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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변해 가는 것을 지켜 가는 사람들,브로묄라의 촛불 "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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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 가는 것을 지켜 가는 사람들
브로묄라의 촛불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월든>에서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변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표현처럼,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지만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전통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은 번거롭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흔쾌히 전통을 지켜 오고 있는 스웨덴 사람들. 그들을 만나기 위해, 기나긴 겨울밤을 밝히는 작은 촛불처럼 빛나는 도시 브로묄라(Bromolla)로 떠났다.

에디터  오경연 기자   글·사진  Traviest 이유미

브로묄라는 비옥한 토양과 넉넉한 마음씨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스웨덴 남부 스코네(Skane) 지방에 위치한, 거주하는 사람이 8,00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남쪽으로는 발틱해(Baltic Sea)에 면해 있을 정도로 스웨덴 최남단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 또한 매 겨울 스웨덴을 감싸 안는 긴긴 밤으로부터는 멀리 도망칠 수 없는 곳이다. 

스웨덴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도 길다. 북부로 올라가면 하루 종일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일조시간이 짧다. 자연의 빛 없이 지내야 하는 긴긴 겨울, 스웨덴인들의 곁을 지켜 주던 것은 바로 촛불이었다.

스웨덴에서 단 한 번이라도 쇼핑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고급스러운 백화점에서 친근한 동네 슈퍼까지, 콧대 높은 대도시의 디자인숍에서 스웨덴의 국민브랜드 ‘이케아’까지. 스웨덴 전역의 어느 가게를 들어가도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은 다름아닌 양초다. 요즈음은 양초만큼이나 램프가 각광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양초가 뿜어내는 은은한 불빛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표현이 스웨덴에도 있을까. 해가 갈수록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양초의 빛깔과 모양은 점차 화려해져,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지만 울긋불긋 화려한 양초 틈바구니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첫눈에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수수한 흰 양초다. 



1 19세기 스웨덴인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던 스웨덴의 국민 3 화가 칼 랄쏜(Carl Larsson)의 그림들.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그림들에도 초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2 겨울을 따뜻하게 감싸 주는 촛불 3 브로묄라 풍경

브로묄라, 낯섦 사이에 감춰진 그 익숙함

브로묄라에 도착했을 때는 한낮이었다. 이미 반쯤은 어둠에 싸인 주위를 둘러보며 “설마!”를 외치고 몇 번이고 시계를 쳐다봤지만, 놀랍도록 겨울 해가 짧은 북구의 나라 스웨덴에 예외란 없었다.
심술궂은 소년 닐스는 마법에 걸려 난쟁이가 된다. 자신의 거위가 기러기 떼와 함께 날아가려는 것을 막으려다 그 목을 잡고 하늘을 날게 되는 닐스. 꼬마는 스웨덴 곳곳을 여행하게 되고, 그 경험을 통해 착한 소년으로 성장한다. 익숙한 스토리의 이 동화는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여류작가 ‘셀마 라게를뢰프(Selma Ottiliana Lovisa Lagerlof)’의 장편 <닐스의 모험>이다. 반가운 사실은, 개구쟁이 닐스가 거위, 오리 등과 뛰어 놀던 곳이 바로 이곳 스코네 지방이라는 것.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였던 것일까. <닐스의 모험>이 무려 100년 전에 세상에 선보였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스코네 지방은 작품에서 묘사된 모습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마을을 둘러싼 탐스러운 나무들, 잔잔한 호수, 한국의 그것보다 몇 배는 드넓어 보이는 하늘, 그리고 도란도란 모여 있는 소박한 가옥들까지. 스코네의 작은 도시 브로묄라는 그렇게,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첫 인사를 건네 왔다.

집에서 양초를 만든다구요?

양초를 만드는 것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오랜 전통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량으로 찍어낸 초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전까지 양초는 전통적으로 일반 가정에서 만들어져 왔다. 스칸디나비아의 양초는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 자연스러운 흰 색상 그리고 핸드메이드를 그 특징으로 한다. 이를 보고,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특징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브로묄라에 도착한 날, 친구의 어머니는 “오늘 양초를 만들 거예요”라고 말했다. “집에서 초를 만든다고요? 상점에 가면 수도 없이 파는 그 양초를 집에서?”라며 반신반의하는 사이, 아주머니는 낮부터 지하창고와 부엌을 오가며 양초를 만들 장소를 세팅하고 각종 도구를 준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파라핀을 끓인 물. 대낮부터 생전 처음 맡아 보는 파라핀 냄새가 몇 시간에 걸쳐 익숙해질 무렵,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드디어 양초 만들기가 준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초를 만들 널찍한 창고 가운데에, 파라핀이 끓고 있는 온도계 달린 양동이가 놓인다. 초를 만드는 과정에 등장한 현대기술이 적용된 유일한 도구다. 좋은 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정 온도 유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머니는 초를 만드는 내내 계속해서 온도를 체크했다. 파라핀 양동이 둘레 삼면에는 나무로 짠 판이 한 쌍씩 놓여 있다. 그리고 그 판 위에는 막대 수십 개가 걸쳐져 있는데 막대들에는 끝이 묶인 두꺼운 실이 세 줄씩 매어져 있다. 이만하면 대략적인 양초 만들기 준비는 끝났다고 보면 된다. 

