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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애틀랜타 호텔 Atlanta Hotel, Bangkok-가장 기묘한 호텔 이야기"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4.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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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년대에서 보내는 편지 2 닥스훈트 목각상이 지키고 있는 데스크는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 내 여행사다 3 체크인은 일종의 관문 통과다 4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야외 수영장

Atlanta Hotel, Bangkok
가장 기묘한 호텔 이야기


이처럼 철저하게 ‘스토리’를 파는 호텔을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초라하면서 도도한 호텔을 본 적이 없다. ‘하루만’ 하고 시작된 방콕 애틀랜타 호텔과의 인연은 매일 연장되어 보름이 되었고, 어떤 날은 오로지 호텔을 감상하기 위해 종일 일정을 비우기도 했다. 이 특별한 호텔과 나눈 내밀한 수다를 공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천소현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편애의 산물일 수 있다. 10년간 여행을 하며 글을 써 온 필자가 깊이 매혹되어 버린 어느 호텔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가의 양심으로 서두에 몇 가지 핵심 스포일러를 풀어놓아야겠다. 아래 조건이 흡족하지 않다면 서둘러 다음 스토리로 넘어 가시라. 

호텔은 낡았다. 외관은 공장건물인 듯(실제 공장이었다) 허름하고 객실은 ‘기본 (basic)’이라는 표현을 정의할 수 있을 만큼 단출하다. 금이 간 벽, 벗겨진 페인트 자국은 인테리어의 일부 같고 침대 하나, 책상 하나가 객실 가구의 전부다. 로비 하나는 매력적이지만 냉방기의 시원한 바람은 기대할 수 없다. 차라리 카오산의 게스트하우스가 낫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태국 하면 떠오르는 환상의 리조트나 호텔과는 전혀 다른 대극에 있다는 뜻이다. 태국인 특유의 친절한 미소도 이 호텔에서는 서비스의 일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이야기에 체크인(check-in)할 자격이 있다.
Welcome to the story of unusual hotel!


1 열대 정원의 여인은 밤이면 빛을 비춘다 2 애틀랜타 호텔은 전세계 유명 가이드북의 필수 스토리다 3 호텔엔 장기, 혹은 일생을 투숙 중인 고양이들이 많다 4 역사를 돌리는 골동품 선풍기 5 섹시한 빨간 가죽소파는 가구가 아니다. 예술이다 6 우아하게 휘어진 나선계단을 따라 도는 로맨틱한 난간 장식 7 이것이 태국 최초의 호텔 수영장이다

애원하여 하룻밤을 얻다

방콕에 한 달을 살아야 했으니 시내 중심가의 적절한 호텔을 찾고 있었다. 수쿰빗 거리에 위치하면서 저렴할 것! 이 조건을 대략 맞춘 것이 애틀랜타 호텔이었다. 에어컨룸이 하룻밤에 600바트(약 2만2,600원)라, 전화를 해보니 그럼 그렇지, 앞으로 2주 동안은 빈 방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작가들이 좋아하는 호텔’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밥이나 먹는다는 생각으로 찾아갔다. 수쿰빗 쏘이 2(Sukhumvit Soi 2) 골목을 600m나 걸어 들어간 끝에 가장 안쪽에서 마주친 호텔의 외형은, 이미 설명한 대로였다.

하지만 20분 후의 나는,
데스크에 매달려 어떻게든 방을 줄 수 없냐고 애원하고 있었다.

눈을 멀게 한 것은 이런 것이다.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20년대 파리 중심지의 어느 라운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섹시한 가죽 소파, 화려하지 않지만 고풍스러운 샹들리에, 바닥 타일의 과감한 패턴과 빨간 벽지는 농염하면서도 묵직한 아트데코 인테리어를 보여 주고 있었다. 블라우스에 타이트한 스커트를 입고, 실크 장갑과 깃털 달린 펠트 중절모를 착용한 여인들이 시가를 문 신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어야 할 장소였다. 마치 영화의 세트장 같기도 한 로비의 모습에 반한 나는 매니저 로저(Roger)씨와의 인터뷰(?)를 통과한 끝에 ‘하룻밤’의 약속을 받아냈다. 물론 그 하루가 보름이 될 것이라고는 둘 다 예상하지 못했었다. 우아한 철제 난간으로 둘러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서 목격한 복도와 객실의 진상은 앞에서 이미 설명했으므로 생략한다. 정보 없이 왔다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버짓 호텔(Budget Hotel)에서 어찌 그 이상을 기대하랴. 

