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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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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제주에는 걷고 싶은 길이 있다. 안개 자욱한 제주의 오름과 청명한 제주의 해안가. 그렇게 걷다 보면 문득 내 안에서 나를 만난다. 발끝에서부터 살아나는 감각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느리게 호흡하고 있는 나를.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민희   취재협조   www.visitkorea.or.kr  


"때로는 초라한 마을이, 때로는 끝없이 돌담만이 이어진‘볼 것 없는’길이지만 그간 흙 한번 밟을 일 없고, 청명한 바람 한번 맞을 일이 드물었기에 그저 행복할따름이다. ”

제주, 느리게 걷기

사실 이번 출장까지 더해서 제주만 6번째 가는 터라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흔히들 가는 관광지의 부산함, 생각지도 못하게 중산간도로에서 만나는 목가적인 풍경 그리고 마라도와 우도에서의 하룻밤을 통해 느낄 것은 다 느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주의 올레 길을 걷고 난 오늘, 이전까지 제주에서의 모든 여정은 단지 작은 몇몇의 점을 찍은 것에 불과했음을 고백한다. 또 렌터카의 시속 60km로는 제주를 볼 수는 있겠지만 느낄 수는 없다고 감히 말해 본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검은 돌담, 이름도 없는 길 위에서 만난 바람, 불청객이라 생각했던 안개 속에서 트인 숨통, 오솔길 너머에 넘실대던 짙푸른 바다. 평범하고 소박한 풍경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풍경이라더니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임을 제주의 길 위에서 깨달았다. 

하지만 뜨내기들의 발자국만이 무성한 관광지만 맴돌던 이들에게는 이렇게 단순한 ‘걷기’조차 쉽지가 않다. 지금껏 ‘어디’로 가야 할지만 생각했지, ‘어떻게’ 갈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던 탓이다. 제주올레는 그런 이들에게 걷고 싶은 길을 안내한다. 네비게이션도, 지도도 없이 떠나는 여정. 때로는 방향감각을 잃어도 좋고, 무작정 주저앉아도 좋을 길 위에서 묵묵히 걷다 보면 비로소 제주의 속살을 만질 수 있다. 

“제주도에는 지금도 충분히 많은 관광지가 있지만 대부분은 점을 찍는 관광에 불과해요. 그렇게 다니다 보면 제주의 모든 것을 다 본 것 같고, 사람들은 금세 ‘이제 제주에서는 더 이상 볼 것이 없어’, ‘제주 여행은 2박3일이면 충분해’라고 이야기하죠. 저는 그게 싫었고, 사람들이 좀더 제주를 가까이에서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자동차로 하는 관광이 점(點)의 관광이라면 제주올레는 선(線)의 관광이에요. 자동차로는 10분이면 이 지점, 저 지점 빠르게 움직이며 양으로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에 비해 올레 길은 몇 시간이고 걸으며 더 진하게, 더 흙에 가깝게 제주의 속살에 다가갈 수 있어요.”

작년부터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만들고 트레킹 코스인 올레 코스를 개발해 온 서명숙 이사는 산티아고 까미노(순례 길)에서 제주를 생각해냈다고 했다. 그리고 제주의 옛길, 사라진 길, 다정한 올레들을 되살려 언제고 걷고 싶다는 바람으로 지금까지도 길을 내고 있다. 하나같이 ‘안티 공구리(아스팔트 포장을 반대함)’와 환경 보호에 초점을 맞춘 길이다. 때로는 초라한 마을이, 때로는 끝없이 돌담만이 이어진 ‘볼 것 없는’ 길이지만 그간 흙 한번 밟을 일 없고, 청명한 바람 한번 맞을 일이 드물었기에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제주, 생소한 풍경

제주올레의 첫날은 제주의 오름과 해안을 두루 볼 수 있다는 제1코스를 걷기로 했다. 여기서 올레란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 말 그대로 남의 집 대문을 기웃거리듯 자연을 기웃거리고, 때로는 돌담길을, 때로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 것이 여정의 전부다. 하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것만은 아니다. 길의 시작에서 호젓한 분위기에 취해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말미오름을 앞에 두고 ‘쏙’ 들어갔으니. 계절은 벌써 겨울을 향해 치닫건만 이마엔 땀이 맺히고, 마치 걷는 법을 잃어 버렸던 것처럼 발끝에서 전해 오는 감촉이 생소하다. 

"중간산을 봤다고 오름을 안다고 얘기하지 말라. 그대가 안개를 아느냐. 비를 아느냐. 구름을 보았느냐. 바람을 느꼈느냐. 그러니 침묵해라."

그렇게 십수 분을 걸었을까. 거칠어진 숨소리를 잠재울 겸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곧추세우니 앞으로는 너른 억새밭이요, 안개 너머 아래로는 마을이 올망졸망하다. 끊어진 듯 이어진 억새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이따금 안개 너머로 소들이 풀을 뜯고, 고운 능선 아래로 말들이 달린다. 제주를 그리도 많이 왔건만 이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한 풍경이다. 

