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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가 김남희-늘 처음처럼 걷는 ‘세상의 모든 길’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10.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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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가 김남희
늘 처음처럼 걷는 ‘세상의 모든 길’

여행이 만인의 취미가 되면서 연예인 이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행가들이 늘었다. 혹자는 엄홍길과 한비야는 알지만 신인가수 아무개의 이름쯤은 모른다. 어떤 배우는 여행에 미쳐 본업을 등한시하고 공백기만 가지면 어김없이 여행길에 오른다. 연예인도, 잘 나가는 대기업 직원도 모두 동경하는 그 이름 ‘여행작가’. 도보여행가 김남희는 그중에도 수줍게 빛나는 ‘스타’다. 어느 볼품없던 길도 그녀가 걷고 나면 반짝반짝 빛이 나고, 무수한 추종자들은 별무리를 이뤄 순례하듯 뒤따른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행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녀를 만났다. 국토 종주로도 모자라 산티아고, 라오스, 미얀마와 네팔 등 길이 난 곳이라면 지구 구석구석 마음의 길을 닦는 사람. 아직도 길 위에 설 때가 제일 행복하다며 수줍게 웃는 그녀는 영락없는 소녀였다.

  박나리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김병구   장소협찬  제너럴닥터 02-322-5961

그녀는 7년째 세계일주 중

여행가 김남희는 처음부터 혼자였다. 엄마는 포항에서 대구까지 8살짜리 딸을 홀로 기찻길에 실어 보냈다. “이모가 마중 나올 때까지는 꼼짝 말고 앉아 있는 거야.”신신당부하는 엄마를 뒤로 그렇게 열차는 출발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소녀는 차창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우거진 산과 푸른 평야가 그림처럼 지나가는 풍경을 얼마나 바라봤을까. 그렇게 한 시간 만에 닿은 대구역. 최초의 여행조차 그 ‘과정’이 더욱 아름다웠다.

어렸을 때부터 여행가가 꿈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저 아이들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단다. 목소리는 작지만 조곤조곤 뱉는 말투가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도 잘 어울려 보인다. 그러나 꿈은 그저 꿈이었고 그녀는 대학에서 정치를 공부하며 여느 학생들과 다름없는 청춘을 맞았다. 적어도 졸업 즈음 떠난 두 달간의 유럽 여행 전까진 그랬다. “딱히 여행을 동경했던 건 아니었어요. 굉장히 평범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가끔 일기장이나 끄적이면서”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의 삶은 여행과는 무관했다. 하지만, 생애 첫 유럽 여행 뒤 그녀는 여행 중독자 대열에 올랐다. 터키대사관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매년 한 달씩 주어지던 여름휴가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곤 했다.

걷기 여행 시리즈 첫 번째인 <국토종주편>은 김남희가 세계일주를 계획하기 전 떠난 여행이다. 땅끝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29일간의 국토 종단을 통해 그녀는 내 나라의 아름다움과 여성 혼자 떠나는 도보여행을 많은 이들에게 소개했다. 러닝메이트를 자처하는 지인들이 주말이면 서울에서 내려오곤 했다는 문구가 기자는 마냥 부러웠다. 과연 우리 주변에는 괴짜 같은 친구를 위해 손수 길동무를 자처하는 벗이 몇이나 될까. “다 도와줄 걸요? 정 의심되면 시작해 보세요. 얼마나 고마운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는지 알게 돼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모든 것을 접어두고 길 위를 헤매고 싶어진다.

스스로 소비되는 것을 경계한다

국내 도보여행에서 전세계 트레킹까지 김남희의 여행필모그라피는 참으로 다양하다. 걷기 여행 시리즈만 4편, 지난 6월에는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이란 여행에세이집까지 선보였다. 그녀의 책에는 일정한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지만, 유럽의 골목길들을 담은 신작은 단기간에 가장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 중이다. 7년간 전세계를 여행한 그녀의 내공을 대중들이 인정한 덕분이다.

