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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베이성-허베이성 그 비밀스러운 속살을 파헤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1.1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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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자좡 포덕채 정상 올라가는 길

허베이성 그 비밀스러운
속살을 파헤치다


빛의 속도로 빠르게 과거를 향하는 타임머신이 영화에나 나오는 공상이라면 꼬박 하루 동안 바다를 건너 천년 전으로 돌아가는 허베이성 페리 여행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이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페리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우리가 한번도 보지 못했던 과거와 현재가 혼재한 곳, 허베이성에 닿는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류진   
취재협조  대아여행사 02-515-6318, 진천페리 www.jinchon.co.kr


이름조차 낯선 허베이성(하북성 河北省)은 수도 베이징을 품에 안고 있는 중국의 ‘경기도’로 총 면적이 한반도 크기에 달하고 인구수도 6,800만 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행정구역이다. 중국의 3대 시조인 황제, 염제, 치유가 나라를 통일한 후 본격적으로 문화가 시작된 문명의 발상지이자 춘추전국시대에는 연나라, 조나라의 터전이었으며 베이징을 수도로 삼았던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는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했다. 때문에 중국 내에서도 역사 유적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인 승덕 피서 별장, 장성, 청동능과 청서능도 모두 이곳 허베이성에 자리잡고 있다. 

‘대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연 환경도 대서사시급이다. 중국 내에서도 유일하게 바다와 평원, 호수, 구릉, 산지, 고원을 두루 갖춘 지역으로, 허베이성을 여행하면 나라 하나를 통째로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 익히 알려진 베이징이나 톈진 말고도 허베이성 안에는 총 115개의 현과 1,101개의 향이 있는데, 웬만한 여행지의 정보는 다 찾아볼 있다는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 등 인터넷 검색에서도 걸리지 않는 베일에 싸인 비밀스러운 지역들이 허다하다.
오지를 탐험하는 마음으로 허베이성을 향해 떠났다. 수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옛 도시는 미래에서 찾아온 낯선 발걸음도 너그러이 반긴다.


secret city 1
창저우 

재주꾼들의 도시‘오교 서커스 마을’


2 오교 서커스 마을 입구 3 서커스 마을에 사는 귀여운 아기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오교 서커스’의 본고장 창저우(滄州)의 오교현은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부터 99세 노인까지 모두 서커스를 할 줄 안다’는 서커스의 고향이자, 중국 기예의 발상지다. 1천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커스 문화를 발전시키고 보존해 온 이곳 사람들은 단순한 ‘광대’가 아니라 역사를 잇는 ‘전수자’로서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현대적인 발전은 조금 더디지만, 여행객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눈빛과 수줍은 미소만으로도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매력을 내뿜는 도시다.

오교 서커스를 다 보려면 한나절도 부족하다. 텐트 공연장에 앉아 박수만 치는 지루한 무대 공연이 아니라 민속촌 같은 마을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바로 코앞에서 기기묘묘한 재주를 보는 독특한 관람 방식 때문.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4~5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청나라 양식을 본따서 지었다는 거대한 남문(南門)을 통과하면 가장 먼저 간이 경극을 볼 수 있는 인형극 무대를 만난다. 여러 명의 손가락 인형이 텔레비전 화면만한 작은 무대에서 접시를 돌리거나 재주를 부리는 공연인데, 무엇이 ‘서커스’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놀랍게도 무대 뒤에서 한 사람이 나와 인사를 한다. 한 명이 총 18명~20명의 역할을 하며 완성된 형태의 인형극을 보여 주는 서커스였던 것.

바로 옆에는 치파오를 입은 남자가 주머니 속에 흰 쥐 3마리를 넣고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핑크색 눈과 귀를 가진 이 생쥐들은 징그럽기보다는 귀엽고 앙증맞다. 단순히 묘기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신혼여행을 떠난 생쥐 부부의 고군분투기’를 스토리로 우스꽝스러운 드라마를 연출한다. 비록 성조 높은 중국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남의 아내를 ‘보쌈’해 간 악당 생쥐부터 아내를 빼앗긴 어눌한 남편 쥐의 필사적인 신부 구출기가 마치 개그 콩트를 보는 것마냥 즐겁다. 간간이 보이는 실수도 정겹기만하다. 

