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즈벡 원정기①타슈켄트-타슈켄트 추일서정
나의 우즈벡 원정기①타슈켄트-타슈켄트 추일서정
  • 트래비
  • 승인 2008.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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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즈벡 원정기①
타슈켄트 추일서정

햇빛 쨍할 때 인천을 떠난 비행기는 해가 구름 밑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서서히 중국 대륙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시안을 지나면서부터 항공 네비게이션에 짙은 황토색 영역이 점점 넓어지더니, 이내 광활하게 펼쳐진 타클라마칸, 고비 사막에 들어선다. 이제 한두 시간 정도만 지나면 ‘스탄’ 형제들이 꽉 잡고 있는 중앙아시아에 다다를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이 형제의 땅 맨 중앙에 위치한다. 키르기기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그리고 아랄해로 둘러싸여 동서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모습이 상공에서 내려다본 우즈벡의 실루엣이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거점도시였던 곳, 그보다 훨씬 더 과거에는 실크로드의 기착지이자 오아시스였던 곳. 지금 우리가 지나가는 길도 수천 년 전 카라반과 낙타들이 비단을 싣고 오갔던 그 길일 것이다. 물론 수만 피트 고공의 하늘길을, 낙타의 걸음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글·사진  도선미 기자 
취재협조  대한항공 kr.koreanair.com, 태림투어 02-771-3332


석국(石國)의 아침

떠나기 전날 하루 종일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졌던 한국 날씨와 마찬가지로 이곳 타슈켄트 역시 오랜만에 내린 비로 제법 쌀쌀해져 있다. ‘스탄형제들’로 사면이 둘러싸인 우즈베키스탄은 완전한 대륙성 건조 기후다. 봄, 가을 기온은 대체로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한여름에는 낮 최고 기온이 섭씨 50도를 웃돌고 겨울에는 밤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뚝 떨어질 정도로 연교차가 심하다. 그런 탓에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특히 9월부터 11월 초순에 이르는 동안은 농업국가인 우즈벡의 바자르(시장)가 가장 풍성해지는 시기이니만큼 우즈벡 여행에는 최적기랄 수 있다.

타슈켄트는 천산산맥 지류에서 흘러나온 치르칙강을 젖줄 삼아 형성된 오아시스 도시다. 실크로드 시대에는 중간교역지로 명성을 날렸으며 특히 보석 세공으로 유명해 ‘돌의 나라’라는 뜻의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우리가 배운 세계사에선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석국(石國)’이 바로 타슈켄트다. 

현재의 타슈켄트는 옛 기억을 거의 소진한 듯 보인다. 1966년 있었던 대규모 지진으로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소실된 탓이 크지만 소비에트 연방 시절 정비된 신시가지의 세련미,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등교하는 청년들의 경직된 표정이 오랜 과거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 도시를 뒤덮은 아름드리 가로수에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토요일 아침 한산한 거리에는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하늘’과 같은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쓸쓸함이 감돈다. 이 쓸쓸함이 바로 러시아와 공산주의의 냄새가 여전히 배어 있는 현대 타슈켄트의 과도기적인 분위기다.

“당신은 항상 제 가슴속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무명용사의 묘, 무스타낄릭광장

