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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가슴으로 권하는 여행의 기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5.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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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
가슴으로 권하는 여행의 기술

한 시간 반 가량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 축적한 기자의 시야와 지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얕았는가를 뼈아프게 느꼈다. 딴에는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것을 보았다 자신했는데, 지금껏 뱉은 수많은 감탄과 환호가 참으로 가벼운 것이었음을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이슬람 전문가로 30년간 세계를 누빈 이희수 교수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는 그만큼 넓고 깊었으며 또 관대했다.

글·사진  이민희 기자


터키를 사랑한 남자, 터키가 사랑한 남자

터키의 국립 이스탄불대학교 최초의 동양인 유학생이자 최초의 동양인 교수였고 현재는 한양대학교 교수이자 이슬람 전문가, 문화인류학자로 활동 중인 이희수 교수에게 붙은 수식은 참 다양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시선이 터키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격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서울대에 지원했다가 3번을 낙방했고, 막판엔 점수에 맞춰 외국어대학교 터키어과에 들어가게 됐어요. 하하.” 하지만 석유파동 직후 이슬람이라는 존재는 그에게 하나의 빛과도 같았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던 이슬람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터키를 알고 나자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서도 벗어나게 됐습니다. 이제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도시 하나만 고르라면 무조건 터키의 이스탄불을 꼽아요. 인류 5,000년의 역사 중 4,800년의 역사가 반경 2km이내의 한 도시에 축적된 도시가 이스탄불이거든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원류이자 히타이트, 아시리아 문명이 뿌리를 내린 도시며 그리스 로마 문화의 유적들이 현지보다 더 많이 남아있어요. 그뿐인가요. 그리스 로마의 중요한 유적지들과 초대 7대 교회, 칼케돈(Chalcedon), 에페소(Efes) 같은 중요한 기독교 성지들도 터키에 있구요. 그 뒤로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비잔틴 문화를 꽃피웠는가 하면 터키의 수도이자 이슬람 문화의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잖아요. 이 지구상에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5,000년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세계테마기행을 주제로 한 TV프로그램에서 그가 터키를 소개한 기억이 있어 무심코 건넨 질문에 그는 갑자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워낙 달변가인데다, 고등학교 이후 머릿속에서 꺼낼 일이 없었던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오스만 등의 단어가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기자는 세계사 시험을 치르는 듯 머릿속이 그만 하얘지고 말았다.
터키와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그는 이후 10년여를 해외에서 생활하며 터키는 물론 중동 지역 전문가가 되었다. 터키의 국립 이스탄불대학교 최초의 동양인 유학생의 타이틀을 넘어 최초의 동양인 교수가 되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그를 찾지 않았다. “200개가 넘는 대학에서 강의 하나 내어주질 않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중동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증거였죠.” 결국 그는 한국에 돌아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백수’로 놀아야 했고 이는 문화적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문화운동에 대한 그의 욕심이 커져만 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행의 기술 하나, 지식으로 무장하라

여행은 이제 사치가 아닌 재충전을 위한 필수 행위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진 않다. 적어도 기자에게 있어선 여행길에서 만난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감탄의 유효기간이 너무도 짧아 일주일만 넘으면 목마름을 안고 떠난 여행도 일상이 돼버리기 일쑤. 이희수 교수는 이에 대한 원인을 ‘무지’와 ‘이해의 부족’에서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아직 모르는 거 같아요. 패키지여행도 마찬가지에요. 가이드가 보여 주는 것만 보고 알려주는 좁은 지식만으로 그 사회를 알게 되잖아요. 단 한 나라를 보더라도 제대로 문화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죠.” 그가 <세계문화기행>, <지중해문화기행>, <세계도시 견문록> 등의 책을 꾸준히 내며 집필활동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이들의 여행에 동참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 아쉬움을 책을 통해 달랠 수밖에요.” 

사실 그는 ‘놀아야만 했던’ 그 시절, 실제로 여행객을 모집해 이집트 여행에 나선 적이 있었다. 91년도에 신문광고에서 1주일간 유럽 16개국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다. “룩셈부르크 3국은 야간버스로 잠자면서 지나가고,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미술관에서 30분 이상 머물 수가 없는 일정인 거예요. 이게 무슨 여행입니까?” 여기에 자극을 받은 이희수 교수는 전문가와 함께하는 고대문명 탐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집트에서만 15일을 머무는 일정이었는데 반응이 대단했다고. 30명을 모집했는데 참가인원이 너무 많아 60명으로 늘려 두 번에 걸쳐 진행했을 정도였다. 이때의 일을 계기로 각계 사회 저명인사들과 일반인들이 모여 ‘이희수 교수와 세계문화기행을’이란 동호회를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일년에 두 번씩 세계 각지의 문명을 찾아 여행을 다닌단다.

여행의 기술 둘, 조용히 가슴으로 느낄 것

이 동호회에 속한 이들은 이시형 박사, 연극배우 박정자와 윤석화, 소설가 이윤기와 이문열, 시인 박노해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여행과 문화에 조예가 깊은 인사들과 여행을 좋아하는 다수로 구성되어 있다. 일년에 꼭 두 번씩, 20년 가까이 다녔으니 이젠 안 가본 지역이 없을 정도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구 두 바퀴는 족히 돌았을 거란다.

이렇게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또 배웠지만 그는 오히려 겸손해졌다. 인류가 만든 유적들은 현대의 첨단과학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도 많았고 선조들의 지혜로 일군 유적지 앞에서 그의 지식은 얄팍하게만 느껴졌다. “제가 달변가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말수가 없어졌어요. 처음엔 이건 이렇고 여기에선 뭘 봐야 하고 등등 많이 떠들었거든요. 이제는 설명하는 대신 명상의 시간을 드려요. 유적이 주는 기운과 무수한 시간을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더라고요.”

세계에 그의 발자국이 안 닿은 곳이 과연 어딜까 싶다. 지구 두 바퀴를 돈 남자에게 미지의 세계가 남아있을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네팔이요. 티벳까지는 갔는데, 네팔을 못 가봤어요. 아니, 갈 기회는 많았지만 안 갔다고 해야 맞겠네요. 이화여대에 네팔 봉사를 20년 동안 해오신 교수님이 계시는데, 네팔은 꼭 그분과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껏 가지 않고 있거든요. 올해나 내년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 다음엔, 남극에 도전해야죠. 하하.”

다음달이면 전국의 대학들은 일제히 방학에 접어들 것이다. 그 얘기인즉슨, 이희수 교수가 슬슬 짐을 챙길 때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여름에는 몽골, 바이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잇는 코스로, 겨울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짐바브웨, 케냐, 탄자니아, 사파리로 인류문명의 기원을 찾아 떠날 거라고 했다. 이어서 아프리카가 왜 인류문명의 기원인지를 또 열심히 설명하는 그를 보며 꼭 한번 그와 함께 미지의 땅을 밟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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