이맘때쯤이면 벌써 몇십년째 함께 양초를 만들고 있다는 아주머니의 동네 친구들이 모여들 시간이다. 그들은 작업을 하는 내내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에 한창이다. 열 시간도 넘는 비행 끝에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마주한 사람들인데도, 이 스웨덴 아주머니들의 유쾌한 웃음은 어찌나 친근하던지. 마치 내가 스웨덴판 <전원일기>의 한 장면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적당히’의 어려움

막대의 양 끝을 잡고 막대에 묶여 있는 실을 부글부글 끓고 있는 파라핀액 속에 잠시 넣었다 뺀다. 담갔다 뺀 막대는 원래 자리에 도로 걸쳐두고, 이번엔 그 옆의 막대를 들고 와 마찬가지로 파라핀 액에 넣었다 뺀다. 두 번째 막대를 제 자리에 갖다 놓고 나면, 다음엔 그 옆의 막대, 그 다음엔 그 옆의 막대 차례다. 사실 복잡할 건 하나도 없다. 들고, 넣고, 빼고, 제자리에 올려 놓고의 반복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이 단순한 동작도 처음에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게 할 만큼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일단, 파라핀액 속에 실을 담그는 시간은 너무 길어서도 너무 짧아서도 안 된다. 소금 적당량, 고춧가루 적당량처럼 ‘적당량’만큼의 시간만 넣었다 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적당히’의 어려움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1 칼 랄쏜(Carl Larsson)의 그림 2 완성된 핸드메이드 양초들.뽀얗게 살이 오른 양초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따뜻하다 3 양초를 말리는 나무틀. 똑같이 생긴 나무틀이 방의 세 면을 채우고 놓여 있다 4 집에서 만드는 양초라고 그 디자인을 무시하진 마시라. 막대와 실을 어떤 모양으로 배치하고 시작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양초 제작이 가능하다

조금은 번거롭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전통 방식 그대로 양초를 만드는 것은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재료준비에서부터 디자인, 본격적인 작업, 그리고 그후의 청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 가정에서 양초를 만들며 쌓는 소중한 추억보다는 상점에서 양초를 쇼핑하면서 느끼는 편리함에 손을 들어 주게 되어 버렸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린 계속해서 집에서 양초를 만들 거예요.” 아주머니들의 말씀에 내 가슴이 다 두근거린다. 이는 양초를 만들어 내다 팔기 위함도 아니요, 그로 인해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니라고 했다. 함께 양초를 만들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정도 쌓고,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손을 빌지 않고 직접 만들어낸 양초로 집안을 따뜻하게 꾸미는 것.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양초를 계속해서 만들 생각이라고 한다.

담갔다 뺐다 되풀이하기를 서너 시간. 드디어 얇기만 했던 실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동통해지는 아이들처럼 동글동글하게 살이 올라간다. 내 손으로 만드는 양초가 굵어지면 굵어질수록 파라핀액에 그걸 담갔다 빼야 하는 팔은 아파 오지만, 양초들과 함께 내 살이 오르는 것마냥 가슴은 뿌듯해져 온다.


1 전원 도시, 브로묄라에 눈이 내렸다 2 훔레토르칸(Humletorkan)의 농부들. 과거 호프 농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에서 훔레스링엔 루트는 시작된다. 허허벌판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친절하게도 곳곳에 훔레스링엔 루트를 알려주는 사인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3 13세기의 수도원 건물이자 19세기 중반, 황제의 여름 궁전으로도 사용된 백카스코그 궁전(Backaskog manor)의 모습 4, 5 마음까지 정화시키는 깨끗한 공기 속에서 월척을 낚는 기쁨. 바로 이곳, 브로묄라에서 느껴 볼 수 있다

브로묄라를 떠나며

작은 도시라고 해서 브로묄라가 마냥 심심한 곳일 거라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사실 스웨덴이라는 나라 자체가 한국인들에게 있어선 아직 일반적이지 않은 여행지이긴 하다. 그나마 소개된 곳들도 대도시인 스톡홀름(Stockholm)이나 예테보리(Goteborg), 아이스호텔로 유명한 북부의 키루나(Kiruna) 등 소수의 도시들. 하지만, 여행객으로 넘쳐나는 유명 여행지의 소란스러움을 피해, 건강한 자연 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누리고픈 여행자에게라면 브로묄라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여행지도 드물다. 투명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선량한 어른으로 성장한 ‘닐스’가 당신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브로묄라에서 무엇을 할까?

브로묄라는 에코투어의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때묻지 않은 북구의 자연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보자.
훔레스링엔 Humleslingen(The Hops Loop) 맥주의 원료인 호프. 과거 스웨덴 호프 생산의 중심지가 바로 이곳, 브로묄라에 있다. 스코네 지방 최대의 호수인 이보호수Ivosjon 주변을 따라 펼쳐지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성과 교회, 호프 농장 등을 둘러보며, 시간이 흘러도 지난날을 잊지 않는 브로묄라 사람들의 삶을 엿보자. 55km에 이르는 이 루트는 사이클링에도 적합하다.

아웃도어 스포츠 브로묄라에서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길만한 기회는 충분하다. 조깅코스와 사이클링 루트를 섭렵해 보는 것은 물론, 여름이면 이보호수에서 수영을 즐기거나 보트나 카누를 빌려 타고 호수를 탐험해 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특히 깨끗한 자연 속에서 낚시를 즐기는 경험을 놓치지 말길 .


clip

★브로묄라로 가는 법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Stockholm)에서 기차로 4시간30분이 소요되며, 스웨덴 남부 스코네 지방 제1의 도시 말뫼(Malmo)에서 기차로 1시간30분이 걸린다. 노르웨이나 덴마크, 독일 등 유럽의 타 지역에서 넘어오는 여행자라면, 말뫼를 통해 브로묄라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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