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전통과 순박한 자연이 반기는 서천으로 마실갈까나
서천-전통과 순박한 자연이 반기는 서천으로 마실갈까나
  • 트래비
  • 승인 2009.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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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순박한 자연이 반기는
서천으로 마실갈까나

충청남도 서천 하면 무엇을 떠올리시는가. 겨울이면 금강 하구로 내려와 군무를 선보이는 철새들,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량리 동백숲, 출사의 명소로 더 알려진 신성리 갈대밭... 이 모든 것이 서천이지만 차가운 겨울 서천엘 다녀온 지금 기억 속에 또렷이 남는 것은 겨울 풍광보다는 서천에 진득하니 전해 내려오는 전통의 향기이다. 

글·사진  김영미 기자   취재협조  한산소곡주 www.sogokju.co.kr  
사진제공  서천군청 www.seocheon.go.kr



서천 전통체험여행

새색시도 앉은뱅이로 만들어 버리는 한산 소곡주

요리책에 적혀 있는 ‘적당히’라는 단어 앞에서 요리 초보들은 난감해진다. 적당히는 대체 얼마만큼인지. 작은 손짓 하나까지 체화한 고수들은 적당히 재료를 배합해 적당히 간을 맞춰도 전혀 적당하지 않은 기가 막힌 맛을 척척 만들어 낸다.

30여 년 동안 소곡주를 담가 온 ‘소곡주의 달인’ 우희열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찹쌀을 뒤적여 온도를 낮추고 찹쌀에 엿기름, 들국화, 생강, 고추, 메주콩, 누룩을 한 움큼씩 두 움큼씩 푹푹 퍼 담는다. 여기에 멥쌀을 빻아 만든 백설기에 누룩즙을 섞어서 4~5일간 발효한 밑술을 붇는다. 자동 계량을 하듯 재료를 배합하는 손길에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30여 년 전 시어머니로부터 술 빚는 기술을 전수받은 우여사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인 ‘소곡주장’이다.
 
서천군 한산면의 특산품이자 백제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주인 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 불린다. 누룩을 적게 넣어서 만든 소곡주는 향긋한 내음과 달짝지근한 맛이 끝없이 술잔을 비우게 하는 마성의 술. 과거를 치르러 한양에 가던 선비가 한 잔 두 잔 소곡주를 넘기다가 결국 과거를 보지 못했다는 슬픈(?) 일화를 담은 우리의 전통주다. 술 좀 아는 사람들은 오직 소곡주를 맛보기 위해 서천을 가기도 한다.

소곡주는 100% 수작업으로 제조해 집집마다, 독마다 술맛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재료들을 정확하게 계량해 만든다고 해도 기온과 손의 온도, 누룩 등 주변 요소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자의 집에서만 조금씩 만들어 즐겼을 뿐, 판매 대중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하여 우여사와 그의 아들 나장연씨는 소곡주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자 국내 유일의 소곡주 브랜드인 ‘한산 소곡주’를 출시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한산 소곡주는 여러 개의 항아리를 블렌딩해, 즉 여러 맛의 소곡주를 섞어 평균적인 맛으로 선보이고 있다. 

한산 소곡주는 알코올 농도 18%의 소곡주와 43%의 불소곡주로 나눠 생주와 발효주 형태로 제조되는데, 생주의 맛이 더 뛰어나다. 보기 좋은 술이 먹기도 좋다 했던가. 한산 소곡주는 맛도 맛이지만 외형도 풍미 있다. 직접 디자인한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에 담아 판매된다. 

모름지기 백문이불여일음(百聞不如一飮). 백번 들어도 한번 마셔보는 것만 못하니 충남 서천으로 마실을 떠난다면 꼭 한잔은 들이켜 볼 일이다. 단, 장인의 깊은 손맛에 앉은뱅이가 될 만큼 거나하게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  소곡주 담그기 체험
한산 소곡주는 매년 10월 넷째주에 정기적으로 소곡주 담그기 체험 행사를 열고 있다. 그러나 20명 이상 단체라면 수시로 소곡주 담그기 체험을 할 수 있다. 1인당 참가비는 항아리와 용수, 재료비를 포함해 8만5,000원 정도. 직접 담근 소곡주는 100일 후에 찾을 수 있으며, 한 항아리에는 8~9리터의 소곡주가 담긴다.