인형처럼 예쁜 미녀 마술사의 카드 마술과 손녀에서부터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보여 주는 기상천외한 재주까지 마을 곳곳에서 서커스는 계속된다. 홍금보를 닮은 연기자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고 코로 제 몸만한 나팔을 불 때는 온 구경꾼들의 폭소가 마을을 울린다. 조금 촌스럽기는 해도 ‘추억의 동춘 서커스’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손가락 하나로 벽돌을 박살내고 배에 칼날을 박는 ‘차력’을 보여 주는 기공쇼는 쇼보다 쇼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일이 더 재밌다. 신기해하는 사람부터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경의에 찬 눈을 반짝이는 사람까지 그 표정도 가지각색이다. 자신을 ‘세상에서 손이 제일 빠른 사나이’로 소개하는 야바위꾼의 능청도, 덩샤오핑 총리가 관람을 하고 간 사진이 상장처럼 늠름하게 붙어 있는 서커스 공연도 어설픈 건 어설픈 대로, 완벽한 건 완벽한 대로 진기하고 재밌다. 매끄럽고 세련됐지만 감동은 조금 부족한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쇼보다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오교인들이 평생을 땀 흘려 완성한 서커스쇼가 더 가슴을 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수십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항아리 속에 성인 남자가 들어가 있다. 진기한 항아리 묘기 2 좁은 통 속에 쏙 들어가는 여자아이의 묘기 3 큰 나팔을 코로 연주하는 묘기도 있다 4 맨 손으로 대리석을 박살내는 기공쇼. 관객들의 표정이 더 재미있다

secret city 2
스자좡

천오백년의 세월을
간직하다 ‘융흥사’


한국에 신라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고이 품은 경주 불국사가 있다면 중국에는 서기 586년 수(隋)나라 때 창건된 융흥사(隆興寺)가 허베이성의 성도 스자좡(석가장 石家莊)에 자리하고 있다. 청나라 때는 황실 사찰로 위력을 떨친 이곳은 중국 북방 지역에서도 가장 오래된 절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역시 절에 들어갈 때는 문턱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문턱이 부처의 어깨라고 믿기 때문. 낡은 문을 조심스레 열면 9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석가모니상이 첫 관문을 지키고 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불상 앞에는 특별한 사연을 품은 기둥이 있어 관람객의 흥미를 끈다. 기둥에 동전을 붙였을 때 동전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은 부처와 인연이 있다는 전설이다. 관람객 중 한 사람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동전을 붙여 봤지만 보란 듯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가 떨어져 웃음을 자아낸다. 사실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더운 날씨에는 가끔 끈적끈적해져서 동전이 붙기도 하는 데서 생긴 이야기란다. 

융흥사가 다른 곳보다 더 특별한 이유는 1,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바람에 쓸리고 손때에 닳은 곳곳의 공간들을 털끝도 건드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존한다는 사실에 있다. 대부분의 문화재가 최첨단 보존 기술에 의지해 간신히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이곳에서는 미닫이문에 켜켜이 일어난 나뭇결, 녹슬고 부식된 불상 위에 소복이 쌓인 먼지조차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절로 시간의 향기가 묻어난다. 1,400여 년 전 송나라 때 세워진 불교 경전 도서관은 스러져 가는 낡은 골동품처럼 보이지만 그 긴 세월을 무사히 견뎌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는다. 융흥사 창건기가 새겨진 룽창쓰 비석은 전쟁 때마다 이곳을 다스렸던 왕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비석만은 사수하라’고 명해 지금까지 살아있는 특별한 유물. 역사를 대하는 중국인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기도 하다. 

뭐니 뭐니 해도 융흥사를 가장 빛나게 하는 보물은 천수관음상으로도 불리는 ‘동제대비보살(銅製大悲菩薩)’이다. 약 22m 높이의 이 불상은 많고, 크고, 높은 것을 좋아하기로 소문난 중국은 물론, 전세계에서도  그 규모를 자랑한다. 약 3,000여 명의 조각가들이 4년 동안 매달려 완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이 불상은 3층에 올라야 비로소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라는 그 위용만큼이나 크고 관대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 얼굴과 마주하며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승의 업이 씻기는 느낌이다.


