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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게해와 올리브 그리고 섬 이야기①크레타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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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가와 호텔, 레스토랑 등이 밀집해 있는 산토리니의 번화가 피라마을. 바다 너머로 휴화산인 네아카메니섬과 팔레카메니섬이 보인다 

에게해와 올리브 그리고 섬 이야기

복잡한 역사와 신화, 난해하기만한 철학사상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는 우리에게 늘 과거였다. 그러나 지중해 여행이 대중화되고 ‘동화같은 마을’ 산토리니가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되면서 그리스는 더욱 환상적인 여행지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그 땅을 밟아보니 찬란했던 역사의 현장인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부터 신과 인간의 합작물 산토리니 이아마을까지 그리스를 수식하는 ‘신들의 나라’라는 말이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리스는 철저히 ‘사람들의 나라’다. 크레타와 산토리니, 지중해에 안긴 바다 에게해 섬들에는 오랜 기간 강대국의 외침과 자연의 대재해 속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키워온 그리스인들만의 여유와 지혜가 그득했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그리스관광청 www.visitgreece.kr,
터키항공 www.thy.com/ko-KR 02-757-0280


2 그리스인들은 올리브를 삶의 일부처럼 생각한다. 크레타에 있는 올리브나무만 3000만그루에 이른다  3 그리스인들은 ‘어울림’을 즐긴다. 크레타 전통마을에서 함께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람들


크레타

“그는 이성(理性)의 방해를 받지 않고 흙과 물과 동물과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 크레타 출신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소설 속 화자는 자유의 상징과 같은 조르바를 이렇게 묘사했다. 크레타에서 강박을 벗어난 여행을 즐기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조르바처럼 그저 소박하고 단순하게 주위 세계에 함몰되면 될 뿐. 아무리 봐도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자연을 탐하며 길에서 우연히 마무친 누군가에게 너털웃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크레타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조르바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여행자라면 누구나 조르바가 될 수 있다.

조르바처럼 크레타 음미하기

크레타는 유럽 문명의 발원지다. 그리스 본토와 아프리카 대륙의 중간, 에게해 최남단에 위치한 지리적 숙명 때문일까?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어받아 미노아 문명을 꽃피우며 유럽에 신문명을 전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외침과 식민의 시절을 겪어야만 했다. 크레타에는 유럽 문화의 아득함이 녹아 있기 때문인지, 단지 휴양지로서 아름다워서인지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섬의 중심도시 이라클리온에서 남동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잔해가 남아있는 코노소스궁전은 기원전 2000년경을 배경으로 한 미궁의 신화로 유명하다. “미노스 왕의 왕비 파시파에는 포세이돈의 저주로 황소와 사랑에 빠지고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낳게 된다. 미노스 왕은 미노타우르스를 차마 죽일 수는 없어 궁전 한 켠에 한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어 가두게 된다. 이후 미노스 왕은 당시 식민지였던 아테네 사람들을 미노타우르스에게 먹이로 줬는데 어느 날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미로로 침입해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극적으로 탈출한다. 화가 난 미노스 왕은 미로를 설계한 다이달로스와 아들인 이카루스를 미궁에 가두었고 깃털과 밀납으로 날개를 만들어 미로에서 탈출한 이카루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날개가 타버려 추락사했다.”

기원전 1600년경 산토리니섬에서 발생한 화산과 지진으로 폐허가 된 크노소스 궁전이 재발견된 것은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더 에반스에 의해서다. 당시 크노소스가 발굴됐을 때 사람들은  신화를 연상시키는 미로와 같은 건물구조를 보고 놀랐고, 1,400개의 방과 완벽한 냉온수 배수시설, 지하 4층까지 빛이 들어오는 채광시설 등 우수한 건축술에 또 한번 놀랐다고 한다. 성곽도 필요 없을 정도로 강대했던 미노아 문명. 그러나 복원된 궁전에서는 옛날의 영광보다는 세월의 허망함이 느껴질 뿐이다.

크노소스 궁전이 고대문명의 흔적을 보여 준다면 리크노스타티스 박물관은 재활용품을 이용해 근대 이후 크레타인들의 삶을  단아하게 재현해 놓은 곳이다. 이라클리온공항에서 2km 남짓 떨어진 헤르소니소스에 위치한 박물관에는 소규모 과수원, 크레타농장, 풍차, 교회, 올리브오일과 포도주 저장시설 등 오밀조밀 크레타인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장치들이 널려 있다. 황토로 지어진 건물에 에게해 햇살을 받아 강렬한 색조를 띄는 담쟁이 넝쿨과 이름 모를 꽃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박물관 설립자인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야니스 마르카키스씨는 2004년 서울 세계박물관대회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은 가족이 함께 일하고 가업을 이어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하는데 아담한 박물관에 온 가족이 모여 손님을 맞는 모습에서 후덕한 농촌의 인심까지 전해진다.  