여인들의 손길이 켜켜이 묻어 있는 한산 세모시

장항선, 금강하구둑, 마량리동백숲... 일종의 대명사로 굳어진 이 이름들을 품고 있는 서천 지역의 명물은 뭐니뭐니 해도 한산 모시. 서천의 ‘한산 세모시’는 나라의 진상품으로 품질을 인정받던 1,000여 년 전부터 하나의 브랜드였다. 서천의 트레이드마크 한산 세모시는 습기를 빨리 흡수해 발산하며 바람이 잘 걸리지 않아 여름철 옷감으로 애용되고 있다.
흔히 한산 세모시를 ‘잠자리 날개’와 같다고 묘사한다. 100% 수작업으로 탄생되는 모시섬유는 한올한올이 몹시도 섬세하고 가늘기 때문. 모시풀에 30~50만 번 손을 거친 후에야 모시 한 필(약 21.6m)을 만들 수 있다. 숙련된 전문가라 할지라도 사흘 반나절을 넘게 작업해야 완성되는 모시 한 필은 한복 한 벌과 짧은 남방을 해 입을 수 있는 정도다. 그야말로 정성이 담뿍 담긴 옷감이 아닐 수 없다. 

한산 세모시는 온전히 한산 여인들의 솜씨로 탄생한다. 한장소에 여럿이 모여 마을 주민끼리 공동 작업을 하거나, 집집마다 따로 두었던 모시 짜는 방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이 앉아 집 안에서 모시를 삼고 짰다. ‘한산 모시 짜기의 달인’ 방연옥 여사도 마찬가지다. 그 시절 한산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의 숙명이었을까. 어려서부터 모시를 짜던 방여사는 1980년 문정옥 선생으로부터 한산 모시 짜기를 사사받고 2000년 8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인 한산 모시 짜기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되면서, 한산 모시관에서 외지인들에게 한산 모시 짜기를 선보이고 있다.

모시의 장인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빨을 이용해 섬유를 가늘게 쪼개는 ‘모시째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앞니의 위아래가 딱 맞물리는 신체적인 구조도 타고 나야 한다. 모시째기를 하면서 얇은 실을 끊임없이 물어뜯기 때문에 입 속에 피가 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이렇듯 모시를 짜는 과정이 쉽지 않은데다가 수입도 변변찮아 모시를 짜는 후계자들의 양성이 더디다. 유한성을 지닌 무형문화재의 특성상 장인이 사라지면 전통문화 또한 역사 속으로 져 버리고 말기에 안타까운 부분이다. 

서천군에서는 한산 모시의 맥을 잇고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산 모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모시로 만든 고운 한복 등 다양한 모시 제품 및 모시의 역사가 기록된 서적이나 베틀, 관련 도구를 전시하고, 전통 공방을 재연해 모시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매년 5월 열리는 모시문화제에서는 태모시 만들기, 모시차 체험, 모시짜기 체험을 비롯해 저산팔읍길쌈놀이 등 서천의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다.  

소품종 소량생산인지라 ‘소비의 시대’인 21세기에 뒤쳐질 수밖에 없던 한산 모시는 모시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얼마 전 한산 모시테크놀로지 공장이 차려져 모시 생산 기계화에 돌입했다. 24시간 풀가동시 모시 1톤이 만들어진다니, 모시의 대중화도 멀지 않았다. 


★  칼슘 풍부한 모시잎차 잡숴 봐~

한산 모시를 만들던 여인들은 모시째기 등을 하는 과정에서 모시 성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허리가 굽지 않으며 골다공증이 발병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이에 한산 주민들은 모시잎을 덖거나 쪄서 말린 후 차를 만들어 마셔 왔다. 모시잎차는 칼슘과 마그네슘이 풍부하고 카페인 성분이 없어 웰빙 음료수로 손색이 없다. 한산 주민들은 모시잎차뿐 아니라 모시떡, 모시냉면 등 모시풀을 이용한 먹을거리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천 생태체험여행

오랜 비밀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 같은 신성리 갈대밭

칠흑 같은 밤. 비무장 지대를 수색하던 이수혁(이병헌 분) 병사는 지뢰를 밟아 낙오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이수혁은 북한 병사 오경필(송강호 분)과 예상치 못한 조우를 하게 되고, 생사를 오가는 대립 끝에 결국 오경필은 이수혁의 목숨을 구해 준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북한 병사들의 위험하지만 가슴 따뜻한 밀회가 시작되는 이 장면의 촬영지가 바로 서천군 한산면에 위치한 신성리 갈대밭이다. 남북한 병사가 맞닥뜨린 팽팽한 긴장감은 상당 부분 촬영 장소인 갈대밭의 특성에서 기인했다. 바람에 몸을 맡긴 갈대들은 조용히 사각이며 적막을 지우고, 사람 키보다 큰 갈대가 울창한 갈대밭 어딘가에 누가 몸을 숨기고 있어도 모를 법하다. 

