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산둥성 페리 여행 齊魯의 땅을 가다
중국 산둥성-산둥성 페리 여행 齊魯의 땅을 가다
  • 트래비
  • 승인 2009.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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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페리 여행
齊魯의 땅을 가다

웬만큼 축척이 큰 세계지도에서도 겨우 손가락 한 마디 거리에 자리한 중국 산둥. 서울서는 제주도보다 가까우니 엎어지면 코보다 무릎이 먼저 닿을 동네다. 배를 타고 가는 산둥 여행을 추천하는 이유도 바로 이 가까운 거리 때문. 느린 배를 타고서도 하룻밤 나절이면 도착하고, 크루즈나 한일페리에 비해 배삯도 저렴하다. 그리고 페리에는 무엇보다 비행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갈 수 있고 둘러볼 만한 곳도 많은 산둥성. 페리를 타고 과거 제노(齊魯)의 땅 산둥성 칭다오, 취푸, 태산과 노산을 다녀왔다.

글·사진  도선미 기자  
취재협조  위동페리 www.weidong.com


너도 타 보면 알게 될 거야

인천에서 칭다오까지는 비행기보다는 페리를 이용해 볼 만하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항로는 한정돼 있어서 사실상 페리를 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인천-칭다오는 ‘모범 항로’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동 시간이 17시간 정도로 부담없고 페리도 시설면에서 으뜸이다.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보내는 하루를 생각하면 17시간은 길디 길지만 크루즈식의 즐길거리들을 갖추고 있는 페리에서는 산법이 달라진다. 오후 늦게 출항해 잠들 때까지 대여섯 시간을 지루할 새 없이 보낼 수 있다. 

우선 짐을 풀고 선상 라운지에서 디너를 즐기고 일몰을 감상한 뒤 뜨거운 물 콸콸 쏟아지는 사우나에서 몸을 푼다. 그리고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새우깡을 사서 2층 미니 영화관으로 간다. 영화 한 편을 진득하게 보고 새우깡 한 봉지를 다 비웠다면 약간 갈증이 나겠지? 깔깔해진 입에는 맥주가 제격이다. 3층 선내 바에서 선창을 바라보며 건배. 스스로 여행의 흥을 돋우면서 몇 차례 잔을 기울이고 나면 살짝 술기운이 오른다. 이때가 바로 갑판으로 나갈 타이밍. 망망대해 바다 바람은 알아서 술기운을 탁탁 털어 가고 바다 위엔 이 먼 바다까지 조업을 나온 배들의 집어등 불빛, 머리 위엔 서울 사는 사람들은 CG로나 봤음직한 무수한 별들.... 

아직도 노래방이라는 코스가 남았지만 아마 이 정도쯤 하고 나면 시간은 이미 새벽을 향해 치닫고 있을 테다. 선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깊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조수의 출렁임이 미세하게 전해 온다. 요람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마 이때쯤 느낄 거다. 어떤 징조랄까, 직감을. ‘이 여행은 흡족해지리라. ’


1 전문의 오른쪽 회랑을 따라 올라가면 드디어 노산의 영기봉이다 2 공자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벌였던 곳인 행단 3, 4 위동훼리 뉴골든브릿지는 바다 위의 호텔이나 다름없는 시설과 규모를 갖췄다


칭다오,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

페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면 다시 드문드문 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무인도가 사람 사는 섬이 되고 섬 뒤에 곶이 나타나면 칭다오에 다다른 것이다. 칭다오는 우리나라 강릉이나 속초처럼 중국인들이 손에 꼽는 해변도시. 황해를 생각하곤 싯누런 물을 떠올렸을지 모르지만 칭다오의 바닷물은 새파랗게 맑다.

칭다오에는 특히 우리나라 동해안 7번 국도 못지않게 잘 빠진 해안도로가 깔려 있으니 하루 정도 날을 잡고 그 길을 즐겨도 좋겠다. 칭다오의 매력은 바로 이 해안도로를 사이에 놓고 펼쳐진 푸른 바다와 이와는 대조를 이루는 붉은 지붕의 색감. 해안선 이쪽에는 칭다오 시내의 8개 해수욕장 중에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석노인 해변과 해양공원, 칭다오의 상징물인 잔교 등이, 다른 편에는 붉은 지붕을 인 독일식 건물들이 잇따른다. ‘독일의 어느 소도시’풍경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 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힘들다. 집집마다 무슨 빨래를 그렇게들 내다 널었는지 색색깔의 옷가지들이 나부끼는 모습이 역시 중국이다. 