5 허베이성에서 가장 오래된 절, 융흥사 6 천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품은 낡은 문 7 융흥사와 함께 늙어 가는 스님들


역사 속 패자의 슬픔을 기억하다 ‘포덕채’ 

스자좡 시내에서 약 1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포덕채에는 사방이 뚫린 아찔한 절벽을 안식처로 삼아야 했던 한나라 한신 장군의 비애가 서려 있다. 적장이었던 유방의 밑으로 들어가 충성을 다했으나 역모의 누명을 쓰고 토사구팽 신세로 전락한 한신 장군이 적에게 쫓기다가 최후의 보루로, 이 아찔한 절벽에 배수진을 쳤다는 이야기. 포덕채라는 이름은 이곳에 터를 잡은 한신 휘하의 신하와 백성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소를 이끌고 산에 오를 수 없게 되자 송아지를 안고 이 산길을 올랐다는 데서 유래했다. 

포덕채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어야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수천길 낭떠러지지만 발아래 펼쳐진 장대한 풍광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무서움도 잊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작은 만리장성으로도 불리는 포덕채의 견고한 산성을 따라 10분 정도 더 오르면 중국 최초의 금장 벽화로 유명한 한신 장군 벽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다. 금으로 치장된 화려한 벽화지만, 그 안에 그려진 한신장군의 얼굴에는 배신당한 슬픔이 서려 있어 마음이 애잔하다. 농사를 짓고 살 수 있을 만큼 넓은 평원이 펼쳐진 산 정상에는 당시 마을 모습을 재현한 민가와 한신을 기리는 사당이 있어 천년 전에 일어난 일을 더욱 실감나게 그려 볼 수 있다. 

포덕채에서 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원전 204년에 자연 생성된 만불 산굴. 만개의 불상이 새겨진 이 굴로 가는 길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나 보던 기괴한 아치형 바위와 수천년 전에 바위 안 틈에 새겨진 음각 미륵불, 수만년 전 화석의 흔적 등이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굽이굽이 펼쳐진다. 동굴 입구에서는 행복과 웃음을 가져다준다는 미륵불이 먼 길 찾아온 객을 따뜻한 미소로 환대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만개의 부처상이 벽에 새겨져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딱히 불심(佛心)이 없는 자들도 탄성을 자아내는 장관이다.

만불 산굴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동굴에 얽힌 설화에 있다. 먼 옛날 ‘허샹’이라는 한 아이가 산에서 뱀의 알을 주워다 정성스럽게 품어 키웠는데 나날이 커 가는 뱀의 크기를 감당할 수가 없어 이 동굴로 데리고 왔단다. 알고 보니 이 뱀은 귀하기로 소문난 금뱀(용)이었다. 변함없이 뱀과 우애를 다지던 어느 날, 청년으로 성장한 허샹이 뱀을 찾아와 ‘눈’을 줄 수 없겠냐는 어려운 부탁을 한다. 당시 나라의 공주가 중병에 걸려 ‘야명주’라 불리우는 용의 눈이 필요했던 것. 자신을 살리고 키워 준 허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뱀은 기꺼이 눈을 내어주고, 허샹은 그 공로로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 후에도 그는 어려울 때마다 뱀을 찾아와 다른 쪽 눈을 비롯해 온갖 장기들까지 요구한다. 그때마다 아낌없이 다 내어주던 뱀은 급기야 심장까지 달라는 허샹의 탐욕에 화를 견디지 못하고 그를 잡아먹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동굴 안에는 그 설화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모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경종을 울린다. 바깥 기온보다 약 15도 정도 더 낮은 서늘한 기운이 오싹함을 더한다.
불교와 도교 사원이 함께 있는 것도 포덕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 500명의 나한이 부처를 수호하는 나한상과 옥황 대제를 모시는 도교사원 금제궁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1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포덕채 정상의 호수 2 전설을 품고 있는 뱀 동굴 3 포덕채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4 포덕채 오르는 길에는 수만년 전 화석의 흔적도 종종 볼 수 있다 5 500명의 나한불

 

secret city 3
바오딩 

암벽에 자리한 왕의 무덤
‘만성 한나라 묘’


바오딩(보정 保定)시에 있는 만성현 능산 꼭대기에는 무려 2,000년 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채 꽁꽁 숨어 있던 굴식 무덤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촉한의 황제 유비가 자신의 조상이라고 밝힌, 전한(前漢) 시대의 중산왕 유승과 그의 아내 두관의 묘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탓에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을 오르는 기분으로 수천 개의 계단을 트레킹하거나 스키장 리프트처럼 생긴 곤돌라를 타야 한다. 