아마 저도 모르게 그런 갈대밭을 상상했나 보다. 쓸쓸하고 건조한. 1월 초, 겨울 복판에 선 신성리 갈대밭은 쓸쓸했지만 마냥 황량하지만은 않았다. 폭 200m, 길이 1.5km, 면적 33만 여 평방미터의 갈대밭 사이사이에 조성된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은 자칫 밋밋할 뻔도 했던 겨울 갈대밭 여행의 정취를 색다르게 선사했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소지섭과 임수정이 함께 거닐며 마음을 주고받던 장소이기도 한 신성리 갈대밭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갈대 7선’ 중 하나로,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출사’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신성리 갈대밭은 솟대소망 길, 갈대기행 길, 금빛물결마당, 재미있는 길 등을 테마별로 산책로를 조성해 놓아 걷기에 심심치 않다. 연인들이 오붓하게 앉기에 딱 알맞은 사이즈의 나무 벤치부터 쉬이 발을 들이지만 단박에 빠져나오기는 어려운 흥미진진한 미로, 서천의 겨울 손님인 철새들을 머리에 인 솟대 등. 갈대밭의 모든 장식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 투박하고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디자인에 신경써 세련됨을 잊지 않았다. 

이런저런 볼거리에 정신없이 지나다가 갈대문학 길에 접어들었다. 나무에 곱게 새겨진 깊고 정갈한 시구들이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붙든다. 요즘의 우리가 새겨 담아야 할 것 같은 법정 스님의 말씀,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를 꼭꼭 되씹으며 걷다 보니 갈대밭 너머의 금강에 닿았다. 흐린 겨울 오후, 쓸쓸한 갈대밭을 지나 마주한 금강은 더욱 생명력이 넘쳤다. 강변에 놓인 벤치에 앉아 발갛게 지는 저녁놀을 감상하며 잠시 빡빡한 일상을 등져 본다. 가까운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휴식이다.

신성리갈대밭은 현재 조경작업을 실시 중이라 오는 5월31일까지는 관람이 일부 제한되므로 새 얼굴을 만나고자 한다면 그 이후에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이 좋겠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를 꼭꼭 되씹으며 걷다 보니 갈대밭 너머의 금강에 닿았다.

겨울철 탐조 여행의 명소 금강하구둑

금강하구둑은 매년 겨울 철새들의 ‘정모’ 장소다. 전남 장수군 뜸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천리길을 흘러 서해바다와 만나는데, 그곳이 금강하구다. 충남 서천군 마서면이라는 정식 지명보다는 금강하구둑으로 알려진 이곳은 겨울만 되면 시베리아반도에서 2,500km를 날아온 가창오리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가창오리 군무 감상의 명소인 금강 하구둑으로 가는 길. 녀석들이 있을지 없을지, 얼마나 모여 있을지, 우리의 기대처럼 멋지게 비상할지도 알 수 없어 제법 속이 탄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금강은 그 이름의 뜻처럼 비단같이 곱게 흐르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강물 위엔 가창오리들이 고요히 부유하고 있었다. 서천군 문화해설사는 “오리들이 평소의 10분의 1도 안 와 있다”며 일행들이 더 훌륭한 군무를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해가 저무니 탐조를 나온 여행객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다. 가창오리는 해가 져야 비상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리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진으로는 많이 봐 왔지만 실제로 가창오리의 군무를 보니  참으로 신기했다. 날았다가 다시 앉았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하늘에 그물을 치듯 머리 위를 떼 지어 난다. 또 동시에 날아가는 방향을 싹 바꿔 율동을 하듯 대열을 정비한다. 몸길이가 약 40cm에 불과한 가창오리는 작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수만 마리가 무리 지어 이동하기 때문에 이렇듯 군무를 연출하게 된다고 한다.

파닥이는 날갯짓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니 감동은 두 배가 됐다. 보다 많은 가창오리들이 군무를 펼쳐 보인다면 어떠할지 상상하니 전율이 일 듯했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가창오리의 군무. 올 겨울이 가기 전에 겨울 서천, 금강하구둑을 찾아 자연이 선보이는 위대한 신비를 체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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