칭다오 시내와 해변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소어산에 오르면 풍경은 더욱 두드러진다. 소어산은 옛날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던 칭다오 사람들이 그물을 말리던 산인데 소어산을 중심으로 지금의 시가지가 형성됐단다. 현재는 산이라기보다 얕은 둔덕 정도니 전망대인 남조각에라도 올라야 멀리까지 보인다. 전망대 오른편으로는 해안선을 뚫고 비죽이 나온 부두가 보이는데 바로 칭다오의 상징인 잔교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발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잔교는 칭다오 맥주의 도안이기도 하다. 최초에는 어항부두였으나 청 말기 독일 조계지로 강제 개항하면서 군용부두로 재건축됐는데 현재는 부두로는 사용하지 않고 상징적인 관광지로만 이용된다. 잔교 끝에 지어진 팔각정 회란각까지, 부둣길 500여 미터는 항상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1 칭다오의 뷰포인트인 소어산(小魚山) 남조각 2 소어산 정상에 있는 암각 벽화. 물고기의 형상과 소(小)와 산(山)을 조합해 만든 상형문자다 3 소어산 남조각에서 내려다본 칭다오 해안 풍경. 정면으로 보이는 부두가 잔교, 해상 정자가 회란각이다


노산vs태산

태산, 하늘 아래 뫼

산둥성을 대표하는 양대 명산인 태산과 노산은 라이벌 관계다. 물론 명성으로 따지면 노산이 한참 뒤지지만 산둥성에서만큼은 ‘아무리 태산이라도 노산만 못하다’, ‘해상제일산(海上第一山)은 노산’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우선 태산은 중국에서 가장 영험한 산이자 오악의 ‘머릿산’으로 꼽힌다. 중국인들은 태산에 오르면 수명이 10년 연장되고 죽어서도 영혼이 다시 돌아와 영생을 누린다고 믿어 해마다 봄이면 태산을 오른다. 이 같은 믿음은 중국의 창세 신화인 ‘반고(盤古)’의 전설과 관련이 깊다. 태초에 우주는 빛과 어둠이 뒤섞인 혼돈의 상태(카오스)였는데 그 사이에 이음새 공간에서 반고가 태어났다. 그가 자라남에 따라 밝은 부분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됐고 어두운 부분은 밑으로 내려가 땅이 됐단다. 1,800년을 산 반고가 죽고 그의 머리가 변해서 만들어진 것이 태산이고 그 머리카락은 온갖 초목으로 회생했단다. 동쪽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태산이 생명을 잉태하는 산을 상징하게 된 데는 이처럼 오래된 믿음이 있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 때문에 종종 태산이 에베레스트만큼 높다는 오해를 사고 있지만 실제로 태산은 백두산보다 낮고 오대산보다 낮은 해발 1,545m. 단지 평원지대에 나 홀로 우뚝 솟아 있어 높아 보일 뿐이다. 그러니 오르고 또 오르면 당연히 못 오를 리 없다. 태산을 오르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동쪽의 홍문 방향에는 등산로가 있고 서쪽의 천외촌 방향으로 가면 미니버스와 케이블카를 이용해 오를 수 있다. 하지만 홍문에서부터 도보로만 등정하려면 6시간은 족히 걸리는데다 산행길 전체가 돌계단이기 때문에 극기훈련을 할 각오가 아니라면 중천문까지는 미니버스로,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는 도보 또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남천문 이후에는 주봉인 옥황정까지 불과 해발 100여 미터. 평평한 하늘거리인 천가가 펼쳐져서 보다 쉬엄쉬엄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태산 입장료 3~10월 125위안, 11~2월 100위안
미니버스 이용료 상행 20위안, 하행 30위안   케이블카 이용료 개인 기준 편도 80위안, 왕복 140위안


1 수복(壽福)과 재복(財福)을 빌기 위해 태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2 당마애 석벽에는 갖가지 명문이 새겨져 있다. 특히 금박으로 새겨진‘기태산명비’는 당 현종이 새긴 것으로 높이가 13.3m, 폭 5.3m나 된다 3 옥황정 가는 길 4 봇짐상들은 오늘도 7,0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내린다 5 하늘과 맞닿은 천가. 각종 음식점과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다

노산, 바다 위의 뫼 

관광객들로 사시사철 북적이는 태산과 달리 아직 인파의 때가 덜 묻은 노산에서는 좀더 조용한 등산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도교의 발상지답게 속세를 떠나 있는 듯한 숙연함도 느껴져 더 운치가 있다. 주변에 웅장하게 솟은 화강암 기암괴석들도 어쩐지 딴 세상으로의 초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노산의 등반 코스는 크게 남로, 북로, 중로로 구분되고 풍경구별로는 9개로 나뉜다. 이중 남로의 거봉풍경유람구가  가볍게 등산하기 좋아 트레킹 코스로 애용된다. 유람구 입구에서 케이블카 탑승장까지는 미니버스로 20여 분이 소요되는데 신선들의 산이라는 별명답게 바위벽마다 도교와 관련된 갖가지 설화와 태극 문양들이 새겨져 재미를 준다.
케이블카가 산 중턱에 닿으면 진짜 산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노산 역시 돌계단 등산로인데 앞은 첩첩 계단이지만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푸른 바다가 등 뒤에 있어 청량제 역할을 해준다. 역시 ‘해상제일산’이라는 평가가 무색치 않다.   