하지만 이쪽에서 먼저 “헬로”라고 인사를 건네거나, 카메라를 들이대며 웃어 보이면 우즈벡 사람들은 금세 환한 표정을 짓는다. 이슬람 국가지만 러시아 제정기 때 이슬람교 억압정책이 있었던 탓에 교조적인 전통이 거의 지켜지지 않은데다, 우즈베키스탄 자체가 130여 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이다. 또 워낙에 옛날부터 유동인구가 많았던 터라 이곳 사람들은 카메라를 피하지도, 이방인을 경계하지도 않는다. 꿀륙 바자르에서 견과물을 파는 소년들의 경우 오히려 사방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아우성치는 통에 기자를 겁먹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이방인들의 눈길을 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시내 중심에 맞붙어 위치한 무명용사의 묘(추모광장)와 무스타킬릭광장(독립광장)에서는 훨씬 다양한 타슈켄트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머리 색깔에서부터 눈동자 색깔까지 각기 다른 조합들로 판이하게 생긴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있다. 동양적인 납작한 뒤통수에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청년들, 한국인이다 싶어 “혹시요” 하고 말을 걸어보면 해독할 수 없는 우즈벡어로 화답하는 사람들, 동냥을 다니면서도 당당하고 즐거운 표정인 집시들까지. 우즈벡에는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우즈벡인들을 포함해, 러시아인, 타직인, 타타르인, 카자흐인, 카라칼팍인, 고려인 등 130여 개의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다. 우즈벡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스탄 형제국들도 마찬가지다. 그 원인은 멀리 있지 않은데, 역시 소비에트의 영향이다. 20세기 초 스탈린 통치 하의 소비에트 정부는 당시 투르키스탄이라는 하나의 국가였던 중앙아시아를 현재의 5개 스탄형제국으로 분리시켰다. 연방 정부 시절에는 임의적인 국경이 무의미했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국경이 굳어지면서 여러 민족들이 정해진 지역 안에 공존해 살게 됐다. 

시민들의 산책로, 데이트 장소 등으로 애용되는 추모광장, 독립광장은 한편으로 지난했던 우즈벡의 현대사를 담고 있다. 추모광장은 ‘무명용사의 묘’라고 불리는데 2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한 병사들을 기리는 곳이다. 돌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는 ‘슬픈 어머니’ 동상 앞에는 일년 내내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이 있어 그들의 희생을 후대에 전한다. 동상 양쪽으로는 우즈벡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회랑이 뻗어 있고 칸칸마다 걸린 거대한 금속 책자에는 결국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김씨, 이씨, 박씨 등 고려인들의 이름도 섞여 있다. 스탈린의 학정에 의해 연해주에서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또다시 전쟁터로 끌려간 그네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쓰라려 온다. 우연히 이곳에 머물다 가는 외지인들은 동상 둘레에 쓰인 문장을 되새기며 읍하는 것으로 헌화를 대신한다. “당신은 항상 제 가슴속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추모광장 안쪽의 오솔길을 지나면 탁 트인 독립광장이 나온다. 주변에는 국회상원, 내각, 재무부 등 청사 건물과 지구본 모양의 동상이 멀찌감치 떨어져 자리하고 있다. 이 광장은 원래 레닌광장이었는데 1991년 우즈벡이 독립을 맞으면서 원래 있던 레닌 동상을 지구본 동상으로, 광장 이름도 레닌 광장에서 독립을 뜻하는 무스타킬릭 광장으로 바꿨다. 조용하고 한적한 이곳은 타슈켄트 시민들의 데이트 장소로, 가족 단위 소풍지로 애용되고 있다.


1 독립을 기념하는 무스타낄릭 광장에는 레닌 동상 대신 지구본 구체에 우즈벡 지도가 새겨진 동상이 세워졌다. 5분 거리에 있는 추모 광장에‘슬픈 어머니’가 있다면 이곳에는‘행복한 어머니’동상이 있어 대조적이다. 2, 3 추모 광장이 무명 용사들의 묘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름이 없어서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무명용사인 것. 넘기다 보면 김,이,박과 같이 익숙한 성씨들에 마음이 한층 참담해진다 4 추모 광장의 슬픈 어머니 동상 앞에는 일년 내내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이 있다. 우연히 이곳에 머물다가는 외지인들은 동상 둘레에 쓰인 문장을 되새기며 읍하는 것으로 헌화를 대신한다“. 당신은 항상 제 가슴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한국에서 꼭 챙겨 가세요

