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호이안에서는 자전거의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
베트남-호이안에서는 자전거의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
  • 트래비
  • 승인 2008.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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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호이안의 시내풍경. 밤이되면 형형색색 등들이 강물에 투영되면서 놓칠 수 없는 야경을 선사한다

호이안에서는
자전거의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


베트남 중부 항구도시 호이안.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 월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찾아 베트남에 온 여주인공 수애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바로 그곳이다. 영화에서처럼 호이안에는 1960년대, 70년대를 머나먼 이국땅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한국군들의 초상이 남아 있고, 그들이 닦은 도로 위로 이제는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달린다. 폐허가 된 전장에는 곧 5성급 리조트도 속속 들어선다. 호이안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와도 이 도시, 사랑의 서약을 한 연인마냥 수줍은 미소로 기다릴 것 같은 이 느낌은 왜일까.

글·사진  방금숙 기자

 

Hoi An 호이안

시간마저 멈춘 듯 고즈넉한

호치민이 베트남에서 크고 번쩍이는 다이아몬드라면, 호이안과 후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숨겨진 원석과도 같은 도시이다. 대도시의 혼잡함과는 다른, 베트남 특유의 오토바이 행렬 속으로 사뿐사뿐 페달을 밟으며 들어가는 자전거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곳. 혹자는 ‘시간이 멈춘 곳’이라 부른다.
인천에서 4시간40여 분 만에 도착한 베트남 다낭국제공항. 공항을 빠져 나와 30분쯤 더 가니, 호이안 시내 외곽 팜가든리조트에 도착한다. 산책로를 따라 방을 찾으러 가는 길 내내 어둠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대 꽃향기만이 진동한다. 별장식 리조트 2층, 천장 높은 방에 짐을 푼다.


1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언제봐도 아름답다 2 리조트가 즐비한 끄어다이 해변, 이른 아침 소가 모래밭에서 쟁기질하는 이색 풍경이 인상적 3 이른 새벽 모래밭을 가는 소


이른 새벽, 소는 모래밭 일구고

싱그러운 리조트의 아침 풍경. 베란다 너머로는 바다가, 반대편에는 정원 수풀 사이로 수영장이 펼쳐진다. 베트남 특유의 모자 ‘논’을 쓴 종업원들은 이른 새벽부터 400그루에 달하는 열대나무 정원을 가꾸느라 분주하다. 리조트 앞에는 호이안에서 이름난 끄어다이(Cua Dai) 비치가 5km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해가 뜨는 이른 아침 산책하기에 좋다. 소가 쟁기로 모래밭을 일구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8월, 호이안 날씨는 맑고 햇살이 투명하다. 국토가 아래위로 긴 베트남은 그 안에서만도 다양한 기후대가 공존한다. 중부 지역은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데 우기인 11~12월 태풍이 지나고 나면, 1~2월은 선선한 날씨 탓에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그러나 8월의 여름, 한낮의 햇살은 무척이나 뜨겁다. 선크림과 양산은 필수. 창이 넓은 베트남 모자도 2개에 2달러면 살 수 있다.

오전 11시, 날씨를 감안해 시내 관광을 출발한다. 버스가 멈춰 선 곳은 구시가지 한복판.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지는 차량이 통제된다. 시내는 도보로 세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물론 곳곳에 자리한 박물관을 들르고 아기자기한 쇼핑거리들에 마음을 뺏기면 하루, 이틀을 꼬박 잡아도 모자랄 곳이지만. 

차가 없는 거리에 서서 문득 상념에 잠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저들만의 질서로 어지럽게 돌아간다. 몸매를 드러낸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들의 뒷모습은 여자가 봐도 고혹적이다. “신짜-오!” 베트남식 인사를 건네며 관광객을 호객하는 베트남 인력거 ‘시클로’가 그 뒤를 쫓는다.


1 베트남 전통모자 논을 쓰고 물건을 파는 거리의 상인 2 웃음을 자아내는 공예품 3 직접 등을 제작하는 과정도 볼 수 있다 4 낮에는 제 색깔로, 밤에는 불빛으로 화려한 등공예품 가게들

베트남의 파리, 예술적 감성이 숨 쉬는 곳

호이안은 도시 전체가 갤러리 같다. 17세기 옛 거리를 배경으로 강렬한 색채를 띤 화랑, 파스텔 빛의 가옥들, 도자기 공방, 수제 옷과 액세서리 가게, 또 밤이 깊을수록 아름답게 빛나는 형형색색 등들의 향연까지, 이 도시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가 난다. 여기에 자전거를 타고 휴가를 즐기는 유럽인, 특히 프랑스인들의 여유로운 표정이 더해져 이국적인 정취가 풍긴다. 