노산은 물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칭다오 맥주와 라오산(노산) 맥주의 주원료인 광천수가 여기서 솟아난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산 중턱에 라오산 맥주를 파는 파라솔 매점을 볼 수 있는데 3위안 짜리를 10위안에 파는 바가지 요금이긴 해도 산행 중에 먹는 라오산 맥주는 역시 꿀맛이다. 

정상인 거봉(1,133m)은 군사시설로 미개방 지역이고 제2봉인 영기봉까지는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도보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영기봉에서는 금강산 일만이천봉 못지않게 수려한 산세와 푸른 바다를 만끽할 수 있다. 신선들의 산에 오른 참에 소원도 하나 빌어 보자. 빨간 실을 돈과 함께 나무에 묶어 놓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물론 돈은 늘 어딘가로 사라지지만. 

노산 입장료 4~10월 70위안(북구수유람구는 50위안)
미니버스 이용료 왕복 15위안
케이블카 이용료 거봉케이블루프 왕복 60위안  


1 영기봉의 협곡과 협곡을 연결한 허공다리 선천교 2, 3 노산은 기암괴석으로 둘러쌓여 딴 세상인 듯하다


취푸에서 달콤살벌한 산책

칭다오에서 취푸(곡부)까지는 버스로 내리 5시간을 꼬박 달려야 한다. 가는 내내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민틋한 들판이 펼쳐지는 이유는 이곳이 바로 중국의 3대 평원 중 하나인 화북 평원이기 때문. 삼면이 바다인데다 내륙으로는 황하와 비옥한 평야가 있으니 산둥은 확실히 축복받은 땅이다.  

하지만 산둥에 내려진 가장 큰 ‘은총’을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공자님이다. 중국인들에겐 예수님, 부처님보다 위대한 성인이고 그분이 납신 곳이 바로 산동성 취푸다. 현재 취푸에는 공자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사당(공묘)과 저택(공부), 공씨 일가의 가족묘지(공림) 등 이른바 삼공(三孔)이 있다. 모두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밀집해 있어 넉넉히 3시간 정도면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다. 특히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오전 8시부터 개방해 한적한 시간에 방문할 수 있는 것도 장점. 천년 이상 된 건물이 머금은 켜켜한 세월의 향취와 뒤섞인 아침 햇살의 새물내는 묘한 충만감을 준다.
삼공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공자의 사당인 공묘(孔廟)와 공자의 저택 공부(孔俯)로 가는 입구격인 취에리(闕里)로 들어서야 한다. 공자님이 살던 거리라 ‘궁궐 마을’이라고 불린다는데 그래서인지 여느 중국 거리답지 않게 깨끗히 비질된 길이 인상적이다. 

궐리를 지나서 모퉁이를 돌면 바로 공묘 입구다. 공묘는 원래 노나라 의 제후 애공의 집이었는데 그의 유지대로 서거한 후 공자의 사당으로 개축했다. 벌써 3,000년 전 일이다. 공묘의 참배로는 금성옥진(金聲玉振)이라고 쓰인 패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러 개의 패방과 영성문, 성시문, 홍도문, 대성문 등의 높은 문턱을 차례로 지나면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건물이 보인다. 대성전은 황금빛으로 칠한 지붕과 높다랗게 올린 기단 때문에 자금성과 흡사하게 느껴지는데 실제로 중국에서 자금성 외에 유일하게 황금지붕을 가진 건물이다.  

공묘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사방 어디를 봐도 비석이 즐비하다는 것. 공묘는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우거진데다 53개에 이를 정도로 많은 비석이 있어 ‘비림(碑林)’이라고도 부른다. 이 많은 비석 중에 황제가 세운 것만도 13개로 특히 헌종황제의 친필이 새겨진 성화비가 유명하다. 

공부는 공자의 자손들이 대대손손 살아온 가택이자 관청으로 공묘의 맞은편에 있다. 공자의 자손들은 한나라 시대 이후 제후와 동격으로 존중됐고 송대부터는 아예 연성공이라는 관직을 받아 취푸의 지방관청 사무를 총괄했다. 하지만 현재는 마지막 연성공인 77대손 공덕성이 문화혁명 당시 대만으로 피신한 후로 반세기 넘게 주인 없는 집이 됐다.
 