1. 워터스프레이, 자외선 차단제, 모자, 선글라스  우즈벡은 건조한데다 낮에는 햇볕이 강하다. 피부를 위해 준비하세요~.
2. 고추장, 잼  아마 매끼 먹을 분량을 챙겨야 할 듯. 우즈벡 음식은 주로 기름지고, 고소한 편이라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잼은 우즈벡식 바게트빵 리뾰쉬카에 발라먹으면 안성맞춤. 느끼한 기름밥도 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먹을 만하다는 사실! 
3. 충분한 달러  우즈벡에서는 원화 환전이 안 되고 신용카드가 되는 곳도 매우 드물다. 한국에서 달러를 충분히 환전해 가서 현지에서 우즈벡 화폐 ‘숨’으로 다시 환전해야 한다. 1달러에 1,300숨 정도니 1숨은 1원이라고 보면 된다.
4. 지사제  우즈벡 음식은 기름진데, 한국 사람들은 따뜻한 차보다는 냉수를 좋아하니 배탈이 나기 십상. 적당히 챙겨서 만일에 대비하자.


국가 기장으로 알아보는 우즈벡

협동·지식·희생의 상징인 신화 속의 새 ‘후머(XyMo)’주위를 밀이삭(우즈벡 미족의 주식인 빠의 재료)과 목화(제1의 자원)가 감싸고, 후머의 머리 뒤로는 두 줄기 강물과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기장 상단의 팔각별은 공화국의 견고함과 조화를 나타낸다. 안에 있는 초생달과 별은 이슬람의 신성한 상징으로 우즈베키스탄이 이슬람 국가임을 알려준다. 화환에 둘러진 리본은 국기의 3가지 색깔(하늘색, 흰색, 초록색)로 돼 있고, 새겨진 글씨는 우즈벡어로 쓴 우즈베키스탄이다. 전체적으로 국민들의 평화와 행복, 우즈벡의 번영을 기원한다.


1, 2, 3, 4, 5, 6 우즈벡의 얼굴은 각양각색이다.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우즈벡인들을 포함해, 러시아인, 타직인, 타타르인, 카자흐인, 카라칼팍인, 고려인 등 130여 개의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7 타슈켄트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 도시 전체가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광장에 나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연인들


“굳세어라, 금순아!”
지진기념비


타슈켄트 시내를 거닐다 보면 유난히 벽돌 건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천산산맥의 지맥이 닿아 있어 해발고도도 높고(평균480m) 지반이 불안정해 지진이 잦은 탓이다.
타슈켄트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은 바로 1966년 4월26일 5시22분53초에 발생했다. 어떻게 발생 시간이 초씨까지 정확히 기록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겠지만, 리히터 강도 7.5에 이르는 대지진이라면, 그리고 타슈켄트 시내가 바로 그 진원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당시 강진으로 온 도시의 시계란 시계는 한꺼번에 멈춰 정확히 5시22분53초를 가리키고 있었다고 한다. 진원지였던 현재 지진기념비 주변으로 반경 5km 이내는 완전히 초토화됐고 1,000회 이상의 여진으로 구시가지의 문화유산들이 대부분 소실됐다. 25만 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생겨났고 타슈켄트는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생지옥이 됐다. 

역사적인(?) 그날 그 시각은 샤라프 라시도프 거리에 있는 지진기념비에 각인돼 있다. 그 뒤로는 갈라진 땅을 향해 저지하려는 손동작을 취하고 있는 부부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 구조물들은 지진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지진 ‘복구’를 기념하는 것이다. 당시 소련연방의 15개 나라들이 타슈켄트로 모여들어 열성으로 도와준 덕분에 불과 2년 만에 도시가 재건됐다. 동상 뒤편의 벽화구조물은 연방국가들에 대한 우즈벡의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듣기로는 이때가 우즈벡 역사상 최대의 이주를 기록한 시기라니 당시만 해도 소비에트 연방의 유대가 얼마나 굳건했는지 알 수 있다.
우스개 소리를 하나 하자면, 사실 뭔가를 저지한다기보다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듯 보이는 남자와 아이를 들쳐 업고 그를 바짝 뒤쫓는 우리네 ‘금순이’스러운 여인의 모습을 보고 타슈켄트 인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양육비 내기 싫어 도망가는 아버지상!” 타슈켄트의 살인적인 교육비를 비꼬아 얘기한 것이다. 측면에서 보면 애처롭게 엄마 품에 매달린 아기때문에 더 그럴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타슈켄트 사람들의 풍자 솜씨도 보통은 아닌 모양이다. 