한때 호이안은 중국, 일본, 서방 상인들이 드나들던 국제적인 항구도시였다. 그러나 무역의 중심이 다낭으로 옮겨 가면서 17~19세기 그 화려했던 시절도 시내 중심 투본 강의 강물처럼 흘러갔다. 그 덕에 수많은 전쟁 속에서도 지금의 건축물들을 온전히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호이안의 과거를 보려면 중국인들이 1643년 지은 화교회관 관운장 사당, 1593년 일본 상인들이 강 건너 중국인 거리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내원교, 그 옆에 베트남, 중국, 일본 건축양식이 혼합된 목조 가옥, 풍흥 고가 등을 방문하는 것도 괜찮다. 5개 주요 명소를 보는 호이안 관광 종합입장권은 1인당 7만5,000동, 시내 곳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
호이안은 다낭 남쪽으로 30km, 팜가든리조트에서 5km 거리에 있다. 택시를 타면 호텔에서 시내 정거장까지 4~5달러(1달러는 약 1만6,000동) 가량. 발마사지 마니아라면 3~4명이 모여 다낭까지 택시를 타고 가도 한화로 편도 2만원 정도니 시도해 볼 만하다. 


1 강렬한 색채의 미술품과 고서를 파는 가게가 즐비한 구시가지 2 악세사리를 파는 가게 주인의 해맑은 표정 3 브라질에 이은 커피 수출국 베트남! 4 호이안에서는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사는 재미가 있다 5, 6 반 바오박과 까오라우는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맛난 요리, 아기자기한 쇼핑은 덤!

아, 베트남 요리는 어쩜 이리도 맛있을까.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반 바오 박(Banh Bao Vac), 까오라우(Cao Lau), 환탄(Hoan Than)은 호이안에서 꼭 맛봐야 할 별미 3종 세트다. 

반 바오 박은 속이 비치는 얇은 피 속에 새우 살을 갈아 만두처럼 빚은 요리로, 프랑스인들에 의해 백장미처럼 아름답다 하여 화이트 로즈(White Rose)라는 예쁜 이름이 붙었다. 까오라우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쌀국수로 우동처럼 굵은 면발 위에 돼지고기 편육과 야채가 얹혀 나온다. 입맛에 따라 다르겠지만 토마토소스와 새우살을 올린 환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버려 자료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주문했을 만큼 입에서 살살 녹았다. 

투본 강변 박당(Bach Dang) 거리에는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위 세 가지를 맛볼 수 있는 코스요리가 1인당 3만동부터. 한화로 2,000원도 채 안 되니 둘이 가서 실컷 먹어도 1만원이면 충분하다. 대부분 7시에 문을 열고 오후 10시 넘어 천천히 문을 닫는다. 배 부르게 먹었다면 여유롭게 호이안의 야경을 즐겨 보자. 호이안의 야경을 보지 못한다면, 그건 이 도시를 반도 보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호이안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쇼핑이 있다.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현지인들과 일상을 나누는 좋은 기회가 된다. 수놓인 스카프가 2~5달러선, 접어서 가져갈 수 있는 등공예 가격은 천차만별. 커피 또한 브라질 다음으로 수출량이 많아 일상 속에 커피문화가 녹아 있다. 그림이나 고서 등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으니 가격을 흥정해 기념이 될 만한 것을 골라도 좋다. 문을 열고 한가히 손님을 기다리는 호이안의 풍경은 여느 관광지와 달리 여유롭다.


episode

쇼핑, 천국과 지옥 사이로~

박당 거리에서 한 스카프 가게 주인아저씨를 만난 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네 명인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배탈이 나 화장실이 급해 뛰어들어간 곳이 바로 그 가게다. ‘사 봐야 짐’이라는 쇼핑 신조도 한 순간, 곁눈질하는 사이 목에는 예쁜 스카프가 한두 개씩 걸린다. 흥정을 시작했지만 친절한 아저씨는 5달러 이하는 절대 안 된다고.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운이야” 하는 아저씨의 진솔한 모습에 1달러를 더 얹어 주고 기념사진까지 찍고 나온다.

그런데 내원교를 넘어 골목 안쪽 길을 걸으면서 이미 산 것과 같은 스카프의 가격을 재미삼아 묻는다. “얼마예요?” “3달러인데 2개 사면 2달러에 줄께요.” 하늘을 날던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심장이 벌렁거린다. 그렇게 착한 얼굴을 하고선! 배신감에 쫓아가자는 일행을 겨우 말려 카페에 들어서지만 바가지 상인에 당한 기분은 최악이었다. 그 순간, 한 명이 정적을 깨며 하는 말. “아까 5달러짜리는 100% 실크였는데 2달러짜리는 45%밖에 안 되잖아~” 몇 달러에 천국과 지옥이 오가는 소심함이여. 아무쪼록 쇼핑을 할 땐 원단부터 꼭 뒤집어 보길.

미선 (Mi son) 

유적지참파,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2세기경 베트남 중부의 평야에 ‘참파왕국’이라는 강력한 나라가 생겼다. 다낭에서 차를 타고 1시간여를 달리면 고대 참파왕국의 흔적이 남아 있는 미선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반나절 투어로 호이안에 온 관광객들이 꼭 들러보는 곳이다. 

당시 동남아의 강국 앙코르와 인도네시아의 자바까지 세력을 펼친 이 왕국의 성지, 미선은 4세기부터 900년간 힌두신과 시바신을 모셨다. 그러나 파괴와 창조의 시바신의 운명을 기구하게 닮아 버린 참족은 15세기 베트남족에게 멸망하고 화려했던 과거만이 유적지로 남았다. 참족은 베트남 54개 소수민족 중 하나로 남부에 조그마한 촌락을 이루고 살고 있다고. 

