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박준의 교토 스토리②요시미즈 료칸과 요정 타마야의 점심도시락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5.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시미즈 료칸과
요정 타마야의 점심도시락

교토 사람들에게 도쿄는 여전히 ‘동쪽의 교토’인지도 모르겠다. 일본 국내에서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교토를 찾는 이들은 나날이 늘어간다. 외국인은 외국인대로, 일본인은 일본인대로 손에 지도를 쥔 채 거리를 서성이는 모습은 교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니 교토의 콧대는 높아질 수밖에. 만약 교토에 절과 신사밖에 없었더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교토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게 있는 것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envoyage@hanmail.net
취재협조 교토부 관광과  www.pref.kyoto.jp/visitkyoto/kr, 일본정부관광국 www.welcometojapan.or.kr/

***트래비는 4회에 걸쳐 ‘박준의 교토 스토리’를 연재합니다. Travie writer 박준은 여행과 사람을 들여다보는 그만의 깊이 있는 시각으로 줄곧 흥미로운 여행 이야기를 더불어 나누고 있습니다. 그가 지은 책으로는 <On the Road>, <네 멋대로 행복하라>, <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등이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산 속의 료칸에서 생선회가 나오잖아요.”


B&B 스타일의 료칸, 요시미즈

도쿄도 오사카도 아니고 교토다. 교토라면 한번은 료칸에서 묶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교토의 료칸은 비싸기로 유명하다. ‘교료리’라고 불리는 교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요정의 음식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콧대 높은 교토의 료칸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비싼 것은 아니다.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를 빼고 일본을 여행하는 데 가장 저렴한 숙소인 비즈니스호텔 정도의 가격으로 숙박할 수 있는 료칸도 있다. 그렇지만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우리가 료칸을 생각할 때 기대하는 무엇인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료칸은 관심 밖이다. 료칸은 료칸다워야 하고 나는 다만 저렴한 가격으로 교토의 료칸에서 묶고 싶기 때문이다. 

기온 부근 마루야마 공원 안에 위치하는 요시미즈 료칸이 그런 곳이다. 교토의 전통적인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적당한 가격으로 느껴 볼 수 있다. 요시미즈라는 이름은 인근 히가시야마에 있는 오래된 연못에서 유래했다고. 

료칸은 숲이 우거진 언덕 위 울창한 숲과 죽림 사이 한가운데 자리잡았다. 료칸 앞으로는 벚꽃나무가 무성하고 뒤로는 대나무 숲이 우거졌다. 교토 시내의 길가에 있는, 아무리 비싸고 전통 있는 료칸이라고 해도 그런 도심의 료칸과는 차원이 다른 공기가 이곳에선 흐른다. 방 안에는 TV도 전화기도 없다. TV보다는 료칸 주변의 자연을 즐기라는 게 요시미즈 료칸 오카미상(여주인)의 얘기다. 식당으로 쓰이는 커뮤니티 공간에는 벽난로와 피아노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손님들은 작은 음악회나 세미나,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고. 

대개 호텔에서는 손님 각자가 격리된다면 이곳에서는 한데 모인다. 호텔에서는 각자가 자기만의 공간을 독점한다면 이곳에서는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니 료칸의 공기가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돈을 내고 하룻밤을 지내는 곳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엉뚱하게 내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방에서 조용히 쉬고 싶다면 창문 밖으로 오래된 나무와 대숲을 바라보면 그만이다. 이곳에 나를 방해할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합리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아쉬울 수도 있는 것은 요시미즈 료칸이 B&B 스타일의 료칸이라는 것이다. 간단한 아침 식사 외에 보통의 료칸들처럼 성대한 저녁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를 오카미상에게 물으니,
“교토에 맛있는 식당이 많은데 굳이 여기서 먹을 필요가 있나요?”라고 되묻는다. 그러더니 문득 그녀가 덧붙인다.
“이상하지 않나요? 산 속의 료칸에서 생선회가 나오잖아요.”
오카미상은 경제가 번영하기 이전의 일본을 그리워한다고 했다.
“그때 일본인들은 조용히 살고 있었어요. 지금 일본 사람들은 매우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잃어버린 게 많은지도 몰라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은 사라져 가고 주식이니 투자니 돈에 집착하며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잖아요.”
오카미상은 자연의 평온함 속에서 일본 사람들이 조용히 살던 시절의 분위기로 료칸을 가꾼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성을 잃어버리기 전의 평화롭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1 숲으로 둘러싸인 요시미즈 료칸 전경 2 요시미즈 료칸의 객실은 작지만 편안하다 3 요시미즈 료칸이 위치한 마루야마 공원 4 요시미즈 료칸 객실의 거울. 거울은 여자의 마음이라 가려져 있다고 5 요시미즈 료칸의 커뮤니티 룸에서는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 6 요시미즈 료칸의 1층 모습 7 고급 요정 타마야의 다이묘 벤또는 점심 도시락으로 유명하다 8 타마야 입구에서 안주인 마쓰이 키요코상이 손님을 맞는다 9 다이묘 벤또는 3단으로 구성된다


