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주년 기념-트래비 기자들이 공개하는 ‘나만의 특별한 여행지’③부산
창간 4주년 기념-트래비 기자들이 공개하는 ‘나만의 특별한 여행지’③부산
  • 트래비
  • 승인 2009.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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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이기자의 특별한 ‘그 곳’

부산, 나를 숨쉬게 한 바다

내게 있어 2001년 겨울은 첫사랑에 막 실패한 겨울이었으며, 교지편집실의 편집장으로 첫 책 작업의 부담감에 시달리던 겨울이었다. 그날도 동기들과 함께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서자, 무슨 생각에선지 서둘러 버스에서 뛰어내렸고 내 손엔 부산행 버스표가 쥐어져 있었다. 

글·사진  이민희 기자


1 태종대는 순환열차나 유람선을 타는 등 두 가지 방법으로 돌아볼 수 있다 2 남포동 영화의 거리 3 태종대의 깎아지른 절벽에 서면 아찔함이 밀려올 게다 4 그 이름도 유명한 부산 갈매기


그렇게 내 생애 최초의 ‘나 홀로 여행’이 시작됐다. 왜 하필 부산이었는지, 가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부산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5시. 우선 핸드폰 전원부터 껐다. 날이 밝아 오면 어디냐는 동기의 전화가 걸려 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어이없게도 ‘도망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회귀 본능은 있었는지 부산역에서 그날 서울로 향하는 마지막 기차표를 끊어 놓고선 부산역에서 태종대로, 태종대에서 남포동 영화거리로 또 자갈치 시장으로 지도 한 장 없이 참 잘도 돌아다녔다. 태종대의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으며, 남포동에서 혼자 영화를 본 뒤 복작대는 자갈치 시장도 열심히 걸어 다녔다. 평소엔 혼자 밥을 먹느니 차라리 굶고 말았는데, 그때는 무슨 깡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할 따름이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툭하면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게. 게다가 여행기자가 된 지금은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절경을 찾아 한 달에 한두 번은 짐을 싼다. 하지만 정작 나의 잊지 못할 여행지는 초라하게도(?)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부산이다. 좀더 거창하고 남들 부러워할 만한 곳이 없을까 고민도 했지만 동이 트는 태종대에서 트로트가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통통배에 몸을 싣고 누비던 바다를 난 잊을 수가 없다. 잠시나마 첫사랑 ‘그’도, 미완의 ‘책’도 부산 앞바다에 던져 버린 뒤 시원하게 큰 숨 한번 쉴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돌아와서 동기 녀석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며 책 작업 내내 밥을 사야 했지만.

작년 겨울, 프리랜서로 위장한 ‘백수’의 신분이 고달팠던 어느 날 밤에 내달린 곳도 역시 부산이었다. 그날 밤 난 마침 눈앞에 경부고속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냅다 달렸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부산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트로트를 열창하던 통통배는 안락한 유람선으로, 단돈 3,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던 허름한 식당은 값비싼 음식점으로…. 7년 전 <어둠 속의 댄서>를 보고 더 우울해졌던 나는 이번엔 <맘마미아>로 흥을 돋우었고, 마지막으로 자갈치 시장이 ‘자갈치 건물’로 바뀐 것을 아쉬워하며 돌아왔더랬다.

물론, 하룻밤 짧은 일탈을 시도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8년 전의 나는 부산에서 돌아오자마자 교정지에 파묻혀 오탈자와 씨름해야 했고, 작년 역시 부산에 가기 전이나 다녀와서나 난 대책없는 백수였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훌쩍 떠나고 싶고, 떠날 수 있는 ‘그 어떤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때론 소주 한잔에 버금가는 위로를 받곤 한다. 소소한 풍경은 변할지언정 그곳엔 여전히 마음의 짐을 털어낼 수 있는 바다가 있고, 언제든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이 있을 테니. 그리하여 서울 하늘이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어느 날 밤, 난 어김없이 부산행 버스표를 쥐고 있을 테니 말이다.