관광객이 많은 유적지를 벗어나 진정한 크레타인들의 삶을 가까이 느끼고 싶다면 이라클리온 남쪽 14km 거리에 있는 아르하네스 마을로 향하면 된다. 아르하네스는 미노스 왕의 여름 궁전, 비잔틴 교회 유적으로도 유명하지만 유럽의 아름다운 마을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을 정도로 알록달록 예쁜 주택들과 소박하고 따스한 마을 풍경이 일품이다. EU가 1990년대에 이 전통마을을 보존하기 위해 기금을 조성해 지원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리스는 주택의 명의를 여자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일 정도로 여성의 지위가 높다는데, 아르하네스는 마초적인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남성들의 마을이다. 남자들만이 들어가 자욱한 연기를 내뿜으며 차를 마시는 카페네오는 마담만 없을 뿐 한국의 시골 터미널 옆의 다방과 분위기가 비슷하고, 남자 머리만 42년째 깎았다는 이발소는 그 칙칙하고도 못난 풍경이 우리네 아버지들의 쉼터처럼 느껴진다. 저들도 이발소와 다방에 앉아 결론도 없는 정치 이야기를 늘어놓을지, 자식 손주 자랑에 여념이 없을지, 혹은 그리스의 축구명문구단 올림피아코스의 부진에 대해 저마다 흥분하고 있을지 자못 귀기울이고 싶어진다.

1 크레타섬 이라클리온항구. 멀리 보이는 베네치안요새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다  2 화려했던 미노아문명의 크노소스궁전  3 궁전 동편에 위치한 왕비가 이용했던 메가론(megaron). 미케네문명의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4 민속박물관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초상화  5 각종 재활용품을 이용해 진흙으로 지어진 동화같은 주택  6 아르하네스 골목을 거닐다보면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크레타식 전통 주택을 볼 수 있다  7 민속박물관 내에 있는 조그만 교회  8 아르하네스 골목에는 포도가 열려있는 집들이 많은데 달디단 포도 한송이 건네는 아낙의 인심이 느껴진다  9 ‘남자들만의 공간’ 카페네오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년 남성들

그들이 먹고 마시고 노는 법 

크레타인들의 유희에 동참하고 싶다면 크레탄 나잇(Cretan night)이 펼쳐지는 전통마을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이라클리온에서 신 국도를 따라 해변을 등지고 산으로 올라가기를 1시간여, 카토 카루자나(Kato Karouzana) 마을에 이르자 뜨거운 축제 열기에 절로 흥이 난다. 연신 술잔을 들고 ‘야마스(위하여)’를 외치는 사람들, 리라 반주에 맞춰 한데 어울려 군무를 즐기는 사람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앤소니 퀸이 해변가에서 춤추는 모습처럼 그들은 그렇게 밤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식습관은 독특하다. 우선 식사시간이 매우 불규칙적이다. 아침을 거르거나 늦게 먹고 점심은 2~3시쯤, 저녁은 9시쯤 먹기도 한다. 그리고 프랑스인들 못지않게 느긋하게 먹는다. 한번은 그리스인들과 어울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밤 11시반이 됐다. 먹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졸린 시각, 그들은 비로소 밤의 향연에 돌입한다. 그리스인들은 한국인 못지않게 코가 비틀어지도록 술을 즐긴다. 새벽 2~3시까지 밤을 즐기다가 다음날 아침 멀쩡히 7시까지 출근을 한다나.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 그리스인에게 “이런 삶을 즐기는 이유가 있나?”라고 묻자 “없다. 그저 그리스 스타일일 뿐(It's Just Greek style)”이라고 능청스럽게 답한다. 

크레타 사람들은 장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크레타섬 말리아 지역에서 쿠킹클래스로 유명한 칼립소 호텔 & 레스토랑(www.hotel-kalypso.com)을 운영하는 크리스 베네리스씨는 “장수의 비결은 생선, 야채를 기본으로 하는 식단 때문”이라며 “이 외에도 올리브, 쌀, 건포도 등과 오징어류의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고 설명한다. 듣고 보니 시큼 짭조름한 올리브 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크레타에 있는 올리브나무만 3000만 그루, 크레타인 1명이 연간 섭취하는 올리브는 25kg. 별것 아닌 것 같은 올리브가 바로 장수의 비결이고 크레타인들의 암,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일등공신이다. 이같은 이유로 현재 크레탄 다이어트(Cretan diet)가 전세계적으로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how to get there

에게해를 가르고 둥둥 떠 가는 호텔

크레타에 가는 방법은  항공과 페리 두 가지다. 항공의 경우 그리스 양대 국적사인 올림픽항공과 에게안항공이 아테네와 테살로니키로부터 정기편을 운항하며, 여름 성수기에는 유럽 항공사들이 전세기를 운항하기도 한다. 항공으로 이동하면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되는 이점이 있지만 요금이 비싸다는 것과 수속 과정의 번거로움 등 단점도 많다.
반면 카페리 미노안라인(www.minoan.gr)의 경우, 아테네 남부 피레우스 항구에서 오후 9시 출발해 이라클리온에 다음날 오전 6시에 도착하는 효율적인 일정도 있다. 65~115유로면 등급별로 침대방을 이용할 수 있고, 많은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방법으로 갑판 승선 요금인 40유로만 지불하고 침낭을 챙겨와 복도에서 잠을 청해도 된다. 배 안에는 식당과 바, 수영장, 자쿠지 등 크루즈에서나 볼 수 있는 시설도 갖춰져 있다.
한편 크레타 섬은 항구도시 위주로 버스 시스템이 발달돼 있어 편리하고, 렌터카 업체도 곳곳에 있어 이용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1 쿠킹클래스로 유명한 칼립소호텔&레스토랑  2 속을 비워낸 토마토에 쌀을 채워넣어 찐 그리스 전통요리. 이외에도 문어, 돼지고기 요리 등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3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는 전통악기 리라를 연주하는 모습  4 크레탄나잇에서 관객과 공연단이 일체가 돼 춤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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