1966년 대지진으로 초토화됐던 타슈켄트는 불과 2년 만에 복구됐다. 이 같은‘기적’뒤에는 15개 연방국가들의 도움이 있었다.


삶의 현장? 에누리의 현장!

타슈켄트의 쇼핑거리는 한정돼 있다. 물가가 한국에 비해 현저히 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웃돈을 주고 덜컥 살 만큼 품질 좋은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각종 수공예품, 숄이나 두건 등 견직물, 심심풀이 술안주용 견과류는 부담 없이 구입할 만하다. 단, 이곳 상인들은 실크로드 시대때부터 이미 “세계에서 가장 장사를 잘하는 민족”으로 명성을 떨쳤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격 흥정에는 보다 전투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1, 4, 5, 6 과거 신학교였던 압둘 카심세이흐 메드레세는 현재 정부에서 공인한 솜씨좋은 장인들이 모여 수공예품 명품관을 형성하고 있다 2 젊은이들이 사라진 젊음의 거리‘브로드웨이’에는 매일 수공예품, 그림 등을 파는 바자르가 열린다. 3 타슈켄트 외곽에 위치한‘꿀륙 바자르’에서는 호두, 건포도, 곶감 등 무기농 우즈벡 농산물들을 착한 가격에 만날 수 있다. 또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구역이기도 해서 김치나 된장 같은 한국식품도 구입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 거리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로와 동급인 젊은이들의 거리.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활기가 넘쳤지만 점점 카페들이 사라지고, 덩달아 젊은이들도 사라지면서 이제는 골동품, 수공예품 등을 사고 파는 조그만 바자르가 중심이 됐다. 가이드의 조언으로는 수공예품들은 말 그대로 핸드메이드, 한정판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면 여러 곳 둘러볼 생각 말고 ‘질러야’한단다. 우물쭈물하다 보면 발품만 팔고 빈손으로 돌아가기 쉽다는 것. 하지만 대략 30%는 에누리를 해야 한다. 일행 중 수완 좋은 이는 귀걸이 하나에 10불을 부르던 것을 펜던트와 팔찌까지 얹어‘일거삼득’해내기도 했다. 초상화는 보통 5불에서 10불 정도에 그릴 수 있고, 캔버스 5호 정도 그림은 40불에서 50불에 살 수 있다.

꿀륙 바자르
타슈켄트 외곽에 위치한 꿀륙 바자르는 다른 바자르와 달리 ‘농산물만 파는’ 시장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마지막 일정으로 잡혀 있던 이곳에서 기념품을 대거 구입할 계획을 세워 놓고 부하라의 완소 아이템들을 털레털레 지나쳤던 기자는 엄청나게 후회하고 말았다.
다행히 건포도, 오디 말린 것, 호두 등 우즈벡의 견과류는 싸고 맛이 좋다. 호두는 500g에 5,000숨(숨=원) 정도, 건포도는 그 절반 가격이다. 이외 피스타치오, 아몬드 등도 싸게 팔지만 우즈벡 생산이 아니라 수입해 온 것들이다. 꿀륙 바자르는 또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구역에 있기 때문에 우리 입맛에 맞는 두부, 된장, 그리고 김치까지 구입할 수 있다. 미처 한국에서 구호물자(?)를 챙겨 오지 못한 분들은 현지식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가보시길 권한다.

압둘 카심세이흐 메드레세
시장에서 사는 물건들이 미심쩍다면 압둘 카심세이흐 메드레세에 가보자. 과거 신학교였던 이곳은 현재 정부에서 공인한 솜씨 좋은 장인들이 모여 ‘수공예품 명품관’을 형성하고 있다. 정원을 빙둘러싼 방들마다 민속공예품을 만드는 공방과 전시장, 상점을 겸하고 있다. 세밀화가 그려진 작은 함과, 100년 이상된 호두나무로 만든 코란 받침대 등이 추천할 만하다. 세밀화 함은 손바닥만한 것에 한 사이즈 작은 것이 포함된 ‘1+1’이 13불 정도이고, 코란받침대는 크기와 색상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시집 정도의 책을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이 25불~30불 정도다. 이 받침대는 특히 변신 기능(?)이 있어 매우 유용, 아니 신기하다. 국민친선 광장 뒤 국회의사당 옆에 위치하며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개장한다.