_요시미즈 료칸
요시미즈 료칸의 방은 세 가지다. 다다미의 수에 따라 방의 가격이 달라지는데 6,800엔부터 9,800엔까지 다양하다. 아침은 토스트와 간단한 샐러드, 커피와 차 등을 제공한다. 요시미즈 료칸에서 쓰이는 식재료는 모두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것들이다. 다다미도 유기농법으로 만든 제품이다. 숙박비에 저녁식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요청에 의해 준비될 수도 있다. 기온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약간 경사진 길로 10분 정도 올라간다. 체크인은 3시부터, 체크아웃은 10시다. 화장실과 욕실은 모두 공용이다. 2개의 욕실은 일본의 전통 스타일이다. www.yoshimizu.com

타마야, 요정에서 먹는 점심 도시락



교토의 고급 요정요리를 먹어 보기로 했다. 교토의 역사 있는 요정에 한번은 들어가 보고 싶었고 베테랑이 만드는 ‘교료리’라면 비싸다고 해도 한번은 먹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는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적당한 가격에 교료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가이세키 요리의 축소판인 요정의 점심 도시락이다! 

봄비가 내리는 날 ‘타마야(玉家)’라는 요정을 찾았다. JR 이나리역 바로 앞이다. 여우가 신을 지킨다는 ‘이나리 신사’가 바로 옆이다. 요정 타마야는 얼핏 평범해 보인다. 고급 요정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그렇게만 보일 뿐이었다. 나중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작고 허름해 보이는 그 식당 안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사한 내실과 정원이 있었다. 

타마야 안으로 들어가니 ‘마쓰이 키요코’상이 나를 맞는다. 원래는 아버님이 직접 요리를 했지만 돌아가신 후 지금은 요리장이 주방을 맡고 마쓰이 키요코상은 손님 맞는 일을 한다고.
타마야는 1615년에 찻집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하니 17세기부터 영업을 시작해 14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다. 초기에는 요정과 여관을 함께 운영했으나 10년 전 여관은 그만두었다고 한다.
타마야는 ‘다이묘 벤또’가 유명하다. 에도 시대 영주들에게 점심으로 접대했다는 ‘영주 도시락’이 바로 다이묘 벤또다. 타마야 앞 도로는 좁은 1차선 도로지만 에도시대에는 간사이와 도쿄를 잇는 중요한 길이었다. 그런 탓에 타마야는 400년 동안 도쿄를 오가는 영주들의 숙소이자 식당, 휴게소였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내다보이는 커다란 다다미방 테이블 위로 마침내 3단 도시락이 놓였다.
도시락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도시락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단은 참치, 도미, 꽁치 같은 생선회, 중단은 계란말이, 농어구이, 깨두부 그리고 생선과 채소를 익힌 요리, 하단은 튀김, 초절임, 꼬치 등이 화려하다. 여기에 밥과 된장국이 곁들여진다.

다이묘 벤또의 가격은 3,465엔부터 시작된다. 도시락은 같아도 식당에서 먹으면 3,465엔, 내실에서 먹으면 5,250엔이라고 한다. 도시락 가격이 그게 어디 싼 거냐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한 번 아닌가. 교토역에서는 10만원이 넘는 도시락도 판다. 가이세키 도시락이다. 그게 교료리라는 일본의 식문화다.

아무도 없는 커다란 다다미방에 앉아 혼자 도시락을 먹으려니 좀 심심하다. 다이묘 벤또는, 혼자라면 가볍게 식당에서 먹는 게 좋고 여럿이면 다다미방으로 예약해 느긋하게 즐기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이묘 벤또의 맛?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 번은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풍미를 가졌다고 말할 수밖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2시30분, 오후 4시30분~오후 6시 예약 075-641-0103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