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경북 상주-성석제 작가와 떠난 상주 문학기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12.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석제 작가와 떠난 상주 문학기행
 이야기 따라 떠나는 유쾌한 여정

사람과 공간이 닮았다는 이야기는 작가 성석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고향인 경북 상주, 그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도시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작가의 맑고 단아한 품성과 꼭 닮아 있었다.

글·사진  Travie writer 류진   취재협조  문학사랑, 교보문고

작가와 떠나는 문학기행 날 아침은 공교롭게도 매번 비가 내린다. 박범신 작가의 강경 기행도, 도종환 시인과 떠난 옥천 기행도 아침부터 내리는 부슬비를 맞으며 출발했다. 이번에도 역시 먼 길 떠날 채비를 마친 상주행 버스 창문에 빗방울이 이슬같이 맺혔다. 그렇다고 해서 비가 여행의 흥에 찬물을 끼얹지는 못했다. 등산복 차림을 하고 단풍놀이 떠나듯 나온 금슬 좋은 부부의 얼굴에도, 곱게 차려입은 모녀의 다정한 모습에도 설레는 표정이 역력하다. 유쾌하고 따뜻한 글 덕분에 유난히 팬이 많은 성석제 작가와 함께 떠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색이다. 

약 세 시간 정도를 내달린 버스는 빗방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닿는다. ‘상주는 맑음’이었다. 한껏 다행스러운 얼굴로 버스에서 내린 작가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앞장선다. 그 뒤를 선생님을 졸졸 좇는 유치원생처럼 따라 밟는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그의 발길이 닿는 곳과 입술이 이야기하는 곳에 내어 맡긴다. 

고개마다 서린 이야기를 줍다 ‘남장사’ 

성석제의 소설에는 유난히 ‘고개’가 많이 등장한다. 그 ‘고개’의 무대가 바로 그가 제 집 드나들 듯 오가는 남장사의 궁중암 가는 길이다. 남장사가 특별한 것은 보물 990호인 ‘비로자’나 ‘철불 좌상’ 등의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개마다 숨어 있는 옛이야기가 진짜 이유다. 그 이야기를 ‘줍기 위해’ 작가는 이곳을 찾는다.
낙엽이 눈처럼 소복이 쌓인 가을 길을 걸으며 그는 선뜻 마이크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문화재 해설사 대신 뜰 안에 있는 국보들과 남장사의 유래, 이곳에 얽힌 추억들을 함께 풀어 놓는다. 그 친절하고 구수한 이야기에 모두 귀를 기울인다. 과연 재담꾼답다. 

“평지가 평안을 상징한다면, 고개는 고행입니다.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지요.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결국 갈등을 극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가 고개를 넘으며 갈등을 극복하는 소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에 등장하는 고개길이 바로 이 궁중암 가는 길이다. 어린 시절 자주 들어온 증조할아버지 이야기도 이 고개길 위에 서려 있다.

“이제 부자는 큰 고개, 작은 고개를 다시 넘어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달이 워낙 밝아서 홰도 필요 없고 남포도 쓸 일 없다. 아들은 앞에서 빈 수레를 끌고 아버지는 곰방대를 빨며 뒤를 따른다. (중략) 월색이 명랑하다. 기러기는 떼 지어 구만 리 장천을 날아가고 어디선가 부엉이가 운다. 백리 길을 쌀 두 가마니를 싣고 가서 장 바닥에 앉았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야 임자를 만나 쌀을 팔았다. 보리밥에 된장을 얹고 수건으로 싸맨 도시락을 부자가 마주 앉아 먹고 며칠 뒤 문중 시제에 소용될 물품을 사 들고 오는 길이다. (중략)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생각에 잠겨 길을 걷는다. 부엉이가 운다. 운다.”
소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중에서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마저 고요한 남장사는 그렇게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발자취를 따라온 작가와, 작가의 뒤를 따른 객들을 너그러이 품에 안는다.