* 내게 세상을 꿈꾸게 하고, 추억을 선물한 Map & Dairy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미국시트콤 <프렌즈>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로스의 결혼식 참석차 영국에 간 챈들러와 조이는 여행을 나서지만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어디로 가야할지 헤매고, 급기야 조이가 지도 한 장을 바닥에 펼친 뒤 그 위에 올라선다. 낯선 곳에서 헤맬 때면 여지없이 지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던 기억이 떠올라 어찌나 웃었던지. 

출장 중에 짐이 늘어나는 것도 싫고, 아기자기한 소품 보는 안목도 없는 나에게 특별히 ‘애장품’이랄 건 없다. 다만 꼭 욕심을 내는 것이 있다면 현지에서 챙겨 온 지도. 어렸을 땐 지구본에 집착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관심이 지도로 옮겨갔다. 세계지도에서부터 각 나라의 시티 맵까지 눈에 보이는 지도는 모조리 챙기고 본다. 그렇게 지도 한 장 손에 쥐면 마음까지 든든하다.

추억을 되새길 때에는 다이어리만큼이나 유용한 게 없다. 2006년 첫 해외여행이자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매일 녹초가 되어 들어와서도 자기 전, 다이어리만큼은 참 열심히 적었다. 동선과 가계부는 물론 무얼 먹었는지부터 그날 일어난 일까지 아주 상세하게. 지금도 가끔 다이어리를 보고 있으면 벌써 3년 전 그날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열차를 잘못 타서 출발 직전 캐리어를 들쳐 업고 미친듯이 뛰던 베를린의 밤, 카프리 섬에서 배탈이 나 울상인인 언니를 대신해 하루 온종일 “Where is toilet?!”을 외치던 기억, 바퀴벌레가 득실대던 파리의 민박집에서 귓구멍을 휴지로 틀어막고 자던 일까지. 30일간의 여행 다이어리는 아마 30년이 지난 후에도 내게 흐뭇한 웃음을 안겨줄 게다.


* 나를 여행하게 만드는 책 Best 3

최갑수 포토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을 단 몇 페이지라도 읽은 날이면 버스정류장에라도 나가 앉아 있고픈 충동을 느끼곤 했다. 특히 ‘우리가 여행을 떠나야 할 때’라는 제목의 글을 읽은 어느 겨울밤엔 겨우 체온으로 따뜻해지기 시작한 이불을 박차고 나가 차에 시동을 걸었더랬다. ‘새 카메라를 샀을 때, 밤새도록 단 한 문장도 제대로 만들 수가 없을 때, 햇볕에 말라 가는 오징어처럼 속수무책일 때’ 등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 구절들의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써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지금’.

맛있는 책일수록 마지막 장이 가까워 온다는 게 아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아껴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침대 머리맡에 놓고 자기 전에 한 페이지씩 읽는다든가 잠시 읽기를 중단하는 때가 있다. 이병률 산문집 <끌림, 1994-2005 Travel Note>은 그런 이유로 한동안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여러 물음표와 말줄임표를 던지는 정체불명의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나라와 나라가 아닌 인생과 인생 사이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다 읽었다는 개운함과 성취감 보다는 또 읽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아 아직까지도 이 녀석을 책장으로 돌려보내지 못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역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책이다. 흔히 여행분야의 책들이 ‘떠남’에 대한 인간의 내밀한 본성을 건드리고 충동질한다면 이 책은 “넌 왜 여행을 가는데?”라는 본질적이고도 날카로운 질문으로 주춤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보들레르, 워즈워스, 고흐 등 익히 들어 온 이름부터 버크, 위스망스, 호퍼 등 생소한 이름의 안내자와 함께 런던, 마드리드, 이집트 등을 여행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덕분에 몇 시간에 달하는 비행 대신 그저 푹신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맥주를 홀짝이거나 팝콘을 씹으며 이들의 고독과 열정, 반항과 깨달음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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