올라갈 때는 발아래 펼쳐진 아찔한 비경을 벗삼아 곤돌라를 타고, 내려올 때는 능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계단 트레킹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길이 52m, 높이 7m의 이 거대한 무덤은 별다른 도구가 발달하지 않은 수천년 전, 산꼭대기 암벽에 구멍을 내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도 기이한데 발굴 당시 함께 출토된 2,800여 점의 유물들에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유승과 두관이 입고 있던 금루옥의(金縷玉衣)는 말 그대로 옥에 황금 실을 꿰어 만든 옷으로 이집트의 파라오 못지않은 왕의 권위와 호화로웠던 삶을 말해 준다. 

두관의 묘에서 발굴된 장신궁등은 그을음이 생기지 않도록 과학적으로 만든 호롱불로 한대의 정교한 공예 기술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로도 유명하다. 왕과 왕후가 사용했던 각종 토기와 집기, 보물들이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역사적 자료를 추정하여 만든 모형품이 아니라, 2,00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감내한 진짜 ‘석기’와 황금수의를 입은 왕의 유체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어디에서도 누리기 힘든 경험. 무엇보다 왕을 섬기는 충심만으로 이 불가사의한 일을 이루어 낸 당시 한나라 백성들의 수고로움이 이곳을 더욱 빛나게 한다.  


6 만성 한나라 묘 발굴 당시 모습 7 왕의 밥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8 만성 한나라 묘를 구경하고 내려갈 때에는 가벼운 계단 트레킹도 좋다 9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삼의궁의 유비상 10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에게 소원을 적은 종이들

도원결의의 땅 ‘삼의궁’

“유비, 관우, 장비가 비록 성은 다르오나 이미 의를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마음과 힘을 합해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하고 한 해, 한 달, 한 날에 태어나지 못했어도 한 해, 한 달, 한 날에 죽기를 원하니 하늘과 땅의 신령(皇天后土)께서는 굽어살펴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이소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그들의 나이 28세, 29세, 24세에 맺은 영원한 약속,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아닐까. 비록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소설 속 픽션이지만 도원결의는 ‘깨지지 않는 공의로운 서약’의 대명사로 후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 이야기다. 허베이성 바오딩시 탁주에 지어진 삼의궁(三義宮)은 이 도원결의와 함께 유비, 관우, 장비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실제로 탁주는 유비와 장비의 고향이자, 불꽃 튀는 적수 관계였던 조조와 유비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궁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유비관이 보이고 왼쪽에는 장비관이, 오른쪽에는 관우관이 위치해 있다. 작은 마당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 사당을 보고 있노라면 수십 세기를 뛰어넘어 영혼마저 함께하는 의형제의 깊은 우애가 느껴진다. 

관우관 앞에는 뜻 깊은 의미를 지닌 비석도 있다. 관우가 조조에게 의탁할 당시 유비에게 쓴 비밀 편지를 새긴 것으로, 얼핏 보면 대나무 그림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유비에의 변함없는 우애와 의리를 다짐하는 형상 문자다. 조조가 세 치 혀로 관우를 회유할 당시 ‘조조가 아무리 내게 잘해 주어도 나는 당신의 사람이다’는 뜻을 적어 보낸 서신으로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도원결의를 다지는 관우의 의리와 기개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뒤뜰에는 봄이면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도원결의 터’와 함께 부인, 자녀, 제후들을 모신 사당도 있다. 죽어서도 함께하는 우애와 늘 곁을 지켜 주는 가족, 그들을 잊지 않고 삼의궁에 발걸음 하는 후손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유비와 관우, 장비 형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 보인다.


1 삼의궁 전경 2 유비의 부인상 3 수십세기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함께 있는 유비, 관우, 장비 4 관우가 유비에게 보낸 비밀 서신 5 백양전 호수를 노니는 강태공 6 백양전의 낭만적인 석양 7 백양전 호수에서는 작은 배를 타고 여유로이 유람한다

모든 것이 멈추는 고요한 호수 ‘백양전’

바람에 무심히 몸을 내어맡기는 갈대가 환상적인 운치를 자아내는 백양전(白洋淀)은 중국 내에서도 4성급 관광지에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 황하에서 흘러 내려온 물줄기가 만든 화베이 지방 최대의 호수로 약 7,000평방미터에 달하는 갈대숲과 700평방미터의 연꽃 군락지로 구성되어 있다. 총 39개의 마을과 143개의 작은 호수로 이루어진 이곳을 다 둘러보려면 모터보트를 타도 3일이 꼬박 걸린다. 시간이 없다면 보트를 타고 백양전의 하이라이트만 약 한 시간 정도의 일정으로 둘러보고, 여유가 있다면 관광객들을 위한 백양전 풍경구로 오감이 행복해지는 여행을 떠나 보자. 호수에서 나는 참게와 각종 물고기, 송화단(삭힌 오리알) 등의 요리는 놓치면 아쉬울 백양전 여행의 별미다.