인심 푸근한 ‘곶감 마을’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곶감 마을 상주는 마을 어귀마다 햇빛을 꼭 닮은 감나무 일색이다. 가지가 약한 감나무는 열매를 따기 좋게 키를 낮추어 키우기 마련인데 키만 멀뚱히 큰 장다리 감나무들도 곳곳에 보인다. 누군가 까치밥을 위한 푸근한 마음 씀씀이라고 귀띔해 준다. 나무뿐 아니라 집집 처마 밑에도, 공터 커다란 창고에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실과 고리에 꿴 이 감들은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상주의 청청한 공기를 마시며 발효된다. 곶감 표면에 서린 하얀 눈은 그 과정에서 생긴 달콤한 자연 설탕이다.

고향을 찾은 성석제 작가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이 귀한 곶감을 아낌없이 내어준 덕분에 말로만 듣던 명품 상주 곶감을 마음껏 맛볼 수 있었다. 어른 주먹만한 홍시도 반으로 쫘악 갈라내어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작가는 감에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을 펼쳐 놓는다. 

“상주에서는 집집마다 둥시라는 감을 실에 꿰어서 처마 밑에 걸어 놓아요. 겨우내 말리는 거죠. 행여 아이들이 따 먹을세라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는 어른들이 무서워 먹고 싶은 욕구를 참고 또 참는데, 그게 참 어렵잖아요. 본의 아니게 그 달콤한 향에 미혹돼 자꾸 그 앞을 지나게 되더군요. 허허. 한번은 몰래 감을 따 먹다가 불을 낸 적도 있었어요. 할머니가 감 따 먹는 손자를 쫓아 부지깽이를 들고 부리나케 쫓아 나오다가 닭장 초가지붕 짚에 불이 붙어 버린 거죠. 그날 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소방차가 들어왔었습니다. 어린 나는 너무 무서워서 숨어 있었고, 불은 누나가 낸 걸로 했던 것 같아요. 참으로 아찔하고도 웃음 나는 추억이지요.” 

300년도 훨씬 넘은 감나무  10그루를 자랑하듯 골라낸다. 외남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먹은 그 감나무들은 지금도 여전히 수천 개의 열매를 맺는다고.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먹었을 감을 지금도 여전히 맛볼 수 있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감꽃, 풋감, 홍시, 곶감 그리고 껍질까지 하나 버릴 게 없는 실속 있는 감처럼 그와 함께하는 실속 가득한 여행도 무르익어 간다.

상주 선비의 정신적 고향 ‘도남서원’

도남 서원은 영남 지역에서도 대표 서원으로 유명하다. 유교 문화가 번성한 시기에 정몽주와 이황, 유성룡 등 8현을 모신 곳이기도 하다. 상주에 사는 선비들의 정신적 터전이지만, 작가에게는 이곳 역시 이야기를 채집하는 공간이다. 소설 <저기가 도남이다>는 드넓은 들판을 휘감는 낙동강 줄기가 가슴마저 시원하게 하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즈가 바로 도남이라. 저재작년에 우얜기 비가 바가지로 퍼붓디 니리더이 집 뒤에서 계곡물이 벌떡 인나선 거 맨구로 쳐들어온께 마구에서 자불고 있던 소가 마카 떠니리 간 기라. 내가 오도바이 주타고 오십 리를 쪼치가이, 도남서 소를 건지내 놨네. 토깨이 맨구로 눈이 똥그라이 생긴 사람이. 고마워여, 여 소가 바로 우리 소라 이칸께 정그가 있니야 카는 기라. 그래미 여분때이에 서가이고 구깅하던 순깅 보고 심판을 지달라카네. 내가 그래 고마 감을 지러미, 아 이 만니리 소가 술 처먹고 지정한다고 강물에 시엄 처러 들어갔다가 떠니리간께 우리에 있던 소가 마카 떠니리간 기다, 그 귀때기를 보라 카이, 순깅이고 토깨이고 입수바리 띨 생각도 못하는 기라. 봐라, 즈가 바로 그 도남이다이.”
소설 <저기가 도남이다> 중에서

직접 소설을 낭독하던 작가는 경상북도 내에서도 독특하기로 소문난 상주 사투리가 진하게 배어난 소설의 대목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마침 이 대사를 맛깔스럽게 읽어 줄 부산 출신의 동행객이 선뜻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시를 읊듯 점잖게 읽어 내려가던 작가와는 달리 억양까지 실감나게 쥐었다 놓는 낭독자 덕분에 모처럼만에 모두 한마음으로 웃는다. 붉은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소풍을 나왔다던 한 마을 주민도 뜻밖에 만난 반가운 손님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며 덩달아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읊어 준다. 그야말로 문학의 향기가 가득한 시공간이다. 