제주가 좋아 가족과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제주에서 홀로 사진을 찍었던 고(故) 김영갑.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모습을 담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도 몇 번이고 사진을 찍으며 오름을, 바람을, 안개를 가슴에 새긴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 온다. 그저 숱한 수다와 가벼운 환호성으로 이다지도 고운 풍경을 흘려 보내고도 제주를 안다 했던 허언(虛言)이 부끄러워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촉촉이 젖은 대지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한 오름의 능선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제주의 날씨는 며느리도 모른다’더니 종일 자욱한 안개로 뒤덮인 전날과 달리 둘째 날은 햇볕이 쨍하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이 시린 해변이 보고파 외돌개와 법환포구, 월령포구를 잇는 제3코스를 선택했다. 걷는 내내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걸으니 안개낀 오름을 오를 때와는 또 다른 느낌. 들뜬 기분에 짐짓 여유를 부리다 일행과 멀리 떨어졌지만 급할 건 없다. 느리게 걸어도, 걸음을 멈추어도 독촉하는 이 없으니. 

그저 풀포기에 서걱거리는 내 발소리나 들으며 마음껏 상념에 빠져도 좋다. 버리고 싶은 생각, 도시의 빠른 속도에 지쳐 버린 마음, 타인에 포위된 일상. 이런저런 생각에, 걷다가 길도 몇 번 잃었다. 올레 길에는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는 물론, 팻말도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한두 번 길을 잃는 것쯤은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올레 길에서는 꼭 보아야 할 풍경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가는 곳이 길이요, 보는 것이 곧 제주인 것을. 하지만 정 불안하다면 나무와 돌에 새겨진 이정표에 하나하나 눈도장을 찍도록 한다. 지도 한 장 없이 걷는 길이기에 드문드문 나무 가지에 리본을 묶고, 길가에 푸른색 화살표를 그려, 가야 할 곳을 알려주곤 한다.

그렇게 몇 시간을,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마을과 마을 사이로 좁다랗게 이어진 길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코스의 마지막인 월령포구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얼굴은 인정없이 내리쬐는 햇볕에 붉게 달아올랐음에도 살짝 아쉽다. 지나온 길에 두고 온 무수한 발자국과 생각의 허물이 생각나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난 길이 궁금해 포구 너머를 기웃거린다. 

언젠가 삶에 무수한 갈래길에서 방황하고 마음이 산란해질 때면 홀연히 제주로 날아가야겠다. 어디로 갈지 고민할 필요 없이 바람에 나부끼는 리본과 발길에 머무는 화살표가 시키는대로. ‘구불구불 불편하여도, 갯바람에 그을리며 흔들리며 걸어도 흙냄새 사람냄새 맡으며’ 그때는 지금보다 더 천천히 걸어야지. 그리고 더 많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더 깊이 호흡할 테다.


제주올레 완전정복

제주올레는 현재 117km에 달하는 10개의 코스가 만들어져 있으며 이달 말 11번째 코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코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과 올레 길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숙소에 대한 정보는 제주올레 홈페이지(www.jejuolle.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코스  말미오름에서 광치기 해변까지(약 15km)
제주올레 1코스는 성산읍 시흥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종달리 일출봉을 경유, 광치기 해안까지 이어진다. 제주의 오름과 해안을 두루 돌아볼 수 있는 코스로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주요 경로 시흥초등학교-말미오름-알오름-중산간도로-종달리 회관-목화휴게소-성산갑문-광치기 해변

2코스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약 14.4km)
2코스는 해안-도심복합올레로 해안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금막과 난대림과 천연기념물 5종이 서식하는 천지연폭포 위 산책로를 통과한다. 누구나 힘 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문화-생태 올레로 많은 올레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요 경로 쇠소깍-소금막-제지기오름-보목항구-구두미포구-서귀포 보목하수처리장-서귀포KAL호텔-파라다이스호텔-소정방폭포/ 소라의 성-서귀포초등학교-이중섭 화백 거주지-천지연폭포 생태공원-남성리 마을회관 앞 공원-남성리 삼거리-찻집 솔빛바다

3코스  외돌개에서 월평포구까지(약 15.1km)
외돌개를 출발하여 법환포구와 제주풍림리조트를 경유해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총 15.1km의 해안 올레로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 길, 수봉로와 수봉교를 지난다. 수봉로와 수봉교는 3코스 개척시기인 2007년, 올레지기인 김수봉씨가 염소가 다니던 길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길과 다리를 만들었다고. 이를 기념해 수봉로와 수봉교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주요 경로 외돌개 찻집 ‘솔빛바다’-외돌개-호근동 하수종말처리장-수봉로-법환포구-월드컵 사거리-서건도 바다 산책길-수봉교 태우-제주풍림리조트-강정사거리-강정포구-안강정-월평포구