<< 우즈벡 여행지침서

1. 현지에서 한꺼번에 너무 많이 환전하지 말 것!
숨의 최고액권은 1,000숨이다. 우리나라 돈 1,000원에 해당하는 돈이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환전하면 짐만 될 뿐. 또 물건을 살 때 숨을 안 받고 달러만 받는 곳도 많아서 다 쓰고 오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각지 호텔이나 숙소에 환전소가 있으니 그때그때 환전하는 게 상책. 

2. 아름다운 집시들을 조심하라!
우즈벡에는 집시족들이 많은데, 항상 아이들과 같이 다닌다. 신기하고 귀엽다고 애정이 듬뿍 담긴 눈길을 보냈다가는 그들의 끈질긴 구애(정확히는 ‘숨’을 향한)를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3. 음식을 기다릴 땐 인내를!
우즈벡은 외식문화가 부족해서 그럴싸해 보이는 음식점들은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 무엇보다 음식이 무지하게 늦게 나온다는 것. 메뉴 하나 나오는 데 20~30분은 기본이다. 이유는 역시 외식이 특별한 경험인 만큼 천천히 먹으면서 즐기려고 하기 때문.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우즈벡에서는 우즈벡 관습을 따라야지 어쩌겠는가. 인내하고 또 인내하자.

4. 택시를 탈 때는 미리 요금을 흥정할 것!
보통 3,000~4,000숨이면 20~30분 거리는 갈 수 있다. 하지마 미리 흥정하지 않고 무작정 목적지만 불렀다간 바가지를 쓸 수 있다. 택시가 부담스럽다면 마을버스를 타거나 전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비용은 300숨 정도. 재미있는 것은 우즈벡 마을버스들은 대부분 대우 자동차인 ‘다마스’라는 것.

5. 타슈켄트 가는 길
대한항공(KE941) / 매주 화·금·일 16:50분 출발, 20:20분 도착(현지시간)
아시아나항공(OZ573) / 매주 월·화·금 17:20분 출발, 21:10분 도착
우즈베키스탄항공(HY512) / 매주 화·금 11:15분 출발, 14:55분 도착
                         (HY514) / 매주 수 22:15분 출발, 01:55분 도착
* 인천에서 타슈켄트까지 비행시간은 7시간이고 한국과의 시차는 4시간이다.    

 


<< 타슈켄트에서 부하라준비하기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에서 워밍업
부하라는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우즈벡의 다양한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 도시다.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키워드가 ‘이슬람’이라면, 두 번째는 바로 ‘아미르 티무르’다. 중앙아시아나 중동의 역사에는 상대적으로 무지한 우리로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의 5대손이 바로 인도의 무굴제국의 시조이자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타지마할을 세운 바부르 왕이라는 것. 어쩐지 사돈의 팔촌을 만난 기분이지 않은가! 현재 대통령인 이슬람 칼리모프가 레닌의 잔영을 지우기 위해 티무르 왕을 전략적으로 영웅화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14세기 중앙아시아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장본인인 만큼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우즈벡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부하라 가는 길
1. 항공편  타슈켄트국제공항에서 국내선을 이용한다. 06:10분 출발(HY1051), 08:50분 출발(HY1321), 19:10 출발(HY1327)이 있으며, 퍼스트석 $102, 이코노미석 $63, 비즈니스석 $43. www.uzairways.com

2. 기차편  타슈켄트 중앙역(북역)을 이용한다. 매일 08:15분 출발이며 14:45에 부하라역에 도착한다. 객실은 룩스(Lux, 고급석/ 3만7,988숨), 캐빈(Cabin/2만3,477숨), 2칸캐빈(2class cabin/1만6,357숨), 일반석(econom class/1만200숨)으로 구분된다.(2008년 10월26일 기준) www.uzrailpass.uz에서 예약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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