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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허영호 대장-“탐험은 원정이 아니라 여정이다 ”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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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허영호 대장
“탐험은 원정이 아니라 여정이다 ”

‘빨간 바람막이 점퍼’는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를 만나러, 혹은 산을 만나러 한데 모인 500여 명의 대원들도 그 뒤를 따라 산길에 들어섰다. 금강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울진 소광리의 야트막한 산. 30여 분의 등반 끝에 반환점 꼭지가 보이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대장의 모습도 다시 눈에 띈다. 거의 꼴찌로 올라와서 어리숙하게 인사를 건네자 대장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또 쏜살같이 산을 내려가 버린다.
“힘들지요. 하지만 등산은 내려가면서부터가 시작입니다.” 울진의 소나무 창창히 우거진 숲길에서 탐험가 허영호 대장을 만났다.

글  도선미 기자   사진  박우철 기자   취재협조 경상북도청 www.gyeongbuk.go.kr 산바다여행사 1588-1253


극에 달하다

어떤 의미에서건 극에 달한 사람들은 인간을 약간 초월한 경지에 가 있다. 그들에겐 명철한 정신과 그보다 더 도저한 몸이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철학이 되고, 신앙이 된다. 

산을 꿈꾸고, 모험을 꿈꾸는 사람에게 허영호는 바로 그런 이름이다. 그는 7대륙 최고봉과 3극점을 발로 디딘 ‘최초의 인간’이다. 히말라야 14좌를 비롯해 남아메리카의 아콩카과, 북아메리카의 매킨리,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유럽의 엘부르즈, 남극대륙의 빈슨매시프, 오세아니아의 칼스텐츠, 오스트레일리아의 코시오스코 같은 낯선 고지들을 등정했고, 이 세계의 끝을 이루는 남극점과 북극점, 에베레스트의 꼭대기를 밟고 왔다. 하나같이 인간으로서는 차마 갈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곳이다. 세계의 모든 극점을 통달하고 온 사람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풍광을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기막히게 환상적이다. 

“북극에서의 ‘시간’입니다. 남극은 대륙이라 언 땅이지만 북극은 바다입니다. 바다가 ‘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비했어요. 그 얼음 위를 두 달 동안 걸었는데, 하루 종일 걷기만 해도 자연의 무수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죠. 해가 뜨고, 기울고, 저무는 움직임에 따라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북극의 풍광이 시시각각 변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북극에서의 시간은 한편으론 가장 혹독한 시간이기도 했단다. 영하 50도가 넘는 날씨에 장비는 무려 200kg, 그걸 짊어지거나 짐 보트에 매어 끌고 하루 12시간씩 걷는다. 그러나 알려진 대로 얼음 대륙은 해수의 이동에 의해 하룻밤 사이 십수 킬로를 떠밀려 가기도 하고, 때론 그 때문에 전날 걸어온 거리에도 못 미치는 지점에서 눈을 뜨게 되기도 한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점의 위치도 일정하지 않아 애를 먹고, 예기치 않은 자연의 횡포로 아슬아슬하게 죽음의 문턱을 오가기도 수차례였다. 허영호 대장은 이처럼 험난했던 북극탐험을 ‘도전’이란 말로 축약한다.

“챌린지(challenge), 도전이란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이어야 해요. 새로운 가치는 도전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어요. 저는 탐험을 통해 도전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습니다. 탐험은 저의 ‘진리’입니다. 사람마다 진리의 내용과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 다르죠. 학자가 학문을 통해, 성직자가 종교를 통해서라면 저는 탐험을 통해 진리를 발견합니다.”


어화둥둥 내 나라 산

세계적인 탐험가인 그에게 이렇게 북적이는 사람들 틈 속에서 야산 정도에 불과한 낮은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너무 쉽고 또 식상하진 않은가 궁금해졌다. 낭가파르바트, 킬리만자로 같은 험한 봉우리들만 골라서 누비고 다니던 그가 아니던가. 

“험한 산에 매력을 느끼는 건 맞지만, 그건 험한 산일수록 자연에 순응하는 법, 자연의 섭리를 더 잘 알려주기 때문이지 정복하는 쾌감 때문이 아니에요. 어떤 산이건 산은 제게 즐거움을 주지요. 한국의 산도 좋아하고 많이 다녀요. 설악산은 심산유곡의 묘미가 있고 남한산성은 가족들과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어서 자주 갑니다.”  

그는 또 요즘처럼 어려운 때 산행만큼 건강에 좋고, 비용도 안 들고 무엇보다 정해진 형식이 없어 배우느라 골치 아플 일 없는 스포츠가 또 어디 있겠느냐며 한참동안 ‘등산예찬’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는 국내에 산행하는 사람들은 점점 느는데 산을 지키려는 노력은 부족한 요즘 세태에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킬리만자로에 갔을 때 뼈저리게 느꼈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그곳은 우리보다 더 낙후되고, 사람들의 교육 정도도 낮은데도 쓰레기 한 점, 담배꽁초 하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몸에 밴 까닭이죠. 당연한 거지만 아름다운 곳일수록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도전 그리고 여정

허영호는 요즘 새로운 도전에 몰두해 있다. 산악 그랜드 슬램이라 불리는 7대륙 등반과 3극점 도보 탐험,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반이 모두 끝나고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던 그는 어릴적 꿈이었던 비행기 조종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초경량 비행기로 제주도 왕복 비행을 시도하기도 했고, 올해 9월에는 독도 선회 비행을 무사히 마쳤다. 앞으로는 초경량비행기와 자동차로 세계일주를 하는 게 그의 새로운 목표라고 한다.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갈 수 없는 땅인 북한에 가보는 것도 소망이다. 목표가 없으면 인생을 무슨 의미로 사느냐고 되묻는 그는 도전과 탐험의 정신이 사라진 요즘 한국의 젊음을 꾸짖는다.

“외국 사람들은 모험을 좋아합니다. 영국이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역사 자체가 모험의 역사이기도 하구요.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정적인 역사를 지녔기 때문인지 젊은이들이 모험을 즐기는 것 같지 않아요.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탐험은 경험의 가장 좋은 이름이죠. 호연지기 역시 컴퓨터가 아닌 자연 속에 있어요.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사고가 넓어집니다.” 

탐험과 여행의 차이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사실 탐험가들 사이에서는 원정의 의미가 강한 탐험(expedition)보다는 여정(journey)라는 말을 많이 써요. 탐험은 여행에 비해 험난하고, 장비도 많이 필요하다는 차이가 있지만, 탐험이든 여행이든 태초에는 하나의 ‘여정’이었겠지요. 오디세우스가 겪었던 오디세이는 탐험도 여행도 아닌 바로 여정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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