상주를 한품에 안다 ‘경천대’

낙동강 1,300여 리 물길 중 경관이 가장 빼어나기로 소문난 ‘낙동강 1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경천대는 303개의 야트막한 통나무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등을 살짝 적시는 가벼운 트레킹 끝에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숲 사이로 가을걷이가 끝난 황금빛 평야와 그 주위를 포근히 감싼 낙동강 물줄기가 이루는 시원한 풍경을 만난다. 뒷짐을 지고 묵묵히 오르던 작가도, 숨을 헐떡이며 겨우 전망대 정상에 오른 아이도 한마음으로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이다. 경천대 전망대 꼭대기에 올라 그 비옥한 평야를 바라보고 있으면 상주가 풍요와 평화가 넘치는 고장이라는 것이 비로소 가슴에 와 닿는다. 쌀과 누에고치, 곶감이 많이 난다고 하여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 이름 붙여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도 상주는 들과 산, 집 안에 먹을 것 천지인 곳이다. 낙동강을 비롯해 수많은 저수지와 하천에서 공급되는 풍족한 물로 키운 쌀은 전국 7위 생산량을 자랑하고, 각종 곡식이 끊이지 않는 밭과 나무들은 사시사철 감, 밤, 호두, 사과, 대추에 산딸기까지 끊이지 않고 열매를 맺어낸다.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여유가 넘치고 다툼이 없어 인심도 좋다. 그 흔한 공장도 없어 오염마저 없는 그야말로 나무랄 데 없는 도시다. 

가슴 탁 트이는 전망대 외에도 경천대에는 야영장, 수영장, 눈썰매장을 비롯해 드라마 <상도> 세트장 등의 놀거리와 볼거리가 많다. 특히 108기의 크고 작은 돌탑이 늘어선 산책로와 황톳길은 경천대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 그 산책로 끝에 자리한 풍광 좋은 정자에 앉아 잔잔하게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작가가 내려놓은 경천대에 얽힌 추억을 떠올린다. 

“지난 여름에 상주에서 자전거 타기로 피서를 대신했어요. 평평한 땅이 많은 상주는 자전거 도시로도 유명하거든요. 한번은 경천대 쪽을 가는데, 지나는 길에 할머니들이 정자에 그득히 모여 앉아 있는 거에요. 잠시 멈춰서 할머니들의 휴식에 동참하는데, 한 분이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며~’ 노래를 부르시더군요. 그 꽃같이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설렘을 여전히 가슴에 품은 채 노래에 취한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가을이 물씬 묻어나는 풍경 ‘공검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저수지로 유명한 공검지는 지금은 근처에 오태 저수지가 생기면서 그 역할을 다 했지만 ‘공갈못’이라는 별명과 함께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곳. 작가는 이 공검지 주변에 있는 집을 쌀 닷말에 빌려 첫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를 썼다. 익히 알려진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해 <본래 면목> 등의 이야기도 호수 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이다. 해진 논둑길을 찬찬히 걸으며 마지막 추억까지 아낌없이 내어놓는 작가의 뒤를 따라 하루를 정리한다. 바람에 채 날아가지 못한 민들레에서도, 물이 다 마른 저수지 늪에서도 가을 냄새가 물씬 배어 있다.
재담꾼이 풀어놓은 귀한 이야기 속에서 여행한 상주에서의 하루는 그가 언젠가  ‘단골집’을 찾다가 발견한 어느 식당에서 써 내려간 소회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나는 거기서 편안함을 느꼈다. 모두가 편안해하고 있었다. 이름은 몰라도 낯익은 사람끼리 편안하고, 골동품까지는 아니고 쓰다가 낡아 버린 소품들이 편안하고, 느리게 가는 시간이 편안했다. 편안한 도취가 이어지니 다음날 아침 몸도 마음도 편했다.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에 소소리 바람 불 제’마다 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밟은 낯선 땅 상주는 그렇게 친절한 안내자와의 동행 속에서 십년 드나든 단골집처럼 편안한 공간으로 모습을 바꾼다.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