이 호텔의 기묘함은 그 설립자의 가족력과 가풍에서 나온다. 호텔의 설립자 막스 헨 박사(Dr Max Henn, 1906-2002)는 나치 치하 독일에서 망명을 떠난 화학기술자였다. 그는 방콕에서 애틀랜타 화학 공장을 설립해 운영 중이었는데 남은 공간을 미국의 군항공촬영전문가를 위한 숙소로 제공했던 것이 바로 애틀랜타 호텔의 시작이 되었다. 호텔을 운영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현재의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면서 귀향길에 오른 네덜란드인 농장주와 관료들이 공장에서 묵어 갔던 일이다. 대외적인 사업의 이면에는 그가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참여했던 첩보활동이 있었다. 

1952년 정식으로 문을 연 호텔은 정통 유럽풍의 부티크 호텔에 속했다. 감각적인 아트데코풍 인테리어는 막스 박사 부부가 20~30년대 중부 유럽의 극장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어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약품 생산을 위해 사육했던 뱀들이 우글거렸던 공간은 1954년 태국 최초의 호텔 수영장으로 개조됐다. 몇년 후에는 역시 태국 최초로 어린이용 수영장을 갖추었으며 에어컨룸, 독일식 레스토랑도 모두 처음을 기록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방콕의 호텔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애틀랜타는 가족사의 혼란에 휘말리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쏘이 2 전체가 물에 잠겼던 방콕의 대홍수가 몰락의 분기점이 되었고 거의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었다가 아들 찰리 헨(Charlie Henn)에 의해 최소한의 복구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당연히 고급 호텔의 영광을 뒤로한 채 지금은 버짓 호텔로 분류되고 있다. 적절하게 값이 매겨진 단출한 객실의 모습이야 앞서 폭로했으니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틀랜타는 세계 유명 가이드북에 꼭 언급되는 방콕의 가장 매력적인 ‘저가 호텔’이다. 당시만 해도 태국에서 가장 넓었던 수영장, 열대림이 우거진 정원, 로비의 매혹적인 인테리어, 지금도 VIP들이 찾아오는 레스토랑은 허름해 보이지만 여전하다. 복고의 유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오리지널에서만 풍겨져 나오는 연륜과 기품이 있다. 실제로 영화촬영이나 화보촬영지로 사용되는 로비의 매혹적인 모습과 레스토랑의 명성이 크지만 나는 이 호텔의 정신적인 유산에 더 많은 점수를 준다. 


1, 3 복고가 아닌 오리지널의 에너지가 있는 소품들 2 태국 최초의 독일식 레스토랑은 최대의 채식 메뉴를 갖춘 타이레스토랑이 됐다 4 아트 데코풍의 로비는 어느 각도에서 봐도 매력적이다

역사와 문화를 아는 자여 오라!