연성공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에는 자금성에서 기마를 탈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작위 세습도 있었다. 공씨 일가는 오랫동안 취푸에서 임금님 못지않게 세를 누려 왔는데, 사실 그처럼 선택받은 삶도 완전히 부러워할 것은 못 된다. 연성공들은 공자의 후예라는 이름에 걸맞는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8살이 될 때까지 후원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티 없이 즐거워야 할 유년을 이곳에 갇혀서 보낸다고 생각하니 고풍스런 사합원식 정원과 천장 높은 집이 새삼 스산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연성공들은 매일같이 엄격한 자기 통제와 수양을 거듭해야 했는데, 그 일면을 ‘성부(聖府)’라고 쓰인 입구의 현판과 ‘탕’ 벽화에서 엿볼 수 있다. 

공자를 성인으로 칭했기 때문에 성부는 공부의 다른 이름이다. 현판을 자세히 보면 ‘부(富)’자의 갓머리에는 삐침이 없다. 후원에 있는 헛담에 그려진 ‘탐’도 같은 맥락. 용의 머리에 개의 몸, 원숭이 꼬리, 기린의 피부를 닮은 탐은 흉악과 무도의 상징이다. 연성공은 집안 곳곳에서 이 같은 비유를 되새기며 욕심과 부귀영화를 멀리했으리라. 그야말로 대쪽 같은 군자의 기개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너무나 위대한 조상님을 만난 탓에 그들의 삶은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공림(孔林)은 공부에서 나와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에 있는데 10위안을 내고 마차를 타거나 20분 정도 걸어서 가기에도 무리가 없다. 10만 그루가 넘는 소나무와 측백나무들이 울울창창한 이 숲에는 공자와 공자의 아들, 공자의 손자, 그후로 대대손손 수많은 공씨들이 묻혔다. 공림에 있는 묘비만도 전부 7,000여 기라는데 이중 인적이 확인된 것은 3,000여 기고, 비석이 세워지지 않은 무덤은 훨씬 더 많다. 그러니까 말이 좋아 숲이지 실상은 이곳이야말로 공묘(孔墓)다. 

이른 아침의 공동묘지 산책. 꺼림칙한 일로 생각된다면 선입견이거나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공동묘지에는 공자님의 비호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사실 토장이 금지되는 중국에서 공림은 거의 유일한 공동묘지인데 그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공자님의 아우라 탓인지 묘지답지 않은 산뜻함(?)과 청량함,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만약 당신이 공씨라면 행운아다. 공자의 후손이라면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족보 판별 후 공림에 묻힐 수 있다니까. 

중간쯤 가서 갈라진 오솔길은 공자의 묘와 그의 아들 공리, 그의 손자 자사의 묘로 이어진다. 사실 공자의 묘에는 공자 없이 그의 옷가지와 관모만이 안치돼 있기도 하고 묘의 크기도 생각보다 단출해 큰 감흥은 없다. 공림의 전체 넓이는 곡부 전체의 5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넒어서 다 둘러보기는 무리이므로 입구에서 10위안에 자전거를 빌리거나 20위안을 내고 관람차를 타는 것도 좋겠다.
삼공 입장료 공부 60위안, 공림 40위안, 공묘 90위안


1 공자님이 살던 공부 주변은 궁궐 마을이라는 뜻의‘취에리’로 불린다 2, 3, 5 삼공 주변에는 기념품을 살 만한 곳이 많다. 특히 도장과 논어를 수기한 죽찰은 유명하다 4 공자전병도 취푸의 특산물. 밀가루를 얇게 펴서 화덕에 굽고 깨를 흩뿌린 것인데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1 진시황의 분서갱유 당시 공자의 9대손이 유교 경전을 숨겼던‘노벽’. 한대에 벽이 허물리면서 경전이 다수 발견됐다 2 전설 속의 동물인 탐은 흉악과 무도의 상징이다. 신선들의 권능을 빼앗고도 모자라 태양을 삼키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 3 공묘는 비석이 많아 비림이라고도 불린다. 비석을 지고 있는‘비희’는 중국판 헤라클레스. 용의 첫째 아들로 무거운 것을 지기 좋아해 돌비석의 기단 역할을 주로 한다


인천-칭다오를 오가는 위동페리 뉴골든브릿지(New Golden Bridge)Ⅴ호

오락편의시설 노래방, 레스토랑, 면세점, 사우나, 영화관, 다목적 룸, PC 게임방, GS25 편의점 등
선내 면세점물품 담배, 세계 양주, 화장품, 액세서리 외 세계 명품 다수
운항일정 매주 화·목·토 |오후 5시 인천 출발, 다음날 오전 9시 칭다오 도착
매주 월·수·금 | 오후 5시 칭다오 출발, 다음날 오전 11시 인천 도착
객실종류 딜럭스로열(2인실), 로열(2인실), 비즈니스(2층 침대, 4인실), 이코노미(2층 침대, 6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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