형형색색의 희귀 연꽃이 만개하는 여름철이 백양전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갈대가 비로소 제 빛을 내는 늦가을의 백양전도 여름 못지않게 황홀하다. 보트를 타고 갈대숲 사이를 휘저으며 만나는 풍경은 물빛에 반사되어 부서지는 석양 무렵의 마지막 햇살처럼 초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이 그림 같은 풍경의 일등 공신은 호수 위를 유유자적 떠도는 조각배들. 나무로 만들어진 이 진짜 조각배들은 관광객을 위한 관상용이 아니라 백양전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호수 마을 주민들의 자가용이자 생계 수단이다. 뿌리는 차로, 잎사귀는 약재로, 줄기는 각종 집기를 만드는 원자재로 쓰여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갈대를 한아름 수확해 가는 농부들과 갈대밭 위에 앉아 낚시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모습을 호수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때로는 가마우지를 이용한 전통 낚시 법으로 고기를 잡는 서정적인 광경과도 마주한다. 그야말로 진한 흑백사진에서나 만날 법한 향수 물씬 풍기는 풍경들이다. 갈대밭이나 물 위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철새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이곳이 철새 보호 구역인 까닭. 사람과 물고기, 새들이 호수의 투명한 수면 위에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지는 그림 같은 순간만으로도 백양전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페리 여행이 선사하는 의외의 선물 A to C

스피드가 미덕인 시대,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여정을 굳이 버리고 꼬박 하루가 걸리는 페리를 타야 하는 이유는 분명 있다. 그 느리고 느린 여정이 주는 예상 밖의 선물.

A. ‘쓰고 또 써도’ 남는 시간

출퇴근 시간, 마감 기한, 약속 시간에 늘 쫓기며 여유를 갈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시간만큼 아쉽고 부족한 자원은 없다. 배 위에서의 하룻밤은 자신과 삶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황송할 만큼 넉넉한 시간을 선물한다. 먹고, 자고, 생각하고, 놀다가 다시 먹고, 자고, 책 읽고, 수다 떨고 놀아도 여전히 남아있는 시간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싶다면.

B. 서해 바다의 일몰 절경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으로 동해의 일출과 더불어 서해의 일몰을 손꼽는 이들이 많다. 특히 사방에 육지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만나는 일몰은 더욱 황홀하다. ‘바다가 보고 싶다’ 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는 이들에게는 바다를 원 없이, 한 없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선사한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의 운치와 바다 위에서 반짝이는 크고 작은 별들은 덤으로 주어지는 행복.

C. 걱정이 필요 없는 단단한 안전

인천항을 출발해 서해 바다를 거쳐 허베이성으로 향하는 진천 페리의 총 높이는 38m에 육박한다. 서해 바다에서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불과 24m. 그럴 일은 없겠지만 타이타닉호처럼 배가 침몰해도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떠 있어 물에 빠질 염려는 없다고.


낭만적인 크루즈 여행을 실현하다 ‘진천페리’

총 800여 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거대한 성, 진천페리는 일주일에 두 번, 인천 제2여객 터미널을 출발하여 중국 허베이성을 비롯해 베이징, 톈진, 칭다오 등에 닿는다. 무게 약 2만6,000톤, 길이 186.5m, 선폭 24.8m에 달하는 선체는 평균 24노트의 속력으로 파도가 약한 서해 바다 위를 순항해 멀미를 느끼지 않는 것이 강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페리 중 유일하게 한국인 승무원이 탑승하여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바닷물을 끌어 올려 화장실 물로 사용하는 다른 배들과는 달리 깨끗한 생수로 식수와 생활수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진천페리만의 장점. 무엇보다 개인 발코니가 딸린 로열 스위트룸을 비롯해 가족, 친구, 연인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로열 싱글, 다다미방 등 다양한 형태의 아늑한 객실이 크루즈 여행의 낭만을 선사한다. 

출항일정 매주 화요일 13시, 금요일 19시 인천 출발
이용요금(편도) 로열 스위트 25만원, 딜럭스(2인 1실 침대 or 5인 1실 다다미) 16만원
문의 www.jinch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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