말 기찻길 너머 비탈진 언덕 아래 작은 곰 한 마리가 서성대고 있지 않은가! 록키가 점점 가까워져 옴이 실감 났다. 워낙에 깊은 산이기는 하지만 자연을 잘 가꾸고 보존해 온 덕에 록키는 곰은 물론 야생 동물의 천국으로 유명하다.

3일째 되는 날 오후 느지막히 기차는 재스퍼(Jasper)역에 도착했다. 한눈에 홀딱 반해 버린 재스퍼역.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역사도 예뻤지만 여기저기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전경이 천진난만한 아이의 미소마냥 너무나 맑고 아름다웠다.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마을은 단지 잠깐 머물다 떠나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곳, 기차를 떠나 보내고 3일 후를 기약했다.

재스퍼에서 밴프까지, 신비로운 록키 탐험!

록키는 무엇보다 에메랄드 빛 호수로 뒤덮힌 아름다운 자연과 언제 어디서건 마주칠 수 있는 야생 동물들의 보고(寶庫)이다. 길을 가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가면 영락없이 곰이나 엘크(Elk) 등이 있다. 재스퍼에서 밴프를 오가며 운 좋게도 곰을 두 번이나 만난 데다 가까운 거리에서 엘크까지 목격했다. 갑자기 엘크가 다가오는 바람에 뒤꽁무니를 빼며 달아나긴 했지만. 이들 모두 야생이기 때문에 먹이를 주는 것은 금물이요 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 

아쉽게도 재스퍼에서 밴프까지는 비아 레일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굳이 밴프까지 간 이유는 에머랄드 물빛으로 유명한 레이크 루이즈(Lake Louise) 때문. 봄에 한번 찾았던 곳이지만 그때까지도 얼음이 녹지 않아 그 진가를 제대로 느껴 보지 못했었다. 다시 찾은 레이크 루이즈는 4시간을 달려온 수고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시시각각 물빛을 달리하는 그 매혹적인 자태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언제까지고 그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발걸음을 재촉해 미러 호수(Mirror Lake)와 아그네스 호수(Agnes Lake)까지 올랐다. 산 꼭대기에 살폿이 자리한 아그네스 호수는 맑고 영롱한 물빛이 어쩜 그리 이름과 꼭 닮았는지. 아닌 게 아니라 모레인(Morain), 피라미드(Pyramid), 멀린(Merlin), 페토(Peto) 등 록키 안에 있는 호수들 모두 자기만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서로 겨루고 있는 듯하다.

록키를 방문한 여행자들이라면 꼭 들르는 곳, 북극을 제외하고 인간이 직접 올라서 볼 수 있는,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빙하 형성지인 애서바스카 빙하(Athebasca Glacier). 많은 이들이 올라서면 빙하가 깨지지 않을까.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 빙하 속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들어갈 정도이니, 얼마나 단단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마치 얼음 산처럼 보이는 빙하 위에 올라서니 어찌나 신기한지 일행을 뒤에 두고 자꾸만 오르고 또 올랐다. 이 빙하 아래는 무엇이 잠들어 있을까. 오르다 만난 크레바스(Crevasse) 속에 빠질까 무서워 조심해서 내려오다 석회질 진흙탕에 빠지고 말았다. 이거, 빙하에 올랐다는 증거품으로 남겨야지.

다시 기차에 오르기 전, 재스퍼에서 트램을 타고 휘슬러 산 정상에 올랐다. 한눈에 담기는 재스퍼와 주변 전경이 록키에 대한 경이로움마저 자아낸다. 마음속에만 품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이곳. 언제고 꼭 내 너를 다시 찾으리라.


1 그 유명한 레이크 루이즈에서 카약을 2 재스퍼 휘슬러 산 트램웨이 기념촬영 명소 3 재스퍼 역에 정차한 비아 레일 4 재스퍼 멀린 호수와 스피리츠 섬 5 재스퍼 타운 전경 6 에드먼턴역

마지막 종착역, 밴쿠버로 떠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차는 마지막 종착역인 밴쿠버를 향해 힘차게 경적을 울리며 달린다. 캐네디언 노선의 백미는 뭐니 해도 록키 산맥(Rockies) 구간이다. 재스퍼에서 밴쿠버까지 록키의 다채로운 모습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이 길을 따라가는 시간만큼은 꼭 전망칸을 이용하기를 권한다. 천장까지 시원하게 뚫린 유리창 너머로 웅장함을 뽐내며 서 있는 수많은 봉우리들과 깊고 푸른 수풀, 그 뒤로 펼쳐진 에메랄드 빛 호수는 캐네디언 노선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며 도시에 들어서기 전까지 줄곧 이어진다. 전망창을 통해 올려다보이는 밤하늘 가득한 별빛은 여행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선사한다. 

기차는 그렇게 긴 여정의 끝을 향해 달려 나가고 그 뒤안길을 바라보며 마지막 상념에 젖는다. 한 달도 넘게 이어진 기차 여행의 마지막 밤. 기차를 타고 캐나다 구석구석을 누벼 온 시간들을 차분히 되돌아보니 수없이 많은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기차’라는 여행길에서 내려서면 다시 ‘인생’이라는 여행길로 접어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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