4코스  월평포구에서 대평포구까지(약 17.6km)
제주올레 4코스는 월평포구를 시작해 대평포구까지 이르는 포구 올레다. 특히 4코스의 종점 대평리는 자연과 어우러진 여유로움과 편안함으로 가득한 곳으로, 안덕계곡 끝자락에 바다가 멀리 뻗어나간 넓은 들(드르)이라 하여 ‘난드르’라고도 불리는 마을이다. 마을을 품고 있는 ‘군산(신산오름)’은 동해용왕아들이 스승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주요 경로 월평포구-굿당 산책로-마늘밭-대포포구-시에스 호텔-배릿내 오름-돌고래쑈장-중문해수욕장-해병대길-논짓물-대평 포구

5코스  대평포구에서 화순항까지(약 8,81km)
10km도 채 되지 않는 코스지만 계곡을 넘고, 산을 넘어 가는 길이라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물질, 조슨다리, 기정길, 창고천길 등 5코스의 거의 모든 길은 30여 년 동안 그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길이라고. 그만큼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때묻지 않은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주요 경로 대평포구-조슨다리 위-황개천 입구 동산-화순선사유적지-진모르 동산-가세기 마을 올레-화순 귤농장 길-화순항

6코스  화순선주협회사무실에서 하모 해수욕장까지(약 14km)
해안과 초지가 어우러진 길. 송악산에 올라 걸어서는 갈 수 없는 마라도를 눈에 담고, 2차대전 당시 일본이 남제주군 대정읍 안덕면에 만든 알뜨르 비행장을 돌아볼 수 있는 코스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강추.

주요 경로 화순선주협회사무실-화순해수욕장-산방산 옆 해안-용머리 해안-산방산 입구-설큼바당-사계포구-마라도 유람선 선착장-송악산-말 방목장-알뜨르 비행장 해안도로-하모 해수욕장

7코스  광치기 해변에서 온평포구까지(약 17.2km)
7~10 코스는 그 동안 끊겨 있던 쇠소깍에서 성산 광치기 해안을 잇는 길이다. 특히 7코스는 중간산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수산봉에 오르면 1 코스 시점인 시흥리부터 종점인 광치기 해변까지 아름다운 제주 동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주요 경로 광치기 해변-식산봉-성산 하수종말처리장-대수산봉 입구-대수산봉 정상-대수산봉 아래 공동묘지-혼인지-온평포구

8코스  남원포구에서 쇠소깍까지(약 15km)
일출봉이 보이는 남원포구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산책로로 꼽히는 큰엉 경승지 산책길을 지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쇠소깍까지 바당 올레와 마을 올레를 오감으로 느끼면서 걷는 길. 사라지고 묻히고 끊어진 바당 올레길 3곳을 복원한 덕에 난대 식물이 울창한 숲을 지나 바다로 나아가는 특별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주요 경로  남원포구-큰엉 경승지 산책로-신그물-동백나무 군락지-위미항 조배머들코지-넙빌레-공천포 검은모래사장-망장포구-예촌망-효돈천-쇠소깍

9코스  온평리에서 당케포구까지(약 22km)
제주올레 9코스는 중산간 올레길이 대부분인 코스로, 양옆에는 오래된 제주 돌담과 제주에 자생하는 수목이 울창한 중산간 길(14km)을 지나면 푸른 바다와 푸른 초장이 함께 어우러진 바다목장 길이 열려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코스의 마지막에는 넓게 펼쳐지는 표선 백사장과 포구가 장대한 모습을 드러낸다고.

주요 경로 온평리-온평도댓불(옛날등대)-중산간 올레-난산리-통오름-독자봉-삼달리-김영갑갤러리-신풍리-신풍,신천 바다목장 올레-신천리마을 올레-하천리 배고픈다리-표선1, 2백사장-당케포구

10코스  표선 당케포구부터 남원포구까지(약 23km)
10월25일에 개장한 따끈따끈한 10 코스는 총길이 23km로 현재 코스 중에 가장 길다. 남원 중산간 마을과 망오름까지 포함된 거리라 다소 길지만 중간중간 단축 가능한 샛길이 있으니 각자의 체력과 취향에 맞춰 선택이 가능하다.

주요 경로 표선 당케포구-방애동산-갯늪-거웃개-흰동산-앞머들-너브름-한지동-거문머처-가마리개-멀개-가는개-샤인빌 바다산책로-토산새동네-망도름-영천사-송천 삼석교-태흥2리 교차로-의귀천-햇살좋은 쉼터-남원해안길-남원포구



제주올레 미리 준비하세요

신발  제주올레는 걷기 위한 길이니 발 편한 운동화를 준비하는 것이 기본. 특히 여름철에 바닷가를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샌들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비옷과 바람옷  언제 비와 바람이 불어 닥칠지 모르는 제주에선 날씨가 아무리 화창해도 비옷과 바람을 막아 줄 바람옷을 꼭 챙겨야 한다. 우산은 거친 바닷바람에 뒤집어지기 십상이라고.
덧옷  여름철이 아니라면 보온을 위한 긴팔 덧옷이 꼭 필요하다.
약간의 현금  걷는 도중 만나게 되는 제주 할망(할머니들)의 구멍가게에서 카드를 내미는 실례를 범하지 말 것. 약간의 현금을 준비하도록 하자.
문의  사단법인 제주올레 064-739-0815, www.jejuoll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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