사실, 거듭 시리즈물을 내면서 초기작에 비해 여행기가 흥미롭지 못하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맞아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죠. 왜냐면 사실 3편은 2편보다 먼저 다녀온 여행기였거든요. 공교롭게 출판 시기가 뒤바뀌다 보니 아무래도 글맛이나 여행지에 대한 생생한 느낌이 전편에 비해 떨어진 감이 있겠죠.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제가 변해 가는 건 좋아요.”

걷는 여행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궁금했다. 국내 여행시 화장실 사용은 어땠는지, 신발은 오로지 한 켤레였는지, 기자는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묻고 싶었다. “신발은 한 켤레만 챙겨요. 화장실은…(웃음) 글쎄, 중국에 비하면 국내 여행은 아무것도 아니죠. 지금이야 베이징 올림픽 치루면서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도시를 벗어나면 며칠씩 고통을 감수해야 할 때가 부지기수에요.”(웃음)

그녀는 최근 MBC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리산에 대한 예찬을 펼치기도 했다.가을을 맞아 주말을 이용해 다녀올 수 있는 걷기 좋은 길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관령 옛길이요. 거긴 연인들이나 아이 있는 가족들도 쉬엄쉬엄 즐기기 좋아요. 옛 사람들이 길을 내어 걷던 흙길인데, 서울에서도 쉽게 닿을 수 있고. 가을에는 어디든 걷기 참 좋죠.”

늘 처음처럼 걷는 세상 모든 길

그녀는 한국에 오면 오히려 집 밖을 잘 나서질 않는다. 친한 언니와 동네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것이 유일한 외출일 정도. 아직 해외여행 중인 그녀는 그저 한국이라는 간이역에 머물며 휴식을 취할 뿐, 세계일주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계속된다.

사실, 김남희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인터뷰 요청 전화를 넣었을 때, 그녀는 말을 아끼며 망설였다. “제가 너무 많이 소비되는 것 같아서요. 이렇게 노출될 게 아닌데… 매일 똑같은 얘기 하고 그러는 것도 지치구요. 아, 어쩌죠?” 그러면서도 매정하게 전화기를 놓진 못했던지라 거듭되는 기자의 요청에 만남을 수락하고 말았다. 인터뷰 장소로 약속한 그녀의 단골 카페에 먼저 도착해 있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두툼한 영문원서가 눈에 띄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냐는 물음에 그녀는 두 손을 손뼉 치듯 합장하며 답한다. 아이처럼 잔뜩 기대에 찬 목소리는 앞서와는 달리 한껏 높아졌다.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도보여행에 도전해요. 와카야마현에 있는 1,300km 길이의 불교 순례지를 걸어 볼 거예요. 낮에는 걷고 저녁에는 사찰에서 묵을 생각인데, 아마 아주 재미있는 여행기가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국내에 거의 자료가 없다며 애로사항을 전한다. 두터운 영문 서적과 출력된 자료들이 보물처럼 그녀 가방에서 꿈틀댄다.

김남희는 도보여행을 시작하면서 자신과 약속한 것이 있다. 인생을 절반으로 뚝 잘라 마흔까지는 유목민, 그후의 삶은 서울에 정착해 살겠다고 말이다. 그 결심에 따르면 이제 여행의 유효기간도 불과 2~3년밖에 남지 않았다. 10월10일경 일본으로 떠난다 했으니 지금쯤이면 빨갛게 물든 일본의 가을 산을 누구보다 힘차게 걷고 있을 테다. 돌아오면 다시 그 기록을 책으로 들려줄 테고, 그 뒤엔 그토록 가고 싶다던 남미로 떠날지도 모른다. 

여행을 계획하고 즐기는 새 우리의 시간은 흐른다. 많은 이들이 시간 앞에 무기력하게 휩쓸리지만, 그녀는 주도적으로 시간을 나누고 분배해 온전한 자기 생으로 만들어 왔다. “마흔 이후에는 한국에 여행학교를 짓고 싶어요.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도 해보고 싶고. 문제는 돈이에요. 영 모이질 않네요. 누가 투자 좀 안 해줄까요?” 쑥스러운 듯 소리 죽여 웃는 김남희는 아직, 소녀다. 처음 길을 나섰던 그 레일 위의 8살 소녀처럼 오늘도 길 위에서 꿈을 충전 받기를 희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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