꼭 투숙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호텔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반응은 극과 극인데 만약 5분 만에 호텔을 나가 버리지 않는다면 길게는 하루 종일 두 끼 이상을 먹으면서 호텔에서 버티기도 한다. 내게 스윙 재즈 댄스를 가르쳐 준 실비아는 후자였는데 그녀는 투숙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 서운해하며 저녁까지 먹고 나서야 자신의 숙소를 향해 떠났다. 호텔의 로비는 뮤지엄 역할을 한다. 액자의 사진이나 그림이 하나하나 호텔의 역사를 설명해 준다. 애틀랜타의 단골 중에는 유난히 작가, 언론인, 사진가들이 많다. 그들의 출판물과 사진이 로비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호텔의 역사와 방콕에 대한 설명 자료를 읽는 것만으로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편집증이 의심되는 자료 정리와 전시의 결정판은 레스토랑의 메뉴판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아 온 그 어떤 메뉴와도 달랐다. 신문 스크랩용 나무 같은 긴 막대에 고정된 메뉴판은 두께와 무게가 만만치 않았고 심지어 논문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태국의 대표적인 식재료인 매운 고추(프릭 끼누)를 사용한 요리가 메뉴에 나오면 그 페이지 아래에 각주를 달고 태국 고추에 대해 설명하는 식이다. 이 메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을 들여 쓴 메뉴는 여러 차례 도난과 표절을 당했기에 메뉴의 외부 반출은 물론 내용의 일부를 베끼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이 가공할 메뉴를 포함해 호텔 관련 자료들의 저자는 아들 찰리 헨이다.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법학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학자적인 꼬장꼬장함으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와 자원 사용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친환경적인 원칙을 지키고 지역의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가격 대비 최상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태국 최대 규모인 100여 개 이상의 채식 메뉴를 갖추었다. 사실 애틀랜타는 호텔보다 레스토랑이 더 유명하다. 군더더기 없이 싸고 맛있다. 나 또한 고픈 배를 달래가며 일부러 호텔에 돌아와 식사를 한 날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긍심이 강한 애틀랜타는 거만하기까지 하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애틀랜타 호텔은 손님을 가린다. 우선 첫 번째 퇴출 대상은 ‘섹스 투어리스트’다. 이들은 문전박대의 대상이다. 방콕의 유명한 환락가인 나나 엔터테인먼트가 바로 옆 골목에 번창했으니 아예 문 앞에 경고 현판을 내걸고 있다. 또 마약 등 문제를 일으키는 골치덩어리 손님에 대해서 ‘무관용(zero tolerance)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문을 붙여 놓았다. 이런 원칙이야 상식적이지만 사실 애틀랜타는 폐쇄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은 장기 투숙자나 단골이 되어 보면 알 수 있는 일종의 거르기인데, 그들은 ‘싼 호텔이라고 얕잡아 보는 뜨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불평하지 말라. 이곳은 버짓 호텔이다. 싫으면 떠나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30년 이상 근무해 온 직원들의 눈에 찍혔다가는 당장 다음날 아침 ‘오늘은 방이 없다’는 말로 퇴거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 수많은 명사들이 호텔을 방문하지만 원칙적으로는 투숙객이 아닌 외부인에게는 레스토랑조차 오픈하지 않는다. 하지만 빗장은 단단하지 않다. “꼭 한번 와 보고 싶었어요”라는 말이면 그들은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다. 

어렵사리 호텔의 ‘하룻밤’을 얻어냈을 때 매니저는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처음 들어오기가 어렵지, 한번 들어오면 그 다음엔 다 잘될 거예요.”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보름 동안 호텔에 묵으면서 깨달았다. 머무는 동안 직원들과 가족처럼 가까워지고 투숙객들과도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며 친구가 되는 야릇한 경험을 했다. 호텔 문 앞에 이런 내용이 붙어 있다. 

“This is the place you are looking for, if you know it. If you don’t, you’ll never find it.”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애틀랜타는 알수록 사랑에 빠지는 호텔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은 돈보다 중요한 정신의 힘, 문화와 역사적 가치에 대한 안목을 지닌 친구이므로 애틀랜타에 노크할 자격이 있다. 단 두 달 전부터 두들겨야 한다.

■ 애틀랜타 호텔 Atlanta Hotel
위치 Atlanta Hotel, 78 Sukhumvit Soi 2, Bangkok.  가는 방법 BTS 펀칫역에서 도보 10분  전화 02-252-6069 요금 패밀리 스위트(4인) 1,700B, 스몰 스위트(1인) 750B, 에어컨룸(1인) 600B, 선풍기룸(1인) 500B  홈페이지 www.theatlantahotelban
gk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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