붉고 빛나는 구조물은 모양이 앙코르와트와 조금 비슷하지만 많이 부서지고 기울어져 있다. 유적지를 대충 한자리에 몰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유적지를 발견한 프랑스는 주요 유물을 자국으로 약탈해 갔고, 미국은 베트남전쟁 중 이 지역에 폭탄을 투하해 수많은 건물을 파괴했다. 목이 잘려 나간 조각상과 보수 중인 건축물은 여전히 가슴을 씁쓸하게 한다. 아, 권력의 흥망성쇠가 이런 것인가. 

미선 유적지를 향하는 일은, 화려한 베트남 문화가 꽃피웠던 참파왕국을 만나고, 그 안에서 강하게 꽃피운 인도 문화를 엿보는 길이기도 하다. 약 900년 동안 힌두신들을 모신 탓에 미선 유적지는 전통적으로 불교와 유교가 강한 베트남에서 보기 드물게 힌두교 색채를 강하게 띤다.




Hue 후에

향수를 자극하는 역사의 향취

호이안에서 후에로 가는 길, 베트남판 대관령 ‘하이번’ 고개를 넘어야 한다. 베트남어로 바다란 뜻의 하이와 구름이란 뜻의 번이 합쳐진 하이번 고개는 이름처럼 높다. 세계 8대 비경 중 하나로 오르고 내리는 길이 장관이다. 차도 숨차게 오르는 이 길을 유럽 배낭여행객들은 자전거로 오르며 구름도 쉬어 간다는 정상에 서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1 베트남 제1의 역사도시 후에. 마지막 왕조가 살았던 후에성의 모습 2, 3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카오딘황제릉 전경과 내부 사진 4 틱 광 득 스님이 분신자살할 때 타고간 오스틴 자동차가 전시돼 있는 티엔무사원.

마지막 왕조의 흔적 후에성 

후에는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곳이다. 1800년부터 약 150년간 베트남의 수도였다. 역사의 주요 무대인 후에는 베트남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지금은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복구가 한창이다. 수많은 사원과 13대에 걸친 왕들 중 6대 왕들의 무덤이 곳곳에 남아 있고 능마다 생전의 생활모습을 재현해 주고 있어 흥미롭다. 

어느 나라나 사연은 많지만 베트남만큼 사연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10세기까지 중국의 지배를 받다가 중국 당 왕조가 무너지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낸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또다시 약 100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이후에도 가난한 이 왕국은 열강들의 끊임없는 전쟁과 침략을 겪으면서 상처로 얼룩진다.

가이드는 농담조로 “후에는 가도 후회하고 안 가도 후회한다”고 전한다. 도시 전체가 1993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유적지가 많다는 뜻인 동시에, 땡볕 아래 오래 걷는 일 역시 극기훈련이나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베트남 최고의 역사 도시 후에에 와서 어찌 이를 놓칠 수 있을까.

향수의 강 ‘향강’. 그 북쪽으로 1804년 짓기 시작한 후에성이 자리했다. 지름 10km 거대한 유적지다.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프랑스 보방 스타일로 흙으로 쌓았던 성벽을 2m 두께로 벽돌을 덮었다. 마지막 왕조가 있던 곳으로 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부분들은 복원 중에 있다. 이 중 우리나라 한국문화재청,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카이스트가 직접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를 맡아 보고, 궁 안에 떡 하니 자리한 대형 삼성 LCD TV를 통해 그 복원작업이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보여진다니 감회가 또 새롭다.

카이딘 황제릉과 티엔무 사원

응우웬 왕조의 12번째 왕인 카이딘 황제릉. 후에시에서 10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왕릉은 유럽과 베트남식이 혼합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카이딘 황제의 유골은 18m 지하에 묻혀 있다. 층계를 오르는 곳에 자리한 용의 형상과 왕의 키보다 작게 제작된 150cm 문무대 행렬이 인상적. 고즈넉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도자기와 유리파편을 시멘트에 섞어 만든 벽화는 제법 화려한 빛깔을 낸다. 카이딘 황제는 ‘게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화장을 즐기는 이색적인 왕의 취향이 사진과 장신구를 통해 곳곳에서 묻어난다. 

향강이 바라다보이는 티엔무사원은 평범한 사원이 아니다. 1960년대 초반 반정부 저항 세력의 본거지였던 이곳에 부패 정권에 대항해 응오 딘 지엠 대통령궁 앞에서 분신자살한 틱 광 득 스님이 타고 갔던 오스틴 자동차가 전시돼 있다. 티엔무사원에 있는 21m 높이에 8각7층탑인 복연탑도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일까, 사원 앞에는 수학여행을 온 베트남 학생들이 북적인다. 향강과 사원을 배경으로 자유분방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학생들은 우리나라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들에게 총탄의 흔적과 부스러진 유적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유유히 흐르는 향강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것은 먼 곳에서 온 관광객일 뿐, 그들의 얼굴은 희망으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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